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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그 좋은 사랑 (계3:-13)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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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그 좋은 사랑 (계3:-13)

주하인 2012. 11. 27. 10:26

 

 

 

2. 너는 일깨어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건하게 하라 내 하나님 앞에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

 일어나 깨어서 (Wake up !) 이라신다.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 .

아직은 좋은 성향이 남아 있다.

그것을 굳게하라 . ..신다.

 

하나님은 나쁜 짓 하나를 분노하시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남은 것 하나를 더욱 크게 보신다.

그것은 그 분의 사랑이다.

날 아직도 이리 사랑하시는 증거다.

 

굳건하게 하라 신다.

내 남은 좋은 점이 무엇인지 더욱 돌아 보아야  한다.

그리하여 더욱 굳게 하여야 한다.

 

 

6.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문제는 내 어이없는 죄들이 왜 그런가다.

'성령'없이 행함이었다.

성령이 함께 하시면

죄에서 멀어질 수 밖에 없다.

그 분이 하시는 소리,

말씀을 통하여 외치는 그 소리가

내 심령을 울리면

주님 뜻대로 할 수 밖에 없다.

 

교회.

내 심령의 성전에 울리시는

하나님의 말씀,

성경을 통하여 말씀으로 오시는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 하나님을

오늘도 열심히 들어야 한다.

그래서, 죄로 부터 멀어지고

좋은 점만을 보시는 하나님의 그 좋은 사랑을 받아 들여야 한다.

 

 

8.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작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하지 아니하였도다

 보라.. 신다.

듣고  보길 발시다.

그 분은 내 모든 것을 다 아시는 분이시다.

'내 작은 능력' 그것을 가지고

주님의 말씀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나의 표나지 않는 충성을 기쁘게 보신다.

 

 어제는 '말씀 ' 중에

'성령이 주시는 말씀대로

 불타는 눈동자와 빛나는 주석 같은 발을 가지신

 예수님을 연상하고

 내 죄를 회개하라.' 심에도

수술 중에 '신참 Scrub'간호사의 더디함에 짜증을 냈다.

말씀이 분명히 기억이 남에도 불구하고그랬다.

짜증을 내도 될 당연한 이유와 논리는 가지고 있었다.

그래도... 난 저렇게도 옳은 구석이 없는 자다. ㅜ.ㅜ;

 운전하다 누가 뒤에 바짝 붙어 밀어 붙히는 듯하거나

도의적이지 않은 운전을 하는 자를 볼 때

울~컥 하려 한다.

 환우 분들...

그 아파서 오시는 분들이 지푸라기 잡는 그 약해짐을 알면서도

내 최대한 쉽고 아주 논리적일듯한 ^^;;; 설명에

이해를 하지 못하고 두 세번 되풀이 물어 볼 때는

속이 답답해진다.

말투가 딱딱해짐을 난 스스로 느낀다.

그러함에도 난... 그 버릇 고치지 못한다.

 내 의견에 반대하는 자들을

다른 것보다는 '틀린 것'으로 인식하려 함을

앎에도 불구하고 화가 나려한다.

 쪽팔리는 상황은 피하려하는 게

나를 부끄럽게 느끼게 하는 오래된 상처 탓임을 알면서도

아직도 그리 깊게 용해해 내지 못하고 있다.

두려워 함........

.............

..........

이제는 그 이유와 왜 그런 나이들어 옳지 못해 보이는

매너리즘에 빠진 고리타분한 자들의 행위를

내가 하고 있음을 깨달아 앎에도 불구하고

어찌하여 난 그들처럼 그대로 하는가?

이럴 때 난 나를 실망하여 더 부끄러워 하고 싶다.

 

하지만, 하나님은 '사데'교회에 대하여

그리 말씀하신다.

' 네가 참으로 악하게 행동을 하여 오고 있구나.

 그러나 아직은 돌릴 기회가 있으니

 다 죽어 버리기 전에 깨워 굳건히 하라' 라 하신다.

참 귀하신 말씀이시다.

그 악함에도 불구하고

그처럼 선한 부분을 보시는 것이시다.

