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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 불쌍히 여기시라 외칠 것들[마20:29-34]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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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 불쌍히 여기시라 외칠 것들[마20:29-34]

주하인 2014. 3. 18. 09:14

출근 하는 아침

드디어

긴 겨울을 지나 보내고 

봄이 가까이 오고 있음을

저 꽃봉오리가

먼저 알립니다

 

지난 모진 역경의 시간동안

좁은 봉우리 속의

저 꽃은

얼마나 많이도 

 불쌍히 여기시라

외치고 또 외쳤을까요

 

 

오늘 저들은 

온 우주와 자연의 주인이신

주님의 불쌍히 여기심을

드디어

받아내고야 말았습니다

 

소경이 눈을 뜨듯

그들도 수줍은 속살을

조심스레이

세상에 드러내는

이 아침입니다

 

감동입니다

 

주여

오늘 저도

 불쌍히 여기시오소서

이리 외치고 또 외치오니

제게도

새로운 우주의 개벽을 목도하는

완전한 새 날 새 하루

체험되게 하소서

 

내 주여

 

  
30 맹인 두 사람이 길 가에 앉았다가 예수께서 지나가신다 함을 듣고 소리질러 이르되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다윗의 자손이여 하니

 맹인 둘.

그들은 불쌍한 사람이지만

주님께 '불쌍히 여기시라'  외치는 순간

그들은 '대단한 사람'이 되었다.

 

 

31 무리가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더욱 소리 질러 이르되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다윗의 자손이여

   하는지라
 그들이 '무리의 꾸짖는 소리'를 물리치고

'더욱 소리질러'

'불쌍히 여기시라'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라' 외치면서

그들은 '용기있는 대단한 사람'들이 되었다.

 

왜 대단한 자인가?

'예수님 만이 유일한 길임을 아는 진리를 느끼는 심성'을 가졌다.

'자신들이 소경이고 고쳐야할 절박한 것임을 아는 지혜'를 가졌다.

'오직 예수 밖에 고치실 분이 없음을 믿는 믿음'이 있었다.

'자신이 어떠한 자들인지 아는 자기 인식'이 있었다.

'불쌍히 여기라 외칠 실행력' 이 있었다.

'무리의 공격을 물리치고 진리를 향하는 열정'이 있었고

'그들의 방해를 뚫을 용기'가 있었다.

 

 난 예수님 믿고

예수님의 은혜를 깨달아 아는 자로

저들 같은 믿음과

저들같은 절박함과

저들같은 용기와

저들같은 자기 인식과

저들같은 절절함이 있던가?

있다면 무엇이고 없다면 왜 인가?

 

 

32 예수께서 머물러 서서 그들을 불러 
 

그들같은 믿음을 보시고야

예수님께서 '불러 주실 것'이시다.

예수님은 언제나 내 곁을 지나시고

낸 곁에 있으시고

내 안에 있으시며

난 주님의 살아계심을 알고 있는 자 이지만

왜 저들 같은 응답이 내겐 부족한가?

 

 

33 이르시되 너희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이르되 주여 우리 눈 뜨기를 원하나이다 
 
왜 주께서 내게는 침묵하시는 듯 느껴지는가?

무엇이 문제이던가?

살아계시지 않아서는 아님은 당연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 느껴지는 게 , 그래서 실족의 위험을 느끼는

나를 포함한 수많은 표현하지 못하는 그런 그런 신앙인들의 이유는

아주 간단한데 이유가 있지 않은가?

내 부족함을 이유로

저렇게 외치지 않기에,

대부분의 표준적 행동에 맞추어 나의 믿음을 분명히 하지 못하기에

예수님이 기다리고 계심이다.

 

내가 할 일이 있지 않은가?

'주여..

내가 눈을 뜨길 원합니다.

영적인 눈을 뜨고 믿음의 눈을 뜨길 원하나이다

 불쌍히 여기소서.

 내 주님'.. 이래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것이 '주님의 응답'을 듣는 '유일한 길'이다.

살아계신 하나님..이라 외치면서 난 어쩌면 그렇게도

믿음이 더 절절하지 않았던지?

저게 옳은 것이 아니던가?

무조건 '뗑강 '부리는 모습이 아니다.

'불쌍히 여기시라'는 외침에

그의 믿음이 다 녹아 있고

그 믿음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란 이야기다.

 

 

34 예수께서 불쌍히 여기사 그들의 눈을 만지시니 곧 보게 되어 그들이 예수를 따르니라

그제야 주님은 '불쌍히 여기시고'

보게 되리라..

 

나.

오늘 무엇을 원하시던가?

 

내가 '불쌍한 존재'라는 것을 먼저 인정해야 한다는 .

내 오랜 어려움.. 만 가지고 일차원적으로 타인에 비해 내게 부족한 것만 가지고

불쌍히 여기는 '자기 연민'의 그 불쌍함 말고....

하나님의 원리 ,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데 그리하지 못한

눈감긴 맹인 같은 부족함.

도저히 어찌할 수 없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그것.

그 것의 존재는 난 인정한다.

그런데 더욱 절절히 그러한 내 '죄성'을 불쌍히 여겨야 할 것임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 앞에 더 가까이 가기 위하여서는

이제는 그 내 '눈감긴 죄악'들을

스스로 더욱 더 불쌍히 여기는 절절함이 있어야 한다.

이제는 그래야한다.

 

 지난 밤 집에서 자기 전, '배려의 힘'이라는 책을 보았다.

