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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다 아시니[요19:17-27] 본문

신약 QT

하나님은 다 아시니[요19:17-27]

주하인 2013. 3. 28. 08:23

 

편안하다

 

평안하다

 

평강이다

 

 

주님은

무조건 선이시고

 

주님은

모든 것 다아시고

 

주님은

매사에 가르치시니

 

어찌

 

내가

 

인생에

마음에

사단에

쉽게 흔들릴 것인가

 

 

24.군인들이 서로 말하되 이것을 찢지 말고 누가 얻나 제비 뽑자 하니 이는 성경에 그들이 내 옷을

   나누고 내 옷을 제비 뽑나이다 한 것을 응하게 하려 함이러라 군인들은 이런 일을 하고

 성경에는 '하찮은 .. ' 그러나 우주사적으로 너무도 큰 의미가 있는

예수님의 옷을 나누어 가지는 것 까지 나와 있다.

하나님이 모르실 일이 있으실까?

당연하지만 당연한 것을 잊어 버리고

고민하고 괜한 걱정하고

어이없는 분위기에 모든 것 잃은 것처럼 낙담하고

하나님이 어디 계신가 고민하고 사는 것이

우리들인 것을..

 

 하나님은 모두 아신다.

미리 다 아시고 예정 해놓으셨다.

그것을 알수 있음은 '돌아보아 '야 알 수 있을 뿐이다.

 

이제 할 일이 있다.

하나님이 '선'이심을

하나님은 전능하시고 무소 부지 하심을

말로만이 아니고 영혼이 믿는 것이다.

깊숙이 확신하는 삶이 필요하다.

 

 성령이여 도우소서.

 

 

27.또 그 제자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어머니라 하신대 그 때부터 그 제자가 자기 집에 모시니라

 예수님.

십자가에서 달려 돌아가실 지경이신 분께서

내려다 보시며 제자에게 '어머니'로 모시라 제자에게 말씀하신다.

어찌 인간이 저런 것이 가능할까?

저 사랑 ..

저 인내..

 

 십자가 밑에서 올려다 보던 '제자'의 심정은 어땠을까?

나를 거기에 대입해 보았다.

잠시.. ..

마음에 굉장한 고통이 깔려 있을 것이다.

인생을 걸고 쫓아다니시던 '목표'가 사라지려는 순간이다.

그래도 어쩌지 못해 십자가 밑까지는 쫓아 왔지만

마음은 누구를 받아들이고 할 buffer가 없는 상태다.

그 상태.

그 마음의 상태를 난 안다.

자주 경험하는 '벙~~' 찌는 듯한 마취된듯 멍한 상태.

거기에 예수께서 ' 네 어머니다... ' 하실 때

내 의지로는 난 전혀 받아 들이고 순종하고 '어머니'로 받들어 집으로 모실 수 있는

그런 심정인 에너지가 없을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기 집'으로 모셨다.

그것은 '그 심사'를 뚫고 들어오는 어떠한 '힘' ,

에너지를 그가 느꼈다는 것이다.

예수님 말씀을 묵상하는 시간이 지나면서

내 감정이나 영적 상태에 상관없이

하나님의 말씀이 내 영혼에 들어와 '순종'의 의지를 발휘하려는 선택을 하는 순간

내 심령이 아주 맑아지고 마음의 지평이 확 펼쳐지는 느낌을

자주 받아 왔고 그것이 경험으로 쌓이면서

난 믿음과 '성령'의 주관적으로 인도하심에 대한

확신이 생겨간다.

그러기에 점차로 '걱정'을 덜하게 된다.

근심을 하지 않는다.

 아마...

예수님이 거의 '모기소리 같은 - 죄송하다.. 하지만 사실이지 않았을까?  - 말씀이

그의 심령에 크게 자리 했을 것이고

당연히도 해야할 일이지만 어머니 마리아를 집으로 모시게 되었을 것이다.

 

 궁금한게 있다.

잠시 예루살렘에 올라오셔서 모신 것인가..

아니면 남편 요셉이 '단명했을 ' -고대 중동의 사정을 감안하여 50대는 오래 산것일 것 추정할때 - 가능성을 고려해보면 계속 어머니로 모시고 살았을까 궁금하다.

어찌되었든 그것은 오늘 묵상의 레마로 생각되는 부분에서 먼 이야기이기에

다시 오늘 묵상의 주제로 돌아가 보련다.

 

주님은 오늘 묵상을 통해 나에게 주시고자 하시는 말씀은

'쓸데 없는 걱정' 이 아닐까 한다.

걱정은 쓸데 없다..

주님은 모든 것을 다 아신다.

현재의 상황으로 어떤 것을 추정하려는 생각은 미련한 일이다.

현재의 감정으로 어떤 일의 증거로 삼으려는 것이아 말로

정말 미련한 일이 아니던가..

주님은 가장 선이시기에

주님의 시간에 맞추어 모든 일이 선으로 응답하신다는 것이시다.

