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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부의 절절함을 보며(눅 20:41-21:4)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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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부의 절절함을 보며(눅 20:41-21:4)

주하인 2012. 3. 26. 09:41

(눅 20:41-21:4)

 

무엇

내세울 것이 있는가

 

그리

내 삶이 뚜렷한 것이 없다

그것을

난 안다

너무도 잘안다

 

마치

과부의 그것 같이

흐리고 부끄럽고 두렵기도 하다

 

하지만

난 안다

내 뒤에 계신 주님

그 주님의 돌보심

그 사랑의 따스함을

난 안다

아니

오히려 눈물 겹도록

감사할 때가 자주 있다

 

두렙돈 과부의

그 절절함을 본다

그 불타는 절박함으로

주님 앞에

내 사랑의 결심을

내어 보이리라

 


 
 20장
41.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사람들이 어찌하여 그리스도를 다윗의 자손이라 하느냐

 틀린 것은 틀린 것이다.

적당히 세상의 합리에 맞추어 하나님의 일을 합리화 하는 것은

나에게는 없는지?

 

'그리스도'가 다윗의 계보에 들어가 있는 것은 맞지만

주님은 인간의 삶을 무시하지는 않으시되

어찌 다윗의 자손에 주님이 속할까?

 

나는 이러한 '오류'를 범하지는 않는지?

나를 안아주시고 붙들어 주시고 이해하시는 아버지시지만

하나님을 너무 편히 여겨

마땅히 내가 할 을 무시하고 있지는 않은지...

 

 

 

45.모든 백성이 들을 때에 예수께서 그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성전에서

모든 백성이 예수님의 말씀에 집중하고 있을 때...

 

 예배가 한참 진행 중일 때...


 
 21장
1. 예수께서 눈을 들어 부자들이 헌금함에 헌금 넣는 것을 보시고
2. 또 어떤 가난한 과부가 두 렙돈 넣는 것을 보시고 

 부자들..은 느릿 느릿 ( 추정일 뿐 ^^;) .. 헌금함에 두툼한 봉투 넣고 들어와 앉고 있으나

가난한 과부는 허겁지겁 들어왔을 것 같다.

그리고, 얼른 앉아 예배를 드렸으면 좋으련만

헌금통을 찾아  헌금을 하고는

잠시 기쁜 표정이 스치는 얼굴로 자리를 찾아 앉는다.

 

말씀을 전하시던 예수께서

잠시 말을 멈추고는

멀리, 군중 뒷편에 보이는 그녀의 모습을 물끄러미 보신다.

그리고는 말씀을 이으신다.

이전의 설교 내용과는 달리 ' 과부의 두렙돈'에 대하여 설교하신다.

과부인 그녀는 놀랜다.

자신의 이야기를 하시는 예수님이 놀랍다.

어찌 그리 정확히 자신의 사정을 아시는 지

가슴이 야릇하고 자랑스럽고 감사하다.

 

 

 

 지금까지 '과부의 두렙돈' 이라면 너무도 유명한 구절이다.

'온전한 헌금'

'기쁨의 헌금'

..

이렇듯 유명하면 거기에 이의를 제기할 여지마져 사라져

그만큼 묵상은 더 어렵다.

오늘이 그렇다.

그러나, 늘 여기를 지날 때마다

마음 한 구석이 찝찝한 것은

그녀의 그러한 기쁨에 들뜬 온전한 헌신의 마음을 알고

그 후에 하나님의 축복이 있을 것을 알지만

그러할 것을 결심하고 나서

'축복'을 염두에 두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찝찝함이 있고

주님이 그 후의 함께 하실 것에 대하여 말씀하시지 않으심이

어쩌면 주님은 ' 이땅'의 것은 관심이 없으시고

오직 '교회'의 일, '하나님 나라'의 일에만 관심이 있으신가.. 하는

막연한 묘한 버거움이 남는 다는 것이다.

물론, 난 이러한 버거움이

내 신앙을 흔드는 사단의 장란임을 안다.

그러기에 머리를 털어내고 '두렙돈의 과부' 믿음을 닮길 선택하려 애쓰지만

자꾸만 걸리는 것은 사실이다.

그것은 나의 '의심 많은 특질'이리라.

 

그런데 오늘 그런 의심 많은 나의 눈에 걸린 것은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성전에서 듣는데

뒤에 들어오면서 아무렇지 않은 듯 자기 볼일 다 보고 들어오는 두 부류의 사람이

그림이 그려지듯 눈에 들어온다.

마치 교회에서, 늦게 들어오면서도

다른 사람들을 신경쓰지 않는 무례한........사람들.

그런데 그들 두 부류는 모두 '헌금'을 한다.

그러기에 그들은 어쩌면 스스로를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이정도면 신앙인으로 그럴듯 하지 않은 가..하는 무의식의 생각들이 있을 듯 하다.

하지만, 그 중의 한 부류,

'과부'는 그럴 수가 없는 사람이다.

과부가 어떤 입장인가?

지금의 시대도 그렇지만 그 시대의 과부는

참으로 어려운 삶이 맞을 것이다.

그런 그니는 헌금 함에 갈 때는

아마도 그것을 드릴 수 있음이 어쩌면 너무나도 감동스러웟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기에 예배 드릴 때

모두 하나님의 말씀에 집중 하여 있을 때

우선 말씀에 집중함이 옳고 현명하지만

그녀는 그런 것 자체를 신경 쓸만한 마음의 여유가 없었을 것이다.