 

안될 것을 아시고

'성령의 소리를 들으라' 신다.

그리하여 성공하면 ' 내 작은 능력을 가지고도 승리할 것을 '

아주 기뻐하실 것임을 저리 감탄스러운 말씀으로 맺으신다.

 

 나쁜 것만 보면 한도 없이 나쁘다.

아니.. 이 부족한 나를 위해 저리 십자가에 몸박으시어 구원하셨는데

그리고도 이 나를 위해 이렇게 성령으로 쉽게하기 위해 도우시는데

매일 말씀으로 이렇게도 인도하시는데

이런 축복을 주시는데...

그러함에도 난 '왜 이것 밖에 되지 않을까?'... 하고

자탄하고 자괴하면

소망이 없음이 더 무거워 진다.

그러나, 주님은 그러신다.

"그래도 넌 아직 괜찮아.

힘내서 성령의 말씀을 더 들어봐

그리고 죽게 된 것을 깨워 굳세게 해봐

넌 비록 능력은 적지만

내 말을 지키려는

그 열심 만 가지고도

상급이 클 거야.... '

 

소망이다.

 

수술을 마치고 '의우회 '모임에 갔다.

회장자격.

가기전에 생길 수 있는 나의 내적 부딪침에 대하여

기도하고 갔다.

많이 편하고 좋다.

모두 기뻐하는 듯 하다.

나..

그래도 말씀 가운데 날 맞추려 하니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그 '진정한 복'을 느낀다.

 

운동마져하고 집에 왔다.

많이 피곤하다.

저녁 11시면 하는 가족 기도.

아내는 매일 열심히 한다.

나.

마음 동하면 한다.

어제는 하고 싶은 마음은 없고 몸은 천근이지만

그냥 같이 했다.

말씀을 '내 흐름, 원함'으로 붙들고 기도한다.

그러니 기도의 내용에 대한 부담이 없는 것이

기도를 참 편하게 한다.

잠시 앉기 까지 부딪쳐오는 사단의 방해가 조금 문제이지.. .

깊어진다.

자식들을 중보하는 부위에 아내의 기도가 같이 높아진다.

어느새 한시간이다.

기도를 마치면 마음이 뻥 뚫어지는 듯하다.

날아가는 듯하다.

개운하다.

그 기분을 어찌 표현할까?

 

이불을 펴고 따사로운 장판에 등을 대고 누으니

세상에 천국이 따로 없다.

불현듯 생각이 난다.

열심히 '마시고 놀고 관계하며' 삶을 위하여

전력 투쟁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이러한 늦은 것 같은 방법이 더 나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아닌가?

너무나도 당연한 원리지만

세상에 발 담그고 사는 우리는

나도 모르게 '기도 만 하는 것 보다는.. '이라는 전제가

내 마음에 깊이 자리 잡고 있음을 느낀다.

그래서 이러한 기도가 새로운 발전의 시작임을 깨닫는 것이

정말 힘든 것이다.

 

하나님이 그러신다.

"네 작은 능력을 가지고 내 말을 준행하려는 게 정말 기특하다"

나..

삶의 매사를 하나님의 말씀의 원리에 적용하려 애쓴다.

나.

가진 영적인 버퍼가 정말 부족하다.

갈렙이나 큰 간증을 가지신 목사님 들에 비하면 너무 너무 알이 작다.

그래서 매일 이렇게 말씀 붙들고

나를 치려 노력할 수 밖에 없다.

그 적은 능력을

오늘 이렇듯 하나님이 위로하시고 도장찍으신다.

그게.. .

나..

정말 기쁘다.

난..

소망이 있다.

이 절망의 사회에서 소망으로 소로소록 나를 채워가는

초로의 중년 남자 의사다.

 

 

기도

 

주님.

감사합니다.

주님은 소망이십니다.

내 잘못 덩어리의 삶에도

자괴감이 산덩어리 같은데도

주님은 다시 날 위로 하시고 만지십니다.

감사합니다.

내 삶이 그래서 다시 젊음으로 변화되고 있는 듯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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