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하나님의 잔소리(호4:1-19) 본문
(호4:1-19)
1. 이스라엘 자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여호와께서 이 땅 주민과 논쟁하시나니 이 땅에는
진실도 없고 인애도 없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도 없고
'논쟁'
어른과 애들은 논쟁을 하지 않는다.
일방적 지시만 있을 뿐...
그 아이가 전혀 듣지 않으니
안타까운 마음으로 가르치시려는 안타까움이다.
논쟁이란
그들의 입장에서 느끼는 어른의 '잔소리' 같은 것을
표현한 것 이리라.
그래도 '잔소리'를 들음은 '사랑'이 있음이다.
어떻게든 변화시켜 보시려는
그 사랑이다.
그러나, 이땅의 사람들은 점점 더 악으로 달려간다.
이 땅에는 진실도 없다.
인애도 없다.
더구나,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없어져가는 지 오래다.
2. 오직 저주와 속임과 살인과 도둑질과 간음뿐이요 포악하여 피가 피를 뒤이음이라
오직, 저주, 속임 ..........피가 피를.. 이다.
신문을 보면 정신이 하나도 없다.
'H' 심리학교수가
내 둘째아들과 동갑인 'KYA'와 '고소'공방이다.
자신의 전공을 딸 같은 '유명인'을 분석해내고 공격하는 데 사용한다.
그 사람은 자신이 교수인지,
유명한 사립대를 대표하는 자인지
아버지 나이인지........아무 상관없는 것 같다.
오직 저주와 잘난체 뿐이다.
그냥 피터지게 싸운다.
멀쩡한 미국인이 '노숙자'를 죽여 식인하다가 사살 당했단다.
....
세상은 정신없이 바뀐다.
정말 정신없다.
그러면서 가만히 들여다 보면
'예수님을 믿고 아는 자'들의 그룹과
' 들어도 모르는 자'들로 나뉜다.
그들의 생각은 전혀 다르다.
한쪽은 무법천지다.
온통 주인이 '자신'이기에
모든 걸 다 용인한다.
동성애, 잔인한 살인, 음란, 저주.... 다원주의............
우리 '믿는 자'들.
세상의 너무나 강력한 변화에
예수님 말씀 부여 잡고 겨우겨우 흔들리는 마음 추스린다.
너무 강하고 많은 세력에
때로는 내가 붙들고 있는 것이 옳은 것인가 흔들리는 게 사람이다.
하나님의 영이 강하게 붙들지 않으신다면
어느새 교회는 세속을 따라 흔들리게 된다.
4. 그러나 어떤 사람이든지 다투지도 말며 책망하지도 말라 네 백성들이 제사장과 다투는 자처럼
되었음이니라
문제는
그들, 다른 자들을 어떻게해도 변화시킬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들의 악이 너무 깊게 익어가서 변화시킬수가 없다.
주님은 이리 말씀하신다.
'다투지도 말고 책망하지도 말라.
그들이 끝까지 다 변화 했음이다. '
16.이스라엘은 완강한 암소처럼 완강하니 이제 여호와께서 어린 양을 넓은 들에서 먹임 같이 그들을
먹이시겠느냐
완강한 암소.
암소가 고집부릴 때...
아무리 때리고 달래도 듣질 않는다.
코뚜레를 아무리 당겨도 끌려오질 않는다.
옛날 표현에 '황소고집'이라 한다.
미련 떨고 움직이지 않는 강한 고집을 그렇게 표현한다.
암소라지만 '황소'고집이나 진배없는 표현이다.
어린양.
순종 잘하는 양의 어린 것.
그러니 .. .얼마나 순종을 잘하겠는가?
이 세대는 이제 더 이상 말을 해서는 듣지 않는 세대가 되어간다.
정말 정이 떨어지면
아무 말도 않게 된다.
그냥 방치하는 게 가장 무섭다.
홀로 책임을 져야 하는 시기가 가장 어려운 시기다.
누구에게도 잔소리를 듣지 않는 것은
처음은 편하지만 이제 곧 그에 따르는 댓가를 지불하게 된다.
오늘 묵상은 무슨 말씀이신가?
무엇을 레마로 나에게 주시려는 것일까?
고난.
질책.
힘듦.
그것......
어찌보면 피해야 할 가치 없는 것인 것 같고
되풀이되는 부모의 잔소리 같지만
실은 하나님의 사랑이시라는 이야기다.
아직도 나에게 변치 않으시는 사랑을 증거하는 증표이란 이야기시다.
이제 다시 '안양', 기도원 가깝고 교회와 직장이 가까운
내 그리운 본집으로 이사오기 위해
지금 있던 집을 내 놓았다.
