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고난은 고난이로되 ( 눅 21:29-38 ) 본문
제 21 장 ( Chapter 21, Luke )
황사로 뒤덮인 아침 하늘의 해.
붉게 물든 둥근 쟁반 같습니다.
그날의 징조는
저것 보다 훨씬 암울할 것만
같을 테지요.
30. 싹이 나면 너희가 보고 여름이 가까운 줄을 자연히 아나니
31. 이와 같이 너희가 이런 일이 나는 것을 보거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운 줄을 알라
35. 이 날은 온 지구상에 거하는 모든 사람에게 임하리라
자연히 알 수 있지만
쳐다보지 않고는
알 수가 없다.
하나님 나라가 가까운 줄도
보지 않고 신경을 쓰지 않으면
알 수가 없다.
그러다가
불현듯
누구에게나 올 수 밖에 없는
그 나라의 임함을
당할 수 밖에 없다.
어제 묵상에도 나왔지만
그 날은 지독한 고통이기도 하지만
머리를 들고
하늘을 보면
구속의 날이 될 수도 있다 한다.
오늘의 '하나님 나라'라는 구절이
하나님 나라가
그런데 힘들기만 한 나라일까?...라는
너무나도 당연한 의문이 든다.
누구에게는
어마어마한 시련이자
종말이지만
누구에게는
조금 만 기다리면
하나님의 나라, 즉 천국의 삶
어제의 영혼이 구속된,
이 땅의 오욕의 삶이 아닌
멍에와 굴욕과 굴종과 좌절과 ...
온갖 마귀의 장란에 뒤흔들려진 삶이 아니라
영혼이 샬롬한
천국의 그 삶이 예약된 것이다.
그것은
다시 말하면
천국의 그 삶을 위해서는
누구에게나 허락된
고난을 겪어야만
주님 앞에 설 수가 있다는 사실을
말씀하신다.
고난은 고난이로되
장밋빛 미래의 고난,
고난은 고난이로되
감해진 고난.
고난은 고난이로되
기쁜 고난.
고난은 고난이로되
힘이 있는 고난.
문제는
우리의 정체가
진실한 기독교인이냐이다.
정말로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의 그 날을 기대하고 있는 삶을 산다는
전제가 되어 있느냐는 게 전제다.
36.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하시니라
이렇게 주님은 말씀하신다.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기 위해'
' 인자 앞에 서도록'
그러기 위해서
항상 기도하고
깨어 있으라 하신다.
다행히도
그리스도인으로 능히 피할 방법이 있다는 사실은
확실히 알게 되었지만
그리스도 앞에 서기 위하여서는
어찌 해야 한다는 것인가?
그리스도 앞에 선다는 것은
어떠한 현실적 존재감으로
다가올 수 있겠는가?
그 분 앞에 선 다는 것이
막연히 논리적 귀결이나,
오래전 부터 귀에 못박히도록 들어왔던
관념 상의 개념이 아니고
어찌해야
일상에서
그 분 앞에 선다는 것을 느낄 수가 있다는 말인가?
천국에 가서도 그렇지만
일상에서
어찌 해야 그 분 앞에 설 수 있다는 말인가?
예전에 몰랐다.
지금은 느낀다.
그게 그런 것이란 것을..
그게 어떤 것이냐면
은혜가 내 의지나 행동의 결과와는
아무런 상관없이 폭포수 처럼 밀려올 때
그 분 앞에 섰을 때는
이 보다 수천 수백배는 큰 감동이 밀려올 것이란 것을...
그것은
그 샬롬은
세상의 모든 것을 다 포기하고도
누릴 '구속'의 정체란 것을....
그렇다면
이 주님 앞에 서기 위한 조건은 무엇인가?
항상 기도하고 깨어 있으라 한다.
항상 기도하고 항상 깨어 있으라.
어찌 해야 하는가?
기도원 매일 같이 다니며
새벽같이 일어나서
잠을 하루에 두시간 이상 안자고
늘
수도자같이 금식을 밥먹는 것보다 즐겨하고
그리하면
정말 항상 깨어 있고 기도하는 것일까?
물론,
그렇기도 하다.
주님의 강렬한 인도하심에 의해서
그러할 때만은
그렇다.
그렇지 않고
막연한 영적 욕심이나
무지한 이유로
세상의 삶을 포기하고
그렇게 하는 것은 또다른 바리새인의 위험성이 다분하다.
