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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QT

매사에 모든 걸 반드시(수 9:1~15)

주하인 2006. 11. 29. 10:13

412006-11-29 여호수아 (Joshua) 9:1~9:15

8. 그들이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우리는 당신의 종이니이다 

9. 종들은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인하여 심히 먼 지방에서 왔사오니  
14. 무리가 그들의 양식을 취하고 어떻게 할 것을 여호와께 묻지 아니하고  
15. 여호수아가 곧 그들과 화친하여 그들을 살리리라는 언약을 맺고 

( 성령 충만할 때면 길거리 가다가도 저러고 싶을 때도 있다. ^^* )

 

 

온 세상이 다 뜨끈 뜨끈하고

온 몸의 근육마다 힘이 불끈 불끈하고

기도만 하면 즉각 응답되고

눈만 감으면 감동성 눈물이 볼우물을 메우고..

 

그럴 때

사람들은 성령 충만하다고 한다.

 

 성령충만할 때

지혜도 같이 충만하고

충성심도 충만해지고

자애로움과 긍휼함도 충만해지면 얼마나 좋을꼬?

 

 그러나

역사를 들여다 보아도

내 자신의 과거를 보아도

호사다마(好事多魔) 라는 고사성어를 가져다가 붙혀 보아도

좋은 일이 끝까지 좋은 경우는

인생의 경우는 없더라.

 

 그게 하나님의 연단의 원리일 수도

인간이 원죄적 성질을 가지고 태어난 이유도 되기도 한다.

 

 여호수아 앞에 나타난

그들의 성공을 축하키 위한 사절들 처럼 보이는 자들이 나타난다.

그리고는 한껏 칭찬을 한 다음에

계약을 맺자고 한다.

 그토록 대단하게도 진실과 용기와 신실함과 추진력과 명석한 지혜를 가진 우리의 여호수아께서

실수를 한다.

 그가 실수를 할 거라고는 누구도 생각못한다.

아니

실수라고 생각할 수조차 없는 상황이다.

 

지금까지 계속 보아왔지만

이것은

주님이 허락하신 축복의 연속일 뿐이고

이치적으로 생각해도

거부할 하나의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무지한 것인지

깜박 한 것인지

여호와께 묻지 아니하고  

일을 처리해 버린다.

 

 이게 죄인가?

그 속에 들어가 그들의 감정으로 보니

죄가 아닌 듯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그건 분명히 죄다.

 

그렇다면

그게 왜 죄인가?

 

주님을 도외시 하고 뒷방의 존경받을 노인의 모습으로 전락하게 시킨 것은 혹시 아닌가?

 

효자는 모든 걸 다 알아서 갖다 바치는 아들이 아니고

매사에 모든 걸 다 상의 하는 게 진짜 좋은 아들이라 한다.

여호수아는 자신의 생각대로 주님 아버지께 효를 했다.

 

 왜 그랬는가?

지속되는 승리로 인한 매너리즘은 아닌가?

 

 일상에서 나는 어떤가?

아주 익숙하다.

조금만 주님께 위로를 받고

충만한 상태가 이어지면

알게 모르게 둔해지고 어이없는 행동을 하게 된다.

 

 주위에서 볼수 있는 상황의 일례는 어떠한가?

카톨릭의 불교와의 화합선언

종교 다원주의...

모두 인간의 눈으로 보기에 화합이란 거창한 이익이 있지 않은가?

그러나

주님께 진짜로들 각고의 인내와 더불어 여쭈어 본 일들인가?

그리고

충만한 성령의 그 거대한 기운을 확증으로 받고 나서 시행하는 일들인가?

판단은 주님이 알아서 하겠지만..

 

엊저녁

며칠 미루었던

질문들을 가지고 기도원에 올라갔다.

확답이라고는 부족한 믿음의 연륜과 자질이라서인지 얻을 수 없는 것은 너무나 당연했지만

가슴 가득

나름대로 실마리가 풀리는 듯한 느낌은 한짐 가지고 내려왔다.

 

그런 아침이다.

특별하지도 않게

특별하신 우리 주님이

특별하게도 부족한 나에게는

이런 위로가 있다.

 

필요한 말씀을 너무도 정확히 아침 큐티에서 답으로 주시는 것.

아니면

위로로 격려하시는 듯한 것.

 '아직까지 주하인은 잘 하고 있다.

 아니 오히려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라는 느낌.

 

매너리즘.

게으름

습관

반성없는 나태함.

회복하기 어려운 잘못된 육체적 정신적 반응.

 

주님은 이걸 참으로 싫어하신다.

우리는 순간이면 이걸로 넘어질 수 있다.

역사가 증명한다.

내 자신의 과거가 증명한다.

 

늘 주님을 보아야 한다.

매사에 주님을 생각해야 한다.

주님은 주님을 생각한다는 사실을 기뻐하신다.

그분이 응답하실 일이든 안 응답하실 일이든

난 무조건 들고 그 분에게 가서 여쭙는 시늉이라도 잊지를 말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늘 깨어 있어야 한다 .

말씀이 일상이 되어야 한다 .

늘 기뻐해야 한다.

주님은 진실이시고

주님은 기쁨이시기에 말이다.

 

 

적용

1. 성경 5장 읽겠다.

 

2. 아직 해결치 못한 문제를 주님께 들고 가겠다.

 

3. 아침의 자전거 출근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출근 내내 주님께 속삭이는 듯한 대화를 잊지 않기를 소원한다.

 

 

 

기도

 

주님 감사합니다.

늘 잊지 않고

늘 기뻐하길 원합니다.

늘 주님의 살아계심에 흥분하길 원합니다.

그리하여

주님 오실 그날까지 깨어 있기를 원합니다.

 

예수님 도우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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