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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안에서 선해지는 게 내 인생의 목표다( 엡2:1-10 )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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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안에서 선해지는 게 내 인생의 목표다( 엡2:1-10 )

주하인 2009. 5. 4. 13:32

제 2 장 ( Chapter 2, Ephesians )

 

 

집을 나서기 전에는

아침이 이리

싱그러운 줄 몰랐다.

 

주님을 알기 전에는

나의 죄되고

허물된 것들이

그리 부끄러운 줄 몰랐다.

 

주님을 영접하고 나서야

내가 얼마나 죄와 허물 속에서

헤매고 있었는지 알았다.

이제야

삶의 영롱한 의미를 알겠다.

주님은

잡초같은 삶에

푸르른 색을 입히고

그 위에

옥구슬 같은

생기를 입히셨다.

 

주님 안에서

선하게 살아야할 운명이다.

 

(오늘 집을 나서 기 전) 


1.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4.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5.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허물 덩어리 주하인

죄 덩어리 주하인.

이전의 주하인은 주하인이 아니었다.

월하랑(月下狼)이었다.

달빛 아래의 늑대.

외롭고 사납지만 건드리지만 않으면 그리 나쁘지 않은..

 그러다가 주님을 영접하고 '月下人'으로 바꾸었다.

조금 사람 다와 졌다는 스스로의 인식으로 말이다.

그게 내가 즐겨 쓰던 '닉'이었다.

주님 말씀을 묵상으로 접하고부터는

난 스스로를 '주하인'으로 바꾸고 싶어졌고

바꾸었다.

그것은 '운명'이라기 보다는 '계시'같은 내 스스로의 끌림에 의하여서 였다.

 

  허물과 죄.

내 인생을 지독히도 끌고 다니는 관심.

이전 ,주님을 영접하기 전 사단의 송사에 의한 거짓 죄와 허물은

나로 하여 참으로 많은 무게로 가해 졌었고

주님을 영접하고 드라마틱하게 그 무게는 잘려져 나갔으나

죄란 부분에 대하여서는

어느 것이 주님이 원하시는 선인지 정확히 알지 못하는

혼란의 시간을 한동안 보냈다.

 죄의식과 회개이후의 통쾌함 사이에서 정확한 규정을 짓지 못했다.

여러 이유가 있었다.

성장의 과정에서 말로 인한 깊은 상처 탓으로

자괴감이 커서 였었다.

하지만 주님은 날 그냥 두시지 않으셨다.

그러한 혼돈스러운 가치관의 흔들림은

말씀으로 잡으셨다.

주님 말씀을 큐티로 묵상하면서

중심이 잡히기 시작했다. 

 이유없는 죄책감 보다는 주님 말씀에 준거한 회개할 부분의 구분이 시작이되었고

그것은 어깨에 놓여진 삶의 무게를 덜어 주시는 귀한 기회였다.

시간이 지나서 많은 부분에서 현명한 눈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면서도 내 안을 스치고 지나가는 

죄의 욕구의 강도는 아직도 나 자신을 놀라게 하고 있다.

 그리고 그 죄의 순간순간 밀고 들어 옴의 빈도수가

얼마나 잦은지

죄를 회개하기 위하여 날마다 제사를 드린다면

삶을 살아나갈 수 조차 없을 정도로

그 죄의 무게에 스러져 숨도 쉴수 없을 정도임을 깨닫게 된다.

 

 정말

예수님께서  우리의 '이전의 죄'를 다 가지고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셔야 할 수 밖에 없는지

그 처절한 결심이 공감이 간다.

 나 혼자 만으로 짓는

이 매일 매일의 죄만도 산더미 처럼 많은데

이 인류의 영혼 속에 스치고 지나가고

그 중 아주 극 소수 만 표출임 되는 죄 만 가지고도

도저히 해결할 길이 없으신 것이다.

그러기에 그 분은 인류의 모든 죄를 감당하시고

골고다 언덕을 올라가신 것이다.

그러고도

그 피의 죄값으로도 올라오는

이 구원 받았다는 자들의 매일의 죄를 위하여

'성령'의 도우심을 받도록 안전장치까지 하신 것이시다.

 

 수미산...

불교 고승의 수미산 같이 많은 죄라는

돌아가실 때의 탄식어린 유언은

바로 우리 속에도 존재하는 꼭같은 덩어리다.

하지만 이 성철 스님의 탄식은 해결할 수 없는 '절망'의 탄식이지만

우리의 탄식은 '결심의 탄식' 이 되어야 한다.

 

 난, 최소한 그렇다.

이전의 불신자의 허물과 죄의 의식은 죽음 같은 절망의 무게였다면

지금은 희망의 그것이다.

무겁지만 가볍다.

이전의 것은 매일 매일 미움과 화의 연속이었다면

지금의 그것은 회개와 용서와 가벼움의 체험의 연속이다.

