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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하는 의인(시 33:1~12)

주하인 2006. 12. 28. 11:29

2006-12-28 시편 (Psalms) 33:1~33:12
 

1. 너희 의인들아 여호와를 즐거워하라 찬송 정직한 자의 마땅히 할 바로다   
9. 저가 말씀하시매 이루었으며 명하시매 견고히 섰도다 
12. 여호와로 자기 하나님을 삼은 나라 곧 하나님의 기업으로 빼신 바 된 백성은 복이 있도다 
  

 "너희 의인들아"

참으로 표현이 대단하다.

되어버린 의인.

그 의인이 나라신다.

확정성 예언적 권유성 멘트이신 것 같다.

 

 그런데

엊 저녁에 또 오랜 버릇이 나왔다.

얘기 도중 벌컥.

속에서는 뒤죽 박죽.

다행이도 더 이상의 진행은 없었지만 마음은 뒤숭숭하다.

이럴때 늘 겪지만

주님의 말씀이 멀리 들리고 지금껏 해왔던 모든 발전적인 행동들이 다 우스워 보이는 듯하다.

그리고는 송사들이 들리는 것 같다.

'네가...'

'그러면 그렇지'

 틀림없는 경계선이다.

주님과 사단의...

여기에서 그냥 마음을 내 연민에 맡겨 버리면 난 어둠의 질곡에서 헤메인다.

 

그런데 아침 10시 이후인 지금은 밝다.

난 십자가 앞에 내려 놓았다.

그리고 솔직히 고백했다.

시편의 묵상에서 다윗처럼 '주님이 주야로 나를 누르시는 것'같다고 한것이 솔직한 것처럼

나도 그런 마음의 부담을 숨겨서 주님 앞에 못왔지만 이제는 그냥 내려 놓았다.

그러니 다르다.

 

 그렇다.

주님을 믿고

일상을 살며

그 일상이 주님 나라가는 여정이 되기 위해서는 몇가지 전제가 필요한 것이다.

 

 우선 그런 사실을 알아야 한다.

알고 인정해야 한다.

감사해야 한다.

주님의 십자가 보혈을 인정하고 믿기만 하면 일단 선택이 되어 그런 자격이 부여되었음은 너무나도 당연하다.

불신자는 이런 자격조차 없는 것이다.

그리고는 인생 과정이 주님의 허락하신 연단 과정의 연속임을 알아야 한다.

그 연단과정은 우리의 의지 , 즉 자유 의지가 필요한 것임을 인식해야 하며

자유의지가 필요한 시점은 바로 오늘 같은 시기란 점을 확실히 깨달은 지금이다.

 너무나도 당연하지만

그 너무나 당연한 사실을 가슴으로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기에

주님은 우리의 넘어지고 쓰러짐을 허락하시는 것이시다.

 그랬다.

난 쓰러지는 시간이 점차로 짧아지고 있었다.

그리고

오늘은 그렇다.

쓰러지기 전에 나는 의지를 발휘하여 '주님'을 선택하였고

그 선택은 십자가 앞에 그냥 모든 사실을 밝히 밝히는 의지만을 발휘하는 것이다.

그러고 나면

나머지는 주님이 다 해주신다.

그 분이 보혈로 씻어 주시고

성령으로 인도하셔서

지금

솔직히 마음이 날아갈 것 같다.

내 노력과 환경과는 전혀 상관없이...

 

그렇다.

주님은 내 인생과정에 허락한 사단과 환경과 내적인 특질 속에서 갈등과정 중에

의지를 발휘하여 그 분만 기억하고 오늘 묵상처럼 오히려 의지를 발휘하여

십자가를 바라보길 원하신다.

물론 내 의지로 나쁜 생각 안하려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해서 깨끗해진다음 예수님 앞에 나가는 것은 오류다.

그냥 나와서 내려놓기를 원하신다.

그러면 해결하신다.

더 좋은 방법은 찬송하는 것이다.

 

 

 

찬송 정직한 자의 마땅히 할 바로다   

 

이렇게 하면 의인이 된다.

묵상에서는 '너희 의인'이라고 미리 예언적으로 말씀하신다.

지금 그걸 느끼고 있다.

그게 내 운명일 것을...

죄를 짓고 느끼는 것은 실로 우습지만 원리가 그럼을 느끼고

특별히 아침마다 이리 정확히 깨달음을 주시는 하나님이 귀하고

그 귀함을 개인적으로 알게 해주시는 그 주님의 관심이 너무 좋다.

특별히

오늘은 전인 치유의 날이다.

아픈 분들 앞에 놓고 찬송을 인도한다.

난 찬양을 참 좋아한다.

그 특질을 들어서 주님이 날 붙들어 오셨지만

자주 내 속의 뒤틀림이

그들을 위해

주님을 위해 영광올리는 찬송을 드리는 일을 막아 왔다.

그러면서

최근에 기도 중에 현상에 상관없이 주님 만을 위해서 찬양해야 한다는 느낌이 커져왔다.

오늘

아침 부터 뒤숭숭한 마음으로 어찌 찬양할까라는 걱정이 없지 않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주님은 다 아시고 미리미리 예언적으로 써 놓으셨다.

절묘하신 살아계신 하나님.

 

난 정직할 자다.

아니

정직한 자다.

 

어찌되었든 결국 찬양을 했을 것이다.

아니

반드시 찬양을 할 것이다.

그것도 기쁨 가운데...

 

난 예수님을 믿기에 어찌되었든 결국 언젠가 의인이 되기는 할 것이라고 생각은 했었다.

아니

주님의 말씀대로라면 난 확실히 의인이 된다.

지금도 어쩌면 날 다른 사람들 보다 의롭다 생각하실 줄도 모른다.ㅎㅎ

 

 이제 자꾸만 이런 경험이 내 신앙인생에 쌓이며

예전보다 점차 의로운 싸이클이 강해지고

거기로 향하는 내 의지의 흐름이 더욱 뚜렷해지면

 저가 말씀하시매 이루었으며 명하시매 견고히 섰도다 

 라는 고백이 사자후로 터져나올 날이 멀지 않았을 것 만 같다.

 

 그때야 말로 하나님의 기업으로 빼신 바 된 백성은 복이 있도다 

라는 나의 고백이 늘 터져 나오는 때가 될것이다.

 

 

기도

 

주님

감사합니다.

주님은 나의 예측과는 상관없이 인도하셨지만

오늘도 역시 그렇습니다.

나의 주님을 향한 아주 조그만 의지와 그 방향이 맞음을 보시고

아주 기뻐하신다는 생각이 저의 영혼을 가득채우고 있습니다.

이제

자꾸만 사단적 유혹이 내 영혼에서 엷어지고

주님에 대한 나의 선택적 의지가 커지면

난 너무나도 자유로울 듯 싶습니다.

그게

오늘 주님이 말씀하신

의인이요

복이 있는 백성이며

견고하게 서있는 당신의 자녀이며

이 땅의 심령천국이 아닐까 합니다.

주님.

그러나

그 선택의 과정은 참 힘들었습니다.

부디 혼자는 되지 않사오니

환경을 깨닫게 하시고

의지를 발휘하게 하시고

그럼에도 운행하시는 성령의 충만함에 대한 유혹이 강렬하게 하시며

용기를 허락하소서.

결단을 또 허락하소서.

주님의 복된 삶을 이 땅에서 누리게 하소서.

예수님.

도우실 줄 믿습니다.

거룩하고 귀하신 그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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