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셉나 공[사 22:15-25] 본문
17 . 나 여호와가 너를 단단히 결박하고 장사 같이 세게 던지되
18. 반드시 너를 모질게 감싸서 공 같이 광막한 곳에 던질 것이라 주인의 집에 수치를 끼치는 너여
네가 그 곳에서 죽겠고 네 영광의 수레도 거기에 있으리라
하나님께서 얼마나 셉나가 못마땅 하셨으면
단단히 묶어서 장사같이 온힘을 다해 던지셧을까?
모질게도 꾸깃 꾸깃 싸서 공처럼 동그랗게 만드신 후
사막에 집어 던지셨다 한다.
그가 '주인의 집에 수치'를 끼치는 자기에 그리도 못마땅해 하신것이다.
던져진 그 광막한 곳에서 죽을 때까지 있겠고
추억만 파먹고 의미없이 죽어갈 것이다..........라는 것이
오늘 묵상의 내용이시다.
우선 '나'
하나님께 수치를 드리는 자는 아니던가?
어쩌면 나는 스스로 나를 그렇게 느낄 수 있을 수 있지만
여기서 셉나가 말하는 '수치'는 적극적인 악일 것이다.
그렇다면..나 스스로 어쩌면 수치심 많은 자이긴 하지만
주님의 수치는 되지 않을 자니..
그렇다면 '하나님의 공' 을 투포환 던지듯이 하시는 것을
구경만 하면 되리라.
나에게는 비교적 '홀가분한 하루'가 될 것이고
어쩌면 '위로'의 묵상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며
입가에 조금은 미소가 걸리는 듯하다.
우선... 하나님이 마치 '투포환 경기장'에 들어서신 선수의 모습처럼
당신의 모습을 묘사하심이 재미가 있다.
경기장에 펼쳐지는 '긴장감'.
온 전신에 불끈 거리는 '힘'.
하나님의 노가 흐르는 힘.. 얼마나 굉장할까?
그리고는 손에 분가루를 묻히고는 툭툭 턴다.
손에 '공'을 잡는다.
셉나를 종이처럼 접는다.
얼마나 힘들까? ^^;
모질게 감싼다시니 이리 저리 사방으로 접히는 셉나를 생각하니
등골이 오싹하기도 하고 고소하기도 하다.
비명이란 비명은 다 지르겠지만 그것과 상관없이 돌돌 말려져
공처럼 단단히 쌓여지는 ...
그리고는 힘껏 '광막'한 사막을 향해
드디어는 집어 던진다.
하나님이 사람이실까?
그냥........ 날아가다 떨어질까?
아마도 떨어지려면 '후~'하고 입바람 부시면 떨어지려던
셉나공은 다시 한참을 어지럽게 공중에 나르고
떨어지려면 말씀으로 '날아라' 하면 또 날아가......
어쩌면 다시는 돌아오기 힘들 만큼 먼 지구 반대쪽까지는 날아가지 않았을까?
떨어질 때의 아픔은?
떨어지고 나서 꾸깃꾸깃 접혔던 몸이 펴지는 장면은 또 어떨까?
기어코 정신을 차려 살펴본
주위 환경은?
옛 영화를 추억하며 산다는것은
쉽게 죽지 않는 척박한 삶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
잠시 글로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그림처럼 '셉나공'이 만들어질 때의 그 처참한 고통,
날아갈 때의 두려움.
떨어져서의 암담함...
지구 반대편까지 날아가는 장면.....이 재미있게 상상이 된다.
그는 죽기보다 힘이 들었겠지만
하나님이 한번씩 보여주시는 성경 속의 멀티미디어를 보면서
난... 웃음이 나옴을 금할 길 없다.
나.
수치스럽고 죄많은 자임이 맞다.
아직도 없어지지 않는 '급한 성질'..
주님이 몸바쳐 돌아가신 '나'스스로에 대한 아직도 남은 낮은 자존감...
툭하면 나오고 싶은 '거짓성'..
하나님의 그 사랑과 가르치심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사람'들을 깊이 사랑하지 못하는 이 메마른 심성......
차가운 비판.....
