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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송하고 감사하며 [요9:1-16]

주하인 2013. 3. 27. 11:37

 

 

1.  이에 빌라도가 예수를 데려다가 채찍질하더라

 주님 예수께서 무슨 죄가 있으셔서

십자가만도 모자르셔서 이렇게..

 

2. 군병들이 가시나무로 관을 엮어 그의 머리에 씌우고 자색 옷을 입히고

 가시관은 또 어떠시던가?

너무 많이 아프셨겠다.

 

3. 앞에 가서 이르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며 손으로 때리더라

놀리고

정면에서 때리고...

이 심적인 고문...

 

 

15.그들이 소리 지르되 없이 하소서 없이 하소서 그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빌라도가 이르되 내가

    너희 왕을 십자가에 못 박으랴 대제사장들이 대답하되 가이사 외에는 우리에게 왕이 없나이다 하니

 과연 '나'의 왕은 누구시던가?

예수님이 맞으시던가?

그냥 '사순절' 특히 종려주일 이후의 이 시간들을

스쳐지나가는 기념일 정도로 생각하는 것은 아니던가?

 

오늘 하루의 반나절이 지났다.

특별히 오늘 말씀과 연관이 지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말씀 묵상을 미루다가 지금 올리면서

눈에 들어오는 구절들이 있다.

 십자가는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그래도 주님 예수님의 고통이 일부나마

안스럽기도 죄송스럽기도 감사하기도 하지만

채찍질, 가시관,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인간 들에게 정면에서 놀림 받고 때림을 당하는 수모등은

자꾸 잊어가면서 넘어가는 경향이 없지 않았다.

 그러나, 다시 그 구절이 읽혀지면서도

마음은 그저 그럼을 보며 스스로 이 무뎌진

타인에 대한 긍휼함과

감사함을 절절히 느끼지 못하는 원죄적 성품이

나에게도 깊이 있음을 깨닫게 된다.

 

오늘 .

몇가지 곤란 들이 오전 중에 있었다.

그러니 하나님의 말씀 묵상은 더욱 '괴리'가 있는 듯하다.

그러면서 묵상을 시작하려니

처음부터 예수님의 받으시는

십자가 고통에 못지 않는 고난을 받으심이 새삼 눈에 들어온다.

 

그렇다.

오늘은 그래야 할 듯싶다.

조금더 '죄송한 마음과 감사함으로 주님의 고난을 묵상' 해야 할 것 만 같다.

어찌 삶에 적용할 수 있을런지는 아직 떠오르지는 않지만

내 삶에서 벌어지는 몇가지 일들에 대하여

'주님 예수님의 날 위한 고난'을 떠올리며

조금은 더 죄송스럽고 감사하게

나의 마음을 낮추고 유지해야 할 것만 같다.

 

 

주님.

죄송합니다.

그리고 감사하나이다.

죄송함은

이 부족한 나를 위하여 '채찍'을 그대로 몸으로 받으시고

'가시관'의 고통을 저항하지도 않으시고 받으시며

나의 약한 부분인 '질책성 놀림'에 대하여서도 마지막까지

그대로 다 받아 내심을 묵상함입니다.

주님.

저로 조금이라도 주님의 오늘 고난을 기억하게 하시사

어떤 일이라도 달게 받게 하소서.

주님.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는 하루는 되지 못할지 모르지만

조금은 더 주님의 그런 고통을 생각함으로

진중하고 자제하고 감사하는 그런 하루 되게 하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받들어

감사감사 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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