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강도와 성전 지기(눅19:45-20:8) 본문
(눅19:45-20:8)
19장
46.그들에게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 되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도다 하시니라
기도의 집
'성전'
'네가 하나님의 성전인 줄 모르느냐'는 말씀에 따라,
나는
성전이고
성전 이어야 한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나'를 성전의 자격으로 만들어 주셨고
내 영혼의 , 내 육신과 하나로 얽힌 그 영혼의
성전에 거하시길 그렇게도 원하신다.
그러나, '기도하는 '집이라는 ..
'기도'에 대한 강조가 눈에 들어옴은
나, 주님의 성전이 기도하는 '성스러운 ' 전이 되길 바라시는
진정한 '성전'의 역할을 하길 바라심이다.
그런데, 강도의 소굴을 만듦은
그들 이스라엘 백성들이 '장사'를 하는 행위를 함으로
하나님의 성전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었다.
나.
내 성전을 운용하는 이스라엘 백성같은
성전 지기.
성전의 청지기.
그 성전을 기도의 전으로 만들 것인지
강도의 소굴로 만들 것인지는
온전히 내 '선택'에 달렸다.
매일 매일 영적인 전투라는 이야기는
내 선택에 따라
이 귀한, 하나님의 사랑,
십자가 보혈의 은덕으로 이루어진
이 걸어다니는 '성전'을
기도의 집으로 만들것인지
강도의 소굴로 만들 것인지
매일 매시 내가 결정하고 선택한다는 이야기시다.
하나님은
능력이 없어서 그러하심이 아니시다.
나를 나에게 맡기심은
나의 육신의 삶 속에서
매일 하나님을 인식하고 살면서
매사 매사 주님의 뜻대로 기도하는 집으로 유지하는
성전지기 역할을 잘하면서
결국 성전지기이자 성전인 내가
주님 뜻대로 깨끗한 나를
하나님의 나라까지 유지시키는 것을
보시기로 약속하셨기에 그러시다.
20장
2. 말하여 이르되 당신이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는지 이 권위를 준 이가 누구인지 우리에게 말하라
8.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이르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그 잘못된 '선택'에
물욕을 통한 욕심 뿐 아니라
'잘못된 권위'에 대한 욕심도 포함이 된다.
특히..
나.
나름 많이 순화 되었다고 자부했었지만
주위에서 '권위 의식'이 많다고 지적한다.
겸허히 받아야 겠다.
그게 '나' , 하나님의 성전을 깨끗이 유지하는 지름길이다.
적용
1. 착하게 살겠다. .오늘 하루.. 더..
하나님의 전이다.
성전으로 유지하겠다.
급한 성질 , 한발자국 늦추겠다.
2. 나,
이처럼 모나고 부족한 자를 성전 삼아 거하시려
저리도 고생하시는 예수님, 하나님...
정말, 감사하고 살아도 부족한 시간..
더욱 감사하자.
매일 감사하자.
3. 더 기도하자.
당직이다.
당직방에서 TV 켜지 말고 더 기도하자.
기도할 때 통쾌함을 자주 경험하지 않았던가?
더욱 주님 가까이 하자.
시간이 얼마 안남았다.
주님이 오시던가, 내가 주님 앞에 불려 가던가.. 급하다.
4. 성경 세장 읽자.
5. 매사에 내 선택이다.
강도의 하루를 만들지는 말자
모두 내 탓이다.
내 주위를 강도 당한 상태로 만들어 주지 말자.
기도
주님.
어쩌면 이렇게도 잘 이해가 되게 말씀으로 인도하시는 지요...
남들은 절 보고 영감이 있다고 , 영성이 깊다고도 .. 합니다.
아주 소수지만요.
주님.. 그러나 그들은 모릅니다.
제게 주시는 이러한 깨달음이
제 성전을 깨끗게 하는데까지
아직은 잘 도달하지 못하고 있음을요.
그게 죄송합니다.
알면서도 잘 못하는 ,
이 의지박약,
그 사랑을 깊이 알면서도
사랑에 반응하지 못하는
이 정서적 결함이 그렇습니다.
의리보다 내 자아의 욕심에 더욱 민감한
이 엉터리 같은 제가 죄송합니다.
주여.
간절히 바라옵건데
제가 주님이 사랑하시어 허락하신 '성전'임을 잊지 않게 하시어
귀하고 곱게 제자신을 다룰 수 있길 원합니다.
더러운 것에 관심을 멀게 하시고
더욱 기도하게 하시사
기도하는 성전이 되게 하소서.
늘 올바른 선택을 하게 하시사
하나님의 성전을 책임지는 성전지기로서
의무와 책무를 다할 수 있길 소원합니다.
주여.
절 올바로 이끄시옵소서.
그리고 기도할 제목 많은데
그 분들 다 주님이 인도하실 줄 믿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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