솔직하게 내 부족함을 내 놓고 고백하면
세상 어디에서도 다가올 자 없을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십자가' 보혈로 날 구원하셨음을 인하여
내가 그 사랑을 감격하여 아직은 주님의 뜻대로 '선하게 되려는' 바램을 가지고 있고
주님의 사랑에 '반응'을 조금 한다는 이유로
이런 '홀가분한' 축복을 허락하셨다.
어제는
마음이 좀 어지러웠다.
깊은 외로움과 절망 비슷한 생각이 날 사로잡으려 했다.
얼마든지 논리적으로 이해가 가고
이전에는 수도없이 되풀이 해왔던 부정적 결말의 논리였다.
이제는 아님을 알지만 말씀을 집중하려는 내 노력을 뚫고
부정감이 몰려 오려 한다.
운동 갔다.
차에서 내리려는데 비가 모질게도 내린다.
그래서 돌려 '기도원'으로 향했다.
잠시 멈추었던 비가 '기도원 예배' 시작되기 전 잠시 구석에 쪼그려 앉아
묵상하는 도중에 더 세찬 소리로 쏟아진다.
밤.
9월
외로움.
비........
그러나, 난 이미 주님의 장막 안에 들어앉았다.
내 머리를 뚫고 빗소리가 칼처럼 들어온다.
머리의 엉터리 소리들이 하나하나 찢겨 나가는 듯하다.
대신 마음이 차분해진다.
난. .. 행복했다.
눈을 감고 앉아 있는 이 밤의 성전은 '행복'이다.
누가.....이 기쁨을 알 수 있을까?
예배 전의 기도원 찬양이 뜨겁다.
옆에 앉으신 집사님도 찬양을 잘하시는 분이 앉으셨다.
난 .. 비스듬히 벽을 보고 찬양을 했다.
내 감성이 폭죽 터지듯이 터지면
그들 '고막'에 무거운 부담..ㅎㅎ.. 으로 작용할 것을
'배려' 한 탓이다.
정말 '배려'다.
그리고는 하나님께만 집중하니
난.. 내 목소리의 톤을 타고 흐르는 하나님의 은혜를 느끼는 사람이다.
이제는 내 거친 '자아'의 드러내고픔이 자제가 되고 있음을 충분히 안다.
은혜 가운데 예배를 마쳤다.
이런 '은혜'를 느낄 줄 알고
하나님을 사모하는 내가 '셉나'처럼
주님의 수치가 될까?
아니다.
난.. 그렇지 않음을 확실히 안다.
나.. 주님의 사랑을 받는자다.
과도한 사랑을 받는 자다.
이전의 '나'와는 다른 자다.
수치스럼을 잘 느끼고 얼굴을 잘 붉히던 ,
그래서 잘 흔들리던 내가 ..점차로 아닌 것이다.
그런 나에게
오늘 묵상은 쉽지 않았지만
죄지은 자의 말로를 '관조'하는 자로서의 '감사한 다행함'을 느끼고 있다.
주님은 코믹하시게도 ^^;
나를 위로하신다.
감사하다.
내주 하나님.
곧.. 수술 시간이 다가옵니다.
그래서 급히 묵상을 하지만
주님의 위로로 느껴집니다.
수치가 많았던 자지만
나 자체는 주님의 사랑 받는 자임을 깨닫게 하십니다.
주님.
제 인생이 날로 조금씩 힘이 있어짐을 느낍니다.
외견은 '자꾸만 외로워져 가고'
힘이 빠져가는
능력이 없는 세상 사람으로 느껴질 때 있지만
그래도 전 '희망'이 생기고
소망이 있음을 느낍니다.
주님을 묵상할 때마다 그래서 행복합니다.
감사하나이다.
주님의 그 사랑에 감사합니다.
셉나 공의 그 결말을 묵상하며
그럴 불신자들에게 조금의 복음이라도 전할 하루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주여.
아침에 전한 몇 분들에게
결단을 주소서.
거의 결신할 듯한 KHJ님을 붙드소서.
교회나가게 된 YR청년을 축복하소서.
제 아들 KJM KJH도 축복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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