그러나, 요새 누가.......
그래도 아내와 나는 기다리고 있지만 보러 오는 사람 조차 없다.
머리가 복잡하다.
하루하루 다가오는데 마음은 그렇다..
어제 아내가 '작전기도'를 제안했다.
집에서 11시 이후 , 자기 전까지...
집이라서 집중이 안될 줄 알았다.
아내와 찬양 한곡을 하고 기도를 하니..
깊이 깊이 기도가 된다.
주제는 그것이었지만
기도를 하다보니 이 사람 저 사람 중보가 된다.
어제 묵상의 말씀대로
'아골의 골짜기'에 '소망의 문'이 열린 느낌이다.
그러면서 '기도를 시키시는 이유'에 대하여 강한 느낌을 주신다.
기도 제목을 주셨지만
그 제 목을 위해 기도하게 하시는
주님의 '사랑의 간섭'이신 게 그 본질이란 것이다.
너무 감사했다.
기뻤다.
현실은 그랬지만,
이 기쁨을 맛보게 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너무도 감사했다.
그렇다.
그게 이유다.
하나님은 '잔소리'를 하신다.
환경을 조성해서 어렵게 하시고 깨닫는
마음의 소리를 주신다.
어떤 세상의 것도
그 하나님과의 긴밀한 대화와 동행을 대치할 것이없다.
그렇다.
본질이다.
우리가 세상을 사는 이유는
내 마음대로 썩어질 세상의 것을 모아 들이고
내 자아가 만족될때까지 - 만족이란 없다.. 더 큰 공허만 있을 뿐 !! - 추악한 욕심을
추구하고 또 추구하는 것이 아니다.
세상의 그 것을 통하여
하나님과 조금이라도 더 교통하며 살다가
매사 매초 단 일초라도 주님과 떨어지는 시간이 없어져
결국 우리의 영혼이 '성화'되어
하나님의 나라에 거하게 되는 원리.
그것이 주님이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이다.
그렇다면..........
세상의 사람들.......
그들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 자체가 없어졌다.
그것.
자유롭고 편안함이 아니다 .
썩어가기 직전... 실온에 놓인 부패할 운명의 고기덩어리 같은 운명일 뿐이다.
나.
감사하여야 한다.
매사에 근심 거리들을 하나님 앞에 가져갈 '의도'를 가지게 됨이 ,
그런 습관이 생기게 된 것을 감사해야 한다.
오늘.
또 막연한 불안할 일이 내 주위에 펼쳐지려 한다.
익숙한 PA가 그만둔다.
또 새로운 사람을 구해서 트레이닝 시키는 것도 힘들다.
익숙한 관계가 또하나 무너진다는 괜한 자괴감이
나이든 나의 영혼을 짖치려 한다.
지갑을 닫는 경제 환경도 병원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아픈 것도 참는다.
웬만한 혹은 그냥 견딘다.
나.
생활인이다.
기도할 뿐이다.
내가 영혼이 더욱 정화되어
타인에게 더욱 친절하게 바뀌고
힘듦이 너무 힘들지 않도록 환경도 변화 시켜 주시길..
기도
주님
세상이 양분되어 급격히 변화되어 갑니다.
주님을 모르는,
자신이 자신의 주인이 되어
타인에게는 어떠한 일을 해도 '두려워 할 줄' 모르는...
그 두려워 함이 '법'의 테두리를 넘어
조물주이신 주님을 두려워 할 줄 모르기에 그렇습니다.
주여.
주님은 끝없이 말씀으로 , 환경으로 , 공의로
저들에게 깨닫길 권고하지만
저들은 귀를 닫고 듣지않고
이제는 하나님을 알지도 못하는 상태로 갑니다.
주여.
저에게는 어떠한지요..?
저도 몸부림 쳐 매사에 주님을 잊지 않으려 노력은 하지만
주님 보시기에는 어리석은 부분이 많이 있을 줄 압니다.
다시금 오늘 깨닫습니다.
정말 '어려움'과 '힘듦'이 주님의 날 사랑하시는
잔소리이심을요.
감사합니다.
주님의 사랑을 다시금 생각케 해주심을 감사합니다.
그게 감사로 느끼게 하심이 감사합니다.
세상과 다른 부류로 구별되어감이
점차로 더 부끄럽지 않고 당혹스럽지 않게 느껴지게 하심이 감사하나이다.
오늘 하루.
기도하는 마음으로 ,
조신한 마음으로
매사에 주님의 뜻을 구별하기 위해 촉각을 곤두세우는 마음으로 살길 원합니다.
지키소서.
주님의 성령으로 이끄소서.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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