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양과 열 뿔 짐승(계17:7-18) 본문
(요한계시록17:7-17:18)
14 저희가 어린양으로 더불어 싸우려니와 어린양은 만주의 주시요 만왕의 왕이시므로 저희를
이기실 터이요 또 그와 함께 있는 자들 곧 부르심을 입고 빼내심을 얻고 진실한 자들은 이기리로다
어린 양
열 뿔과 일곱머리가 달려있고 그 머리와 뿔로 부터 권세를 받은 무서운 짐승.
도저히 상대가 되지 않을 어울리지 않을 싸움 !
그러나
어린양은 만왕의 왕이시고 당연히 이기실 것이다.
15 음녀의 앉은 물은 백성과 무리와 열국과 방언들이니라
음녀는 '큰 성' 이라고 18절에 나와 있다.
앉은 물은 세상의 아주 많은 사람들과 나라들이다.
16 네가 본 바 이 열 뿔과 짐승이 음녀를 미워하여 망하게 하고 벌거벗게 하고 그 살을 먹고 불로 아주
사르리라
나중에 자중 지란이 일어난다.
17 하나님이 자기 뜻대로 할 마음을 저희에게 주사 한 뜻을 이루게 하시고 저희 나라를 그 짐승에게
주게 하시되 하나님 말씀이 응하기까지 하심이니라
아무리 대단한 듯 보여도 하나님의 뜻에 의하여 허락된 잠시의 부귀와 영화일 뿐이다.
모든게 하나님의 말씀을 응하게 하는 것이다.
18 또 네가 본 바 여자는 땅의 임금들을 다스리는 큰 성이라 하더라
( 코소보 난민 촌의 모녀.. 세상 한 구석에는 이런 어려움이 벌어집니다...)
세상이 마구 돌아가고 있다.
철저한 개인주의
감각 지상주의
거기에는 과거의 인륜이니 제도니 풍습이니 .. 하는게 과감히 무너져 내리고 있다.
심지어는 재미만 있으면 남녀의 구분 조차 없어지고 있음은 여러번 분개한 바있다.
살인이 미학이고
폭력이 아름답게 묘사되고 있다.
효니 사랑이니 하는 것은 집단의 소리 앞에 가치 기준이 바뀌어져 가고 있다.
어른들도 애들도 하는 짓이 다 애같이 변해 가고 있다.
경쟁은 치열해져 가고 있다.
삶의 속도는 점점 빨라져 가고 있다.
눈 앞에 현란이 바뀌어 가는 정보의 물결 속에
정의에 대하여
진리에 대하여
삶에 대하여
생각하여 볼 기회조차 사라져 가고 있다.
그러면서
민주주의와 공산주의의 양 대결 구도를 통하여
세상은 눈에 띠는 선과 악의 구도에 대하여 막연하게나마 가지고 있던 선악구분의 개념 조차
사라져 버려 가고 있다.
그러면서 세상은 이익에 따라 마구 재편 되어 가고 있다.
어제의 적이 동지가 되고 동지가 적이 되며 이합집산을 마구 되풀이 한다.
그게 비단 나라와 나라 뿐이 아니고 직장 , 이웃 , 가정 안에서도 비슷한 일이 많이 벌어지고 있다.
이게 정보의 범람으로 눈에 더 많이 띠는 탓도 있겠지만 실제로 그런 이유로 해서 불화와 정신적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사람의 숫자가 실제로 훨씬 늘어난 것이다.
이러면서 점차로 주위에 기도하는 자들이 줄게 되고
열정적으로 주님의 일을 하는 것이 마치 어이없는 일 처럼 느껴지게 만들고
선교하러 나가고 주의 이름으로 결단하는 일들이 오히려 기독교 내에서 더 냉소적으로 받아들여지게 되어 , 이상하리 만치 차가운 느낌을 갖게 된다.
개인적으로도 주님 예수님을 믿고 열정을 다하여 왔던 오랜 시간이 마치 꿈 속의 일 같은 것 처럼 느껴지는 시간이 가끔 가끔 찾아오며 몸에서 힘을 잃고 그냥 멍~하니 잊게 되는 경우도 있다.
이런 느낌으로..
"세상은 저리 대단한 위용인데
주님 믿는건 어리석은 일 아닌가?
마치 계란으로 바위치는 것 같은 거 아닌가?
양과 이리가 싸우는 듯 승산 없는 싸움이 아닌가?
다리가 달달 떨리고 힘이 나야 무얼하지..."
오늘 묵상을 보면서
계시록의 환상 그 자체를 보면 도저히 이해하기 어렵고 갖은 논리와 추리를 들이대고서야 소설식의 이해가 가능하지만 거기에서 느껴지는 느낌으로 현 세상의 변화에 가져다 붙혀서 이해하면 이럴 듯하다.
