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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자연스러움을 원하신다(눅19:28-44)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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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자연스러움을 원하신다(눅19:28-44)

주하인 2012. 3. 21. 11:41

(눅19:28-44)
28.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예루살렘을 향하여 앞서서 가시더라 
' 이 말씀 하시고'

달란트 남기지 않을 자들에 대한 징죄에 대한 무서운 말씀 후,

 

예루살렘으로 앞서서 가셨단다.

예루살렘은 '인간'예수님에겐 두려운 길이셨다.

전능자이신 신성 예수님으로

그의 앞에 놓여진 '십자가' 사건을 알기에 그렇다.

 

그런 그 분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길을 주저함없이 올라가실 수 있음은

'하나님 나라' , '달란트'.. 의 말씀을 남긴 사실을 돌아보아도

'하나님'의 뜻과 그 분의 뜻을 너무나 잘 아시기에

그 분은 주저함없이

고난의 길, 십자가 언덕 ,골고다의 언덕을 향해

'앞서서' 발을 내 딛으신다.

 

능동적이고

적극적이신

하나님의 뜻을 준행함.

 

29.감람원이라 불리는 산쪽에 있는 벳바게와 베다니에 가까이 가셨을 때에 제자 중 둘을 보내시며
30.이르시되 너희는 맞은편 마을로 가라 그리로 들어가면 아직 아무도 타 보지 않은 나귀 새끼가 매여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끌고 오라
31.만일 누가 너희에게 어찌하여 푸느냐 묻거든 말하기를 주가 쓰시겠다 하라 하시매
 오늘 묵상집의 해설에

'능동적 순종'

 

그러면서도 '겸손'한 '능동적' 순종.

나귀.

그것도 새끼.

그것을 타고 올라가심.

 

그러면서 더욱 감동을 주심은

숨길래야 숨기실 수 없는 '하나님'으로서의 능력이시다.

 나귀새끼가 어디에 매여 있는지

어떻게 해도 그것을 가져올 수 밖에 없는 것을 아심과

그러한 모든 일을

하나님이 원하심을 알고 계시기에 그러신다는 것이다.

 

 
40.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만일 이 사람들이 침묵하면 돌들이 소리 지르리라 하시니라
41.가까이 오사 성을 보시고 우시며  
 

그러시면서 그 분은

사람들의 '환호'와 그들의 목적이 무엇이든

알아서 웃옷을 까는 등의 열심을

그냥 받아 들이셨다.

심지어는 바리새인들의 질타를 막으셨다.

 

 놀랍다.

겸손이라면

더 낮아지는 것이 아니던가?

그럼에도 그 분은 그들의 '환호'를 그냥 두신다.

오히려, 침묵하면 돌들이 소리 지르실 것이라고 하신다.

그것은 무엇인가?

'감정의 흐름'에 대하여 말씀 하시는 것 같다.

이것을 보면 성경은 살아있는 글임을 다시금 깨닫는다.

거기에는 사람들의 감정을 배려하고

깨닫게 하시는 것이 있다.

하나님은  수천년을 흐르는 동안

올바른 것을 여지없이 만지신다.

 

겸손은 나를 낮추되

나를 비하시키는 것은 아니란 것이다.

적극적으로 나를 낮은 자리로 가되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나'를 기뻐하여

사람들의 칭송은 그냥 받아서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것...이

진정한 겸손이다.

그것을 배워야 한다.

낮은 자존감을 가진 자들은

자신을 낮추고 남들의 선의를 받아 들이질 못한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자연스러움이시다.

 

 보라.

쪽팔리게 ^^;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우신다.

아무리 인성을 온전히 가지셨지만.........

 

위의 생각이 '내 생각' 이었다.

이전에........

그런데

하나님은 '자연스러움이시다. '

그 분은 ' 겸손'도 자연스럽게

사람들의 칭찬과 아쉬움도 자연스럽게

그들의 마음 속에 자신들의 영달과 한풀이가 그렇게 나옴을 알면서도 자연스럽게

 

 

42.날이 이를지라 네 원수들이 토둔을 쌓고 너를 둘러 사면으로 가두고

그리고 , 십자가를 지실 수 밖에 없는

인간들의 마지막까지 미련스러움을 안타까워 하시면서

우는 것도 '자연스럽다'

 

남들을 의식하지 않으신다.

그러면서도 그게 경박하거나

자신의 감정에 몰입되어 그러는 것이 아니시다.

그 분은 하나님께 집중되어 있고

인간을 사랑하시는 마음이 넘치셔서 안타까이 우시는 것이시다.

그 분은 모든 게 자연스럽다.

거기에 창피함이 없으시다.

손가락질에 대한 의식이 없으시다.

그냥 , 자연스러우시다.

 

 

오늘 나에게 말씀하시고자 하심은

내가 오늘 취해야 할 태도이다.

 

모든 일에 하나님을 의식해야 한다.

하나님의 뜻이라시면

어떤 일이라도 순종해야 한다.

순종하되 능동적으로  '겸손'한 자세로 해야한다.

더 낮아지면 더 높아진다.

설령 내가 높아짐을 느끼지 못하더라도  

하나님의 뜻이라면 그냥 낮아져야 한다.

그게 하나님이 좋아하시기에 그렇게 해야 한다.

 사람들이 높이면

그냥 받아 들이면 된다.

그것, 하나님이 주시는 위안이시고

하나님이 날 사랑하시어 주시는 것이시다.

그럼에도 늘 마음에 견지해야 할 태도는

남들이 나보다 낫다.. 는 마음이다.

 내 나아갈 궁극의 목적은

'하나님 나라'임을 잊지 않으면 된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러한 자연스러움으로 살아야 한다.

 

 

적용

 

1. 낮아지자

 더욱 적극적으로 낮아지자

 

2. 감사하자.

 남들의 칭찬은 사모하지 않되

 부끄러워 할 이유도 없다.

 그냥 감사히 받자.

 

3. 자연스러움이 하나님의 원리다.

 흐르자.

 자연스러워지자.

 

4. 분, 미움............ 하나님 나라에 합당치 않은 감정은 내려놓자.

  바리새인의 질타,

  이스라엘 백성의 곧 있으면 표변할 마음,

  제자들의 자신의 영달을 생각하여 환호함........ 등,

 모두 예수님께서는 아시었지만

 자연스럽게 받아 들이셨다.

 그것은 그들, 인간의 원죄의 영향으로 나오는

 어찌할 수 없는 단점으로 받아 들이신 것이시다.

 그것....... 때문에 십자가 지시지 않던가?

 나.

 사람들의 불완전성을 이해하자.

 더......조금 더..........

 

5. 성경 다섯 장 읽겠다.

 어제 두장을 빼먹고 못읽었다.

 

 

기도

 오늘은 자연스러움을 말씀하시는 듯합니다.

미움.. 분노.. 판단.. 정죄는 다 막힌 장해물입니다.

거기에 교만이나 낮은 자존감도

감정이 흐르지 못하게 합니다.

주님은 오늘 직접 겸손히 낮아져

적극적으로 순종하는 모습을 몸소 보이십니다.

거기에 사람들의 어이없는 바탕으로 환호하는 것을

막지 않고 그냥 두십니다.

그러심으로 겸손의 진정한 모습이 무엇인지

감정의 온전한 흐름은 어떤 것인지 보이십니다.

눈물로 흘리시면서

울때 우시는 모습으로 통하여

진정으로 생각할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 안에서

하나님 나라를 사모하는 것임을 보입니다.

주님.

그리하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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