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나를 위하여 주님을 선택한다(수9:16~27) 본문
2006-11-30 여호수아 (Joshua) 9:16~9:27
16. 그들과 언약을 맺은 후 삼일이 지나서야
18. 그러나 회중 족장들이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로 그들에게 맹세한 고로
22. 여호수아가 그들을 불러다가 일러 가로되 너희가 우리 가운데 거주하거늘 어찌하여
23. 그러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나니 너희가 영영히 종이 되어서 다 내 하나님의 집을 위하여
26. 여호수아가 곧 그대로 그들에게 행하여
( 두려움을 무릅쓰고 건너야 하는 선택을 하는 자 만이 더 좋은 것을 누릴 수가 있습니다 ^^~* )
여호와에게 묻지 않은 죄는
그게 의도적이든
그게 실수이든
또는 나태함의 결과이든
절대로 피해야 한다.
그래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행히 3일이 지나고 나서야..
발견은 되었다.
문제는 이제 부터다 .
여러가지 '선택'이 눈 앞에 놓여 있다.
우선 무시해 버릴 수도 있다.
이건 많은 게으르고 깨어 있지 않은 자들의 선택이다.
급속도로 나태해지는 지름길이다.
가장 바람직하지 않은 선택이다.
또 하나의 선택은
마음 속에 부담을 가지고는 있지만
의지의 부족으로 인하여
완전하게 돌이키지 못하는 경우.
역시 주님을 인정했다는 이유로 어느정도의 개전의 여지는 있겠지만
집요하게 파고드는 사단의 공격에 전초기지가 될 가능성이 많은 선택이다.
오늘 보이는 개중의 최선의 선택은
잘못된 결과를 돌이키기 위한 과감한 행동.
오늘의 예를 들어
과감히 척결해버리는 ...
그러나 주님의 뜻을 또한번 거부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선택이 그것이다.
이스라엘 백성 및 여호수아의 선택의 예로 볼 수 있듯이
주님의 뜻과 이름을 존중하며
잘못된 점을 하나하나 고쳐나가는 선택이다.
실수에 대한 아픔과 주님의 두려운 질책을 들을 수 있다는 점에서 쉽지 않은 결정이지만
죄를 돌이킬 수 없을 바에야 차선의 대책이 되는 모습이다.
배울 것은 이렇다.
실수나 죄의 이유에 대하여 정확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
어떤 비판이나 자책이나 정죄를 하기 전에 우선 전 후 상황에 대하여 모조리 들어야 한다.
그런 다음 어떤 것이 과연 주님의 뜻이 될 것인가를 확실히 알아야 한다.
이전과 같은 죄...
특별히 주님을 도외시 하는 죄는 절대로 되풀이 하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판단이 서면
과감히 지켜가는 결단이 필요하다.
이전의 죄는 죄다.
주님 십자가 앞에 내려놓고 그 분의 뜻이라 생각되면 과감히 쫓아야 한다.
그래도,
그렇지만
그렇기는 하지만...
등의 단서는 미련만 남긴다.
미련은 또다른 죄를 유발할 수도 있다.
( 승리는 수없는 선택의 결과가 꿰어져야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 )
오늘 특별히
죄와 그에 대한 선택에 대하여 말씀을 주신다.
과연 나는 어떠한가?
일상에 살면서
주님의 뜻을 맞추어서 생각하고 행동한 적은 있던가?
있었다면 어떠한 경우이던가?
있었다면 그 빈도는 과거에 비해서 어느 정도인가?
아니라면
어떤 경우에 아버지 뜻을 생각지 못하던가?
그러고 난 후의 나의 선택은 어떠했던가?
점차로 선택이 오늘에 보이는 여호수아 등의 모습을 닮아가기는 하던가?
난 이런 일에 대하여 실은 부담을 조금이라도 지니고 있던가?
특별히 ..
개인적으로 죄책감이 많은 경우는
오늘 같은 일이 오는 경우
그 무거움에 질려
아마도 회피하려는 선택을 하는 경우가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주님은 십자가 앞에서 여호수아처럼
그냥 있는 대로 자신의 잘못을 하나하나 드러내놓기를 원하시는 것 같이 느껴진다.
그런 다음 십자가 하나님께서 모든 걸 다 아신다는 확신을 가지고 결단의 마음을 주실 때까지 기다려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드는 묵상이다.
그리하고 나서 똑같은 죄를 되풀이 하지 않도록 늘 깨어 있어야 할 것이다.
일상의 하루는 '선택'의 연속이다.
선택이 주님 앞에서 주님뜻대로 주님을 위하여 .. 하다보면
어느새 그 분이 기쁨으로 나를 위하여 세상의 일 마져
여호수아의 힘있는 승리행진 처럼 이어나가게 해주실 것이다.
기도
주님
귀하신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눈으로 볼 수 없을 만큼 어리석고 죄덩어리인 무지한 자를 구해주시고
그것도 모자라 늘 이렇게 말씀으로 인도하시고 도우시는
이제는 그것도 부족하여 예화로써 가르치시려는 그 인자하심이 눈물 겹나이다.
참으로 눈을 들고
주님을 보면
모든 것이 행복이고
또한
모든 것이 기쁨일진데
세상에 묻혀서
눈을 썩어질 것에 고정하다 보면
어찌 이 내 속은 요동치는 욕망덩어리의 미련한 시야만 가지고 있는지요..?
이제
주님의 뜻을 하루에 단 일초라도 더 생각할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변하여서
주님의 향기의 흔적이라도 발하는 자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주님으로 인하여 생각을 하고
주님으로 인하여 조심을 하고
주님 때문에 말을 절제하고
주님이 이유로 참아내고
주님을 이유로 용기를 내고
주님 당신 때문에 올바른 선택을 하는
그런 자가 되길 원합니다.
세상은 갈 수록 주님 생각을 하기 어렵도록 변해만 가고 있습니다.
이럴 때
단 한번이라도 주님의 이름을 외울 수 있는 의지와 결단을 허락하소서.
늘 도우셨던 것처럼
이제도 올바른 선택을 도울 수 있도록 힘주시길 소원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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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생애를 다하여 (아버지 학교 특송 06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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