그냥 아이들이 재밌는 것 보면 거기에만 정신을 팔듯,

그녀의 눈에는 '헌금 통'만 보였을 것이다.

그 '강렬한 사랑의 집중'..

그녀를 정신 팔게 하는 것은

그 고난의 삶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지탱하게 하는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를 절절히 아는 탓일 것이다.

아니 , 어쩌면 가족 중의 누군가 , 어린 자녀가 되겠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도저히 고칠 수 없는 중병에 걸려서 죽을 지경이라서

전재산을 털어서 넣어서 하나님의 기적을 바랄 수 밖에 없는

절박함 때문에 그랬을 것이다.

그것을 ,

그 절박한 에너지의 다가옴을

군중의 앞에서 설교하시던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금시 느꼈을 것이시다.

그러고는 '잠시' ,

멀리서의 ' 순서'를 잊어먹고 

마리아와 마르다의 문제 마져 중치 않은

그 절박함,

그 사랑을

기쁘게 , 눈물 겹게 바라보셨을 것이다.

그리고는 눈을 다시 군중을 향해 돌리시고

잠시 멈추었던 설교를 끊으시고

'과부의 두렙돈'에 대하여 설파하신 듯하다.

 

그 긍휼의 하나님.

그 사랑의 하나님이

그녀의 그 사랑과 절박한 집중을 놓치실 리가 없으시다.

반드시 축복하고 응답하실 것이 분명하다.

 

나.

오늘 묵상에서 깨닫는 바는

그 강렬한, 절박한 사랑이다.

정말 중요한 것은 '모양새'가 아니다.

아니, 심지어는 '말씀 묵상'을 그리도 강조하는 나에게

말씀을 듣는 것 보다 더욱 중요함은

그 자세라는 것이시다.

'절절한 사랑'

'절박한 간구'

' 온 정성을 다한 헌금 같은 기본의 회복'이시다.

돈의 양도 중요하다.

그러나, 그 보다 더욱 중요함은 절절함이다.

 

 지각한 부자들을 보라.

그들은 여유롭게 헌금한다.

그들은 순서도 무시하고

말씀도 중요함을 모른다.

절박함도 없다.

그리고는 신앙생활을 잘 한다고 생각한다.

 

저런 절절하고 절박한 기본의 회복이 필요하다.

양도 , 질도 중요하다.

그러나, 그 양과 질이 꼭 물질에 국한되지 않는다.

물질에 바탕되는 마음가짐에 국한되지 않는다.

그보다 더욱 중요함은

오직 주님이 아니시고는 아무것도 없다...는 절박함이다.

주님 만이 내 산 소망이시고

삶의 이유고

내 문제를 해결하실 수 있는 유일함이며

그러함을 가슴 깊이 깨달아 행동을 할 수 있는

절절한 사랑의 체험이다.

주님의 사랑.............

그 사랑의 놀라움이다.

 

 

 

적용

1. 순서와 말씀 묵상이 중요하다.

 더 중요한 것은 '주님의 사랑'에 대한 간절함이다.

그 간절함으로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절절함이다.

 

2. 주님의 뜻이라면 온전한 헌신을 아끼지 않겠다.

 날 아시는 내 하나님께서

 나에게 명령하시면,

 이게 하나님의 뜻임이 분명하시다는 확신이 있으시면...

 나..

 이제 조금 알아 듣는다.

 

3. 날 보시는 하나님을 잊지 말자.

 멀리계시지만 그 과부의 속 사정까지 뚫어보시고

 그녀의 온 헌신을 다 보고 아셨다.

 그리하신 하나님이

 날 모르실 것이라는

 거짓 외로움은

 말 그대로 거짓이다.

 하나님이 날 보심을  잊지 말자.

 

4. 회개하자.

 말씀을 묵상하고 깨달앗다고 ...만족하며 배두드리는 것은 아닌가?

 더욱 깊이 주님을 영접해야지 않는가?
 내 하루의 삶이 고작 부자의 잘난체 하는 헌금 아니던가?

 

5. 성경 세장 읽자

 

6. 믿자.

 주님은 내 삶을 고치시고 책임지실 것이다.

 내 결국은 승리일 것이다.

 과부는 그러면서 다 집어 넣었다.

 그리고는 결국 받았을 것이다.

 

기도

 

내 주 하나님

나를 지키시어 주시니 감사합니다.

부족하지만 지금까지 인도하시고 살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주님.

앞으로도 그러하소서.

나 ..

정말 부족하고 절박한 일 많아서

주님 앞에 다시금 나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깊이 깊이 주님을 기쁘게 해드리지 못했습니다.

내 주시여.

그러한 절 불쌍히 여기소서.

마치 다 아는 자 처럼 어슬렁 거리는

부자의 헌금통 믿음이 되지 않게 하소서.

온전히 주님 앞에 다 내려놓는

그런 과부의 믿음 되게 하소서.

하나님의 사랑을 잊지 않고

더욱 사모하는 그녀의 절절함을 배우게 하소서.

기본을 회복하게 하소서.

내 주시여.

주님 때문에 그리되게 하소서.

내 삶은 주님의 것이오니

주님의 영광만을 위해 살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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