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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으로 오라 (딤후 4:9- 22) 본문

신약 QT

천국으로 오라 (딤후 4:9- 22)

주하인 2010. 6. 11. 11:41

제 4 장 ( Chapter 4, 2 Timothy )

 

 

아마도 천국은

그 외양에 상관없이

공통점이 있을 것이다

 

거기는

생기가 그득하고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그득하고

흐르는 흐름이 막히지 않을 것이다

 

오라고

어서 오라고

부르시는 주님의 소리가

귀에 들리는 듯하다

 

삶은

아직 나를 붙들고 있어도

내 영혼은

그 주님의 부르심에

벌써

천국에 가 있는 듯 하다 ^^*

 


9.  너는 어서 속히 내게로 오라   
13.  네가 올 때에 내가 드로아 가보의 집에 둔 겉옷을 가지고 오고 또 책은 특별히 가죽 종이에 쓴

    것 가져오라 
  오늘 묵상에서 눈에 띄는 구절은 '오라'는 것이다.

사도 바울께서 자식 같은 '디모데'님을 오라라 하시는 관점이신가?

오라고 불리운 디모데님의 관점이시던가?

아침에 묵상을 해도 나에게 주시려 하시는 '오라'고 하시는 말씀의 포인트가

뚜렷하지를 않다.

올 때 '겉옷을 가져오고'

'가죽종이에 쓴 것' 을 가져오라고하신다.

아마도 가죽 종이는 말씀을 쓴 것이 아닌가 싶다.

하나님의 말씀이 적혀 있는 가죽책,

지금도 성경이 가죽으로 덮혀 있지 않은가?

성경을 들고 의관정제한 정숙한 차림으로 바울께서

디모데에게 주시고자 하는 '성경 말씀'에 대한 깊은 이해를 말하려 하시는 듯 싶다.

 

 오라고 하시는 바울이던

오라하는 부름을 받은 디모데이던

저런 '깊은',

하나님을 위한 인간적 교류를 난 가지고 있던가?

아니면 무엇이 문제인가?

무엇이 날 내 가지고 있는 하나님에 대한 기쁨의 깨달음을 막던가?

묵상할 일이다.

    
 
17.  주께서 내 곁에 서서 나를 강건케 하심은 나로 말미암아 전도의 말씀이 온전히 전파되어 이방인

      으로 듣게 하려 하심이니 내가 사자의 입에서 건지웠느니라 
22.  나는 주께서 네 심령에 함께 계시기를 바라노니 은혜가 너희와 함께 있을지어다
 주께서 '내 곁에 서서'

주께서 ' 내 심령에 함께 계셔서'

 

 그 분 하나님은 내 안에도 계시고 내 앞에도 계시고 어디에나 계신 분 맞다.

그것이 더 깊은 실제로 느껴져야 한다.

사도 바울이 인생을 걸고 전력을 질주할 이유,

마지막 감옥에서 조차 그  속에 내재된 진리에 대한 기쁨을 유지할 이유,

디모데가 스승이자 아버지 같은 바울님의 고난을 보면서도

그 젊음을 어려운 사역지에서 열정을 바칠 각오가 되어 있을 이유....

 그 이유의 정답이 이리 극명하고 정확하게 표현되어 있는 것이다.

 점차로 그것이 강하게 느껴져 간다 .

 주께서 내 곁에 서서 말씀하시기 때문이다.

 주께서 내 심령 안에 함께 계서서, 나로 인하여 잠잠히 기뻐하시고 계시기 때문이다.

그것을 내 심령이 느끼기 때문이다.

 

 오늘은 금요일.

'반휴'날이다.

작년까지 환우가 너무 밀려와서 금요일을 제대로 쉬어 본적이 없었다.

그럼에도 기쁨으로 하나도 어려움없이 에너지 넘치게 해주셔서

열심히 지냈다 .

하나님의 축복이셨다.

그러다가 올 초 부터 이해할 수 없게 환난이 겹치면서

기도 했다.

'주님 힘들어요.

 일 주일에 몇분씩 만.....' 하니

정말 그대로 된다.

환우의 수가 줄었다.

기도하면 다시 채워진다.

묘하다.

