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이미의 의미[요11:17-27] 본문
이미 오신 예수님을 대신하여
여러분을 축복합니다.
새해에는
더욱 더
아.. 더욱 힘써
이미 받은 축복을 누리시는
한해 되시길
더 발전하는 매 순간 되시길
기원합니다.
17 예수께서 와서 보시니 나사로가 무덤에 있은 지 이미 나흘이라
나사로가 무덤에 있은 지........ 란다.
아.
너무 어두운 시간들.
죽은 자.
죽은 자를 기리는 시간.
죽은 자를 죽기 전까지 그토록 고대하고 노력하고 소망하던 노력들의 물거품에 대한 절망들.
사랑하는 사람이 더 이상 세상에 없을 것이란 '상실감'
죽음이란 도저히 거역하고 부인할 수 없는 절대의 절망 앞에 무기력...........
......................
이것이,
너무도 당연한 현재를 살아가며
운명, 숙명, .........아.. 어쩌면 운명이나 숙명이라고 생각, 착각해온
세상의 거의 모든 사람들,
우리들,
나............의
죽음 같은 상황 ( 부정적 시선, 불신의 사간의 내 시선, 내 절망의 예상들, 매일을 마주하는 불안의 결론.....)을
마주하는 내면의 흐름이었다.
그리고
사람마다의 강도나 기간을 달리하지만
반드시 누구나 다 그렇듯
사랑하는 자의 죽음을 마주하고는
'부인'하고 거부하며
'분노'하는 시간들을 거쳤을 것이다 .
그리고는 받아 들이고 '인정'하는............과정을 거치고.......
그런데.......
정말 모두가 반드시 그럴까?
예수님 영접하고
나이듦이 훨씬 덜 무섭고
절망이나 이별의 두려움 , 상실에 대한 고통스러운 예상이
훨씬 옅게 느껴지고
나름 자유로와지기 시작하는 것은
그 분의 '천국'에 대한 강요나 지속적인 기만 (^^; 죄송..) 때문은 아니다.
믿어지고 이해되며
나름 소망이 생겨서다 .
죽어도 죽지 않고
부활의 소망 말이다.
아마.................
그들, 나사로의 여자형제들인 마르다와 마리아도 그렇지 않았을까?
'이미 나흘'
'이미'라는 이 단어를 보면서
믿었던 예수님, 기대했던 예수님을 바란지
벌써 그 이상의 시간이 지났음을 의미하며
그 이미 라는 시간 동안
과연 저들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
일단, 나사로가 숨을 헐떡 거릴 때까지 얼마나 가슴이 터졌을까?
뚝하고 숨을 멈추는 순간
잠시 수초간의 고요가 온 주변을 잠식했을 것 이고
이어 터져나오는 '큰 소리의 절규'로
오빠....................나사로야............아............)(*&^%$#.......등의 굉음이
온 세상을 가르지 않았을까?
잠시.......
그러면서 위의 늘어 놓은 여러 감상들이 가슴을 짖치어 들어오고
.......
하지만,
예수님을 영접한 이들 형제는
우리, 믿는 자들의 가슴처럼
'소망'과 '막연한 기대와 자위(마르다의 고백에서 알수 있듯.. ) ' 으로
불신의 그 절망의 고통,
온통 암흑,
온통 어두움
온통 칙칙함
온통 사망..........보다는
훨씬 옅은
나름 소망의 기대가 그 가슴을 조금은 덜 헤어지게 만들어
덜 아프고 덜 힘들고 .........했으리라.
하지만..........
'이미'라는 단어를 보면서
또 다른 뉘앙스의 생각과 깨달음이 온다.
이미 오신 하나님.
이미 내 곁에 계신 예수님
이미 세상을 살되 천국을 사는 우리들.
이미 하나님의 자녀
이미 .............
이 이미에
불신의 고통보다는
훨씬 옅고 덜 아프며 알지모르는 나른한 소망으로 바뀐
'지금의 주하인' 같은 믿음의 소유자들의 느낌이 다가오기도 하고
실은 그보다
훨씬 더 자연스럽고 소망이 있는
'이미 '오신 예수님
부활하신 예수님으로 인하여
더 이상
죽음은 죽음이 아니며
매사 생명으로 채워진
부활의 시간을 보게 되는
정말 성화된 믿음.. 의 우리에 대하여
묵상케 하신다.
주님.
시간이 늦어서
더 이상 말씀을 진행 하지 못하겠습니다.
이미오신 예수님
이미 계신 예수님으로 인하여
더 큰 믿음으로 절 이끄실 줄 믿습니다 .
마르다 보다는 마리아.
마리아 보다는
더 성화된 자의 삶을 살게 하소서.
이미 오신 우리 주 에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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