음녀는 세상의 감정적 흐름이며 그 흐름의 배후이다.
앞의 예를 들어 개인주의, 감각지상주의, 정보의 범람을 통한 선악 구분의 모호와 정체성 상실을 통한 군중이기주의...
그리고 짐승은 이 세상에 나타나는 현상이 아닐까 싶다.
( 이 짐승같은 ...)
전쟁
테러
동성애
왕따
부의 쏠림과 무관심
범죄..................................
짐승에 권세를 부여하는 뿔과 머리는 짐승에 힘과 권세를 준다니 혹시.. 이런 현상은 아닌가?
경제 블록화 .
패권주의
전쟁
인터넷
...
이러한 세상의 급변함과 힘있는 속도감 속에
주님을 찾고
십자가를 들먹이며
인내와 온유와 긍휼과 겸손을 되뇌이고
인류애와 사랑을 이유로 선교를 들이대는 것은
어리석어도 한참 어리석은 일로 보인다.
세상에 현실을 몰라도 한참 모르는 유아적 발상일 듯 느껴진다.
그래..
어린양의 이미지가 얼마나 잘 맞는가?
유약하고
하얗게 털로 포장이 되어서 깨끗한 척하고
남을 위한다면서도 힘이 하나도 없어 어찌 남을 위할 수 있단 말인가?
아무리 아무리 이해를 하려해도 승산없는 싸움이다.
그럴 바에는 그냥 예수란 분의 십자가의 고통을 안게 죄고 그것을 무시하기는 죄스럽기는 하니 적당히 교회에 적을 두고 세상일에 떨어지지 않도록 열정적으로 사는 것이 나은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도 들을 수 있다.
그러나..
이치에 맞지 않을 듯하고
어리석은 일인듯하고
유치할 듯한 이 어린양 예수를 믿고 머리를 숙이고 묵상하고 참고 인내하고 기도하는 이 행위를 통하여
저희를 이기실 터라 하셨다.
그분은 만왕의 왕이시기에 우리는 승리할 수 있다
음녀가 예상과는 다른 것이든
열뿔과 짐승과 머리가 무엇이든 간에
우리를 누르고 억압하고 유혹하는 존재이지만
우리는 우리 인식체계의 빨간불과는 상관없이 이기게 되어 있다는 얘기다.
아..
그들의 힘과 횡포는 실은 바람불면 없어질 연기 같은 것이다.
모닥불 같은 것이다.
어둠이 지나고 해가 뜨면 사라져 버리고
주님이 훅~하고 불면 꺼져 버릴 것이다.
얼마간은 세상 끝간줄 모르고 기세를 드높이겠지만 주님의 영원 앞에 잠시라는 단어도 들이 밀지 못할 계획 안의 티끌일 뿐이다.
찻잔 안의 태풍이다 .
적용
1. 신문을 보고 짐승의 횡행을 보겠다.
2. 세상에 휘둘리는 자들에게 주님을 알 기회를 달라고 기도하겠다.
3. 냉랭하고 차가워져 가는 상황을 묵상한다.
4. 시간이 지나면 모두 주님이 원하시는 대로 변함을 묵상하겠다.
5. 희망으로 오늘 하루를 보내겠다.
6. 주위 사람들에게 웃음을 보내겠다.
기도
주님은 평안입니다.
주님은 평강입니다.
주님은 능력이고
주님은 영광입니다.
주님은 사랑이고
주님은 열정입니다 .
주님은 순수입니다.
주님은 눈물입니다.
주님은 기쁨입니다.
온갖 찬사를 드려도 부족한 게 우리 예수님 입니다.
그분은 어린양이시지만
그분은 만유의 왕이십니다.
그분은 가장 선하시지만
그분은 전쟁에서 무조건 이기십니다.
그분은 아무것도 못하실 듯 부드러우시지만
그분은 짐승의 횡포를 용인하고 계실 능력자입니다.
그분은 양의 흰색처럼 순수하시지만
그분은 우주를 운용하시는 능력자이십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세상 전부를 휘어 삼킬 듯 기세를 드높이고
또 앞으로 더 드높일 듯이 하고 있지만
짐승들의 세상은 곧 끝날 것을 압니다.
주님
흔들리지 않도록 하여 주세요.
일상의 소소한 흔들림으로 같이 흔들리지 않도록 하소서.
주님은 결국 승리하실 것이고
그게 주님의 뜻이기에
흔들릴 일이 없도록 하소서.
늘 회개하게 하소서.
늘 기도하게 하소서.
늘 기뻐하게 하소서.
늘 찬양하게 하소서.
늘 묵상하게 하소서.
늘 긍휼을 연습하게 하소서.
늘 두손들게 하소서.
예수님께 간절히 소원하였습니다.
아멘
한 사람의 영적인 성숙도는 죄를 아는 지식과 비례한다.
- 김남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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