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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우침 없이[출25:10-22] 본문

구약 QT

치우침 없이[출25:10-22]

주하인 2015. 7. 23. 09:19

 

규격도 아름다울 수 있고

그림자 같이 스며드는

내적 자연스럼도 아름답다

 

주님 안에서

어떤 것이 더 옳음은

없는 것 같다

 

원하신 대로

최선을 다한 노력과 더불어

함께 동행하시는

그분의 임재를

영혼의 지성소에

깊이 받아 들여

하나가 된

물 흐르듯 치우침 없는 믿음

 

그게 진정

성숙한 제자들이 취할

신앙자세인듯 하다

 

 


14.그 채를 궤 양쪽 고리에 꿰어서 궤를 메게 하며

 증거궤를 만드는 과정 중, 채를 꿰는 것 설명하심.

궤를 만드는 과정 중에는 아직 '손'을 대도 됨

세세하신 설명으로 궤를 만들고 채를 깨우는 것까지

아직은

다 만져도 되나..

 

 

21.속죄소를 궤 위에 얹고 내가 네게 줄 증거판을 궤 속에 넣으라

 속죄소에 궤가 얹혀진 후

'증거판'이 궤속에 들어간 다음 부터는

 

 

22.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 속죄소 위 곧 증거궤 위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네게 명령할 모든 일을 네게 이르리라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장소'가 되고

그때부터는

증거궤를 만질 수 없음을

누구도 다 안다.

그래서 '채'를 끼워 거기만 만질 수 있도록 허락하신 것.

 

 당연하지만

우리의 의식, 요식행위는

그 자체가 의미가 있지 않다.

 거기에 '하나님'이 임하실 때만

의미가 생긴다.

 하지만 그 요식행위의 간절함과 정확함과 규격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이 지시하신 대로가 아니면

역시 아무 의미가 없다.

요즘 천주교.

전혀 성경적이지 않는 방법대로

베드로가 추앙되고

마리아가 추앙되며

인간들이 그럴듯한 존재를 하나님 뜻으로 착각하며 앞세워

작금의 현상들이 벌어진 거 아닌가?

 

 오늘 주님은 나에게 무엇을 원하시는 것인가?

요식행위와 믿음 사이의 관계.. 가 아닐까?

 

나.

자유로움이 내 정말 바라는 삶의 행태다.

규격, 원칙, 조직, 강제, ... 정말 싫어한다 .

그렇다고 방임 주의자는 아니다.

원칙 안에서 '자유'가 내가 진정 원하는 자유다.

 

하지만, 교회마다 추구하는 바가

조금씩 편향되어 있음을 느끼는 데

이전에 있던 교회는 '수도적 성화' 쪽으로 너무 치우쳐서

공감하면서도 '견디지 '못하고 나왔다.

처음 영접하고 나서 십여년 신앙생활을 하고 나서.. 다.

 지금 있는 교회는

비교적 중심이 잘 잡힌 교회기는 하다 .

하지만 '선교'의 중요성과 그 당연히 하여야 하는 영적 원리에 대하여 알면서도

점차로 '전후'가 바뀌고

선교를 수단으로 모든 교회적 가치가 묻혀가는 듯하여

나름 마음에 부담이 오고 있는 상태다.

(기타 다른 영적인 이유도 있다 .ㅠ.ㅠ;;)

 난.. '성화'를 위하여

하나님이 우리를 이 땅에 만드셨음을

성경구절에서

실제로 내 세상을 바라보는 눈에 맞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것을 위하여

선교의 현장에서

삶의 현장에서

구제의 자리

기도, 교제.. 모든 것이

그 사람의 특질에 맞게 하나님께서

우리의 각 인생을 펼쳐 놓으셨고

교회는 그 과정에서 마치 학교 같이 정제된 길을 제시하고

'선교'에 동참케도 하고

' 내적 치유', '가정사역', 구휼... .등의 다양한 틀을 제공함으로

있는 자리에서 가장 합당한 '연단'의 과정을 걷도록

도움을 주고

한편으로 '정확한 의식'을 가르침으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더 가까이 될 수 있는 틀이 되는 곳이란 생각이며

그 중에 '선교'는

하나님께서 배우는 과정의 '전공과목'같은 의미의 말씀을 주시었기에

누구나 거쳐가야할 과정일 뿐이란 생각이 있다.

