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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대부분의 시간과 인생 들을 위하여[요10:22-42]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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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대부분의 시간과 인생 들을 위하여[요10:22-42]

주하인 2022. 2. 4. 09:20

폭설 내린 구정 다음날 겨울 아침 강변 산책은 교회 십자가의 방점으로 정말 아름다와졌다 ^^*

 

 

22.예루살렘에 수전절이 이르니 때는 겨울이라
23.예수께서 성전 안 솔로몬 행각에서 거니시니
24.유대인들이 에워싸고 이르되 당신이 언제까지나 우리 마음을 의혹하게 하려 하나이까

    그리스도이면 밝히 말씀하소서 하니
 '때는 겨울'

'행각에서 거니'실 때

'에워싸고' '혼돈'을 이야기 하는 유대인들........

 

  괜한 의혹과 괜한 불안.

예수께서 '행각을 거니시며' 잠시의 시간을 홀로 지내실 때

그때도 여지없이 찾아드는 '의혹'들.

 

 오늘 보이심은

홀로 계신 시간, 

무언가 사색에 잠겨서 거니시는

예수님의 공생애 , 그 바쁜 행보에 있지 않으셨을 

잠시의 짬의 시간을 보이시는게 

무엇을 내게 보여주시려는 것 같다. 

 아.. 

나를 읽어주심이다. 

항시 바쁘고 항시 강건하시고 항시 사람으로 둘러 쌓이고 항시.........

사역과 하나님 일과 제자... 

실은 대부분의 사람들의 시간들은

그들의 현재의 서 있음은

'제자'들과 '사역'들과 항상 옳음과는 

거리가 먼~~

그냥 일상에서 

그냥 소시민으로 

어쩌면 선한 생각, 하나님 말씀에 합당한 옳은 생각들로 

그들의 대부분을 채우기 보다는

오히려

'외로운 시간'

'고요한 시간'

'별 이벤트 없는 시간' 

사역이나 거창한 일이 아닌 '평범한 시간' 속의 사람들이나 시간들이

대부분일 것임인데

성경을 보다 보면 

믿다 보면

항상 

무엇인가 해야할 것 같고

늘 승리와 싸움과 영적 전쟁과... 이런 것에 있어야 할 것 같은 

무게가 있다 .

그게...........오랜 신앙생활하다보면

지치거나 좌절하는 이유가 아닐까 싶기는 하다. 

 

 

 실은.. .

예수님은 '제자'와 공생애를 통하여

결국의 목표를 말씀하시고자 함이시지만

복음을 전하는 대상은

'모든 선택 받은 자'들 아니던가?

 그들은 

99.999%는 

나.. 주하인 같은 평범한 보통 사람들과

그냥 대부분의 시간을 일상을 살면서 하나님을 잊지 않으려 몸부림 치는 자들... 

그들의 

이 평범한 시간,

이 고요한 거님의 시간

이 일생의 대부분의 시간에 대하여

예수님은 도외시 하고 있지 않으심이시고

그러함을 오늘 모습을 통하여

잠시나마 보여주심이 아니신가...하는 느낌이 든다. 

 

 그런데.........

 그 평범한 일상의 시간에 

항상 고요하고 평화롭기만 할까?

 '겨울' (힘듦, 어려움,........의 암시, 삶은 고난이고 고난은 인생 연단의 반드시 필요한 불가결의 도구)

'성전의 뜰' (사역하시던 과정의 일상,  우리의 삶은 연단의 광야 아닌가?.. 하나님을 잃지 않는 일상이 되어야 하지 않는가?  당연히... )

'거니심' ( 일상의 우리의 행보, 매일 그러그러하게 살아가며 나름 고뇌하는 시간들.. )

'유대인의 막아섬' ( 영적 전쟁, 갈등의 생각, 불안함의 실체화...) 을 보라.

 

 '일상의 불안함' 

주님 계시지 않으면 숙명처럼 따라 붙는 '사망의 소리들' 

현대인의 '외로움' , 

그리고 그로 파생되는 '사망의 감상'들... 두려움..........들이 아닐런가?

 

 

30.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하신대
 보라.

유일한 이 원죄적 인생들의 탈출구,

구원받은 우리 '불안이 숙명'인 자들의 유일한 길은

'하나님'과 하나 됨.

