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하나님의 아들 들 [창6:1-22] 본문
2.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는지라
하나님께서
모든 것 다 창조하셨는데
'하나님의 아들 들'은 무엇이고
'사람의 딸 들'은 또 무엇이며
4절이하의 네피림은 또 무엇일까?
하나님의 뜻이 아닌게 있으시단 말이던가?
주님과 반대하는 어이없는 '신'들이 있어서
그들 만의 창조가 또 있었단가?
어제 묵상에서
아담의 후손들이
각각 1~3명 씩 이름이 거론되고
그 후로는 계속 수백년 동안 자손을 낳았다면서도
이름이 거론되지 않는데
혹여 그들이 아닐까?
그들의 자손.
아담이 원죄가 생겨서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후
그 악한 부분으로 익어간................
에덴 동산에 숨어든 뱀, 사단조차
욥기에서 확연히 알수 있는 것 처럼
허락되어진 '사단'임을 알 수 있던 바
하나님의 뜻가운데 허락되어진
악함으로 익어가는 부류들..
지금 우리가 눈뜨고 살아가는
이 세상의 모든 '하나님과 반(反)'하는 상태,.. 말이다.
3.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나의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신이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백이십 년이 되리라 하시니라
사람의 딸들은
아름답고 유혹적이라 했다.
마치.. 세상의 것.. 아직도 허덕이는 우리네 처럼..말이다.
그 하나님의 사람과 사람의 딸들을 구분하는
극명한 부분은
하나님의 '영'이
그 안에 거하지 않는 자..
예수님 십자가로 구원의 기회를 얻지 못하거나
구원의 자격을 얻었어도
우리의 선택에 의하여
'성령'의 체험을 하지 못할 상황에 있는 자..
'성령이 함께 하느냐 마느냐'가
하나님의 아들과
사람의 딸을 구분 짓는
바로미터가 되는 것이다.
너무도 당연하지만..
그리고
우리네 영혼에 '죄'가 들어옴으로
인생은
이 땅에서 살 나이가 결정되어 버렸고
순간의 젊음, 청춘 후에는
급격히 쇠퇴하며
120년 까지 허락 받아 진 것이다 .
아.......
죄......
이것으로만도
세상 사람들아...
벗어나 주님께 와야할 당위성이 충분하지 않던가?
나.
죄에
더 물러서야 한다.
세상 사람들의 딸들이
그들의 눈앞에서 흔드는 온갖 논리와 가진 것들이
아무리 유혹적이고 합리적여 보일지라도
눈 돌려 얼른 회개해야 한다 .
하나님의 아들의 전제 조건이
성령의 충만함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죄'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 죄를 벗어나는 유일한 길이
기도와 간구를 통한 '성령'의 임하심이며
그를 통하여
이 땅,
썩어져갈 겉모습의 휘항찬란한 120년에서 벗어나
영생을 누리게 될 지름길이다.
9.이것이 노아의 족보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노아.
하나님과 동행한다함은
그 안에 하나님의 영이 항상.. 충만하다는 얘기이며
항상 그리되기 위해서는
사모함이 있어야 한다 .
머리 속의 근거 만 가지고는 되지 않는다.
그러한다 함은
우리의 '성령 충만함'을 유지한다는 이야기고
그 유지함을 위해서는
말씀을 근거로 하여
매일 자신을 돌아 보고
하나님의 영을 사모하는 '자세'를
잃지 않아야 함을 전제로 한다.
기독교의 가장 귀한 원리는
'타율적 종교',
즉 하나님의 도움으로 '성화'와 '영생'을 이루어간다는 것이지만
그렇기에 가볍고 쉬울 수도 있지만
반드시 우리의 '선택'과 노력은 겸비 되어야 한다.
'사람의 딸,'원죄'가
모든 것을 창조하시고
모르시는 것 하나도 없으신
하나님안에서도 허락되어짐은
허락 되어짐 안에
'선택', 자유의지, .. 라는 전제에서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양방향의 interaction을 의미함이다.
당연히도..
그게 귀하다.
타율이지만
가장 전적인 자율.
이 귀한 원리가
내내 온 우주와 우리네 인생에 흐르는
중요한 원리다.
14.너는 고페르 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만들되 그 안에 칸들을 막고 역청을 그 안팎에 칠하라
그래서
'노아님'이 한 것 처럼
우리의 영혼의 배에
'역청'을 칠해야 한다.
코울 타르.
방수 , 방진.....위해
방주 안을 꼼꼼히 칠했다.
역청이 눈에 들어옴은
우리네 영혼을 실고 다니는 육신과 마음을
인생의 바다 가는 방주 라 생각하면
내 영혼에 누수되어 들어올 세상의 죄들을 막기 위한 방법.
막기 위하여는
'기도'와 '회개'와
매일 말씀으로 인도되는 행위의 선택... 이 그것이며
성령의 온전한 충만함을 위하여 바르는
그 영적 역청 마져도
또 역으로
성령이 도우실 것임을 우리는 안다.
바라지만
그 바람을 위하여 도우시는 ..
이 이율적이지만 온전한 원리.
우주를 만드셨지만
그 우주 안의 미세먼지 한톨 보다 작은
지구에
하나님께서 인간의 육신을 입고 내려오시는
약함이 강함인
이 이중적 원리.. 말이다 .
타율적이지만 자율적인
자율적이기도 하지만 타율적 원리.......
그렇다면
오늘 내게
저러한
너무도 당연한 원리의 말씀에
무엇을 가르치시려 하는 것일까?
무엇이실까?
과연?
기도하라.
회개하라.
역청 바르라.... .뿐이시라면
율법과 무엇이 다를까?
말씀 묵상의 대 전제가
오늘 말씀을 묵상하듯
주시는 말씀을 지켜야 하는 내 자율적 선택에
하나님이 주시고자 하시는 그 도움이 어우러져
내 일상에 나타나
나의 궁극적 변화,
성화를 의미함이 아니던가?
그렇다면..
무엇일까?
오늘 하루 붙들고 지내야 하리라.
주여.
말씀대로
역청을 제 안에 바르길 원합니다.
주여.
세상의 유혹이 너무도 강하여
나름 잘 지어놓고 있다고 생각하는
내 영혼의 방주를
틈틈히 밀고 들어오는
두려움과 우울함과 허전함과 분함과.... 속상함.. 이 느껴집니다.
너무도 화려해서
힐끗쳐다보게 되는
내 자신의 어이없음에 대한 자책의 물길도
양심을 가장하여 스며드려오려 하고 있습니다.
주여.
주시는 말씀 가운데
오늘은
저를
특별히
하나님의 아들들에 속한 자.. .로서의 확인을 하시고
그러함에 대한
당연히도 가져야 할 감사함과
그렇기에
더 기쁘게 발라야 할
내 영혼의 역청 작업을 하라시는 듯합니다.
주여.
시간이 점점 더 급박해지는 듯합니다.
오늘은 이란 미국 전쟁 전의 위험에 대하여
아침 뉴스에 보고 있습니다.
주여.
제게 급박한 세상의 유혹과 타락과 위험 가운데
더 급히 역청을 발라
하나님의 아들들로서 깨달아 나가야 할 당위성에 대하여
말씀하시는 듯하나이다.
주여.
힘을 주소서.
아직도 눈을 빼앗기고 있는
세상의 힘에 대하여
조금 더
주님의 타력으로 인하여
쉽게 분리 되었으면 합니다.
유혹을 거두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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