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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눈물(렘 7:16-28 ) 본문

구약 QT

하나님의 눈물(렘 7:16-28 )

주하인 2009. 9. 18. 09:47

 제 7 장 ( Chapter 7, Jeremiah )

 

 

 

머리에 꽃 장식하고  

손에 가방들고 부채들고

종알종알 거리며    

아이 들이 옹기종기 

학교로 걸어 간다   

  

 아이 들의 

순진한 몸짓으로

이 아침이

맑게 열려 가고 있다

 

언제나 되어야

이 내 영혼은

저 들의 저 기쁨과 순수함으로

주님의 말씀을

청종할 수 있을 때가 오게 될까

  


16.  그런즉 너는 이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지 말라 그들을 위하여 부르짖어 구하지 말라 내게 간구하지

      말라 내가 너를 듣지 아니하리라 
17.  너는 그들이 유다 성읍들과 예루살렘 거리에서 행하는 일을 보지 못하느냐 
  주님이 

예레미야님을 불러

'너는 이 백성을 위해 기도하지 말라.

 그들을 위하여 부르짖지도...

 그 들이 하는 일을 보지 못하느냐?' 하신다. 

 

 주님이 뚜렷이 말씀하실 때 듣는 자의 느낌은 어떠할까?

높은 사람이 낮은 사람에게 말할 때 듣는 낮은 사람의 기분일까?

단순한 사람과의 대면도 오금이 저릴 텐데

주님이 임하셔서 말씀하신다면 어떤 기분일까?

은혜의 감정 때 그렇지만 오그라져 있던 마음이 육신을 팽창시키듯

바람으로 풍만해진 풍선처럼 표현할 수 없는

감동의 느낌으로 팽창되어 갈까?

말씀을 두려움으로 듣지만

그 느낌은 가만히 들여다 보면 눈물 날듯한 감동이고

무조건 순종해야 할 것만 같은

끄덕끄덕거려지는 공감의 감동은 아닐까?

 

 듣는 자의 입장이 저렇게 질책 당하는 대상과는 상관없이

제 3자의 입장에서 불호령을 들을 때 어떤 마음일까?

나랑 상관없기에 당당해질까?

남의 말 들을 때 고소한 것 같은 악의적 기쁨은 안들을 까?

(위의 예상처럼 터질 듯 감격의 마음으로는 그런 악한 느낌은 최소한 없을 것 같기는 하다 ^^;)

  예레미야님은 눈물의 선지자이시다.

 오히려 가까운 내 식구가 질책을 받는 것 같은 안타까움이 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주님이 정말 무섭게 말씀하시지만

무서운 분위기가 맞을까?

진짜로 무서운 것은 '냉랭'함이다.

냉랭함은 무관심이다.

무관심은 끊어짐이다.

관심의 끊어짐은 그들을 마음속에서 죽임이다.

주님의 분노는 '사랑'의 다른 표현이시고

그 사랑은 하도 절절해서 그 분의 안타까움이 느껴진다.

그것은 두려움이라기 보다 묘한 감동이 여운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그분 하나님의 사랑이 

강한 실재의 임재 안에

두려움처럼 몰려오지만

그 안에 사랑의 눈물의 파장이 묘하게 영혼을 떨리게 했을 것이다.

 

 예레미야님은

그 엄청난 하나님의 신위 앞에

오그리며 경외하지만

한편 그 마음에는

그 분의 강력한 은혜의 감동과 더불어 

하나님의 분노의 에너지 속에 숨겨져 나오는

그 분의 안타까운 사랑의 파장으로 인하여

어떻게 해야 이 어지러운 세대를 구할 수 있을까...라는

강력한 드라이브로 작용을 했을 것이다.

 

그가

'눈물의 선지자' 로 불렸을 수 밖에 없는 것은

이 강력한 하나님의 에너지의 실재가 

그 분 감성의 폭을 자극해서 일 것이다. 

 그 분이 세상을 향해 눈물을 흘린 것은

세상의 타락이 속상함도 있지만

진심으로 그들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컸을 것이다. 

그 들을 향한 '하나님의 눈물'이 느껴져서 이었을 것이다. 


 
26. 
너희가 나를 청종치 아니하며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고 목을 굳게 하여 너희 열조보다 악을 더

     행하였느니라  
27.  네가 그들에게 이 모든 말을 할지라도 그들이 너를 청종치 아니 할 것이요 네가 그들을 불러도 그들이

      네게 대답지 아니하리니  
28.  너는 그들에게 말하기를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며 교훈을 받지 아니

     하는 국민이라 진실이 없어져 너희 입에서 끊어졌다 할지니라 
 

'  청종' 이란 단어가 눈에 들어온다.

이 하나님의 고뇌를 가져온

이스라엘 백성들의 타락의 기본 원인은 무엇인가?

'청종'의 부족이다.

청종은 무슨 뜻인가?

들을 '청, 따를 '종'

즉, '듣고 따른다는 이야기다.

