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태양아 달아(부제/ 잘되는 집안)(수10:1~15) 본문
2006-12-01 여호수아 (Joshua) 10:1~10:15
7. 여호수아가 모든 군사와 용사로 더불어 길갈에서 올라가니라
하나님과의 약속이라면
귀찮더라도
손실이 날 거라 예상이 되어도 반드시 지켜야 한다.
8. 때에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그들을 두려워 말라 내가 그들을 네 손에 붙였으니
그들의 한 사람도 너를 당할 자 없으리라 하신지라
( 어찌되었든 같이 하는 삶은 아름답습니다. )
주님은 편치 않은 자들을 위해서라도 힘을 주신다.
기브온은 교묘한 자이다.
미울 수 있는 자이지만
하나님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가는 여호수아를 위해 힘을 주신다.
그것은 기브온 때문이 아니라 약속과 여호수아(나)를 위해서이시다.
여호수아의 두려움 마져 아신다.
여호수아는 두려움을 떨구고 하나님과의 약속 때문에 올라간다.
그때 주님이 함께 하신다.
내 인생도 마찬가지다.
모든 이익을 제쳐놓고라도
비록 두려워도
그 일이 주님과의 관계된 일이라면 반드시 지켜야 할 것이다.
9. 여호수아가 길갈에서 밤새도록 올라가서 그들에게 갑자기 이르니
그 일은 두렵고 귀찮을 뿐 아니라 밤새도록 올라가는 노력이 필요한 일일 수도 있다.
그래도 해야 한다.
반드시 해야 한다.
세상 사람들이 이해치 못할 '갑자기 ' 생기는 일이될 지라도
주님을 위해서 해야 한다.
그게 나를 위해서 하는 일이다.
10. 여호와께서 그들을 이스라엘 앞에서 패하게 하시므로 여호수아가 그들을 기브온에서 크게 도륙하고
여호와께서 일을 성사시키시는 것이고 일은 우리가 하는 것이다.
당하는 자들은 여호수아에게 죽는 줄 알지만
하나님께서 패하시게 하시기에 그러한 것이다.
그들은 몰라도 그 기세가 평범치 않음은 죽으면서도 알것이다.
하나님과 사람이 하나가 되어 전쟁을 펼친다.
여호수아는 움직이는 여호와의 군대이다.
하나님과 하나가 되어 전쟁을 펼친다.
일상에서 나도 이리 되면 얼마나 좋겠는가?
뭐가 부족해서 이런가?
방금 손님 보내달라고 눈을 감고 화살 기도하면서 마음 속에서 어두운 부정적 그림자가 깃듦을 느낀다.
'기도한다고 되어? '
바로 얼마전 기도하면 백프로 손님들이 몰려들던 기억이 남아 있는데도 그렇다.
그렇게도 믿기가 힘이 드는 것이다.
그러나 여호수아는 다르다 .
그가 움직이는 곳은 당연히 주님이 운행하신다.
그는 하나도 의심을 하지 않는 자이다.
내가 있는 직장에서
그런 리더를 얼마전 보았었다.
지금은 좀 다르지만...
엄청난 기세로 늘어가고 확장되어가는 ..
그 분이 하나님께 온전히 기도하고 세상의 일을 진행해가던 그 모습은 지금도 참으로 가슴이 뿌듯하다.
멀리서 바라만 뵈어도 이상하게도 심장이 분탕질 하는 것 같았다.
얼마나 온유한 분인가?
얼마나 힘있는 리더인가?
아마도 여호수아는 그 분을 몇십배 능가하는 긍정적이고 파워풀한 리더였을 것이다.
여호수아 가는 곳에 승리 뿐이다.
11.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큰 덩이 우박을 아세가에 이르기까지 내리우시매 그들이 죽었으니
이스라엘 자손의 칼에 죽은 자보다 우박에 죽은 자가 더욱 많았더라
참으로 두려운 것은
세상일이 내 뜻대로 마음대로 되면
나도 모르게 마음이 둔해진다는 사실이다.
힘이들고 어려워서
주님 앞을 찾아가서 마음을 내려놓고
온통 신나게 울거나
그 분의 위로로 등골이 따스로운 느낌과
아랫배가 뿌듯한 느낌의 (^^*)
성령충만함을 받고 나아오면
어찌나 기쁜지 가끔은 세상이 꺼져도 이런 평강의 기쁨이 그대로 유지 되면 좋겠다는
이기적 생각(?)에 차 있을 때도 있으나
그러한 생각도 잠시
일이 풀리고 마음이 나름대로 담대한 게 오래가게 되면
어느새
마음은 높아지고
주님을 찾아가려는 생각조차 멀리가서
모든게 내 혼자도 잘 될듯하며 둔해지는 경우가 태반이다.
그때는 모든 전쟁이 나 혼자 된듯 착각하게 된다.
( 주님과 합력하는 자는 뜨겁다 )
그러나
여호수아의 전쟁의 예를 보라 .
우박을 내려서라도
주님은 당신을 사모하는 자들을 도우신다.
그리고
주님이 간접적으로나마 도우시는 그 도우심의 본질로
우리의 대적이나 세상의 문제는 훨씬 많은 부분에서 해결되어 가는 것이다 .
우리가 어리석은 것이다.
내 힘은 별로 들일 필요도 없다.
그냥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면된다.
결과는 주님이 무조건 책임 지신다.
12. 여호수아가 여호와께 고하되 이스라엘 목전에서 가로되 태양아 너는 기브온 위에 머무르라
달아 너도 아얄론 골짜기에 그리할지어다 하매
이렇게 믿을 수 있으면 정말 좋겠다.
