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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비의 회복 (호6:1-11) 본문

구약 QT

빛과 비의 회복 (호6:1-11)

주하인 2012. 6. 15. 10:47

(호6:1-11)

 


1.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2.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셋째 날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의 앞에서 살리라

 ' 도로 낫게' 하신다.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이다.

'그의 앞에서 ' 살리라.

십자가 고난 후의 예수님 부활.

 

 희망이 된다.

기뻐야할 조건이 하나도 없는 모든 조건을 가진 '우리'가

우울로 빠지지 않고 다시 회복됨은

'부활 ' 탓이다.

매일 부활이다.

도로 회복이다.

 

 

 

3.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 빛 같이 어김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니라 
 그러기에 '힘써 여호와를 알'아야 한다.

그 분은 나를 적시는 분이시다.

빛으로 세상의 어둠이 밝혀지는 게 틀림없듯,

마른 땅에 '비가 ' 내리듯

그리 어둡고 마른 내 심령 위에

빛으로

빗줄기로 적시는 그런 분이시다.

 

그 분이 계시기에

타는 듯 메마른 내 영혼의 대지가

귀한 습기로 적셔지고

어둡고 눅눅한 것만 같은 내 환경이

빛으로 밝혀지는 것 같다.

 

그 하나님.

그런 하나님.

그런 진리의 하나님.

변개치 않으시는 하나님..

그 평강의 하나님

샬롬의 하나님.

천국의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야 한다.

그래서

빛과 비의 회복을 경험해야 한다.

살아계신 하나님이 내 하나님이시고

내 아버지이신 내 하나님을 경험하고 나면

그 어떤 것이 나를 유혹할 수 있을 것 있겠는가?

 


  
6.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하나님은 이리 말씀하신다.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않는다. '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한다.'

 

그렇다.

이 구절.

너무 좋은 , 유명한 구절이 '호세아'서에 나온다.

음탕한 아내를 맞아 들이어 세상에 모본이 되라 명하셨던

그 암울할 듯한 호세아서에 이렇게 나온다.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않는다.

제사는 형식이되 인애는 '사랑'에서 나온 자신도 모르는 감동의 표현이다.

번제는 행사이되 하나님 아는 것은 '기쁨이고 전율'이다.

 

너무도 사랑하고 기뻐해서

내 행실의 이그러짐을 나도 모르게 잡아가는 것.

그것이 진실이다.

 

 

11.또한 유다여 내가 내 백성의 사로잡힘을 돌이킬 때에 네게도 추수할 일을 정하였느니라 

 하나님은 '사랑'만 주시고

가르침은 주지 않으시는 분이 아니시다.

과도한 '편애'로 자식을 이그러지게 키우는 역기능 부모가 아니시다.

 

 아침에 묵상집을 펼치자 마자

이 구절이 눈에 쏙 들어온다.

'나 같은 ' 어이없는 자가.....라는 소리가

습관적으로 다가오려는 때,

그러한 내가 무슨 쓸모가 있겠는가.. 자책되려 할 때,

그래서 잘나가던 일에

손과 발의 힘을 풀어 버리고

좌절하고 싶을 때,

우울의 늪에 빠지고 싶을 때

주님이 그러신다.

' 네게도' ..

그런 나에게도

'추수할 일을 정하였다' 신다.

하나님은 '내 잘못한 일로 인해서 나같은 자가 무슨 일이 있게는가'라는

힘빠진 속삭임을 끊고 이러신다.

' 네게도' 할 일을 내가 정하였다'

그런 소리에 속지마라...하시는 듯하다.

그래서 힘이 난다.

 

처음 모두에 기술 했듯,

'우울'에 빠질 모든 세상의 조건에도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믿게 되면

매일 부활,

도로 회복,

빛과 비의 회복이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다.

 

 

 꽂힌다.

오래 같이 근무하다 보니

너무 나를 잘 알 아서인지

가끔 앞서 간다.

너무...

장점이 너무 많아서 그러려니 웃다가도

모종의 일로  짜증이 올라오려 한다.

당황이 된다.

