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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언제 부터인가 행복하기 시작했다( 눅22:1-13)

주하인 2008. 3. 14. 12:51

제 22 장 ( Chapter 22, Luke )

 원래 눈에 보이는 색깔이 

이게 맞는 가?

 

 

 

 

 

 이게 맞는가 ~

 

3월이 다되어 내리는 폭설이

그리 달갑게 보이지 않네요.

 


1.  유월절이라 하는 무교절이 가까우매  
2.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를 무슨 방책으로 죽일꼬 연구하니 이는 저희가 백성을 두려워

     함이더라

 대 제사장 일행.

본분이 제사를 지내고 경건한 모본을 보여야 할 자들.

 

 유월절.

드디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불쌍히 여기사 

애굽의 노예 생활을 벗어 나게 하시기 위하여

애굽 바로 일행에게

징벌을 시작한 날을 기념하기 위한 날.

 

무교절

그를 기리기 위한

무교병, 즉 오염되지 않은 순수함을 의미하는 절기.

 

그때에

그들은

'음모'를 꾸몄다.

 나름의 논리는 있겠지만

하나님의 날에

하나님의 일꾼 들이

하나님에 반하는 일을

쉽게 꾸민다.

 

작금의 현실에서도 쉽게 접할 수 있는

인간의 위험함.

인간의 어리석음

인간의 흉포함.

 


 
3.  열 둘 중에 하나인 가룟인이라 부르는 유다에게 사단이 들어가니  
4.  이에 유다가 대제사장들과 군관들에게 가서 예수를 넘겨 줄 방책을 의논하매  
5.  저희가 기뻐하여 돈을 주기로 언약하는지라 
 
 명분이 있고

당연하듯이 하지만

본질을 잊은

모든 생각과 행동은 
사단과 거래하는 일이다.

사단을 기뻐하는 일이다.

대제사장의 모습을 취했지만

사단교 대제사장이다.

 

 

  
8.   예수께서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시며 가라사대 가서 우리를 위하여 유월절을 예비하여 우리로 먹게

     하라  
13.  저희가 나가 그 하시던 말씀대로 만나 유월절을 예비하니라
 
 

 예수님과 제자들은 유월절을 예비한다.
주님 예수님은

십자가를 향해

한걸음 한걸음 나가시면서

하나님의 뜻인 유월절을 거룩하게 준수하신다.

 그 분의 삶은

주님의 뜻에 거룩하게 일치되어 계시다.

   
 
 어제는

전인치유의 날이다.

여전히 수요일 늦게까지 악보를 준비했다.

목요일인 어제  찬양을 하고

환우들과 어울려 나눔을 가졌다.

 그리고,

여성병원에서 당직을 섰다.

가는 길에 마주한 원장님의 힘들지 않냐는 물음에

나도 모르게 서슴없이

' 은혜가 있는데요.. '라 했다.

준비된 말은 아니다.

가끔 기러기 아빠로 오해를 받는다.

늦은 퇴근.

2년 너머 전인치유가 진행이 되어가며

많은 분들이 파트너로 참여 했다가

안보이시기도 한다.

굴곡이 있었다.

포기하고 싶기도

왜 내가 해야 하는 지 이유도

그렇듯 찬양하는 게

남들에게 큰 도움이 될 거라는 장담이 없는 바

그리 열심히 할 이유가 있는가.. 라는 의문으로

힘든 경우가 없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그냥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처해서

그냥 하다 보니

어느 순간에

은혜롭고 행복한 일이란 개념이

나의 마음을 가득 채우게 되었다.

 

 난,

매일같이 주님 앞에 서지만

특별히 목요일은 celebration하는 시간이다.

남들과 내가 감동하고 있는 하나님을

소리내어 운율로 공감하고

그 공감의 감동을 다시

주님께 목소리로 올려드리는 행위.

 그리고,

약간의 시간과 힘이 부침을

살아있는 산 제사로 주님께 올려드린다는

느낌으로

늦은 시간까지 악보를 준비하고 있다.

움직임 하나하나가

주님을 위한 일이면서

월급도 타고 있다. ^^**

 얼마나 행복한가?

더구나, 그 일이 내 본업인 의업이면서

내 가장 잘하는 달란트를 이용한 '찬양'이니

나에게 이보다 더 훌륭한 직장과 신앙의 일치가

어디 있다는 말인가?

 

 그래서

언제부터인가

행복하기 시작했다.

 

 Business as Mission

신앙과 삶의 일치.

소명.

 이제야 난 조금씩 조금씩 이해가 가기 시작한다.

 

 이 일은 분명코 다른 분들에게는

쉬운 일은 아니다.

분명코 어렵다.

매주  쉬지 않고

더구나 주어지는 현실적 배려도 없고

위로와 칭찬

높여주는 기회도 없다.

 힘 들 수 밖에 없다.

나도 그러했다.

지금도 그러할 때가 많다.

하지만 이제는 습관화도 되었을 뿐 아니라

기쁨이 어려움 보다 크기에

그냥 가서 한다.