내 마음이 불안해도

주님의 말씀이 있으면

언제나 모든 것이 평강으로 바뀌고 소망의 삶으로 바뀔 것이다.. 란 것이다.

 

 

3월들어 환우가 너무 줄어든다.

방학 때 수술이 많은 산부인과 특성상

그런 계절이기에 어찌할 수 없는 현상이긴 하지만

그래도.. 다.

아마 '경제 '탓이 클 것으로 생각된다.

이것은 비단 우리 병원 만 문제는 아니다.

솔직히 우리 '산부인과'가 이정도니... 다른데는.. 이다.

그러나, 우리 병원 마져 이러니

의사는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중시하며 살지만

나의 모습은 '직장인'이란 또 다른 위치가 있지 않은가?

자칫 사회에서 도태되기 쉬운 나이이기도 하고..

이렇듯.. 세상은 어두운 것 만 보려 하면 한없이 어두울 수 있다.

한동안 많이 바빠서 환우 수 문제에 대하여 '기도'하는 것을 잊어서 였던가?

많이 불안했을 이전이전.. 의 나였더라면 그랬을 텐데

마음이 담담한게 걱정이 안되다가

이제는 기도할 때라는 생각이 들어 기도했다.

주님... 아시지요..

갑자기 바빠진다.

아침에만 수술 환우 세분이나 입원했다.

'기도하니 들어주셨다. '는 일차원적인 응답을 주장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그것도 힘이 되는 것은 사실이다.

위에도 고백했지만 기도했기에 우리 병원 산부인과 만큼은 '덜'흔들리는 것은

사실임을 난 확신한다.

그러나, 오늘 묵상의 주제처럼

하나님은 내 모든 것을 다 아신다,...라는 믿음이 점차로 굳어지는 게

더 기쁜 일이다.

마음이 답답하고 불안할 - 실은 몇가지 조건이 있음에도 덜 불안하다.  - 이 멍하려는 마음에

하나님이 이처럼 말씀을 매일매일 넣어주시면

내 마음은 또 '확~'하고 넓어진다.

그러면서 더 기뻐진다.

내 마음의 장란에

내 원하지 않는 불안이나 근심에 의하여

더 이상 흔들릴 필요가 없음이

날 자유롭게 만들어간다.

말씀이 계시고

그 말씀이 세미하게 내 귀에 걸리고 내 영혼에 심어지면

평안함이 팽창되어간다.

'환경에 상관없는 평안'..

 

그게 오늘 말씀하고 또 일치되어간다.

참으로 감사하다.

 

모든 걱정 다 주님 앞에 풀어 내려놓고

하루하루 나 가볍게 살련다.

그래도 될 것 같다.

이제는...

 

 

 

적용

1. 오늘은 당직이다.

 두분이나 수술이 예정되어 있다.

 수술이 잘 될 것은 분명하다.

 기도할 거니..

 시간이 촉박한 게 문제다.

 앞의 수술이 끝나야 내 첫수술이 시작되는 데 당직시간 전까지는 끝나야 한다.

 오늘 말씀에서 걱정하지 말라니 안하련다.

 

2. 주님은 다 아신다.

 주님은 나의 모든 것을 다 아신다.

 내 살아온 과정.

 내 어려움.

 내 현재의 걸림들..

 내 자식들 문제..

 모든 것 다 아신다.

 주님 만이 아시는 그 시간에 '선'하게 응답되어 있을 것을

 기대하는 마음으로 기대하여 본다.

 주님은 내 혼란의 시간 마져 다 아신다.

 그렇다면 그것 마져 '선'을 위한 과정이었다.

 그러면 더 마음을 내려 놓겠다.

 덜 속상해 하고 덜 미워하고 덜고민하겠다

 

3. 마음의 지평이 넓어지는 말씀

 말씀 묵상을 하면서 참으로 많은 내 삶속에서 역사하심을 께달아 간다.

 점차로 덜 걱정하게 될 것이다.

 안된다고 생각했던 부정적 단정을 내려 놓는다.

 주님이 원하시고

 말씀으로만 느껴지면 난 언제나 가능하다.

 

4. 성경 세장 읽겠다.

 

 

기도

 

주님.

세상에 하나님 말씀에 응하지 않는 일이 있을것인가

다시한번 당연한 말씀을 제 기억에 심어 두고 영혼에 이식하려 합니다.

주님.

당연한 머리의 생각과는 달리

일상에서 매일매일 걱정하고 사는 어리석은 괴리를

다시한번 깨달아 갑니다.

주님.

모두 주님 안에서 선으로 이루어질 것을 믿습니다.

주여.

그리고 그동안 '절대로'라는 단서하에

부정적인 묶음을 묶어 가두어 두었던 가능성들도

주님의 말씀이 있으시면...

매일 매일 말씀으로 다가오시는 그 세미한 하나님의 음성이 있으시면

저도 모르게 마음이 넓혀져

잘 풀려 가고 새로운 세상이 펼쳐질 것임을 느낍니다.

주님... 세상.

사랑과 이해와 긍휼과  평강이 넘치는 그 세상이

저에게 벌어질 것을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빕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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