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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소유(시135:4-21)

주하인 2019. 11. 3. 09:10

4 여호와께서 자기를 위하여 야곱 곧 이스라엘을 자기의 특별한 소유로 택하셨음이로다

 

'소유'되었다함은

종, 하인을 말하는 것이고

그것은 '자유'를 제한 받고 주인의 마음에 들게 만 행동지어지는 상태를 의미하며

결국 답답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던가?

수차례.. 고백했지만

난.. 죄송하지만 다른 사람은 모르겟지만 난..

특별히도 '자유'를 구속 받는 것을 죽도록 싫어하여 ^^;;;

조직 생활이 어려웠던 사람이다.

지금도 솔직히 의사라서 나름 제한되지 않는 자유 안에서 조직 생활을 하기에 망정이지

그나마 '의사회의'나 협의체 장, 부원장.. (거기까지는 반강제적으로 되었었다. .이전에..^^;;) .... 뭐

이런 상황은 참 싫다.

자전거를 좋아하고 여행다니는 것 좋아하지는 게 맞지만

그래서 동호회나 패키지.. 싫어한다.

어려서부터 힘이 세고 뭐.. 좀.. 그래서 ^^;;

가방들어주겠다는 아이들이 다가올 때는 (어렸을 때.. 아주 ..어렸을 때..ㅎ)

주어패서 쫓아버리기도 했구

자주 지붕위 올라가서 '하늘보고 누워' 하염없이 푸른 하늘 보다가 내려오는

조금 독특한 사람이 나 였다 .

그래서...

예수님 믿고 '수고롭고 짐진 자들아... 내 멍에는 가볍고...' 라는 구절이

그리도 내 가슴을 쳤었다.

인생.

살면서 어찌 모든 무게를 다 벗어내고 갈 수 있던가?

자식도.. 아내도..

결국 벗어날 수 없는 인생의 최소한의 도리 안에서

'무게'는 벗어 날 수 없으면

인간의 존재 자체가 '고뇌'나 짐은 숙명으로 지어진 것은

비단 예수 께서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시는

그 무게를 모르는 세상의 모든 자들 입에서

'인생의 고해의 바다'라는 소리도 나오는게 아니던가?

그래서 온전한 자유는 불가한 것이 맞다.

 

그리도 자유를 갈구하여 마음대로 살려하고

처음 예수님을 영접하여서 가장 큰 기도가

'평강'이었다.

자유로운 영혼의 ,흔들리지 않는 평안한 기쁨.. 말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내 마음대로의 하는 것의 자유 (어쩌면 포스트모더니즘도 내 마음대로... 가 주 주제이니 똑같은 내용 아닌가?

지금 과연 이 세상에 자유가 있는가? .. 마음대로 사는 자들의 말로는 비참이다. .. 세상의 뒤죽박죽.. 동물농장 )가

절대로 없었다.

늘.. 마음이 불안하고 탈듯하였다 .

초조하였고 어디에 평안이 있을까.. 안정이 있고 의미가 있던가 찾아 헤매였다 .

 

그러다 예수님을 영접하고

그 분이 내 '주'.. 내 주인이시라는

내 평소의 그리도 싫어하는 자유의 제한이신 '주인'을

모심으로

역으로 나는 '평안'.. 평강'을 얻기 시작하였다.

처음에 주님의 첫사랑을 체험하고는

얼마나 좋은지

정말 날아가는 것 같았고

그리도 초조히 빨아대던 '담배'를 안물어도(3년만에 끊겼다... 자동적으로.. .) 아무렇지 않았고

새벽 4시 넘어까지 못자던 불면의 밤이

하루 아침에 없어져 10시만 되면 쿨쿨~~ 너무도 개운한 잠으로 들어갔다.

'사랑하는 자에게 잠을 주시도다'시는 며칠전 시편의 묵상구절처럼 말이다.

 

이거...

온전한 자유는 '마음대로 ' 사는 것이 아니고

주님 안에서 주어지는 원칙 안에서의 자유다.

 

거기에 '소유'란 표현으로 다 얘기하심이시다.

그래서 난... '월하랑'이었던 나름의 닉에서

변하고 변하여 내 정체성이 '주하인', 주님의 종임을

스스로 세상에 고백한지 거의 15년 이상이 되어간다.

이 블로그는

그러한 주님의 소유로서의

주하인의 매일의 말씀을 부여 받아 사는 자로서의 영적 일기이다.

 

얼마나 감사한지..

 

나는 거기에

이제

점점

주님의

'특별한 소유'가 되어 가는 것이다.

말씀으로 그러신다 .

'주님의 특별한 소유'

조금은 더 깊어지는 '주하인' 말이다.

 

그게..

부담이기 보다는

축복으로 들려온다 .

소유나 무게, 혹은 명령에 대한 부담으로 보다는

그리 됨을 더 사모하는 자의

사랑하는 분의 꿀같은 말씀을 기다리는

영적 주하인.. 말이다.

 

 

 

 

19 이스라엘 족속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아론의 족속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첫 구절 부터

찬양하라 찬양하라

송축하라 송축하라 .. 나온다.

 

 

 

21 예루살렘에 계시는 여호와는 시온에서 찬송을 받으실지어다 할렐루야

 

오늘 주일

예루살렘... 천성에 계시는 하나님...

그렇지만 내 안의 성전에도 계시는 하나님.

'시온' .. 교회에서

오늘 또 찬양의 예배를 드려야 한다.

 

주님

속하는 자,

주님의 명령을 기다리고

말씀을 기대하는 자의 기쁨에 대하여 다시금 깨닫습니다.

어렸을 때 부터 그처럼 찾아 헤매던

자유의 모든 근본이

주님을 주로 영접하고 받아 들이는

'속한 자'로서의 자유..

주님이 마침내 저를

특별한 소유로 여기심을 제가 알아채리는 순간 시작됨을

이제는 확실히 알고

드디어 홀로 세상에 방치되어 마음대로 살아가려다

잡혀 먹는 미련한 어린양 .. 엉덩이 뿔난 송아지 같은

그러한 자유가 아닌

주님 안의 특별한 소유로서의 주하인임을 기뻐합니다.

내 주여.

주님을 찬송합니다.

지금까지 인도하여오신 주님.

나를 모두 다 아시는 주님.

내 그러함을 다 허락하신 내 주님.

 

홀로 영광 받응소서.

찬양 받기에 합당하신 내 주님을

이 거룩한 주일 맞아 찬양합니다.

내 주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하신 이름들어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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