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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울함 안에도 임하시는 주님[출21:12-36]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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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울함 안에도 임하시는 주님[출21:12-36]

주하인 2021. 9. 27. 08:29

 

12.사람을 쳐죽인 자는 반드시 죽일 것이나

 

 살인하는 자는 

'반드시' 죽어야한다고 하신다. 

공평함이다. 

 

13.만일 사람이 고의적으로 한 것이 아니라 나 하나님이 사람을 그의 손에 넘긴 것이면 내가 그를 위하여

   한 곳을 정하리니 그 사람이 그리로 도망할 것이며

그러나

용서하지 못할 살인이지만

그 안에는 '불가피'한 , 

어쩔 수 없는 그러함도 있을 수 있다. 

세상 사가 어찌 흑과 백으로만 딱.. 나뉠수 있는가?

 

 특별히 

'하나님'께 허락되어진

'고의'가 아닌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타인을 그렇게 한 ㅠ.ㅠ;; 것이 아니면

도피성을 허락하라 하신다. 

 


17.자기의 아버지나 어머니를 저주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라
 그러나, 

용서하지 못할 단호한 죄에 대하여 

말씀하신다. 

'아버지... 저주......'하는 자는 반드시........다. 

어떠한 논리와 이유를 떠나

용서 받지 못할 죄에 대하여 말씀하신다. 

 

 그것.

 

하나님의 원리에 어긋 나는 것.

(10계명, 위의 부모님...이 대표적 아닌가?)

하나님께서 배려해 놓으신 우주의 원리를 어긋나게 하는 것.

하나님 보다 앞서 자신의 이익 (고의)으로 짓는 죄.

..... 말이다. 

 

 오늘 말씀은 

그 시절, 선악의 개념이 뚜렷지 않고 

인권이란 개념이 없던 시절에 

그래서 '억울'한 일이 부지기수로 있던 시절에 

이렇게 큰 '선', 가이드라인을 쳐 주시는 것이시다. 

율법.

계명.........

어떤 이름으로 불리든

그것은 '억울함'을 없이하지는 못하겠고

'고의'로 표현되는

억울함을 교묘해 양산하는 '악'들로 인하여

분명히 '한계'는 있지만

법을 넘어서는 '하나님을 의식함'이 있다면

완전한 삶의 테두리가 아니겠는가? 

 

 놀랍지 않은가?
 하지만, 인간세상.. 에 어찌 

법이란 것으로 해결되겠는가?
  주님의 뜻,

'나 하나님'이시란 표현 처럼

우리네 인생들의 눈으로는 

아무리 힘을 써도 알 수 없는 크고 놀라운 비밀로

허락되어지는 삶의 얽힘과 풀림 들이 있지 않던가?

 

 오늘

말씀을 묵상하며

'억울하지 않게 하시려'시는 

하나님의 세심하신 배려가 느껴진다. 

 정말.. 

어찌 이 억울한 세상에 

마음대로 , 마음 내키는 대로 

내 속 시원한 대로 살 수가 있단 말인가?

 또 어찌......

내 의도치 않게 타인에게 짐을 지우지 않고 살 수가 있던말인가?

단 한번도...?

 이 삶은 어차피 

허락되어진 (하나님께 ^^*) '세상의 권세잡은 자'들의 강한 요동 안에서 

육신의 장막을 가지고 

지어진 선조 아담의 이유로 진한 영적 문제를 지니고 살아가는 세상이다. 

 

 

 곧 이사해야 한다. 

아.. 이곳 잠시 머무는 PT 거처가 계약 기간이 끝나서 

곧 다른 동으로 ...

 본집인 AY보다는 여러 살림살이.. 등이 적기는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이사는 힘들다. 

(이구.. 젊을 적 얼마나 많이 이사 다녔던지.. 나이들어서 하려니 원.. )

 

 추석연휴 후 바쁜 며칠을 보내고 다시 쉬는 주일을 맞이하여

집에 올라가 

충분히 쉬고 예배를 마친 후 내려 오기전 

작은 아들에게 아내가 10월 xx일 이사가려니 

도우라 하니.. 

잠시 투정을 한다. 

아...그건 아닌데.....하며 그랬다. 

" 어른과 아이의 차이는 자신이 누구인지 아는 것'이다. 

