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오늘은 이중적이 되어 보리라(눅 22:14-23) 본문

신약 QT

오늘은 이중적이 되어 보리라(눅 22:14-23)

주하인 2012. 3. 31. 10:51

(눅 22:14-23)

 

  

14.때가 이르매 예수께서 사도들과 함께 앉으사
 때?

어느때?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셔야 할 그 때..

 

때가 이르매..라는 표현은

그 분이 그 때를 알고 계시었음을 암시한다.

알고 계시기에 이제 준비해야 할 단계.

 

'예수께서 사도들과 함께...앉으시매..'

함께라신다.

그 분은 늘 '함께'를 중시하신다.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길 원하시고

하나님과 인간과

인간과 인간과의 화합을 위해 오셨다하셨다.

 함께 '앉으사'..

그때에 이르러 함께 앉으심은.....

비장한 느낌을 준다.

 

 

15.이르시되 내가 고난을 받기 전에 너희와 함께 이 유월절 먹기를 원하고 원하였노라

우주적 전쟁,

영적 전쟁에 승리의 깃발을 꽂을

골고다 십자가 ' 를 꼽을,

당연히도 승리하실 것을 아시지만

그러하기에 육신을 가진 인간 예수로서 체험되실

그 극도의 고난을

신성 예수님으로서 너무도 잘 알고 계신다.

그러기에 이 ...고뇌에도 불구하고

' 너희와 함께' 유월절 먹기를 원하신다시는

 

그 분 영에 흐르는 '사랑' 과 '배려'와 깨닫게 하시려는 '교육'의 노력이

그대로 감사로 다가온다.

그 어려움 속에서도

'남'을 배려 하심이

가슴이 저리다.

 

 

20.저녁 먹은 후에 잔도 그와 같이 하여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그분은 분명히 말씀하신다.

그 .. 남은 누구도 알수 없을 절대의 외로움,

극한의 고뇌의 시간에

'너희...'

주하인..

'나'를 위하여 잔을 부으시고 떡을 떼신다.

가르치시고 배려하신다.

기념하여 머리에 영혼에 각인되도록 하신다.

 

그럴 수 없는 극한의 시간에

그 분은 '나'를 위하여 가르치신다.

 

 나에게 무엇을 바라시는가?

내가 오늘 무엇을 배우기 원하시는가?

 

내 힘들 때라도

설령 그게 '한계'에 도달했을 때일 지라도.....

남을 위하여...

아무렇지 않은듯 하길 바라시는 것이시다.

그게..

오늘 만에 해당하는 것일 수도 있다.

 

 나.

정말 그렇게 인내력이 뛰어난 사람이 아닌 것을

주님은 잘 아실 것이시다.

그래서 특히 오늘 만.. 이라도

이 사순절을 맞이해서

그리하길 바라시는 것이다.

 특별히 속마음과 다른 행동을 하는 것이

이중적이라고 착각하고 살아와서

그대로 가능하면 거칠게 , 툭툭 던지는 내 말투와 태도의 어리석음을

다시한번 교정 교화 시키는 듯하시다. ㅎㅎ

 

참 좋은 인격자들의

인격까지

진정으로 좋은지는

하나님 만이 아실 바........

난,

그래도 앞뒤가 비교적 일치하며 살려고 노력해왔던 것이 사실이고

그런 면에서

현실과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인격의 부분에

접점을 찾기 힘들었지만

그게 주님의 뜻이시라면

나도 '조금은 이중적'이 되어볼 필요가 잇는 듯하다. ㅎ

이중적이 아니고

이제

말씀에서

하나님이 그러시길 바라시니

그러겠고

그러하는 것이

인격의 진정한 성숙임을 알기 때문이지만.. ㅎ

 

오늘... 어렵지만

조금 더 참아 볼 요량이다.

 

적용

1. 남을 위하여

 . 타인을 배려하는 하루가 되기 위하여 신경을 곤두 세우리라.ㅎㅎ

 하나님의 뜻이 그러시기에 그렇다.

 

2. 인내하리라.

 . 주님은 극도의 고난을 인내하셨다

  그러면서 배려 하셨다.

   얼굴 표정.. 자애롭게 하리라.

   말투.. 부드럽게 하리라. 

   눈빛.. .더욱 인자하게 하리라.

 

3.  사순절 기억하자.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알면서 '그 길', 가셨다.

 날 위해 '골고다' 가셨고

 그 고난을 미리 아시면서도 날 위해 인내 하셨다.

 고난,.. 주님위한 필연이다.

 

4. 성경 세장 읽겠다.

 

 

 

기도

 

주님.

저.

아주 취약한 자입니다.

나이가 여기까지 먹었음에도

스트레스에 아주 취약한,

그리 듬직하지 못한 자올시다.

어쩌면 그게 옳은 것처럼

앞뒤 틀리지 않은 것 처럼 사는 '착각'과 왜곡 속에서 살았습니다.

이제..

주님의 그 사랑에 의거한 '모범'을 보고 있습니다.

주님.

이 부족한 가슴에서

사랑의 바탕이 된 , 주님 같은 인내는 불가하겠지만

주님의 흉내를 내려 노력함으로써

외견 상이라도 달라지려 노력해보겠습니다.

주님.

저의 오랜 솔직함에 대한 충동을 절제시키시고

인내가 주님이 진정 기뻐하시는 사실을

제 영혼이 느끼게 하소서.

그것을 '은혜'와 '평강'으로 깊이 인식되게 하소서.

그래서 제 주위에 다가오는 자들이

저에게서 깊은 위안의 향기를 느끼는 데까지

제가 성장했으면 합니다.

저를 위해서도 그렇습니다.

남을 위해서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말씀대로 조금이라도 더 변하는 하루가 되길 기도합니다.

제 주위를 위해............

주님 예수그리스도의 그 거룩하시고

인자하시며 놀라우신 사랑의 이름 들어

감사하며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신약 QT'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예수님의 아심 (눅22:54-71)  (0) 2012.04.03
습관적 기도(눅22:39-53)  (0) 2012.04.02
기쁨의 선택(눅22:1-13)  (0) 2012.03.30
말씀의 기둥(눅21:29-38)  (0) 2012.03.29
종말과 회의'懷疑' (눅21:20-28)  (0) 2012.03.28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