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천국을 향하여( 눅 21:20-28 ) 본문
일요일
전철 역
또 다른 전철역..
산이 좋은
울 집 근처 역 들 마다
아침 일찌기
검은 옷 일색의 사람들이
삼삼 오오
떼지어 산행을 합니다.
모두는 아니겠지만
주님뵈러 갈 그 시간에
검은 행렬의 무더기(^^;;;)를 볼 때마다
'지옥으로 줄서서.. '라는
생각이 내 등골을 오싹하게 한답니다.
온전히
주일을 주님께 드리지 못하는
어린 신앙인 들도 있기는 하겠지요?
주일
교회 가던 길에......
제 21 장 ( Chapter 21, Luke )
20. 너희가 예루살렘이 군대들에게 에워싸이는 것을 보거든 그 멸망이 가까운 줄을 알라
21.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지며 성내에 있는 자들은 나갈지며 촌에 있는 자들은
그리로 들어가지 말지어다
22. 이 날들은 기록된 모든 것을 이루는 형벌의 날이니라
23. 그 날에는 아이 밴 자들과 젖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으리니 이는 땅에 큰 환난과 이 백성에게
진노가 있겠음이로다
예
그 날...
바로 그 날을
명심하겠습니다.
예루살렘이 포위 당하는 날..
그날이 시작된 전조로 굳게 믿겠습니다.
그리고는
산으로 가겠습니다.
26. 사람들이 세상에 임할 일을 생각하고 무서워하므로 기절하리니 이는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겠음이라
27. 그 때에 사람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28. 이런 일이 되기를 시작하거든 일어나 머리를 들라 너희 구속이 가까왔느니라 하시더라
세상 사람 들이 무서워 기절할 정도로
두려운 날이고
믿는 우리에게도
산으로 가서
피폐한 생활을 하여야 할 정도로
곤란한 날이긴 하겠지만
어제의 말씀에도
성령의 이끄심으로
걱정하지 않아도 할 말을 예비하신다는 말씀에이어
오늘도
'일어나'라고 하시고
'머리를 들라'고 하신다.
그것은 희망을 이야기 한다.
'너희 구속'
자유로움
천국
안전... 을 의미하는
그 구속이 가깝다 하시며
위안하신다.
십여년 전
죽음을 생각할 정도로
깊은 바닥까지 내려갔다 왔다.
의료 사고.....
열심히 했음에도 .......
그때 깜빡이는 엠블런스의 빛과
띠또거리는 소리
그 안에서 안개 자욱한 그 길을 생각하면
지금도 치가 떨린다.
수 개월 간을
내 평생 두번 경험했던 - 한번은 실연 후..ㅎ-식사가 입에 들어가지 않는 경험..ㅎ..을 했었다.
그 좋아하는 '라면' 등의 밀가루 음식이
떠 입에 넣기만 하여도
'욱'하고 올라와
마치 임신한 여인의 그것과 같이
구토 증상을 유발해
거의 하루 한 입의 그 음식물로
며칠을 지내기도 했었다.
정신은 온통 황폐화되어 있는 듯
멍하고 어둡기만하고
주위 누구의 위로도
위로가 되지 못하였다.
걸어서 계단을 내려갈 때는
지옥의 동굴로 가는 길이
그럴 것 같다는
생각으로 체념한 듯 걸어갔던 장면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렇게도 암울했던
그 시간이
그래도 그래도 잘 흘러 갔다.
삶은 정상으로 돌아가고
난 그 일로 인하여
지금의
SAM 의료원,
생명존중의 기치를 걸고 운영하는
산부인과 과장으로 와 있고
주님의 주신
너무나도 귀한 은총인
찬양인도까지 하고 있다.
주님이 지상재림하기 전
그날에
세상은
지옥과 같은 두려움으로 쌓여질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도 힘들었던 나의 좌절의 시간도
지나갔듯이
우리 믿는 자,
특별히 깨어 있는 자에게는 더욱 더
잘 지나가게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 어둡던 시간에도
믿음 적은 나를 위해 기도하는 자들로
의지가 되었던 것 처럼
이제
그때보다 훨씬 더 성숙한 모습의
신앙인으로
그날을 대비한 다면
한결 기쁘게 맞이 할 수 있을 것 만 같다.
나의 십여년 전
그 환란은
개인 산부인과 의원이 저지를 수 밖에 없던
죄악으로 부터
날 탈피시키고
신앙의 훈련을 시키고자 하시던
주님의 뜻이 아닐 까
막연한 생각이 든다.
아마도 맞을 것이다.
그 분은 선이시고
그 분이 하시는 모든 일은
우리의 결국,
영혼의 성장을 위함이니 말이다.
최소한 난
산부인과 의사로서
어쩌면 쉽게 들 수 있는 유혹으로 부터
벗어날 유일한 방법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곳
이 귀중한 SAM에 와서
많은 신앙의 모본들을
보고 배우고
나의 적은 달란트를
귀하게 여기는 자들을 위해
내려놓게 하심으로
훈련시키시기 위한
큰 사랑이었음이 분명하다고
난 확신한다.
대 환란
7년 대환란
계시록에 써 있는 이야기다.
그 환란의 시작은
두려움이 아니고
우리가 일어나
머리를 들고
구속될 영혼의 기쁨을
두 손 들어 맞아야 할
기회이다.
1. 그 날은 두려움이 아니다.
견딜 수 있는 희망의 훈련 기간이다.
2. 성경 여섯 장 읽겠다.
3. 내일 찬양 악보에 주님 은혜를 기대하며 최선을 다한다.
4. 시대의 징조에 민감하게 느끼겠다.
예루살렘이 포위 당하는 날..
산으로 올라가라... 등의 말씀을 묵상한다.
5. 소유를 내려 놓으려는 시도를 한다.
기도
주님
두렵고 무섭습니다.
특별히 소유를 버리라는 것은
가슴이 써늘한 느낌이 들으려 합니다.
그럼에도
잠시 되돌아 보게 하신
개인적 '종말'과 같았던
그 어두운 시간을 돌아보아도
어두운 터널 군데 군데
빛이 있으셨던 기억이 있습니다.
한입도 들어가지 않았던
그 고통스럽던 위장증상에도
어느새
나의 모습은 평화를 찾아가며
결국
지금은
주님이 보시기에
저에게 아주 적당한 자리로
인도하여 주셨음을
기쁘게 받아 들이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을 놓치지만 않으면
아무리 힘든 것 같아도
그 때는
고개를 들고
일어서
영혼의 구속의 자유로움을
놀랍게 감탄하며
지낼 수 있음을
막연하나마 짐작합니다.
이제 깨달았습니다.
나의 고통은
앞으로 올 일에 대한
사전 경험의 의미도 있음을요.
주님
하나도 빈틈없는
주의 인도하심이 어찌 그리 감동스러운지요.
우리 주님은 살아계셔서
주님을 기뻐하고
주님의 손을 놓치않고
늘 말씀 가운데 살면
끝이 보이지 않을
어둠에도 빛이 있으리라 약속하신
그 약속처럼
늘 도우실 줄을 요.
감사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앞으로 도
그 후로도
인도하여 주실 것을 믿고 감사드립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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