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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감성으로 ( 창31:36-55 )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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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감성으로 ( 창31:36-55 )

주하인 2007. 5. 15. 09:13

( 주 안에서 풍파를 무사히 견뎌내고 새로운 삶을 향해 나가는 당신께... )

 

제 31 장 ( Chapter 31, Genesis )
36.  야곱이 노하여 라반을 책망할새 야곱이 라반에게 대척하여 가로되 나의 허물이 무엇이니이까  
40.  내가 이와 같이 낮에는 더위를 무릅쓰고 밤에는 추위를 당하며 눈붙일 겨를도 없이 지내었나이다 
41.  외삼촌께서 내 품값을 열번이나 변역하셨으니

 

 살다보면 억울한 일들이 많다.

특별히 세상이 점차 인간이 중심이 되어 가고

감각 위주로 진실의 판명 기준이 바뀌어 가고 있어서

어느 것이 옳은 것인지 그릇 된 것인지 헷갈리는 시대라서 더욱 사람 살기에는 힘이들어진다.

그런 사람들의 의식변화의 증거가

잦게 발생되는 총기사건들이 되기 도 한다.

사람들은 자기 멋-멋이 맞다. -대로 살다보니

편하기는 하지만 그것이 그들에게는 거꾸로 올무가 되어

내적인 허함을 가져오고

사람들 사이에 단절을 가져오고

그것은 또다른 내적인 공허를 가져오는 악순환의 연속이 된다.

그러다 보면 사람들은 자기 만의 세계에 갇히게 되고

그것은 영적인 황폐화를 의미한다.

이런 잘못된 영혼의 이탈은 세상에 울분으로 곧잘 나오게 된다.

 

 라반과 야곱

장인과 사위라는 관계도 그렇거니와 틀림없는 선을 행함에 대한 적절한 보상과 아름다운 헤어짐이 있어야 하지만 결과는 그렇지 못하다.

 위에서 극단적인 예를 들어 설명하였지만

이러한 비틀어짐은 인간 세상 어디에나 존재하지 않을까?

특별히 앞으로 세월이 지나가면 갈수록

사람 사이의 삶은 점차로 각박해질것이 분명하다.

지금까지 몇년 사이에 삶의 질이 얼마나 급격히 나빠지고 있는가?

억울한 오해와  불편한 손해가 얼마나 많은가?

 

야곱은 어찌하는 가?

이러한 어지러운 세대, 앞으로 더 어지러울 세대에 과연 우리는 어찌 우리의 믿음과 하나님의 기쁨을 유지하며 살 수가 있다는 말인가?

아니,

믿음 마져도 어찌 유지할까?

흔들리지 않고....

 

 야곱의 그것은 그런 의미에서 오늘 배울 점이 많다.

 

 우선 그의 변론은 당당하다.

불의에 화를 내지는 않되 조목조목 당당하게 이유를 얘기한다.

그로 인하여 라반 외삼촌에게 오히려 조약을 맺자는 이야기를 나오게 한다.

 

이것이 그의 오늘 모습에서 배울 것이다.

그러나,

허전한 영혼에서 그게 가능할까?

당당함이..

그렇다면 그의 당당하기 위해서 어찌 해야 하는가?

 

 

 

 


 
42.  우리 아버지의 하나님, 아브라함의 하나님 곧 이삭의 경외하는 이

       나와 함께 계시지 아니하셨더면

      외삼촌께서 이제 나를 공수로 돌려 보내셨으리이다 마는

      하나님이 나의 고난과 내 손의 수고를 감찰하시고 어제 밤에 외삼촌을 책망하셨나이다 
 
  첫째로

주님을 끝까지 놓치지 않아야 한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주님은 내 목숨이다.

그 분을 믿는 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도 충분하기는 하다.

그러나 충분하지 않기도 하다.

늘 끊임없이 주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그분과 동행함 만이 이 어지럽고 힘든 세상에서

억울하지만 억울하지 않게 살수 있다 .

 그의 고백을 보라 .

얼마나 하나님을 힘있게 증거하는 가?

우리 아버지의 하나님, 아브라함의 하나님 곧 이삭의 경외하는 이

 이 고백이 평범치 않게 들리는 게

아침에 진료하다가 잠시 눈을 돌리는 순간

반대편 건물 이층 테라스에 1평 정도의 공간에 심어진 풀들이 불어오는 바람에 요동을 치듯이 흔들림을 보며 주님을 기뻐 손드는 듯한 느낌으로 기쁘게 다가 왔다.