그래서,

댓가로 난 놀라운 이야기도 듣고

좋은 프로그램으로 영혼이 순화가 되기도 하고

좋아하시는 분들의 눈물로 내 영혼을 씻기도 하고

내 자신이 차분해지는

엄청난 변화를 겪고 있다.

위에 쓴 것처럼 B as M을 깨닫고 있으니

난 얼마나 귀한 체험을 하고 있다는 말인가?

 

 대 제사장 일행을 생각해 본다.

그들은

주님의 기쁨으로 그들의 직분을 받아 들이고

상당히 많은 시간을

그들 나름대로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처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마땅히도 주님 때문에 결정되어야 할 하루의 일과가

주님 따로

자신들의 삶 따로 나뉘어

유다를 만나고

자신들끼리 모여

음모를 꾸미는 일을 벌리던 것이

저런 엄청난 오류를 가져 올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일어나서 묵상하다 보니

요즈음이 사순절이었다.

어느새인가

난 별로 의미없는 일로 치부하고 지내고 있었다.

첫 사랑을 경험한 후

사순절 기간은

금식도 하고 보내기도 하고

그 때 험한 일도 견뎌내기도 하는 등

열심히 주님께 고정된 생활을 하려 애썼으나

이제 어느 순간 부터

의미없는 절기로 생각하고 있었다.

 

 사순절은

주님이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의 시간이다.

그 기간 동안

얼마나 많은 심적인 고통이

그 분을 사로 잡았을 지는

겟세마네 동산의 이야기로도 잘 알 수 있다.

 이 날을

오늘 하루 만큼이라도

주님의 고통에 동참 해 보기로 한다.

 이전에 했던 그것은

의무감이나 마땅히 해야할 것 이상의 열심에 지나지 않았고

그 행위 자체에서 끝났었지만

이제는

주님이 주실 기쁨을 생각하며

사순절에 동참해 보기로 한다.

사순절을 기억하고

그 사순절에 하셨던

주님의 인내와  인간에 대한 놀라운 긍휼을

묵상하며

일하며

하루를 감사 가운데 보내는

하나님에 고정된 삶의 기쁨을

다시한번 체험하기로 생각하니

가슴이 벌렁이는 흥분이

아주 약간이지만 스치고 지난다.

 

그렇다.

주님을 일상에서 온전히 일치시켜야 한다.

신앙과 삶은 하나가 되어야 한다 .

그것은

그렇게 함으로

우리의 하루가 온전하고

우리의 삶이 기쁨이고

그것은 놀라운 평강의 은혜로 넘치는 것을

알기에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어서

하는 것이다.

 

 삶은 삶이고

믿음은 믿음이다라는

이원론 적 구분은

참으로 위험하다.

그런 개념은

또다른 우상을 불러 일으키는

지름길이며

불신앙의 다름 아니다.

 

 

 

적용

 

1. 사순절을 묵상한다.

 커피를 줄인다.

 식사량도 줄이겠다.

 

 

2. 내 삶의 어려움에 대하여 감사한다.

 주님은 기쁨으로 십자가를 지셨다.

 기쁨으로 두려움에 맞섰다.

 

3. 모든 이유는 '하나님'이 되도록 한다.

 내가 이 자리에 있음도

이런 행동을 할 수 밖에 없음도

주님의 원리 안에 있음을 인정하는 순간

난 주님의 기뻐하시는 아들이다.

난 그 개념을 안다.

난 기쁘다.

난 행복하다.

 

4. 성경을 여섯 장 읽겠다.

 주님을 인정하고 받아 들이는

나름의 약속이다.

주님이 기뻐하실 때

나에게 말씀으로 임하신다.

놓지 말아야 할 선한 나의 미덕이다.

 

5. 오늘 수술에 최선을 다한다.

 

 

기도

 

주님

감사합니다.

특별히

묵상을 진행하는 동안

나 만한 행운아가 없음을 느끼게 됩니다.

신행의 일치된 삶이

아직

극 소수의 시간에서만 가능한 일이지만

그럼에도

그 원리를 이해하고

일정 부분을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방향으로 돌리는

삶의 행태를 살게 해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그것으로

저의 기쁨은 놀라울 정도로 커지고

그 일로 나의 자존감이 커지고

그 것으로 행복을 느낌을 누리는

이 행운에 대하여

감사드립니다

이제

주님 예수님의

당신 몸을 사르는 십자가의 원리가

단순한 의무에 의한

이분론 적인 행위가 아니고

주님 하나님을 진심으로 기뻐하고 전율하기에

순종할 수 밖에 없으시고

그 순종이

그 분으로 하여금

더 큰 기쁨을 가져온 다는 사실을

막연하게 나마 깨닫게 되어 감사합니다.

 

주님

나는 행복합니다.

주님

저는 행운아 입니다.

주님

주님을 알고 믿고 깨닫고

제가 원튼 원치 안튼 간에

오늘의 모습으로

충성을 보일 수 있는 환경을 허락하셔서

정말 행복합니다.

전 행복합니다

주님

 순종이 행복임을

온천하 세상에

믿는 자녀들에게

알려질 수 있기를

이 시간 간절히 소원합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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