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콧물과 은혜(계15:1-8)

주하인 2006. 8. 18. 09:45

 (요한계시록15:1-15:8) 

1 또 하늘에 크고 이상한 다른 이적을 보매 일곱 천사가 일곱 재앙을 가졌으니 곧 마지막 재앙이라

  하나님의 진노가 이것으로 마치리로다

2 또 내가 보니 불이 섞인 유리 바다 같은 것이 있고 짐승과 그의 우상과 그의 이름의 수를 이기고 벗어난

   자들이 유리 바다 가에 서서 하나님의 거문고를 가지고

3 하나님의 종 모세의 노래, 어린양의 노래를 불러 가로되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시여 하시는

  일이 크고 기이하시도다 만국의 왕이시여 주의 길이 의롭고 참되시도다

4 주여 누가 주의 이름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영화롭게 하지 아니하오리이까 오직 주만 거룩하시니이다

  주의 의로우신 일이 나타났으매 만국이 와서 주께 경배하리이다 하더라

5 또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증거 장막의 성전이 열리며

6 일곱 재앙을 가진 일곱 천사가 성전으로부터 나와 맑고 빛난 세마포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7 네 생물 중에 하나가 세세에 계신 하나님의 진노를 가득히 담은 금대접 일곱 그 일곱 천사에게 주니

8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을 인하여 성전에 연기가 차게 되매 일곱 천사의 일곱 재앙이 마치기까지는 성전

   에 능히 들어갈 자가 없더라

 

 일곱째 나팔 소리에 마지막 재앙 일곱가지,

일곱 금대접 재앙이 시작이 됩니다.

 바로 이 직전에 짐승으로 부터 '이긴 자'들이 모여서 노래합니다.

 

( 유리바다는 조런 영혼들이 더 깨끗해져서 모이는 곳이 될것 같습니다..)

 

불이 붙은 유리 바다 앞에서...

주님이 주신 하프를 하나 씩 들고요.

그들이 부르는 노래는 '모세의 노래'

'어린 양의 노래'라고 합니다.

 이 노래의 공통점이 무엇이겠나이까?

인간으로 가장 주님 하나님의 사랑 받은 자 모세가 부른 노래 

주님 예수님이 어린 양으로 가장 순수한 , 가장 절박한, 가장 갈구하는 , 가장 잘아는 하나님의 본체로서의 노래가 불려지고 있다.

 

 드는 의문..

 

. 이긴 자 모두 노래를 잘 했을까?

. 하나님은 소음을 어찌 견디셨을까?

. 찬양이 자주 등장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 왜 하프만 주셨을까?

. 찬양의 장면이 일곱대접 재앙 바로 직전에 나오는 이유는 무엇인가?

 

 

 

 난 처음 예수님 영접할 때도

그 후 점점 뜨거워 질 때도

지금까지

찬양이 절대적으로 역할을 지속했다.

 

 본래 지독한 다혈질 임에도

순간 순간 손가락질 잘하는 포악성에도

가끔 가끔 메말라 지는 깊은 공허감에도

남의 잘못은 지독히도 명석하게 분석해서 판단하는 '지혜'-^^;-에도

비교는 엄청시리 많아서 주님에 집중하기 어려운 좌불안석에도

자식들을 엄청 사랑한다는 이유로 엄청 혼낸 자책감으로 몸부림 침에도 ....

 

 그리하여 주님 예수님께서 그토록 주시고자 하는 평강의 복음이 내 영혼에 쉽게 자리 잡을 수 없을 객관적 상황에도 불구하고

 

그 분은 내 예상과는 전혀 다른 방법으로 날 이끄셨다.

화가 잔뜩나서 이래도 기도가 될 거냐고 반항할 때는 더 깊은 은혜로 임하셨다.

이게 한두번이 아니었다.

그래서 알 수 있었다.

전혀 논리에 맞지 않는 분이시다..

 

 이때마다 찬양은 항상 곁에 있었다.

