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진정 슬퍼할 것은[사 23:1-18] 본문
6. 너희는 다시스로 건너갈지어다 해변 주민아 너희는 슬피 부르짖을지어다
두로와 시돈의 멸망에 대하여 나온다.
번영했던 곳이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그러한 쇠퇴는 모든 자의 슬픔이 될 수 있다.
그래서 계속 슬피 부르짖으라는 말씀이 나온다.
12. 이르시되 너 학대받은 처녀 딸 시돈아 네게 다시는 희락이 없으리니 일어나 깃딤으로 건너가라
거기에서도 네가 평안을 얻지 못하리라 하셨느니라
현실의 아픔.
절망.
갑작스러운 소실.
상실감.
그것.......... 견디기 힘든 어려움인 것 사실이다.
원래 가난한 자들보다 부자들이 가난해지면 사망률이 높아지는 것은
'희망'이 소실 됨이다.
상실감이다.
그것.. 우울함을 가져온다.
인간의 어려움은 가지고 못가짐이 아니다.
비교 탓이다.
이전과의 비교.
주위와의 비교.
그것이 아주 많은 사람들에게 '상대적 빈곤감' 내지 상실감으로 인한
분노와 우울을 가져온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는
세상에서 가장 못사는 나라 중의 하나인 스리랑카다.
그런데 .. 이러한 행복감도
그들에게 비교가 생기기 시작하면
사촌이 땅을 사면 사라지기 시작하는
안정적이지 않은 것이다.
fragile, 깨지기 쉬운 것이다.
하지만, 진정 더 어려운 것은
하나님을 뵙지 못하는 ' 메마름'이다.
은혜없음이다.
어디에 가도 '평안을 얻지 못함'이다.
그것.........
하지만 '하나님을 만난' 자들에게 해당하는 것이다.
불신자들이나, 불신자와 다름없는 모양 만의 기독교인들에게는
그것을 어찌 설명할 수 있을까?
그들은 알지못하는 '메마름'의 갈증에 허덕이며
서로의 살을 탐닉하고
온갖 '우주적이고 ' 자연의 원리를 허무는 파괴의 몸부림을 치다가는
결국 죽어가고야 만다.
오늘 날 세대에
수도 없이 남의 살을 탐닉하는 자들이 나타난다.
어린 아이들의 그것.
타인의 부인의 그것.
자기와 '성별'이 같은 자의 것을 탐닉하는 자들..........
성경에서 보면 소돔의 천사들을 상관하려는 '남자'이웃들이 나타난다.
그들....
그 갈증......
어디에가도 평안을 모르는 그 영혼의 불타는 허무함과
안정이 없는 불신의 영혼이
찾다 찾다가 이 세상에서 지옥의 것을 이루어 내는 것이다.
지옥은 다름이 아니다.
나의 기쁨을 위해서
타인의 살,
타인의 영역,
자연의 영역
'신의 영역
신의 계율을 파괴하고자 하는 몸부림이 넘치는 자들이 모인 곳이다.
목사님이 설교하셨다.
종말의 가장 마지막 증상이 ' 성적 타락'이라 한다.
동성연애.
아동..
강간..
진정 슬퍼할 것은
'하나님의 평안'이 '죄'로 말미암아 없어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어떠한가?
그러한 평안은.........
난 누린다.
내 죄에 불구하고 주님과 아직도 깊이 누린다.
다행이고 감사하다 .
하나님께서 이런 말종을 이렇게 아끼시는 것이 놀랍고 감사할 따름이다.
또,
나는 '세상의 것'을 상실하고도 과연 평안을 누릴 자신은 있는가?
비교는?
솔직히 자신은 없다.
하지만 그렇게 될 수 도 있을 것이라는 희망적인 느낌은 있다.
점차로 소유에 대하여 내려 놓는 연습을 하고 있다.
차도 15년 된차.......그냥 타고 다니고 사랑스럽다.
자식들.........주님이 그렇게 하신 것임을 ..믿으려 하고
덜 가슴아파하려 한다.
돈 쓰는 것...... 덜 하려한다.
얼마안되는 부동산의 가치 하락...... 덜 가슴아프다.
내 위치..... 부원장까지 했었다.
그리고는.........^^;;
관계적 궁핍함....아직은 아프다.
많은 시간을 소요하면서 조금씩 받아 들이긴 하고 있다.
솔직히 많이 아팠고
혼란이 있었지만
주님의 뜻 가운데 조금은 받아 들이고 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소유가 줄어들기 시작하고
말씀의 깨닳게 하심의 은혜 안에서 상대적 비교감이 줄어드니
가벼워지기 시작한다.
평강이 커지기 시작한다.
'네가 어디가도.........'가 아니다.
늘 풍요로왔던 두로와 시돈의 갑작스러운 멸망은
마치 끝없을 것 같았던 '부동산 불패'와 '
현대 문명'의 삐가 번쩍할 듯한 거짓 영광이
기후의 변화와 더불어 찾아오는 종말적 느낌의 황폐함과
무엇 그리 다르랴?
이제 조금씩 준비한다.
그래서 그 과정 중에 아직도 조금씩 조금씩 아픈 것........
그냥 받아 들이고 내 안에 중화 시키려 한다.
문제는 '못먹는 떡'으로 치부하면 안되고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중심 잡힌 내려 놓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일 뿐..............
주님.
제 아버님.
매일을 말씀안에서 세상을 바라보려
몸부림 치지만
오늘 묵상 역시 참으로 이해하고 적용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느즈막히인 지금에야
또 이해가 갑니다.
주님.
비교 하지 않게 하소서.
아니.. 점차로 줄어드는 제 자신의 아주 심했던 비교와
그로 인한 매일매일의 타는 듯한 거짓 상실감 덩어리에서 벗어나
이제는 많은 부분 낮아짐을 기뻐하게 되었습니다.
주님.
기도 탓입니다.
말씀 탓입니다. .
살아계신 하나님의 이끄시는 진실 탓입니다.
주여.
감사합니다.
제 언제나의 평안을 예언하시기에 .. 감사합니다.
주여.
더 큰 평강으로 절 이끄시기에 감사합니다.
주여.
오늘 조금 깨닫게 된 것,
더 큰 삶의 풍미로 나오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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