 네 직장의 일이 버거운 것은 분명히 알지만

 아들이고 가족이라는 것을 분명히 마음에 인식하고 있는 어른들은

 당연히도 불평거리도 나올 수가 없으리라"했더니

조용해진다. 

 

 아들.

왜 모르겠는가?

그냥.. 피곤하고 힘이든 삶이 어려워 

잠시 입으로 투덜 거린거겠지..

 나 , 아내 

아들의 투정이 왜 속상하지 않을까?

걱정도 되지.. 

다 큰 아들이 아이 처럼 (아..아주 잠시, ..ㅎ ) 그러니.. 

어쩌면 자식과 부모사이니 그렇기도 하고

가족이니 아이의 모습이 나와도 괜찮으니 그런데 

아버지가 딱 자르니 속상하지는 않을까?..........

 

 억울이라는 오늘 묵상 주제.

 

관계에서 파생되는 수없이 많은 변수와

그것을 해석하는 개개인의 차이,

그리고 사회적 버거움,

그때그때 그게 웃어버리고 좋은 흐름으로 갈수도 잇을 것이

때로는 상황에 맞지 않아 '억울한 폭팔'로도 갈 수 있음을 

어제의 작은 이벤트를 통해서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된다. 

오늘의 말씀을 근거로... 

 

 인생의 얽힘,

그리고 그 안에서 우리의 선택을 통해

그 일이 잦아지고 굳어지며

'죄'로 갈 수도

억울한 '상처'로 남을 수도

자신의 의도와 상관없는 타인에 대한 억울한 부담감으로 작용하며

그 안에서 '영적 오류'들로 인한 

잘못된 선택이 맞물리면서 

얼마나 많은 죄들이 폭팔할 수 있을지..............

 

 오늘 말씀은 

그 모든 인생 안에서 얽혀지는 

억울함과 

억울하게 하는 지도 모르며 짓는 죄,

그 미련한 깨달음에 대하여 돌아보게 하신다. 

 

 그러나... 

이 맞물리고 해결되지 못하여 쌓여가는

그래서 날이갈수록 '법'은 더 정교해지고

'죄'를 양산해가는 '율법'이 되어가지만

억울함과 억울한 죄들이 

상대적으로 자꾸만 같이 커질 수 있기에 

하나님은 

'나 하나님의 뜻'에 의하여 

그리 억울한 상황에 빠진 것일 수도 있으니

그러할 때는 피할길을 주라 하심을 통해

오직 이 불완전한 세상에서

어이없는 억울함으로 힘들 때 조차

주님께 오면

주님의 뜻으로 바라보면

다른 해결이 있으심을 말씀하심이다. 

감사하다 .

 

 

 

주님.

억울함.....요.

그 억울함을 풀길이 없어

아주 오랜 동안 가슴에 막혀 있다가 

때로는 '한'이라는 표현으로 남아 

인생들을 어렵게 하고 있습니다. 

 

주여.

그러나 그 억울함, 

어쩌면 억울하게 했지만 알지 못해서 남들에게 그리되게 했을 죄....들을

주님 안에서 이해 받는 듯 하여 감사합니다. 

 

주여.

온전하신 하나님.

억울함과 

억울함을 해결하실 분 예수님.

그리고 그 마져 '나 하나님'이라시는 

하나님의 온전한 뜻 가운데 있음을 깨달음.........

이 세가지를 '묵상거리' ,

레마로 허락하신 듯합니다. 

 

주여.

많이 바빠서 자꾸만 단속되었지만

하나님께서 오늘 제 하루에 던지신 

그 뜻들을 붙들고 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주여.

모든 것 다아시는 주님.

주님 안에서 해결되지 않을 어려움이 없을 것을 알게 하시는 주님.

그리고 매사매사 이렇게 찾아오셔서

묶여서 풀리지 않던 작은 매듭들 마져 

하나하나 풀려나가게 하시는 듯하셔서 감사합니다. 

억울함,

원망, 

분노......................

그리고 이제 주님 뜻 가운데서 그 모든 것 가지고 가면 안되는 부담감.. 마져

말씀으로 녹아나는 듯합니다. 

감사합니다. 

내 주여.

 

거룩하고 귀하신

모든 세상의 이유, 우주의 원리이신 주님을 찬양하오며

거룩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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