어떤 때는 찬양으로 마음이 가라앉으면서 은혜가 시작되기도

어떤 때는 눈을 감으면 즉시 눈물이 나오고 깊은 내면 속에서 올라오는 흥얼거림도

어떤 때, 정말 가슴이 미어질 통한의 회개가 나오면 그보다 더 큰 소리가 내 속에서 노래로 흘러 나오기도 햇다.

 

 아...

우리 집사람이 항상 놀리듯이

가사는 전혀 이치에 맞지 않고

되풀이 되풀이 이해할 수 없을 곡조가 흘러 나와도

그건 깊은 감동을 항상 수반하고 나오는 곡이었다.

 

이런 느낌이다.

 

찬양을 하면 내 육신이 바이브레이션 한다.

처음엔 워낙 내 소리가 크기에 물리적인 떨림이 내 양측 측두골 쪽에서 시작이 되며

그게 어떤 때는 등줄기, 항상 긴장하고 살던 부위를 간지르듯이 내려가기도 한다.

그러면 육신의 긴장이 풀리며 나른해진다.

 그러다가

영혼이 진동을 하는 것 같다.

( 콧물은 은혜와 비례합니다.  ㅎㅎ .. )

 

이 때쯤 눈물 샘은 자동적으로 자극이 되면서 어떤 때는 Septal deviation (비중격 이상)으로 막혀져 있는 코가 완전히 막혀 코 맹맹이 소리가 나오면서도 그 적은 통로로 휴지가 거의 반통이나 적실 정도로 어마어마한 양의 콧물이 나오기 시작한다.

개인적으로 이 콧물 때문에 더 은혜 받는데 지장을 받는 경우가 많았다. ㅎㅎ

시간이 지나면서 찬양을 하면 온 몸이 공명하는 듯한 느낌이 나오면서 몸안 불신 시절의 죄악이 쫓겨나지 않으려 몸부림 치는 것과 비교하여 커져만 갔다.

 손은 내가 원하든 원치 않든 높이 치들리어 주님이 받으시기에 가장 합당한 아름다운 모습이라 스스로 연상될 각도로 -ㅎㅎ- 들려지고 이 들림은 누가 떠 받쳐 주지 않음에도 하나도 힘이 들지 않았다.

그냥 올리고 가만히만 있어도 전율처럼 느껴지는 기쁨이 느껴졌다.

그리고는

가만히'아~~ 주님~'하고 외치기만 해도 온 영혼을 타고 흐르는 떨림이 아주 가끔이지만 있었다.

이 때쯤

난 이런 생각이 든다.

'아 ~  이대로 죽었으면~

 그래서 그대로 주님께 갔으면...'

 

( 이 콧물은 은혜와 상관 없을 듯 싶네요.ㅎㅎ )

 

 

 

사도 바울 선생께서

성경에서 '내가 육신을 벗어나 주님 예수님과 함께 있을 것이 좋을 것이나'라는 고백을 한 것이 그냥 공감으로 느껴진다.

세상에 눈을 뜨고 나와서

원래대로 돌아가면 정말 유치할 듯 싶은 감정이 아닌가..하는 의혹이 스쳐지나가며 그 감동과 은혜는 순간 잊어 먹지만, 십년 가까이 지나가며 실존은 '주님 앞'이고 의혹은 '가짜'임이 서서히 확신 비슷한 생각이 든다.

 

세상에서 가장 재밌는 노래가 찬송가이다..

세상의 노래는 진짜 재미없다.

가끔하긴 하지만..

 

 

 

 이런 찬양의 얘기를 하는 이유가 있다.

 주님은 찬양을 너무 기뻐하신다는 것이다.

계시록을 시작하면서 제단 곁에서 벌어지는 행사로서 '찬양'이 크게 나타나져 보인다.

 

오늘도 그렇다.

