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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 QT

무엇이든 언제든 [요19:31-42]

주하인 2013. 3. 30. 12:26

 


 
35.이를 본 자가 증언하였으니 그 증언이 참이라 그가 자기의 말하는 것이 참인 줄 알고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니라

 어떻게든 '믿음'이 생길 것이다.

방법의 제한, 시간의 제한, 느낌의 제한...이 없다.

예수님은 어떤 상황에서도 '진리'시다.

어떤 일을 통해서도 그 분을 영접하게하신다.

 

 

36.이 일이 일어난 것은 그 뼈가 하나도 꺾이지 아니하리라 한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함이라

 그 수많은 기적을 보이실 때 못믿어도

겨우 뼈가 꺾이지 않는 상황 만 가지고라도

깨닫는 자들은 깨닫게 될 것이다.

 

 

38.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예수의 제자이나 유대인이 두려워 그것을 숨기더니 이 일 후에 빌라도에게

    예수의 시체를 가져가기를 구하매 빌라도가 허락하는지라 이에 가서 예수의 시체를 가져가니라

 아리마대 사람의 행동은 비겁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꼭 영웅적으로 믿음을 드러내야

하나님이 기뻐하실까?

자신의 위치 - 꽤높은 위치에 있었다함 - 가 흔들릴 것도 두려워

대놓고 예수님 믿는다는 사실을 드러내지 못해서

그는 갈등하고 (어쩌면 그런 자신을 스스로 비난했을지도 모른다 ㅜ.ㅜ;;) 저렇게 했지만

그는 어찌되었든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깊이 슬퍼한 사람이다.

 

 

 때로 ,

아니다 '자주' 나를 헷갈리게 하는 것은

성경의 대단한 믿음의 소유자들,

간증거리로 등장하는 쇼킹한 믿음의 사람들,

순교자들,

성화된 성자의 모습들

말씀 한구절에 인생이 격변하여 전 인생을 다 거는 사람들,

그리고 더구나 한점의 의혹이 없이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을 목숨걸고

두려움 하나 없이 지켜내는 사람들을 보며

그러한 내가 되는 것 만이 오직 '믿음'을 제대로 가진 자이고

그 이외에는 어이없어 보이는 경우가 있지 않던가?

그러나 나를 돌아 보아도 아침 저녁이 다르고

어제와 내일이 또 다른 , 조삼 모사의 신앙의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한 동안은 깊은 메마름 속에서 몸부림 치기도..

 

오늘

예수님 돌아가신 그 엄청난 스트레스의 십자가 사건 후

더 이상은 예수님이 이 땅에 영향을 미칠 것 같지 않은 때에도

어이없는 일로 인하여 하나님이 전파되고

예수님이 증거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누구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을 깨닫고 받아 들여지는 자에게는 받아 들여진다.

그 놀라운 기적들이 번번이 벌어지고

계시는 곳 마다 성령의 운행이 넘실거리는 데도

예수님을 인정하고 영접하지 못하던 자들 중에서

'성경의 말씀 ' 한구절이

실제로 뼈가 꺽이우지 않는 그냥 하찮은 현상 (죄송하다... 그 때의 사건 만 보면 그렇단 이야기다. ) 만을 가지고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는 일이

그 어떤 자의 영혼에 벌어지고 있다는 이야기다.

우리는 예수께서 '부활'하실것을 너무도 잘알고 있기에 감동이 덜한지는 몰라도

'예수님을 깊이 알던 자'로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신

그 희망이 절벽  (재정 절벽이란 표현처럼.. ㅜ.ㅜ;) 으로 꺽이운 후에도

어떤 사람 ( 아리마대 요셉 ) 들은

그 들은 비록 그게 하나님의 섭리 인줄 모르지만

그 절망 후의 순간을 나름의 최소한의 행동으로

부활하실 순간 까지를 채우고 있다..

즉,   성경의 역사는 사람들에게 일어나고

세상에는 그래도 역산느 일어나고 있다는 이야기다.

 

 

나.

이전에는 자주..

지금은 비록 조금이지만..

가끔 '절망' 일것같은 어두움이 몰아치려할 때도 있다.

그러나 그럴 때 말씀을 대입하곤한다.

그러면 어느새 희망으로 바뀐다.

어제 말씀처럼 '다 이기어 놓으신 것'이 사실이기 때문에

주님은 반드시 승리하실 것이 믿어진다.

그러면 마음이 고요해지고 기뻐진다.

 오늘 말씀은

그 '절망'의 시간일 것 같은 시간에도

느낌이나 상황과는 상관없이

우리의 인지와는 아무런 상관없이

하나님이 역사하시고 이끌어 가시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자신도 모르게 움직여 가며 자신의 할 일을 하게 되는 모습을 보고 있다.

 

 그렇다.

오늘도 똑~~같은 '토요일'이 나에게 펼쳐진다.

이전의 논리들은 나를 메마르고 답답하고 어둡게 몰고 가려 하는 듯하다.

그러나, 예수님을 집중하고

성경의 말씀을 아는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역사는 지속적으로 내 인생을 선한 방향으로 이끌어가시고

결국 난 승리하게 될 것임을 믿는다.

 

그 승리가 '천국'에 국한 된 것인지

세상의 나름의 부요한 흔적일 지 그것은 모르지만...

아니.. 어쩌면 천국의 승리는 난 반드시 있을 것을 믿지만

세상의 부요함에 더 침을 흘리기 때문에

그 '메마른 토요일의 시간' 을 정적이 흐르는 메마른 고요,

절망의 순간으로 느끼는 지 모르겠다.

그러면 오늘 나는

그럼에도 움직이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기억하고

내 부요함에 대한 기대를 낮추고

주시면 누리고

안주시면 더 놀랍게 주실 하나님의 평강과

그 때 다가오시는 하나님의 더 크신 임재감을 기대하면 될 것이다.

 

그렇다.

하나님은 아무 때나 계시고

하나님은 언제든 나에게 임재하시는 분이시다.

내 과도한 세상에 치우친 바램과 조급함과 내려놓고 보면

훨씬 더 뚜렷하신 하나님의

그래도 움직이심을

보게 될 것이다.

감사하다.

 

 

주님.

제 하나님.

나의 하나님

오늘은 예수께서 그 모진 '인생 33년'의 고난과

십자가 , 그 우주를 통틀어 비교할 수 없을 만치 고통스러움을

하늘끝까지 알리시고는 소천하신 후

잠잠함 , 무거운 하루입니다.

전혀 희망과 소망이 없을 것처럼 보이던 당시의 상황에서도

아직 꿈틀거리고 움직이는 성경의 사실임이 사람들의 영혼에 밝혀지고

한쪽에서는 예수님을 향한 조용한 움직임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절대로 절망하거나 포기할 일이 없습니다.

주님은 언제나 살아계시고

결국 우리는 승리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여.

'내 하나님이시여.

홀로 영광받으시고

이 부족한 자와

이 부족한 자의 아들들.. 우리 아내.. 가족들..

아는 모든 분들의 깨달음과 소망을 위하여 기도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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