 듣는 다는 이야기는 무엇인가?

남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경청의 문제다.

따른다는 데는 무슨 문제가 있는가?

남의 이야기를 따르기 위해서는 내 자아의 반발을 무마해야 한다는 것이다.

 세상이 빠르게 발전하고 물질 문명이 극을 향해 달리면서

사람들은 남의 이야기를 들어주질 않는다.

온통 자기 이야기 뿐이다.

TV 오락 프로그램을 보아도 남을 철저히 짓밟으면서 승리하는 자가

가장 멋있게 비친다.

 남의 약점을 잡아서 있는 대로 까발기며 가학적인 웃음을 만들어 간다.

정보는 난립하면서 누구도 모르는 것이 없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남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바보나 할일이고

시간이나 소모하는 바보 같은 일로 부지불식간에 인식이 되어간다.

 듣기 위해서는 자신 속의 이러한 부대낌을 눌러야 한다.

그러나 자아가 어디 가만히 있는가?

자꾸만 자신을 알아주기를 바라며 반발하게 되어

입으로 눈으로 행실로 튀어 나오게 된다.

 따르기 위해서는 먼저 들어야하고

듣기 위해서는 이 자아의 낮아짐이 필요한 것이다.

이 자꾸만 훈련되어가는

청종의 부족함은 세상을 자꾸만 거칠고 악하게 만들어 가게 된다.

이 청종의 부족함은 비단 세상에서만 그러한가?

 주님과의 관계에서도 그러하다.

사람들이 교회와 기도원에 몰려 기도를 해도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 하지 않는다.

소리소리 지르면 자신의 이야기만 한다.

자식의 대학 입학을 기도하고

자신의 부귀 영달을 기도하고

자신의 건강 낫게 해주심을  소리지르고

......................

그리고는 '믿습니다'  '아멘' 하고 내려간다.

그래,

외치고 외치는 과부의 소리를 불의한 재판관조차 들어 줄 지언정

상급이 있겠느냐.. 하시는 말씀처럼

하나님 당신의 그 사랑많으심으로

소리소리 지르는 그들의 간구는 들어 주시되

안타까워 하시는 것이시다.

 청종이 부족한 이 세대는

주님으로 부터 얻는 것이 줄어든다 생각되면

차갑게 돌아서 버린다.

그들은 하나님의 소리를 듣지않는다.

아니 못한다.

 하나님은 '착해라.   .. 하지마라.. '나 하는 고리 타분한 존재일 뿐이고

역사 속의 설화로나 인식할 정도이다.

아니 사실... 더 큰 이유는

그 분의 응답을 받고도

그 분의 말씀을 듣지 않으려 하고

듣고도 준행하려는 따르는 의지가 부족해서이다.

 

 나.

주하인은 어떠한가?

'聽'은 아주 조금 된다.

말씀을 뚜렷이는 듣지 못하지만

큐티를 통하여 성경의 말씀을 묵상하려는 '의지'는 가지고 있다.

정말 나에게 필요한 것은

내 영혼이 조금 더 주님 앞에 펼쳐져

예레미야 님 처럼 뚜렷이 듣는 나의 레마를 듣는 것이다.

 그런데 정말 더 부족한 것은

'從'이다.

말씀을 들어도 선택적으로 듣는다.

준행을 하지 못할 듯한 것은 아예 듣지 않은체 한다.

들어도 그냥 스쳐 지나간다.

 열심을 보이던 일이 줄어들면서

그 것이 - 사역이..- 반드시 영성과 일치 하지 않음을 알면서도

보는 것이 멀어지면 마음이 멀어진 다는 것처럼

자꾸만 내 주위를 '영적'으로 보는 습관에서 멀어지고

그것은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에 조금더 둔감해지는 결과를 가져오는 듯하다.

 

 

 

 

적용

 

1.   주님의 말씀을 뚜렷이 듣기를 간구한다.

  그 놀라운 체험이 두렵기는 하지만 기대도 된다.

 

2.  청종.

 듣는다.

 내 말을 줄이겠다.

 청종을 말씀하시는 주님의 뜻을 명심하자.

 

3. 성경 일곱장 읽겠다.

 

4. 하나님의 눈물을 묵상하자.

 

 

기도

주님.

주님.

 

주님.

 

이 어리석은 자가

자꾸만 어리석은 과거의 일을 되풀이 하려 합니다.

 

헝크러지고 답답한 생각이 날 사로잡으려 합니다.

주님의 말씀을 제대로 청종하기 어렵습니다.

무슨 탓인지요.

주님 말씀하소서.

저로 듣게 하소서.

주님의 눈물이 느껴집니다.

주님

저로 회개할 것 있으면 회개 하게 하시고

주님이 저에게 허락하셨던

성화의 길이 누그러지지 않게 하시고

저로 당황치 않도록

말씀을 주소서

위로하소서.

확신을 주소서.

 

 

에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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