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은혜와 자아(호2:1-13) 본문
(호2:1-13)
2. 너희 어머니와 논쟁하고 논쟁하라 그는 내 아내가 아니요 나는 그의 남편이 아니라 그가 그의
얼굴에서 음란을 제하게 하고 그 유방 사이에서 음행을 제하게 하라
어머니와 논쟁하라신다.
호세아..
당연한 사실 앞이지만
너무 힘들겠다는 생각이 든다.
당연하단 말은 '하나님'을 반하는 어떤 것도 '용납'될 수 없다는 말이다.
그러나, 호세아 선지자에게 주어지는 운명이 너무 가혹함을 들어서
힘들겠다는 말이다.
아내.
자식들.
이제는 어머니까지..
하나님이 하나도 남김없이 세상에 정을 둘 수없도록 만드신다
죄악이라면 하나도 ........
호세아의 마음이 어떠했을까?
오늘은 '논쟁하고 논쟁하라' 신다.
그 논쟁을 하는 것이 자신에게는 어떻게 다가왔을까?
어머니마져..하며 좌절..했을까?
논쟁과 저주와 절교와 단절과 외로움... 이 오래되니 습관이 되고
아무렇지 않아지는 자신이 괴물처럼 보이지는 않았을까?
그런 자신의 처지가 안스러워 '우울'에 빠지지는 않았을까?
8.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은 내가 그에게 준 것이요 그들이 바알을 위하여 쓴 은과 금도 내가 그에게
더하여 준 것이거늘 그가 알지 못하도다
그러나,
세상의 어떤 것도 주님의 '은혜'만 못하다.
주님을 깊이 깊이 아는 자는
'자아'의 흔들림에 그리 흔들리지는 않았을것이다.
곡식과 새포도주와 기름으로 상징되는
세상을 살면서 주어지는 '통전적인 은혜'는
인간관계의 단절에서 오는
그 어떤 괴로움보다 낫다.
호세아는
처음 부터 끝까지 '불행'의 대명사다.
그러나, 그의 불행에도 불구하고
그는 마치 '줏대'조차 없는 것처럼 행한다.
그런 줏대 없음은
창세기에 보여지는 '요셉'의 아무데서나 형통하는
자아 죽어진 자의 형통과 비슷하다.
'자아'가 완전히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님의 그것과 닮아 있다.
그렇다.
진정한 행복은 '세상'에 있지 않다.
내 자아의 만족에 있지 않다.
진정한 행복은 '내 자아'의 죽음으로 인한,
하나님의 영이 온통 내 영을 채움에 있다.
'세상'은 죽고
'주님'은 내 안에서 살아남 만이
진정한 행복이다.
그것이 진정 내가 추구하고 나가야 할 방향이다.
아침에
엊저녁에 먹통된 '노트북'을 아내에게 맡겨
처음 구입한 'SS 플라자'에 가져다 주었다.
전화가 왔다.
내가 노트북을 구입한 '담당자'가 딴 곳으로 가버려
'프로그램'을 깔아 줄 수가 없단다.
나.
아이패드를 안사고 노트북을 산 이유.
'문서작업'과 더불어
내 인터넷에 올린 사진을 작업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그 직원은 1년간 걱정없이 프로그램들을 제공한다 하며 권유했다.
어쩌면 불법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그것, 매장에서 괜찮다고 권유한 바
결심하고 산바 아니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 교체된
지점장을 포함한 직원이 '책임회피'다.
나.
깡통 노트북 산거 아닌가?
많은 돈 주고........
화는 내지 않았지만
조밀 조밀 따졌다.
'난... 삼성 플라자를 보고 계약하고 산것이고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프로그램을 깔아주지 않으면
손해를 보게 만든 것이기에
삼성플라자를 대표한 지점장'은 모른다는 책임회피를 놓고
전적으로 해결해줄 태도를 취해야 된다'고 주장했으나
끝까지 그들은 '직원'이 바뀌었고 내규 때문에 안된다는 입장만 되풀이다.
어이가 없다.
전화를 어쩔 수 없는 상황의 답을 듣고 끝냈으며
마음이 불편하다.
또 내 속에는 '자아'가 들끓음을 느낀다.
이것이 내 자아의 발로인가?
손해보고 마는 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인가?
행동만 보고 나 자신은 사랑해야 하는 것 아닌가?
...........
여러 생각이 돌아도
더 성숙하지 못한 나의 반응에 대하여 속이 상하려 한다.
'자아'다.
자아는 자꾸만 내 어이없는 교만을 먹고 살아나려 하는 것 같다.
호세아님은 '자아'가 없는 사람처럼 행동한다.
그러나, 나의 현재 상황과 다른 것은
그 분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간다.
아마.........그 분은 많은 성숙함이 있었을 것이고
그 빈 영혼의 백지 위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려지고
은혜로 가득채워지며
하루가 '큰 어려움'없이 차분히 지나갔을 것이다.
비록, 외적으로는
각종 고난과 고통과
인간적 삶의 괴리......등으로 인하여 고통스러울 듯 보이지만
그는 막상
'평화'로왔을 것이 분명하다.
그렇지 않고야
어찌 인간으로 되어 저렇게 고난이
안팎으로
심령적으로 외적으로..
수도 없이 많은 시간 동안 되풀이 되는 데도
걱정하거나 고통스러워 하는 기미가 안보일까?
나.
예수님의 그것처럼
자아를 십자가에 못박혀 죽게 되길 원한다.
그 때 내 순종의 의지를 보시고
주님이 성령으로 가득채워
내 속은 은혜로 은혜로 ..
새로 씌여질 것만 같다.
세상은 흔들어도
나는 평안할 것만 같다.
기도
주님.
내 주님.
날 사랑하시는 내 주님.
조금의 욕심에도 여전히 흔들리는 내 자아를 봅니다.
조금도 손해를 보기 싫어하는
내 육신의 성질을 봅니다
주여.
조금 자극이 있어도
손해 안보려 부르르하는 자아를 봅니다.
세상 살면서
어디까지 내려놓고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참 난감합니다.
주님.
호세아님을 계속 보여주시는 이유,
그 분의 자아를 부인함,
자아의 죽음을 통한 온전한 순종을 봅니다.
저도 그리되게 하시되...
제 빔이 저 혼자는 도저히 안되니
주님의 은혜로 비우게 하시고
그 비워진 공간에
놀라운 은혜를 더욱 경험하게 하시사
아마도 호세아님이 그러하셨을 ,, .
정말 은혜의 전율의 감동이 그리워
순종하지 않고는 견디지 못하는
그러한 마음으로 절 채우고 또 채우소서.
모든 일 잘 해결되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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