여호수아는 정말 배우고 싶은 분이다.
하등의 의심이 없다.
그냥 고한다.
그리고 믿어 버린다.
그리고는 당연히 될 듯이 명령한다.
그 명령의 대상이
사람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동물이 아니다.
자연계에 대한 명령까지 포함한다.
태양아 !!!!
달아.!!!
머무르라.. 한다.
태양이 이스라엘 언어를 알아들을 것이라 단정짓고 한다.
달이 이스라엘에만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다.
그것도
아얄론 골짜기 위에 머물라고 명령한다.
대단하다.
정말 대단하다.
무엇이 그로 하여금 그렇게도 대단하게 만들었는가?
모세의 영향.
끝없는 순종.
그리고
살아있는 기적들로 이어지는 경험의 연속...
그것이 그로하여금
역사에서 나오는 기적을 만들었다.
시작이 중요하다.
조금아까 직장 얘기 써놓고 기도하고 글을 쓰다가 손님 맞다가
기도한게 방금 이루어짐을 보았다.
주님은 증거를 즉각도 보이신다.
14. 여호와께서 사람의 목소리를 들으신 이 같은 날은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없었나니
( 아버지.. 당신과 함께라면 어디라도 괜찮습니다. )
세상에서 가장 힘있는 응답을 받은 자.
여호수아.
그런데 여기서 한가지 의문이 든다.
하나님이 유사이래 가장 사랑하는 자는 '여호수아'가 아닌 '다윗'이다.
다윗에게는 해와 달까지 멈추게 하는 응답은 허락지 않으셨다.
여기서 몇가지 추론을 전개할 수 있다.
이제 이 추론을 가지고
기도와 시간이 지나면서 주님이 응답하시는 과정을 받아서
내 신앙의 뿌리를 깊게 할 수있겠다는 기대가 생긴다.
참으로 여호수아는 수천년을 건너는 성령의 파워를 느끼게 하는 분이시다 .
아니 . .
그의 육체와 믿음을 매개로 하여
어우러지는 하나님의 역사가 정말 감동깊게 보이시는 결과일 뿐이다.
마치 그날
해와 달 멈추시던 때
우박으로 앞서면서 같이 전쟁을 시행하시던 그 하나님 처럼..
추론 하나는 이렇다.
여호수아와 다윗의 쓰임새는 다른 것.
여호수아는 힘있는 리더로서의 원형을 보이고 그에 따른 믿음의 중요성과
-실은 글을 쓰면서 이랜드 박회장님의 간증이 떠오른다. - 그 믿음을 통한 일상의 이루심을 보이시고저 하는 의도이신 반면
다윗은 일상의 삶을 통한 '성화'의 과정을 보이시려는 목적.
주님은 각기 다른 도자기를 통하여 사용법을 달리 보이시려는 것이다.
( 이제부터 아주 적은 믿음이지만 꽃을 피워 보겠나이다 ... 주여.. )
또 하나의 추론은
비슷한 내용일 수도 있지만
응답의 강도가 신앙의 성숙도와는 절대로 비례관계가 아님을 보이시려는 목적.
세상의 성공과 주님의 기쁨과는 비례하지 않는 것을 보이시려는 목적.
가끔...
난 그랬다.
나보다 주님 앞에서 올바르게 서서 결단하고 성과를 보이시는 분들에 대한 부러움과 더불어
나의 부족함의 좌절..
오히려 세상을 더 추구하는 자들의 성취도 보다 못한 나의 이도저도 아닌 믿음에 대한 안타까움.
이런 것들이 참으로 나의 속을 복잡하게 만들었던 경우가 있었다.
이제는 믿음의 시간이 서서히 지나가면서
정리가 되고
오늘 같은 내용을 통하여 하나하나 주님께서 답을 주셔서 덜 흔들리긴 하지만
아직도 여호수아 같은 성공자 앞에서 주눅이 들때가 있다.
그러나
주님은 그 보다
나 자신과의 대화를 더 기뻐하시고
내 성취도와 상관없이
일상에서 그 분을 얼마나 기뻐하고
얼마나 성취도를 이루는 자들의 믿음을 닮아가려는가 노력하는 정도에 따라
나의 성숙도를 결정하시고
그 성숙도의 성취에 따라
다윗의 쪽으로 점수를 매길 수도 있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 앞에 올바로 서려는 자들은
세상적으로도 성공하는 결과를 보이시려는 목적이다.
결과는 축복이다.
축복을 목적으로 하면 필패(必敗)이지만
주님을 기뻐함을 목적으로 하면
주님은 내 일상에서 같이 호흡하시고
같이 동역하시면서
모든 걸 승리로 이끄신 후
결과가 반드시 축복으로 나오도록 하실 것을 보이시기 위함이다.
참으로 대단한 역사를 보면서
많은 생각을 주시는 묵상이다.
아버지와 아들이 합세하여 사냥이나 게임을 즐기는 듯한...
그러면서 그 아들이 아버지를 강하게 의지하여
어리석은 듯한 일까지
아버지의 위세로 해내는 .. .
한마디로 잘되는 집안의 모습을 보인다.
주님..
저도 닮게 해주소서.
지금까지 묵상을 전개해오던 모든 풍성한 영감이
주님의 이름으로 제 일상에서 이루어지고
거기서 멈추지 않고
그 일을 기회로
하나하나 성장해 나가는 기회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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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일큐티)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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