 하지만, 삶의 과정은

본인이 원튼 원치 않든간에

대세에 의하여 몰리다 보면

선후가 바뀌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

 작금의 교회가 어쩌면 '선교 지상주의'에 빠지는 것 같아

외적인 행태 (마치 오늘 증거궤를 만들 필요성으로 더 열심히 모습은 갖추지만')만

열심히 하고

하나님의 계명이 증거궤에 임하신 후 일어나는

진정 중요한 내적 문제 (영적 원리 , 인생은 하나님의 영으로 인한 성화의 과정... )  에 소홀히 되는

온전한 ,

치우침 없는 신앙이 되지 못하는 것 같다는 이야기다.

 

나.

다시 나... 다 .

나는 그 과정에서도 하나님께서

주님의 뜻임을 인정하고 개인적인 인도하심으로 기대하고

모든 세상의 틀에서 적응하고 지혜롭게

개인적 적용을 하여야 함을

말씀중에 깨닫는다.

 

나.

무엇이 부족하던가?

 

고백했지만 '자유에 대한 갈망'이 커서

요식, 의식 행위에 약하다.

하나님은 오늘 '증거궤'를 만드는 과정 중에는

'채' 만을 통하여 잡지 않아도 죽지 않는 허락하심을 보이신다.

어쩌면, 작금의 교회나 기독교계가

증거궤 안에 하나님의 영이 좌정하시는

외, 내적 충일함을 이룬

성장된 믿음이 아니고 아직은 부족한 믿음이시기에

그냥 보고 계신지 모른다.

 반면, 난. .처음부터 수도적 교회에서 성화를 집중하여 신앙생활을 했고

내 특성상 '본질' 만 우선하여

제대로 틀이 이루어지지 못한 상태에서

틀만을 고집하는 현 기독교 상황에 대하여

부정적인 톤을 유지하는 지도 모른다.

그러기에

난.. 할 일이 있다.

 

 ' 조금은 마음을 열어야 한다'

내 부족한 부분은

치우침 없이 바라보는 노력을 해야 한다.

마음 속에 부대낌을 내려 놓아야 한다.

가능하면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이끄는 대로 갈 필요는 없겠지만

상황이 허락하면 참여는 할 필요가 있으리라.

 

오늘 주님이 나에게

오늘 그러한 상황을 허락하시는 것인가?
아니면 마음의 부대낌 만을 내려 놓고

옳은 깨달음,

나와 다른 외적 치중에 '거부감' 없이할

치우침없는 마음 자세만을 원하시는 것인지

다시한번 말씀을 붙들고 하루를 보낼 요량이다 .

 

 

주님.

제가요.

주님도 아시다 시피

자유로운 원칙,

원칙 안에서의 자유를 귀히 여기다 보니

타인의 '증거궤 만드는 행위'만을 치중하는 행동처럼 보이는

모든 행위에 대하여 나름 '비웃는' 교만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그것.. .

다시 돌아보면 나의 증거궤 만드는 기술이 전적으로 부족한 것임도 알지만

어쩌면 핑계를 대며 편하려고 하는 것은 아닌지

돌아봅니다.

 

주여.

비옵건데

오래 습관화된 타인에 대한 묘한 '우월감'이 제게 있사오면

그런 저를 깨우치사

이 악의적 생각들을 없애 주소서.

주님.

올바른 믿음은

온전한 의식과 더불어

진정한 주님의 만남으로 이루어짐을 잊지 않게 하시사. ..

저로 하여금 행동과 믿음을 겸비한 자 되게 하소서.

 

주님이 인도하시는 대로 살길 원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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