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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경외함(시25:12~22)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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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경외함(시25:12~22)

주하인 2006. 4. 25. 09:58

12.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 누구뇨 그 택할 길을 저에게 가르치시리로다

 


 

경외하는 자

두려워하는 의미와는 조금 차이가 나는 개념이다.

어려워하면서 너무나 존경스러워 하는 것.

두려워서 하지 못하면서도 단지 두려워 못하는 것은 억울한 개념이 들지만 너무도 존경스럽고 사랑하여서 기쁨으로 하지 않는 개념.

 

 

누구뇨?

왜 물으실까?

나에게 너가 정말 여호와 하나님 나를 공경하고 두려워 하느냐? 

가슴 깊이 반문한다.

난 진실로 주님을 두려워 하는가?

어느 정도까지는 이지만 아직도 깊은 곳에서 불신적인 개념이 있는 듯하다.

속 깊은 죄악성에 대하여서는 슬며시.. 설마.. 하는 개념도 있다.

 누구뇨..라는 물음에도 경외하는 자가 많이 없다는 느낌도 든다.

이런 상황에서 난 어찌 해야 하는가?

최선을 다해 주님을 공경하고 두려워 하는 마음을 가지려 노력하고 현재 변화되어가는 내 영혼의 정화를 기뻐해야 한다.

 

 

 

 저에게

나에게'가 되어야 겠지.

 

 

 

 

그 택할 길을 가르치시리로다

난 살면서 정말 힘든 것은 내가 갈곳을 자신있게 안다고 할수 없는 상황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가치체계들에 대하여 주님 앞에 확고 부동히 자신있게 바치고 기쁘게 힘있게 나갈 수 가 없다.

 주님의 일 한다고 열심 떨다보면 어느새 그 안에 내 의가 섞여 들어가고 그 섞여 있음을 의식하다 보면 힘이 빠진다.

 강하게 주님이 임하셔서 내 길에 의롭다하는 인증을 해주시고 격려 해주셨으면....

 

 

 

 


13. 저의 영혼은 평안히 거하고 그 자손은 땅을 상속하리로다


 주님을 경외함은 분명코 쉽지 않다.

우선 유혹이 내 앞을 가린다.

그 다음 의혹이 막아선다.

그러다 안되면 자책감이 또 막아선다.

 

그러나

그럼에도 주님을 경외하고 순종하면 주님은 분명히 기쁨을 주신다.

주님의 주관적이고 또한 우리의 자유의지를 바쳐 순종하는 댓가로 주시는 이 기쁨의 평강이 좋아서 우리는 주님을 떠날 수가 없다.

주님을 경외하고픈 마음이 샘물처럼 넘치게 된다.

 

주님의 이 평강이 쌓이고 쌓이면 우리의 일상은 '평안'이 지배를 하게 된다.

주님 안에서 평안히 거함.

이것이 '천국'이 아니고 무엇인가?

 

그리고

우리의 아들 딸이 땅을 상속한다.

물질적이고 현실적인 축복도 부수적으로 온다.

 

주하인

무얼 더 바라는가?

완벽한 행복이 여기에 있지 않은가?

 

 

 

 


14. 여호와의 친밀함이 경외하는 자에게 있음이여 그 언약을 저희에게 보이시리로다 

( 친밀해 보이지요? ㅎㅎ )


 자주 외롭다.

외롭고 허전함이 나의 삶을 가끔 태클 건다.

 

오랜 친구도 삶이 바빠서 연락도 잘안된다.

젊은 열정의 부부도 가끔은 냉기가 돈다.

자식도 각자 자신의 삶을 꾸리기에 바쁘다.

나이는 들어간다.

 

이럴 때 날 꼭 붙잡고 아무소리 안하고도 지켜보는 그런 분이 필요하다.

어릴 때는 다정한 부모가 되겠지만

이제 이 나이에 누가 날..

 

주님 여호와께서 '친밀함'으로 그 분을 경외하는 나에게 있을 것임을 언약하신다.

 

오늘 따라 왜 이리 친밀한 주님의 바라보심이 필요한가?

내 속을 참 다 아시는 그 분이시여.

 

 

 


15. 내 눈이 항상 여호와를 앙망함은 내 발을 그물에서 벗어나게 하실 것임이로다 

 

(주님 도와 주세요..)