그러면서 시간은 여유롭다.

금요일 반휴라서 마음이 훨씬 여유롭다.

토요일도 근무라서 쉬지 못하지만

또 내일도 오전 만 근무니 마음이 어찌 이리 좋은지...

오늘은 하기오스 찬양 팀의 금요성령 찬양이 있어

아침 큐티를 잠깐 한 후

아예  단복인 '반팔 티'차림에 어깨엔 카메라 가방과 수영가방 만 가볍게 짊어지고

자전거를 타고 출근했다.

 일찍 수술을 마치고는 맑은 날씨 아래에서 안양천변을 타고

종합운동장에 있는 수영장을 갈 것이다.

그 길은 참 좋다.

생기가 넘친다.

사람이 그렇고 자연이 있다.

가는 길은 운동이 된다.

내 삶.

그리 다른 의사에 비하여 경제적 성공 ^^;; 이나 명예에는 거리가 멀지만

누가 내 기쁨을 감히 짐작이나 할 수 가 있을까?

나.

나에 맞추어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느낄 수 있다.

아주 가까이.

 아침 출근하며 괜히 열나는 환우에 대하여

말씀에 맞추어 기도하며 나왔다.

마음 속에서 들려하는 '불안'한 예후에 대한 의심을 말씀으로 물리치며 나왔다.

출근해 보니 며칠 간 안떨어지던 원인불명 열이 급전직하다.

늘... 그렇다.

주님은 내 기도를 받으시려 하시는 듯 하다.

기도를 해도 불안이 클 때는 들려지지 않는다.

믿음이 커진다는 느낌이 들면 이유를 알수 없이 좋아진다.

희한하다.

매사 매사 조금씩 조금씩 주님은 훈련을 시키시는 느낌이시다.

그것을 오늘은 말씀에서 저리 표현을 하신다.

'주님은 곁에 계셔서'

'주님은 내 안에 계셔서'

나와 대화 하시듯 내 기쁨의 기도를 받아서

내 믿음에 따라 믿는 만큼 들어주신다.

 '믿음'의 눈에서 보아야 알 수 있을 정도의  삶 속에 약간의 변화들을 허락하심으로

그 분은 그렇지 않아도 믿을 수 있는 경지까지의 

믿음을 훈련시키시기 위함이신 듯 싶다.

그것을 그 분은 말씀을 통하여 드러내신다.

 

어제 저녁 세장의 말씀을 봉독하다가

가슴깊이 느껴져 오는 부분이 있었다.

누가 복음에서 예수께서 공생애 시작 전 사단의 시험을 받는 구절이시다.

사단은 그 분의 어려움을 빌미로 교묘히 감성을 자극하며

그 분을 시험 (temptation - 유혹)한다.

그러자 그 분은 '말씀'에 나와 있는 대로 하라고 단언코 거절하신다.

두번 이나 그러자 사단은 말씀을 교묘히 흔들어 꼬아

다시한번 혼란을 조성한다.

그러자 그 분은 정확한 말씀,

말씀의 정수로서 그를 물리친다.

 그렇다.

말씀이 중요하다.

사단은 감정의 왜곡을 물고 들어온다.

하지만 말씀으로 대적해야 한다.

말씀은 하나님이시다.

말씀은 성령의 감동으로 씌어진 것이며 하나님이시다.

그게 말씀에 씌여져 있다.

말씀의 기본은 '하나님'이시다.

하나님 우선이시다.

그러기에 말씀을 가까이 함은 하나님을 곁에 모심이다.

하나님께서 곁에서셔서

그 분에게 여쭈어 보고 자문을 구하면

그 분은 하나도 틀림없이 이리 저리 대답하여 주신다.

 '우울한가" 답답하던가" ......무엇이든 혼란 스러울 때에도

말씀을 놓치지 마라.

말씀은 붙드는 순간 영혼을 평강으로 채운다.

기쁘고 가벼워진다.

힘이 있어진다.

삶이..

 

 아내가 수년전 십수년의 수고의 댓가로

생일 선물로 무엇을 줄까하니 '돈'을 달라고 하였다.

그래서 '얼마'를 주었다.

그러니 경제에 그리 관심도 없고 한 그 니가

'주식'을 몇주 사서 묻어 두었다.