 

 

 

   
10.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우리가 십자가의 구원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죄와 허물'과 아직도 싸워야 하는 이유는

아담의 원죄에 있다.

그 원죄에 파생된 자범죄는 십자가로 온전히 씻김을 받았으나

이제부터 있어지는 죄는 성령의 도우심으로 막아내야 한다.

 이전의 죄는 우리가 모르는 사단의 농락에 우리의 선택이 가미해져 지어진 죄라면

이제 우리의 죄는 우리의 영혼의 동의와는 상관없는 사단의 공격의 스침에 있다.

 그러기에 이제 부터의 죄는 객관적으로 볼 여력이 있다.

주님 말씀 앞에

성령의 간구함 앞에 있다면 우리는 죄와 거리가 멀다.

하지만, 그 수도 없는 스침 앞에 기도와 말씀과 거리가 멀다면

그게 사단의 공격에 순간 넘어질 수 밖에 없는 이유가 된다 .

그러기에 기도하지 않는 것은 죄를 지을 수 밖에 없는

필연적 입장에 서 있다.

 이 수미산의 무게보다 많을 사단의 공격에서 우리가 우리 힘으로

어찌 벗어날 수 있다는 말인가?

 

 주님은 이러한 조건 하에서 우리를 지으셨다.

그리고 그 가운데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이시다.

'이게 네가 지어진 목적이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있으면서

선한 선택을 하라.

그러다가 성화되어 천국에 오라.'

 

 그렇다.

어떤 모습이든 우린 선하게 되어야만 하는 의무에 있다.

그래서 죽을 수 밖에 없는 우리를 살리셨다.

죄 더미에 치어 죽을 우리를 십자가로 치워서 살리 셨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음을 받은 것이다.

주님 하나님이 창세 전에 그렇게 예비하셨이다.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말은 무엇인가?

주님의 말씀 안에서 거하다가

그 분의 동행을 느끼고

그 분의 임재 가운데 사는 것이다.

그 분이 주신 그 우주적 에네르기 안에서 전율하면서

혼자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그 사단의 공격의 무게를 견뎌내면서

주님없이 살면서 얻어진 그 상처의 누더기가

하나하나 치유되면서

그 치유의 회복의 감각을 영혼으로 느끼며

그 회복의 통쾌함으로 매일의 삶이 발전해나가는 것이다.

그리하여 어제는 백번 지던 것이

오늘은 구십구번 만 지고

내일은 구십 팔번...........

그러다가 언젠가 부터

주님의 그 무죄적 경지에 까지 오르는 것이 '성화'다.

그 성화의 싸움을 어떻게 해나가는가가 우리가 해나가야할 과제다.

그 과제의 결과가

주님의 상급이고

그 상급이 천국의 삶의 질을 결정하게 될지도 모른다.ㅎㅎ

 

 그래서

난 그래왔고

그럴 것이다.

 

 '오늘 집을 나서기전

기도할 것이다.

내 복보보다는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내 영적인 편안함 보다는

주님의 뜻대로 살기위하여

조금은 더

주님 예수님 안에서 거하고

주님의 뜻 가운데서

선하게 살수 있기를

기도할 것이다.

 우리 자식들도 그리하길 기도할 것이다. '

 

집을 나서면서 보이는 세상이 조금은 더 맑다.

하늘은 조금 더 높고

꽃은 더 아름답다.

풀은 더 초록색이고

맺혀 있는 이슬은 영롱하다.

 

 

 

적용

 

1. 성경 일곱장 읽겠다.

 

2. 회개한다.

 어찌 이리도 죄 덩어리인지...

 주님 앞에 기도하고 잊으리라.

 

3. 아버지 학교 가겠다.

 안가려다가 전화 오셨다.

스텝이..

찬양리더해달라고..

피곤하지만 선한 일을 위해서니 가겠다.

 

4. 기도한다.

 죄와 허물을 벗겨 주신 주님을 위해 감사의 기돌 한다.

내 죄가 아닌 사단의 공격에 솔깃한 죄를 회개한다.

 

 

 

기도

주님

감사합니다.

죄와 허물덩어리 맞습니다.

이전의 죄와 허물은 도저히 벗어날 수 없는

악한 죄였지만

주님의 구원의 십자가 이후

그 죄는 가벼워 졌고

죄책감을 자극하지 않는 죄의 캐릭터 입니다.

주여 감사합니다.

 하지만, 이전 같이 회개치 못하고 쌓이는 죄로

절 허물에 갇히지 않게 하소서.

성령의 지혜로 깨우치소서.

절 늘 죄에 자유롭게 하소서.

어두운 죄에 흔들리지 않게 하소서.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그리하소서.

십자가의 보혈로 그리하소서.

그리하여

선택적으로 주님의 뜻 안에서

선하게 살 결심을 하게 하소서.

더욱 굳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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