불붙은 유리바다의 장관 앞에서

죄가 없기는 이루 말할 수 없이 훌륭한 이긴 자들이 모여서 144,000 명의 합창을 한다.

그것도

우리가 부르는 세상의 찬양의 모든 오류를 다 제거하고

순수하기가 이루 말할 데 없는 찬양을 한다.

 

어린 양 예수님의 그 엄청난 감수성과 사랑과 은혜....가 넘치는 심정이 그대로 담겨 있는...

인간으로서 가장 하나님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며 인생의 질고를 넘어선 모세의 그 격정이 담겨 있는 찬양..

 

혼자 앉아서 은혜 받는 차원의 찬양 만으로도 코가 막히고 기도하는 장소가 홍수나게 할 정도로 눈물 콧물이 쏟아지는데 저런 찬양이 접해지면 나에겐 어떠한 느낌으로 다가올 것인가....??

 

감히 상상조차 할 수가 없다.

기절할 것 같은데..

 아마도 기절하는 이긴자가 없는 것으로 보아 - 있다면 성경에 반드시 어떠한 방법으로라도 표기를 했을 것이다. -  그 이긴 자들의 심성이 메마르다는 상상을 할 수 없는 것으로 보아 - 천국에 든자로 그럴 수 있을까? ㅎㅎ - 그 들의 심령의 폭을 한없이 넓혀 놓으신 것 만으로도 주님 하나님의 그 대단한 능력을 가히 짐작할 수 있다.

 

아침에 선교지에 파송하는 의료 선교사 - 5년 근무를 마치고 선교지로 나가는 외과 과장 - 파송식을 겸한

조회가 있어 일찍 출근하여 10여분의 시간이 있는 바 잠시 오늘 묵상을 들여다 보고 내려갔다.

 

앉아 있는 자리에서 그 분의 얼굴을 보면서

주님의 기쁨이 마음에 왔다.

 

마음에서 '찬양'을 부르고 싶었다.

그래서 수첩을 얼른 꺼냈다.

 

기도처럼 글을 썼습니다.

주님은 어디에는 흔적을 보이셨습니다.

감사하신 예수님.

 

어린양의 노래를 부르는 하루가 되려합니다.

 

 

 

 

적용

 

1. 찬양하겠습니다.

 

2. 주님의 말씀을 5장 읽겠습니다.

 

3. 유리바다 앞 찬양 장면을 묵상하겠습니다.

 

 

기도

 

주님 감사합니다.

 

 

 

 

그냥

노래하고 싶습니다.

주님을 노래하고 싶습니다.

그냥 그 분이 계심을 감사하고 싶었습니다.

 

어느 이유도 필요없습니다.

어느 논리도 필요치 않습니다.

 

굳이 이유를 들자면 이렇습니다.

 

그 분은 전능하시고

그 분은 크시며

그 분은 놀라우신 분이시기에 입니다.

또한

그분은 만국의 주인이시고

그분의 길은 의롭기 때문이며

그분은 참되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두려우신 분이시며

그분은 영화롭게 하실 분이시고

그 분은 거룩하신 분이시며

그 분은 세상 만국의 경배를 받기에 합당한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내 좁은 가슴에 그 분을 담을 수 없습니다.

그냥

노래하고 싶습니다.

주님의 어린양

예수님 그 분을

그저

노래하고 싶을 뿐입니다.

 

 

그분은 사랑이십니다.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이 허무한 인생에

그분은

의미로 다가 오셨습니다.

 

주여

당신을 찬양합니다.

 

오늘 묵상에 보이는

유리 바다 앞에

이 세상의 모든 죄를 내려놓고

정말로 자유로운 영혼으로 우리 주님 찬송하면

너무도 좋겠지만..

 

주님

그냥 노래 하렵니다.

부족하지만

나를 구원하신 그 예수님을

어린양의 노래로

소리높여 소리높여 찬양합니다.

받아 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영생은 당신이 죽은 후에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항상 진행되고 있다.

- 롯 퍼킨스 길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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