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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의 예수님 약속의 성령님 흐름의 나( 엡 1:7-14 ) 본문

신약 QT

통일의 예수님 약속의 성령님 흐름의 나( 엡 1:7-14 )

주하인 2009. 5. 2. 12:48

제 1 장 ( Chapter 1, Ephesians )

 


7.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
  주님 예수님의 십자가 고통으로 우리 고통을 다 싸 안으시고

보혈을 흘리시어 죽도록 벗어지지 않는 이 죄를 녹이시어

구속, 즉 죄사함하지 않으셨더라면

우리가 어찌 눈 떳떳이 뜨고 살아갈 수 있는가?


 
8.  이는 그가 모든 지혜와 총명으로 우리에게 넘치게 하사 
 구속 받아 죄의 질김으로 부터 한 껍질 벗고나면

세상이 달라 보인다.

 이전에 그처럼 지독히도 묶어 대던 미련과 어두움의 속박에서

영혼이 맑아지니 생각과 감성이 자유롭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스스로 생각해도 지혜와 총명이 늘어 난 것 같다.

 


 
9.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셨으니 곧 그 기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

     하신 것이니
그래.

모든 것이 주님의 뜻이셨던 것이 맞다.

그 분의 경륜에 따라 세상의 모든 것과 우주 만물이 움직일 수 밖에 없다.

아무리 어려움에 있어도

아무리 부정의 생각 속에 묻혀 있어 

모든 게 끝난 듯 허무하고 두려이 보여도

결국은 주님의 기쁘신 뜻대로 되어갈 뿐이다.

 

 주님의 예정이다.

 
 
10.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

 모든 끝은

주님 안에서의 '통일'이다.

주님 예수님이 세상이나 하늘이나 모든 것의 통일된 '머리'로 임하시게 될 것이다.

그게 주님 하나님이  예정하신 궁극의 끝이다.

 

  
11.  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역사하시는 자의 뜻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 
 

 난 , 그 통일의 하나로 참여하게 된 것이고

그 참여는 예정되어 있던 바였고

난 통일의 하나로 참여하게 됨을 이제는 깨닫게 되는 '총명'과 '지혜'를 얻은 것이며

그 총명과 지혜를 통하여

내 현재의 삶에서 하나하나 새로운 목표와 의미를 찾아가는 중일 뿐이다.

아직은 완전한 통일의 예수님이 뚜렷이 그려지지는 않지만...

 


 
12.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우리로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난 그 통일의 예정 안에서 흘러가는

거대한 에너지 파의 한 구석에서 

내 속에 왜곡되어 있어야만 했던

나의 영혼의 흐름을 부드러이 만들어 가고 있다.

 

 그 형태가 일상으로 나온다.

향기를 뿜어 내기 시작한다.

그 향기가 온전히 발향할 때 그것이 '찬송'이 되어가는 것이다.

영광의 찬송이 되기 위해서는

아직 갈 길이 멀다.


 
13.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죽을 때까지 복음에 매달리고

약속의 성령님으로 도움을 받아야 한다.

주님의 통일의 완성이 될 때까지 그리되어야 한다.

 

 

 어제다.

오전 근무 마치고 응급 수술 때문에 늦게 퇴근하여 보니

집에 아무도 없다.

아내와 아들이 외출했다가 기도원 예배  갔나보다.

간단히 저녁을 챙겨 먹고 택시를 잡아타고 부리나케 교회로 향했다.

가는 도중 안양역 구도로로 향해 가는 중

구도로의 어두운 조명 아래 신호등 대기하는 중

정~~말 멋진 여성이 서 있다.

 순간 음란한 생각이 스치고 지난다.

의외다.

스치고 지나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짧은 몇초의 시간에 수없이 악한 생각들이 밀고들어온다.

나이가 들어가며 생물학적 기능도 약화되어서 인지.ㅎ.

아니면 말씀으로 정화되어 가는 도중이라서인지

음란이 날 흔드는 것은 별로 없던 일이다.

 그 순간의 음란의 생각의 강력함은

'정말 악한 자들과 선하다고 생각하는 나'와의 사이에

별 차이가 없다는 생각이 들정도로

그 상상의 그려짐이 악했다.

악한 상상을 잠시 풀어놓으니 아주...질긴 쾌감이 밀려오는 듯하다.

부르르 털어버리고 기도했다.

 교회에 가서 '찬양예배'를 집중했다.

싱숭생숭한 마음은 잠시 후에 물러가고

깊은 은혜 가운데 머물다 돌아왔다.

 

 그 짧은 시간에 누구든지 선과 악의 양 극에 설 수 있음을

금방 알 수 있었다.

 

 이 악한 생각,  저항하기 어려운 유혹이 끝없이 밀려오면

악의 끝에 서기란 너무도 쉬울 것만 같다.

 그 악은 저항하기 어려운 유혹이다.

마치 당구를 새벽 네시까지

포카를 이틀 밤을 새워가며

인터넷 채팅을 수개월 간 정신 못차리며 몰입하고

아주 오랫동안 TV 나 무협지 중독으로 헤메던

그 옛날의 그 중독적 성향과 별로 다름없는

가벼운 선택의 결과로 나올수 있는 결과일 수도 있겠다.

그 결과란, '강간, ' 납치범' ,........등 세상에 널려 있는 악인 들처럼...

그러면서 그게 위의 중독 성향의 일부처럼 저항할 수 없는

그러면서 큰 죄의식을 느끼지도 못할 그런  악의 유혹이다.

 

  어제 몇가지 느낀 점이 있었다.

 

 늘 생각하던 것이지만 '악'과 '선' 사이에서 내 '선택'이 늘 존재한다는 것이다.

로마서 7장에서 사도 바울이 고백하던

'선을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다. '

'죄인 중의 내가 괴수' 라는 ......그 고백이 누구나 다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현재의 내 모습이 선한 모습으로 스스로 생각 되어지는 것이

얼마나 살얼음 같은 현상이냐 는 것이다.

 

 또한

잠시라도 넋을 놓고 있다가는 악의 구렁텅이에서 헤어나올 수 없는 것이

인간이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손을 들고 찬양하며 안도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예수님'이 계시기에 가능하고

우리의 선하고자 하는 선택에

'주님 성령'께서 안위하시고 보호하시기에 가능하신 것이라는 사실이다.

 

감사한 일이 아닌가?

 

그것을 아시는 지

오늘 묵상의 구절이 그렇다.

 '예정'되어서 구원시켜 주신 것이 바로 우리다.

특별히 묵상하고 말씀을 사모하는 우리다.

늘 말씀을 묵상하고 주님의 연합하시고 통합시키시려는

예정 가운데 서려는 노력 가운데

주님이 '약속의 성령'으로 굳게 잡아 주시기에

우리는 '총명과 지혜'로 서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기에

저런 날마다의 악의 유혹에서 그나마 지탱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결국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통일의 흐름 속에 날 맞추어 가

선한 흐름이 내 온 영혼을 흘려 보내게 될 것이고

그때에 '주님의 생명의 성령의 법'이라는 사도바울 님의 로마서 8장 고백을

통렬하게 고백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때는

주님 예수님 안에서 '통일'된 하나의 연합체로 서게 될 것이다.

완전 성화된 나로 서게 될 것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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