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습관적 기도(눅22:39-53) 본문
(눅22:39-53)
39.그들이 여짜오되 주여 보소서 여기 검 둘이 있나이다 대답하시되 족하다 하시니라
' 검 둘'
칼 두개.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따라다니던 제자의 입에서
'예수님'을 전적으로 믿음이 아니고
세상의 권력과 힘의 상징이고
자신을 보호하고자 하는 날카로운 ' 자기 보호본능'의 악한 상징인
칼...
그것도 '자신'과 ' 예수님'의 것, 둘을
준비하고자 한다.
나.
하나님을 믿는다면서
세상을 떠나지 못하는 것은 없지 않은가?
예수님만 믿고 의지한다는게 어쩌면 '나락'으로 떨어질지 모른다는 두려움으로
적당히 세상의 것과 fusion시키지는 않던가?
그러면서 하등의 죄송함과
그것이 불신임을 인정하지 못하고
예수님 앞에 회개하지도 못하는..............
그런 자에게도
그런 어이없음에도
주님은 '족하다 ' 하신다.
그것은
그런 어이없음이 어쩌면
우리 인생들의 정말 ... 한계임을
주님이 아시고 인정하고 받아 들여 주심일 수 있다.
아침에
환우 한분이 '아기' - 36개월 이라한다. - 를 데리고 오셨다.
얼마나 표정이 이쁘고 당차 보이는 '공주' 패션의 아기인지
한참을 대화를 나누었다.
팔이 부러져서 기브스를 하고 있는 아이.
어떻게 다쳤냐니 ' 침대에서 놀다가 떨어졌다'고 정확히 얘기 해준다.
햐.. 놀랍고 귀여워서
''많이 아파?" 했더니 눈을 번쩍이며 손가락 '조금'을 가르치며
별로라는 듯 머리를 휘휘 젓는 데 너무 이쁘다.
얼른 냉장고에서 사탕 몇개를 끄집어 내어
선택할 기회를 주니
아이의 눈빛이 황홀해지며
앉았던 의자 - 아이에 비해서 높다 - 에서 뛰어 내리려 해서
얼른 가지고 다가가 집도록 했다.
그래서 그것을 까서 입에 넣어주니...
얼마나 기뻐하던지.. ^^*
'맛있어?' 하니 고개를 끄더끄덕...한다. ㅎ
"얼마나?" 하니.. 멀쩡한 쪽 손을 공주 패션의 옷 사이로 들어내더니
최선을 다해 높이 치켜든다..ㅎ
'야....
정말 맛있구나....' 하니 열심이 끄덕인다.
참 이쁘다.
정말 귀엽다.
사람은 저렇게 이뻤었다. ^^;
그런 그아이가
아침에 내 진료실 들어와서
엄마가 진찰실로 들어가니
가만히 서서 있는데
손가락으로 콧구멍을 파더니 그것을 얼른 삼키기도 했었다.ㅎㅎ
그런데....... 그것......마져 귀여웠다.
지금 나이의 내 아들이 저러면........'우웩'이었을 것을.ㅎㅎ
예수님은 베드로의 '칼 둘 ~!'에 담긴
그 불신앙을
그냥 이쁜 아기의 코딱지 보는 듯 넘기시는 듯하다.
그러면서 행동을 이어가신다.
40.예수께서 나가사 습관을 따라 감람 산에 가시매 제자들도 따라갔더니
마지막 '겟세마네' 기도를 위해
'습관을 따라' 가셨다.
이후 오늘 묵상 구절에 계속 '기도' 기도.. 하고 나온다.
예수님은
세상의 것을 의지함을 일체..포기하셨다.
오직 기도였다.
그 기도도 '습관'적 기도셨다.
아침에 '고난 주간' 새벽기도를 위해 일찍 출근하고 싶었다.
사정이 있어서 그러지는 못했지만..
역시 나에게 새벽은 어려운 일이긴 하다.
그런데 사모가 되기는 한다.
참....열심히 노력하였었다.
그러다가 나름의 '저항'으로 인하여
그 열정에 혼란을 겪은 수개월이 지났다.
난..
가능하면 과정 중에서 하나님의 미심에
날 맡기는 연습을 하고 싶었다.
결단으로 '삼일 금식'하지도 않았고
결심으로 'Tres Dias' 사랑의 동산 영성 훈련에도 다녀오지 않았다.
그냥........흘러가는 대로 시도했었고
과정 상에서도 부대낌도 , 깨달음도 많았다.
이제 어느 정도 맡긴다는 의미를 안다.
'기도'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의 정도를 깨달아가고 있다
기도해서 '응답'을 받아 내는 것이
옳은 때도 있지만
옳지 않은 때도 있음은
아이의 강탈이 좋을 때도 안좋을 때도 있음과 같고
그것은 그 주심과 안주심의 유무에도 불구하고
'부모'이신 하나님이 계심에는
아무 차이가 없음을
내 영혼이 진정으로 인식해가게 되어가고 있다.
참 혼란 스러울 때
기도하면 '뻥'하고 통쾌한 느낌을 자주 겪는다.
그것을 통해서
주님은 나 같은 집중력 장애의 '덜 성숙한 자 ^^; 에게
기도의 기쁨을 깨닫게 하시고
기도가 점점 분량이 늘게 하신다.
의무나 의지와 상관없는 ..........
이제 필요한 것은
'습관'화된 기도.......
조금은 '기뻐서 헌신을 결심'하는
그런 성화의 단계를 더 밟아 올라가고 싶기는 하다.
하지만, 난 나의
평생의 고정되고 습관화된 삶의 패턴을 가지지 못했음을 인식하고 있다
그래서 조금은 늦지만
이런 기다림과 맞춤,
그리고 기도의 기쁨을 기다리고 있다.
오늘
'습관을 따라 ' 기도하시는 예수님.
그리고 기도해야 만 하는 당위성,
세상의 것을 모조리 내려놓고
오직 기도로 이루어져 가는
진정한 믿음의 경지를 보고 있다.
이 사순절, 마지막 고난의 주간.
주님은 어려운 결단임을 고지하시면서
작년과 같이
나에게 ' 습관이 되는 기도'의 맛을 깨닫길,
너그러이 권고 하시는 듯 하다.
기도
주님.
내 귀하신 주님.
감사하나이다.
습관화된 기도에 대하여 말씀하십니다.
고맙습니다.
기도.
그 너무도 당연하고
마땅히 믿는 자의 공기와 같은 행위에 대하여
그동안은 좀 느슨했음을 고백하빈다.
주여.
당신의 말씀과 더불어
습관화된 기도를 사모하오니
주님의 성령으로
또 다시 제 안의 터부를 깨뜨리사
더 기도하고
매일 기도하고
매 기회 기도하는
습관을 허락하소서.
제게 급한 여러가지 문제들..
기도로 해결 받음을 보게 하소서.
아니..
해결이 안되어도
제 안에 해결되는 역사를
기도를 통해 목도하게 하소서.
주님.
내 하나님.
나의 모든 것을 다 아시는
내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받들어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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