배려하는 것.

그 당연함을 통하여 세상에 성공하는 자들을 보여주는..

세상의 성공학 책이기도 하지만

그들도 그러하는데 믿는 나는... 하며 깨닫는 바가 많았다.

그것을 '하나님의 이름 ' 때문에 세상에 접목하면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지 않을까 싶은..

 그래서 방법론을 생각해보았다.

여러가지 생각이 있다.

환우들이 오면 내 진찰실 문이 옆으로 미는 문이라서 할머니 들은 많이 힘들어 하신다.

그래서 그럴 까...더 웃어야지...더 친절해야지..

그런데 어느새 난 다시 딱딱한 사무적 의사의 모습으로 돌아와 잇었고

내 속에서는 귀찮게 하는 ㅜ.ㅜ;; 

그들에 대하여

나름 판단을 내리고 정죄하고 예전의 탁탁 설명만 논리적으로 잘하는 ㅜ.ㅜ;;

나로 돌아 와 있음을 보며

배려는 ' 깊은 마음에 그들에 대한 긍휼함과 입장 바꿔보는 배려의 마음' 이 우선되지 않으면

힘듦을 다시금 깨닫고 있었고

그런 .. 하나님의 일이라 생각되어지는 일까지 하지 못하는 것이

은혜를 체험하고 말씀을 알면서도 하지못하는 '소경' 같은 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했다.

진정 불쌍히 여길 것은

알면서도 습관화된 죄성에 묻혀 되풀이 되는 내 어이없음이다.

이제 알았으니 '불쌍함'으로 인정하고

주님 앞에 나가서 더욱 온전한 마음,

실제로 주님 때문에 타인을 더 깊이 사랑하는 마음으로 바뀔 수 있는

마음을 우선 달라고 외치는 게 내 할일인 것으로 깨달아 져 간다.

 

이제 주님 앞에 나가야 한다.

누가 뭐라든, 세상이 어떻게 가든

난 그 불쌍한 눈가리는 죄들, 결점들을 가지고

주님 앞에서 절절히 외치어야 한다.

 

'주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연민을 불쌍히 여기시고

그보다 주님 앞에 그 오랜시간 서 있었음에도 들지 않는

타인에 대한 주님의 원하심을 따르지 못하는 이 어이없는 것을 불쌍히 여기소서.

주님의 십자가를 기쁨으로 지지 못하는 이 눈 멂을 불쌍히 여기소서.' 해야 한다는 것이다.

 

 오늘

분명히 불쌍히 여겨주셔서

그러한 '맹인'들의 눈을 뜨게 하심을 보고 있다.

그것.

그들을 통해 보여 주시는 것이지만

말씀을 통해 '레마'로 다가오실 때는

나에대한 예언이기도 하심은 묵상의 시간들이 지나면서 알아차리고 있다.

기대해야 한다.

오늘 내가 믿고 열렬히 올바로 기도할 때

주님은 나를 분명코 불쌍히 여기실 것이다.

그것이 '믿음'이다.

그 믿음이 없음도 나에겐 '소경'같은 일이었다.

믿고 불쌍히 여기시라고 매달리는 기도를 해야겠다.

 

 

주님.

진정 불쌍히 여기시라 외칠 것들은

내 부족한 것들이나

스스로 들어 앉아 있는 자기연민의 틀이 아닌 것을 깨달았습니다.

진정 불쌍히 여기시라 외치고

내가 소경임을 깨달아야 할 부분은

하나님의 원하심,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서

내가 마땅히 세상에 대하여 베풀어야할 기본조차도

내 자기 연민의 틀에 갇혀서

알면서도 그들에게는 함부로하고

또다시 회개하고 또 되풀이하고.. 하면서

속절없이 늙어가는 것이 '불쌍히 여김을 받아야 할' 불쌍한 것들이 아닌가 싶습니다.

주여.

이제 인정하고 외칩니다.

제 그런 부족함을 인정하게 하소서.

그래서 주님 뜻대로 살수 있도록

제 눈을 뜨게하소서.

긍휼의 눈을 가지고 타인을 배려하여

하나님이 기뻐하심을 절절히 지켜볼 수 있는

그런 제가 되길 원합니다.

주여

불쌍히 여기시라 외치길 원하시오니

믿고 기도합니다.

믿음 마져 부족하여 기도가 부족했사오니

기도의 시간이 더 늘어나지 못했었음을 불쌍히 여기시고

저로 체험하는 매일 매일 되게 하소서.

주님.

오늘 특별히 불쌍히 여기시라 외치고

불쌍히 여김을 받아

눈을 뜨는 소경을 보고 있습니다.

말씀을 제것으로 받습니다.

제가 소경이었음을 고백하고

불쌍히 여기시라 외치고 기도할 때

주님께서 불쌍히 여기시어 기적으로 눈을 뜨게 하심을 보고 있사오니

그것이 제게 대한 레마인 줄 믿습니다.

기대합니다.

제가 기도할 때 주님이 역사하실 줄 믿습니다.

제게 필요한 부분들...

주님이 아시오매

자녀들 문제, 환경 문제, 관계문제

병원의 현실 문제...

그 러함도 다 기대합니다.

기도하는 동안 이루어질 줄 믿습니다.

특히 오늘 눈뜨게 되는 소경이 바로 제가 될 지 믿고 기도하렵니다.

예수님.

절 사랑하시어 절 위해 십자가에 달리신

내 구주 하나님이시여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믿사오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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