그러면 어찌 해야 하는가?
어찌 해야 늘 항상 깨어 있을 것인가?
난 말씀에서 찾는다.
이런 것이다.
'나는 주님을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이는 약할 때 강함이라'라는 말씀대로
약한 나를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남들이 핍박을 할 때 나 그리 느껴질 때
비교가 생길 때
주님 십자가에 내려놓고
내 속을 풀어주길 기대한다.
그러면 어느새 놀라운 은헤와 평강이 나를 그득히 채우신다.
그 기쁨이 좋아서
열번 화내고 부정적 생각할 것을
7번
4번
3번.. 줄여간다.
의도적이 아니고
기쁨이 좋아서이다.
기쁨의 내용은 이렇다.
. 주님이 주시는 '은혜'는 하나님의 임재의 신호니 기쁘다.
. 나도 주님을 위하여 살 기회를 잡았으니 기쁘다.
. 일상에서 성화가 되니 기쁘다.
. 주님을 위함이 날 낮춤이고 날 낮춤이 주님으로 인하여 강해짐을 아니 기쁘다.
. 누르고 있던 멍에가 풀어지듯 자유로우니 기쁘다.
. ...................
이렇듯
매일 말씀으로
- 어쩔 수 없이 블로그 위해서라도 묵상한다.
늘 주님을 놓치지 않을 끈을 난 잡았다 -
묵상을 하고 일상에서
그 성경의 말씀을 아주 조금이나마
실행시켜 적용하는 것이
주님 앞에 항상 서 있는 것이고
늘 조금이라도 화살 기도를 하다보니
항상 기도하는 것이고
그 기도와 내 행실의 내용이
남들보기에는 시원하고 통쾌하게 보이지는 않아도
내 정도에 맞추어
주님께 부담없는 최선을 다하는 행사니
이게 깨어 있는 것과
비슷한 것이라 생각이 들어
내 자부심과
주님 앞에서의 자존감이
조금씩 높아져만 간다.
37. 예수께서 낮이면 성전에서 가르치시고 밤이면 나가 감람원이라 하는 산에서 쉬시니
38. 모든 백성이 그 말씀을 들으려고 이른 아침에 성전에 나아가더라
그런데
실은
더 필요한 것이 있다.
주님이 세상에 오신 것은
당신께서 보이시는 모든 것을
우리 들이 따라하길 원하시는 것이시다.
늘 성전에 거하시고
- 교회에 자주 거할 수록 좋다고 하신다 -
가르치는 것을 게을리 하지 않고 - 난 이 부분에서 약하다 -
감람원에서 온전한 안식을 취하시는 것이시다.
난 쉴 때도 TV나 책- 책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매달리는 게 문제다 -매달릴 어떤 것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다.
이른 아침에 말씀을 들으려 오는 백성을 본다.
이른 아침을 회복해야 한다.
이것은 영적 성장의 기폭제 역할을 할 것이 분명하다.
말씀을 절절히 사모하는 마음이 필요하다.
자꾸만 시들거려지는
말씀 묵상의 사모함이 줄어들어 가고 있다.
마지막의 그날은
마지막이지만
마지막이 아니기도 하다.
하나님의 나라는
두려움이기도 하지만
설레이는 기쁨이기도 하다.
후자가 되기 위해서는
온전히 주님 앞에 서려는 노력과
그에 따른 온전한 기쁨을 알아야 한다.
적용
1.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묵상한다.
2. 그날이 나에게도 고난 만이 아님을 기뻐하겠다.
3. 그날을 피하는 길은 주님이 주셨다.
주님 앞에 서는 장면을 묵상한다.
4. 전인치유, 주님 앞에 서는 것임을 명심한다.
기뻐하자.
5. 한사람 이상에게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그날에 대하여 전도하겠다.
기도
주님
감사합니다.
마지막 날에 대하여
오늘도
두렵지만
묵상하길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대로
그리 두려워 하지 않을 말씀을 허락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주님
오늘은 당직입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새벽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도우소서.
주님
오늘은 전인치유의 날입니다.
주님 앞에 서는 날임을 믿게 하소서.
주님
오늘 하루도
단 한명이라도
하나님 나라와 임재하실 그 환란에 대하여
말씀을 나눌 수 있도록 하소서.
주님
절 위해 약속하신 약속의 말씀을 속히 시행하소서.
주님
예수그리스도의 이름 받들어 기도합니다.
아멘
(거룩한 땅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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