 

 난 이제 내 운명을 안다.

난 절대로 주님을 떠날 수 없다.

주님의 그 사랑과 기쁨을 떠나서는 생각할 수 없다.

내 존재를..

 

 아침에 일어나서 '새벽기도'를 가려했던 그 마음가짐이 흐려지고

아침에 조금 일찍 일어나서 주님의 말씀을 사모했던 내 아름다왔던 행동이 흐려졌음을 깨닫고

다시 육신의 만족을 취한 댓가로

마음 한 구석이 무거워 짐을 느낄 수 있었다.

 

참으로

난 감사하다.

 

조금의 흐려짐은 곧장 마음 무거워 짐으로 느껴지게 하신다.

 

그래.

이걸 '율법'으로 몰아가면 그럴 수도 있겠지만

이젠 좀 다른 생각이다.

 

 그 답답한 마음은 날 그물 위에 올려져 공중에 떠 있는 , 그러면서 발가락이 그물코에  빠진 존재로 느껴지게 한다.

빠져 나가야 하는 초조함을 느껴서 빼려고 하나 그럴 수록 서둘면 발가락이 아파오며 더 더 깊숙이 사이로 빠져 들어가는 상태.

 그래서 누군가의 도움을 받기 위해 '위'를 쳐다보고 간절한 눈으로 바라보고 손내미는 상태.

혼자서는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나.

 

'앙망한다'는 표현이 절묘하게 느껴진다.

눈에 눈물이 곧 그렁그렁 매달릴 듯하게

간절히 위를 바라보며

손내미는 아이의 눈망을 같은 눈으로 쳐다보는 상태.

그게 앙망한다는 표현이다.

 

난 주님을 앙망한다.

 

율법은 주님은 쳐다보지 않고

주님의 이름을 들먹이며

열심히 주저 앉아 그물에서 엉키는 줄도 모르고 혼자 발가락 빼려하는 상태이다.

 

전혀 그 안에는 자기 이외에 다른 생각은 없는 것.

 

아침에 일어나지 못하는 억울함과 초조함이 날 앙망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 내 삶은 주님이 이유가 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라는 확고 부동한 의식이 지배해오는 상태.

 

 

그게 습관이 되고

주님의 존재하심을 늘 느끼게 되고 동화되는 삶이 되면 그 분은 내 그물에서 날 건져 주신다.

 

 

 


16. 주여 나는 외롭고 괴롭사오니 내게 돌이키사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17. 내 마음의 근심이 많사오니 나를 곤난에서 끌어 내소서 
18. 나의 곤고와 환난을 보시고 내 모든 죄를 사하소서 
19. 내 원수를 보소서 저희가 많고 나를 심히 미워함이니이다 
20. 내 영혼을 지켜 나를 구원하소서 내가 주께 피하오니 수치를 당치 말게 하소서 
21. 내가 주를 바라오니 성실과 정직으로 나를 보호하소서 
22. 하나님이여 이스라엘을 그 모든 환난에서 구속하소서 
  그물은 분명코 나에게 하나님을 앙망케 하는 도구가 되지만 그것은 언제까지나 가져가기에는 너무도 힘이 든 상황이다.

반드시 벗어나서 주님과 같은 시공간을 거닐며 천국의 시민이란 특권을 누리고 싶다.

 

그게 진짜로 천국이든...

이땅의 심령천국이든...

 

난 이제 서서히 가까운 글이 흐려지는 현상으로 괴롭습니다.

중년의 나이로 외롭습니다.

마음에는 자신감이 줄어들며 근심이 많아집니다.

열심히 진료는 하나 가끔 곤란이 밀어닥칠 때도 있습니다.

나는 이 땅의 386세대 사오정으로 분류되는 것 같아 혼자 곤고합니다.

내 육신의 능력이 낮아짐을 느끼며 환난에 스스로 빠져듭니다.

많은 원수같은 마귀들이 날 괴롭힙니다.

 

주님..

난 주님을 바랍니다.

오직 주님 만이 날 성실하게 정말 내 모든 속을 다 아시면서도 정직하게 날 보호하실 겁니다.

도우소서.

이 모든 환난에서 '이스라엘' 당신의 자녀 , 당신의 성도, 당신의 하인인 절 구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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