 어떻게... 라 하니 하는 이야기가 있었다.

'마지막이 가까워지면 사람들이 필요로 할 것,

 주님이 우리나라를 제사장 국가로 쓰려 하시면 부흥시켜주실 항목.......'

맞는 이야기다.

그래서 끄덕이고 그냥두었다.

어쨌든 선물이니 뭐.......

그런데 그게 수배나 뛰었다.

그리고는 며칠전 차 바꾸는 데 도움이 될 정도의 이익을 냈다. ^^*

 아내.

기도하는 여자다.

아내의 기도제목이 지금까지 놀랍게 이루어지는 것을

난 내 인생에서 직접 경험하고 있다.

심지어는 숫자까지 들어 맞으면서 불가능한 것 처럼 보이는 것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아 왔다.

그러니.. 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의심할 수가 없었다.

또한, 내 인생에서 꿈틀대는 하나님의 영감이 느껴지는 데

어찌 부인할 수 있으랴?

하나님이 곁에 계시고

하나님이 안에 계시고

내 서있는 곳이 거룩한 곳인 곳을 난 아는데..................

 출근하여 잠시 환우가 뜸한 사이에 난 서서 기도를 했다.

아니, 나도 모르게 서 졌다.

두 손을 들고 창문 쪽으로 향하여 서서 묵상했다.

그렇게 되었다.

내 몸 속 그득한 곳에 알수 없는 익숙한 기쁨이 날 그렇게 했다.

 묵상을 했다.

가죽 책.

겉옷.

정결한 마음으로 '하나님 말씀'을 준비함.

 그 마음으로 ' 오라' 기에  기쁨으로 '가는 '  사도바울님과 디모데님의 영적 교류.

그게 가슴으로 느껴진다.

하나님을 깊이 만나는 자들 만이 알 수 있는 감정의 흐름이

기쁠 일이 그리 많지 않은 내 삶에

폭이 큰 감동으로 다가온다.

 

 

적용

1. '오라' 라는 단어를 묵상하고 하루를 보내겠다.

 . 사도바울님의 디모데에 대한 오라라는 마음이시던가?

 ' 디모데님의 오라라는 사도바울님에 대한 마음의 관점이시던가 ?

 

2.  말씀을 세장 읽겠다.

 말씀은 주님의 곁에 계심이다.

 내 안에 계심을 느끼는 통로다.

 

3.  인내하겠다.

 내 사는 이유는 주님 영광드러냄이다.

 내 위치에서 남에 대하여 주님의 영광으로 초대하는 기회가 되도록 한다.

 

4. 하기오스 찬양 팀.. 내 오라라는 기쁨을 교인들에게 조금이라도 전달하도록 하겠다.

 나를 부르신 하나님과 대화하는 듯이 하겠다.

 목소리 낮게 하자.

 

5. 주님 내 곁에 계시고

  주님 내 심령 안에 계심을 묵상하자. 

  깊이.

 

 

기도

 

 주님 .

귀하신 주님.

오라라 부르시는

그 부름이 참 기쁘게 들립니다.

마치 살아계신 나의 하나님이 날 부르시는 소리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나로 하여 내 기쁨을 알게할

내 자식들과 영적 후대 들에게 알게 해주도록 하는 메시지 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주님.

아시는 바대로 저 아직 깊은 나누어줌을 못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아니지만

또 사도바울 처럼은 아니 겠지만

평범한 삶속에서도 내 달란트 만큼 깨달은 내 자유의 기쁨을

누구에겐가 나누어주고

그들을 배려하는 자가 되었으면 합니다.

그게 선교의 삶이든

그게 가르침의 삶이 되든

어떤 것이든 절 막아서는 것을

성령의 불로 태우시사

지금껏 , 그 불신의 강골 강퍅한 자를 여기까지 인도해오신 그 능력과 그 사랑으로

다시 한번 제이후의 삶도 인도하실 줄 믿습니다.

그때까지 '오라'시라는 그 부르심을 늦추지 말아 주소서.

그 부르심을 망각하지 않도록 도우소서.

예수 그리스도시여.

제 자식들.

꼭.........................도우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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