그런 감동에 젖어서 야곱도 지내왔을 것이다.

그게 그렇게 그에게 열렬히 고백하는 이유가 되었을 것이다.

 고난이 유익이었다.

그는 그 모진 처가살이 중에 하나님을 늘 깊이 인식하고 느끼는 성숙함이 이루어 졌을 것이다.

그게 이런 고백으로 나온다.

'우리 아버지의 하나님

 아브라함의 하나님.

 곧 이삭의.......'  

그리하며 곧 이어진다.

   나와 함께 계시지 아니하셨더면

그는 늘 하나님과 함께 함을 느끼면서 지냈다.

그리고 체험도 한다.

라반의 고백을 듣지 않았는가?

 

 

둘째

인간적으로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래야 그게 올바르고 정당한 변론의 이유가 된다.

거짓으로 이루어진 변론은 '변명'일 뿐이다.

변명은 힘이 없다 .

상대로 하여 이해가 되어도 어딘지 모를 찝찝함으로 다가오게 한다.

그것은 하나님의 감성이 아니다.

 하나님의 그것은 평안하다.

아름답다.

기쁘다

손해를 봐도 선하다.

주님을 인식함으로 인간에게 최선을 다해야 한다.

주님을 위해 주변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각 처소에서 하나님으로 인해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게 해야 한다.

 

 셋째

하나님이 나의 고난과 내 손의 수고를 감찰하시고

모든 것을 주님께 내려놓고 결과에 순종할 마음이 있어야 한다.

그건 주님의 살아계심을 아는 자 만이 할 수 있는 마음의 상태이다.

생존하신 하나님을 마음으로 체험하고 믿는 자 만이 할 수 있는 상태이다.

그것은 자유를 의미한다.

그것은 해방을 의미한다.

그것은 힘있음을 의미한다.

반면에 약간의 의지적 순종을 필요로 하는 상태이다.

야곱은 그 만큼 고난을 통하여 성장하였다.

 

 넷째

 모든 것이 주의 것임을 이해하는 상태이다.

주시는 분도

받으실 분도 주님이심을

믿고 이해할 수 있는 자이다.

 




49.  또 미스바라 하였으니 이는 그의 말에

      우리 피차 떠나 있을 때에 여호와께서 너와 나 사이에 감찰하옵소서    
53.  아브라함의 하나님, 나홀의 하나님, 그들의 조상의 하나님은 우리 사이에 판단하옵소서 

 

 야곱이 주는 당당함과

그로 인한 성공은

미스바라는 명명과

라반의 태도에서 알 수 있다.

그는 분에 차서 쫓아오고 악한 생각으로 그를 해치려 하였지만

그의 당당함은 그로 인하여 오히려 두려운 생각을 가지도록 한다.

 

 이것은 그의 최선을 다한 일상의 삶과

 하나님에 대한 동행하는 결과의 다름이 아니다.

 

 

 적용

 

1. 내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한다.

 . 가장 노력하는 센터장이 되겠다.

   공과 사를 분명히 구분하겠다.

 . 전인 치유에 최선을 다하겠다.

   힘들어도..

 

2. 환자들을 보고 무조건 웃겠다.

 내가 하시라도 의사임을 잊지 않겠다.

 그들은 아파서 온 분들이고 난 고통을 감해줄 의무가 있으니까..

 

3. 성경 5장 읽겠다.

 

4.  내 상태를 주님께 올리는 기도를 하겠다.

 

5. 내 주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 주님의 뜻임을 인정하고 받아 들이겠다.

 억울한 일 설령 발생히도 받아들이겠다.

 짜증내지도 분내지도 않겠다.

 

 

기도

 

주님

오늘은 도망치듯 나온 야곱의 오히려 당당함을 보고 있습니다.

그의 당당함으로 인하여 라반이 당황함을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이유가 하나님이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주여

저도 그리하게 하소서.

내 잘난 이유로 세상을 움직이려는 어리석은 시도는 더 이상 안하게 하소서.

주님의 눈치를 살피는 삶을 늘 허락하소서.

실은 그게 고통이고 제한이며 어찌 보면 암담할 수 있을 두려움이 있더라도

그냥 주님이 원하시는 것이면 받아들일 수 있는 담대함과

그러함으로 얻을 수 있는 기쁨을 확실히 알게 하소서.

모든 말씀 주여

귀하신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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