발칙한 QT

주님의 문과 세겜의 문 ( 창34:18-31 ) 본문

구약 QT

주님의 문과 세겜의 문 ( 창34:18-31 )

주하인 2007. 5. 22. 10:36

제 34 장 ( Chapter 34, Genesis )

18. 그들의 말을 하몰과 그 아들 세겜이 좋게 여기므로 
 하나님 편의 말을

땅의 편 사람들이 좋아한다.

 

 
22. 그러나 우리 중에 모든 남자가 그들의 할례를 받음 같이 할례를 받아야 그 사람들이 우리와 함께

     거하여 한 민족 되기를 허락할 것이라 
23. 그리하면 그들의 생축과 재산과 그 모든 짐승이 우리의 소유가 되지 않겠느냐
 

 그리고 그들도 할례를 받기로 한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과 한 민족이 되는 것 같은 마음으로 기쁘게 하는 것 같다.

그것은 그들의 재산까지 염두에 둔 생각으로

세겜으로 대표되는 땅의 사람들은

하나님 편 사람들이 일견 자기들과 다른 사람들이라서 배척도 하지만

그들의 어딘 지 모를 품격과

그들이 가지고 있는 소유에 대하여 나름대로 경외감이 있는 것이다.

그것은 지금은 인터넷등으로 묶여 전혀 그렇지 않지만

옛날의 시골 부자가 아무리 돈이 많아도

서울 사람들의 품격에 대하여 나름대로 동경하는 그런 감성과 비슷하지 않을까?

더더구나 그들의 축복이 자기들 것이 된다니

이것이야 말로 목숨걸고 해야할 일이 아닌가?

 

( 가끔은 화려해 보여도 그 문 뒤쪽이 혼란의 구덩이 일수도 있습니다. )
 
24.  성문으로 출입하는 모든 자가 하몰과 그 아들 세겜의 말을 듣고 성문으로 출입하는 그 모든

     남자가 할례를 받으니라 
 
  성문으로 출입하는 모든 자

세겜 측 말을 듣고

모든 남자가 할례를 행했다.

 

 결과론 적으로 볼 때

그들은 모두 택한 백성 처럼 할례를 행했다.

 문을 들어서며

그들이 할례의 이점을 들으며 어떠한 생각들을 했을까?

 

 혹시 현 시대의 기독교 인 들 중 상당 부분 중에서

세겜의 성문으로 드나들면서

결과론 적으로 기독교인이 되었지만

실제로 마음 깊숙이 기독교인이 된 것은 얼마나 될까?

 

 혹시 예수님의 성령으로 충분한 인침을 받았지만

매일의 삶에서

마치 세겜의 성문으로 출입하는 사람같이 행동하는 것은

얼마나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이에 해당할까?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나는

일주일에 한번씩

전인치유다

주일 예배다 드리지만

그 안에 내재된 다른 목표는 없었던가?

영적인 안정감 내지 남들의 인정과 천국의 상급 등이 댓가로 주어지는 할례 같은 행위는 아니던가?

 반드시는 아니지만

알게 모르게 내 일상에서의 하나님을 위한 다는 행동이

나도모르게 나 자신의 교만함을 위하는 무기로

남에게 보여지는 의도로 씌여지는 경우가 없지 않아 있음을 고백한다.

 이것이 '세겜의 성문'일 수 있다.

 

 주위에서 보여지는 어떤 분들의 모습은 또 어떤가?

과연 상당히 많은 믿는 분들의 모습에서는 선한 모습 만 보이던가?

항상 주님 앞에 겸허한 모습으로 존경할 분들이 이 세상에는 과연 얼마나 많이 존재하시던가?

 그토록 많은 기독교인들과

그토록 많은 시간이 이 땅에 흘렀고

그토록 많은 기회가 또한 나에게 주어졌고 또 앞으로 주어질 것이지만

사람들은

나는

이처럼 세겜의 성문을 지나다니는 남자 같은 모습들이 그처럼 많이 보여진단 말인가?

 

 이유는 '땅의 것'이 유일한 목표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믿어도 땅의 축복이 근원적 목표이면 그것은 세겜의 문 앞에 서 있는 것이다.

아무리 위대한 일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해도

아무리 크고 거창한 프로그램을 교회에서 돌려도

아무리 목소리 떨며 바이브레이션 고급스럽게 넣어 찬양을 해도 (^^;;;)

그것이 자신의 이익을 목표로 하고

자신의 위신 때문에 하며

갈길 몰라 밀려서 가는 것이 되면

그것이 바로 땅의 것을 하기 위해 세겜의 문앞에서 세겜에게 멋지지 않냐는 유혹을 받는 행위일 수가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가?

그렇다면  '하늘 것' 즉 '위엣 것'을 목표로 살아야 한다는 것이 정답이다.

일상에서 어떻게 위의 것을 보는가?

성경에는 이렇게 나와 있다.

모든 사람을 '예수님'으로 보라구..