'사람'을 평가하려는 이 못된 버릇.

하루 종일 내 그런 면에 대하여 생각했다.

그러다가 깨달았다.

' 과도한 기대'

좋은 사람을 보면 너무 기대하는 버릇.

그러다 되풀이 되어 드러나는 자그만 단점이 쌓이다 보면

나도 모르게 '정죄'하고 선을 그으려 하는 '못된 버릇'이다.

그런 것을 깨닫고나서도 마음은 섭섭하려 한다.

그런 내가 사뭇 당황스럽다.

요사이 특별히 말씀으로 잘 정리되어 가는데,

갑작스레이 그렇다.

'이래서.. 내가.. ' 한다.

자책이다.

미움과 자책이 날 힘들게 하려 한다.

 

당직을 서는데 밤 늦게 까지 환자 분이 하나도 없었다.

머리놓고 TV를 봤다.

마음이 부대껴서 그랬다.

'하나님.. 이해하시지요?

 내 안되는 부분......' 하는 마음이었다.

새벽에 갑작스레이 응급 수술 한분,

분만.. 바빳다.

늦게 일어나고

얼른 스마트 폰 열었다.

말씀을 붙들지 않으면

또 하루 꽂힌 마음의 사이클이 돌듯싶다.

그것........지속하면

온통 상처 뿐일 것이다.

나도 남도.....

무엇보다 하나님께 '죄'다.

그래서 늦었지만 '이빨 ' 닦으면서

얼른 얼른 눈으로 읽어갔다.

하나님 틀림없이 답을 주실 것이다.. 란 생각으로..

 

주님은 역시 살아계시다.

호세아 서.

이전에는 '우울'한 처지의 호세아님이

내 처지를 대변하는 것 같아서 슬그머니 지나치곤 햇던 부분에서

이렇게 놀라운 깨달음을 주신다.

' 도로' 회복이다.

'빛'으로 내 어둠을 말리심이다.

'비'로 내 메마르려하는 심령을 적셔 무른 땅되게 하신다.

거기에 '추수할 일'을 '네게' 마련하시려 하신다신다.

참.........감사하다.

이렇게 타인에게, 나에게 부담을 주는 삶의 왜곡된 태도로

하나님께 부담을 드려가면서 어찌해야 하는가...하며

마음이 부담스러워 지려 하더니

'부활'하신 예수님의 그 부활로

내 마음이 '3일'이 걸리지도 않고

새롭게 '화창'하게 갠다.

 

난... 이게 놀랍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살아운동하신다.

내 영혼의 흐름이 '우울 모드'로 치달아 갈 수 밖에 없는  - 이전의 내 논리가 그랬다 ^^;;;- 상황에서

급 행복 모드로 바뀌어 버렸다.

 

아..

아침..하나도 안피곤하다.

정말이다.

괜한 하나님께 아부가 아니다.

타인에게 어거지로 '하나님이 이렇게 역사하셨어요..'하고 꾸미고 픈

유치한 왜곡이 아니다.

행복한 자의 근육은 이런 힘을 낸다.. 는 것을

단 몇시간 만에 체험해 낸다.

나...

기쁘다.

아침이 놀랍다.

 

누가.. 이 비 의학적인 현상을 '의학적'으로 '심리학적으로 ' 설명해 낼 수 있는가?

참 감사하다.

회복이다.

도로 회복이고

빛과 비의 회복이다.

 

 

 

 

기도

내 아버지 하나님.

감사하나이다.

늘 그렇듯,

제 속의 어두운 소리, 칙칙한 소리들에 의하여 마음이 눌릴 때,

어둡고 메말라 세상이 지옥 같아지려 할 때,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하여

순간적으로 밝아지는

부활의 체험을 자주 합니다.

내 하나님.

도로회복.

빛과 비의 회복을 경험합니다.

주여.

말씀대로 입니다.

주님의 뜻대로

할일 조차 남아 있다시니

다시 힘을 냅니다.

기대합니다.

기도합니다.

아멘하며 힘차게 다시 나가렵니다.

내 주 예수

귀한 구세주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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