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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근한 주님의 음성(삼하19:16- 30)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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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근한 주님의 음성(삼하19:16- 30)

주하인 2005. 11. 10. 12:20

 

22 다윗이 가로되 스루야의 아들들아 내가 너희와 무슨 상관이 있기로 너희가 오늘 나의 대적이 

    되느냐 오늘 어찌하여 이스라엘 가운데서 사람을 죽이겠느냐 내가 오늘날 이스라엘의 왕이 된

    것을 내가 알지 못하리요 하고
23 시므이에게 이르되 네가 죽지 아니하리라
 

 

 


 시므이...


이 비천한 사람이 다윗이 다시 왕에 오르게 되었다는 소리를 듣자 사색이 되어서 모든 가솔들을 데리고 요단강을 허겁지겁 넘어왔다.
 그가 얼마나 두려웠는지는 식구들 모두 데리고 온 사실을 보고도 알수 있다.
다윗이 도망갈 때 돌던지던 당시의 당당함은 사라지고 한사람이라도 더 붙들고 데리고 와야 그 허전함과 두려움을 가릴 수 있어서 였을 것이다.
 요단을 넘자마자 다윗이 배를 타고 자신들과 반대 방향으로 건너가려는 걸 허겁지겁 붙든 상황이 또한 그의 다급한 심사를 익히 짐작하게 해준다.

 군중 속에 숨어서 자신을 가리고 싶은 심리...
죄진 자의 심리.
하나님을 피해 숲에 숨던 아담과 이브의 심사가 비슷했으리라.

 

 (수천년의 시공을 뛰어 넘어서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나에게도 다급히 전해진다.
 주님은 살아계셔서 성경에 힘을 불어 넣어주고 계신다는 느낌이다. )

 
 시므이 눈으로 본 그때 상황은 이랬을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쌓여 있고 그들은 서있다.  
그들에게서 나오는 적대감은 그를 얼어붙게 만들었다.

다윗은 가만히 있다.
 도저히 불안하고 무서워서 고개를 들을 수가 없어 바닥에 팍~~하고 고꾸라져 엎드려 있었으며 간헐적으로 고개를 들어 말을 하고는 있으나 그의 모습을 볼수가 없다.
공포가 눈을 가린다.
그러나.. 다윗의 분위기는 차분하게 느껴진다.
살 가능성...!


 다윗이 아주 차분한 어조로 말을 시작한다.

 

" 스루야 아들들아.
내가 너희와 아무 상관이 없지 않았더냐?
그런데 왜 나와 적이 되려고 애썼더냐?"


...................(잠시의 침묵)

 그리고 깊은 한숨 후 그는 다시 말을 이었을 것이다.

 

" 오늘 어떻게 내가 이스라엘 내 백성 중 사람을 죽이겠는가?
결단코 너를 죽이지 않을 것이다
. "


 시므이가 되어서 그 분위기를 연상해보았다.

 

 살을 에이는 깊은 겨울의 칼바람을 막아서는 오두막 안의 따스한 온기 같은 느

낌이다. 
  누구라도 그 앞에 있으면 가슴이 녹아나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다윗의 매력이다.
다윗은 누구나 포용할 수 있다.
 
 이 편안함.
 이 따사로움.
 이 포근함.


 우리는 이 예를 그리스도 예수께 찾아볼 수 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들아 다 ... 내가 너를 쉬게 하리라"

 

 격한 경쟁과 욕망과 갈등과 고난 속에 쉼을 주시겠단다.
그리고 그 분은 십자가를 지신 후 보혈로 쉼을 주셨다.
성령으로 확증하셨다.

 이 따사로움이 오늘 다윗을 통해 흘끗 그 흔적을 들어내는 것이다.

 이 따스함의 실체는 무엇이란 말인가?

 

" 용서" 다 .

 

도저히 죽을 수 밖에 없는 이 죄인이 그냥 그 분 앞에 나가서 회개 했다고 ...

그 분을 믿었다고.. 그냥 다 끌어 안아 주시는 것이다.

난 시므이 처럼 죽을 것 같은 두려움을 가지고 그 분에게 갔는데 그 분은 아무 말씀 하지 않으시고 "내가 오늘 어떻게 너를 정죄하겠는냐?" 하시는 것이다.


 다윗이 어떻게 이러한 예수님 비슷한 마음을 가질 수가 있었는가?
어떻게 무한 용서를 할 수가 있었는가?


 답은 '주님의 뜻'에 매인 자.


모든 판단의 근거가 주님의 뜻인자이다.

 피난 때 시므이의 저주에 대응하던 다윗의 절묘한 응수가 기억이 나지 않는가?
" 주님이 시키지 않으면 시므이가 저리 할 수 없다. 그냥 두라.. "


 이 묵상을 하면서 이런 생각이 든다.

 

생각과 감정은 밀접하다.

생각이 감정을 이끌기도 하고 감정이 생각을 변화시키기도 한다.
생각을 정하게 할 수 있는 사람은 감정을 이끌 수가 있다.

그러나 이 감정은 마귀의 공격 영역이다.
과거의 상처나 자신의 선택에 의해 악에 빠져들어간 자들은 쉽게 감정에 발을 들여놀 수가 있어서.. 그들의 생각은 악하게 나오기 쉽다.

 만일 다윗이 자신의 감정대로 였다면 그는 당연히 시므이를 죽일 생각을 하게 되었을 것이고 그것은 다윗이 성경에서 빠진 기억되지 않는 인물이 되게 될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다윗은 달랐다.

그는 생각을 지배하는 또다른 영역을 알고 있는 사람이다.

 

 선한 영적인 영역 !

모든 것을 지배하시는 분의 영역.


그 분에게 관심만 가지는 노력과 오랜 연단의 기간을 통하여 드디어 그는 모든 생각이 그 분의 뜻대로 이루어지는 경지에 이르게 된것이다.
 그 오랜 도피의 시간 이후 잠시의 영광 후에 또 한번 아들의 반란으로 인한 처절한 멸망의 시간.

 이 과정의 올바른 선택을 통하여 주님의 뜻과 하나가 되는 경지에 이르는 것이다.

 

 영적인 생각 !

 

그것은 자유로움이었고 남에게는 온유함과 평화이고 생명의 기운이 되었다.

 


 기도)

 


 주님.

 

인간으로 할 수 없는 것이 용서라 합니다.


살다 보면 가슴을 찢는 미움과 분노를 가져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원망을 불러오는 환경이 있습니다.

이들을 생각할 때마다 내 영혼은 갈기 갈기 찢어지는 고통속에 있어도 왔었습니다.
 용서를 하라시는 우리 주님의 귀한 말씀에도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 현실 이었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묵상을 통해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내 감정대로는 도저히 이루어 낼 수 없는 것이 용서다.

생각을 바꾸어라.

생각을 나에게 맞추어라.

그리하면 너를 바꾸리라. "

 

그렇습니다.

주님 당신의 귀하신 뜻에 맞추길 원합니다.

내 뜻대로 되지 않사오니 우리 주님께서 하시길 원합니다.
주님이 하신다 하시면 하실 수 있습니다 .
내 모든 의지를 우리 주님의 뜻에 맡기고자 합니다.

몇 달란트 빚진 하인과 같은 어리석은 이 하인의 마음을 바꾸소서.
그리하여 우리 주님 허락하신 그 귀한 평강을 누리고자 합니다.
그 자유로움을 느끼고자 합니다.
그 자유로움을 남에게 베풀고자 합니다.

도와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복수함으로써는 그의 원수가 될뿐이나 복수를 하지 않으면 그를 이기는 자가 된다.

-베이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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