그 분이 내안에 , 내가 그 분 안에...........가 아닌가?

 

 답이다. 

 

 

39.그들이 다시 예수를 잡고자 하였으나 그 손에서 벗어나 나가시니라
 보라.

누구나 '죄'에서 벗어날 수 없고

'원죄적 불안'에서 벗어날 수 없으며

매사 매일 죽도록 몸부림 치고

홀로 명상을 하며 피하려 해도

사단으로 대표되는

죄, 죽음, 사망의 그늘에서 벗어날 유일한 길은 

'예수님'께 매달림이다. 

 

 매일 매사 '예수님'을 인식하고

그 분의 성령의 도우심을 갈구함으로

내가 주안에 주께서 내 안에 사시길 간구하는 것이다. 

 

강변, 겨울, 눈, 칼바람, 그렇지만 아름다움

그리함으로 

인생은 잔잔한 행복으로 차게 될 것이며

고난은 광풍과 뜨겁거나 칼처럼 버거운 삭풍이 아니고

고요한 산들 바람이 될 것이며

거니는 매사의 발걸음 앞이 

괜히 생길지 모를 두려움의 어두움으로 조심스러운 불안이 아니고 

겨울이지만 차겁기보다 상쾌하고 차분한 아름다움이 될것이며

생각은 차분해지고

예상치 못한 깨달음의 나날과 시간들로 채워져

매사 감탄과 생기의 발전들이 

나를 채우는

우리를 이끄시는 

그러한 매일의 감사의 시간들이 될 것이며

혹여 찾아드는

사단의 영적전쟁의 결과물로서의 인생의 고난은

주 부르실 그날 까지

큰 의미가 되지 못하도록

주께서 '벗어나'게 하실 것임이다. 

 

그러다가 

그러다가 

주님 부르시는 그날에

나.. 

주 안에서 잘 살고 연단 받다 왔노라.. 고백하며

가지고 있던 모든 것들,

이 삶을 유지케하는 최소한의 내 소유들을

잘 거케여 놓고 

주 앞으로 소천하게 되리라. 

 

그것............................

오늘

이 

정말 평범하고 일상이 대부분인 주하인에게 

깨닫게 하시는 

주님의 모범이시다. 

감사하다. 

 

정말.. 

 

 귀하신 내 주여.

오늘은 '겨울'로 대표되는 

삭막한 시간에 

그래도 '일상의 혼자'의 시간을 보내시는 예수님 앞에

아니나 다를까 '의혹'덩어리 ,

죄를 대표하고 불신 내지 믿지만 제대로 믿지 못하게 하는 사단 쪽을 대표 상징하는

유대인들의 '의혹'에 몸부림치는 등장을 시키시면서

너무도 익숙한 일상의 버거움들,

이 주하인 같은 평범한 대부분 인생들의 

인생여정에서 겪을 수 밖에 없는

버거움인지 조차 모르며 혼돈해 하는 많은 버거움들을 

보여주시는 듯하여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당연히도

주님 안에서 거하는 자들의 일상은

그냥 자연스럽고

평안한 흐름이 될 수 밖에 없으며

그들, 하나님 안에서 거하려 결심하고 노력하는 자들은

결국 

그 모든 일상을 통한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고 벗어나

주님 안에서 

자연스럽게 흐르다가 

주님 부르실 때 기쁘게 영생으로 점프업 할 개연성을 

다시 확인시켜주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제가 

우리가 

비록 주님 보시기에 대단한 영적 리더나 수제자급은 아닌

일상에서 주님의 말씀대로 살려하는

그런 대다수이지만

그러함에도 

주님은

우리 각개인에 대한 사랑스러운 시선과

인도하심을 끊임없이 보여주시니

특히 감사하나이다. 

힘이 납니다. 

 

말씀으로 

성령으로 

예수님 손 잡고 놓지 않는한

주 안에서 

저희의 

저의 매일은 결국 승리이게 되고

행복함이 맞음을 다시 한번 확인합니다. 

 

 이 겨울,

홀로 주님의 성전 뜰 안을 거닙니다. 

다가오는 그 어떤 것도 

차분히 이겨내고 

그들의 유혹과 억압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와 질

곧 다가올 

더 성장한 믿음의 소유자로서 누릴 행복을 기대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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