예수님께 하듯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라구.

 

 일상에서 '주님을 위하여' 살려는 목표 만이 우리가 똑같은 일을 해도 주님을 위해서 하는 것이고 그것 만이 매일같이 세겜의 문 앞에서 기웃거리려는 우리의 원죄적 본성을 제어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그런데

유사이래 그토록 대단한 위인- 위인전에도 얼마나 많은 위인 나왔는가?- 들이 모두 주님 보시기에 선한 모습으로 성공할 수 있었단 말인가?

아니 '프란시스'...등의 극소수의 분들 만이 매일 같이 주님의 뜻에 맞는 삶을 살 수가 있었을 뿐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가?

이처럼 강렬하고 강력한 세겜의 문 앞에 서 있는 '세겜' 일당의 유혹에서

눈을 돌려

우리가 진심으로 예수님의 선택을 받은 자들임을 인식하고

우리 이외의 다른 자들이 기웃거리는 것을 막아줄 기회가 되겠는가?

( 주님의 문은 혹, 화려하지 않을 지 몰라도 그 뒤에는 평강의 기쁨이 있습니다.)

 

 

 늘 주님의 말씀을 가까이 해야 한다.

큐티를 매일 같이 해야 하고

늘 기도생활을 늦추지 않아야 한다.

주님의 말씀이 일상에 접목되도록 매일 같이 받은 말씀을 적용해야 한다.

회개해야 한다.

주님의 그 거룩한 보혈이 또다시 우리의 엉터리같은 행위와 사고로 더렵혀져야 되겠는가?

성령 충만한 삶을 위해서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간구한 회개가 선행이 되어야 한다.

넘어지면 또 일어서야 한다.

가능하면 구제와 헌신을 해야 한다.

그것은 그것을 통해 주님 앞으로 갈 수가 없는 것이 분명하다.

구제와 헌신이 목표가 되면 그것은 또다른 '세겜의 문'이 될 가능성이 많아진다.

그것은 주님의 말씀이 내 속에서 살아난 지표와 징표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주님의 쓰다듬이 있어서 그 쓰다듬음을 느끼는 삶이 되어야 한다.

 우리의 삶은 내 인생에서의 목표가 목적이 아니고

내 삶을 통한 주님의 뜻을 이루고자 하는게 되어야 한다.

그 과정은 눈 앞이 막막한 인고의 과정이 아니다.

그 과정은 주님의 손을 잡고 걸어가는 가벼운 야유회의 걸음에 다름아니다.

손이 놓치면

바람이 불고 날이 어두워지고 어둠 속에서 여우 소리 들리는 한적한 시간에 견딜 재간이 있겠는가?

우리 주님

귀한 그 분의 손길과 그 사랑의 정화가 기도하는 내 손에

눈 감고 묵상하는 그 짧은 순간에 느껴지고

주님을 위하여

잠시 참아내는 그 굴욕의 순간에 내 영혼에 전율로 다가올 때

그 안온함과 기쁨이야 무얼로 형용할 수가 있다는 말인가?

 이렇듯

세겜의 문에서 눈을 돌려

진실이신 하나님의 쪽인 우리의 정체를 깨닫고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매일 같이 향유하고 느끼는게 우리 기독교인들의 해야하고 누려야할 당연한 권리이자 의무인 듯 싶다.

 

 

 적용

1. 내게 세겜의 문은 어떤 것인가?

   전인치유 무대가 내 자랑의 기회로 이용되는 것은 아닌가?

    

 

2. 왜 내 모든 삶을 주님 뜻에 맡기지 못하는가?

   삶의 방편을 걱정과 근심으로 흐리게 하고

   주님을 그 도우시는 방편으로 이용하려 하지는 않는가?

 

3. 기도원 가겠다.

 

4. 성경 5장 읽겠다.

 

 

 

 

 

 기도 

 

 

 

  주님

세겜의 문이 바로 앞에 있으며

늘 나를 유혹합니다.

그것에 눈 돌리지 않게 하시고

그것으로 인하여 내 자아가 들어나지 않게 하소서.

아무리 달콤한 이야기와

장미빛 장래를 이야기 해도

주여

주님 한분 만으로 만족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화려한 겉 모습과

아름다운 외관으로 유혹해도

향기없는 꽃같은 그들보다는

바람이 불어도

어두움이 있어도

풍파가 있어도

손내밀면 잡아지는

우리 주님의 그 고귀한 평강의 기쁨을 잊지 않게 하소서.

그 여유와 그 평화로움의 흔적 때문에

세상 무엇과 바꿔도 바꿀 수 있는

그런 강한 주님 임재의 체험을 소유한 자가 되게 하소서.

늘 주님 앞에 행하는 자가 되게 하소서.

코람데오의 신앙인이 되게 하소서.

이 땅 내가 사는 곳이 거룩한 곳이고

내가 행하는 모든 것이 Mission이 되게 하시고

사업이 Calling이 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보옵니다.

아멘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