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자연스러움 & 자유[마21:1-11] 본문

신약 QT

자연스러움 & 자유[마21:1-11]

주하인 2014. 3. 19. 09:17

 

춥지요

높으니 어지럽지요

가진 것 없으니 슬프지요

아무도 없으니 서럽지요

 

나귀새끼 타신 예수님

그분의 초췌함 만을 보면

제 일상의 현상과

어찌 그리 닮았는지요

 

하지만

높으니 시원하고

가진 것 없으니 맑고

아무도 없으니 걸릴 것 없고

하늘을 배경으로하니

주여

아름답기 까지 하네요

 

주 안에서 바라본 나는

어떤 것도 자연스럽고

어느 것도 아름답습니다

 

그렇습니다

자유롭습니다

그게

자유가 맞는 듯 합니다

 

간구하옵기는

매일 그렇고

매시 그렇고

늘 그렇길 원하오니

 주여

저를

성령으로 강하게 붙드소서

 

 

 

1 그들이 예루살렘에 가까이 와서 감람 산 벳바게에 이르렀을 때에 예수께서 두 제자를 보내시며 
 예수님도 제자들 중에서도 '편애'하는 선택받은 '소수'가 있으시다.

 

2 이르시되 너희 맞은편 마을로 가라 곧 매인 나귀와 나귀 새끼가 함께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내게로

   끌고 오라
 그런데 그들에게 원하시는 것은

큰 것이 아니다.

의무를 지워 주시는 것도 '큰 '것이 아니시고

(큰 의무는 큰 성령의 도우심이 있으시지만....)

예수님 자신이 받으시는 것도

'큰 것' 이 아니시다.

나귀 새끼시다.

 

3 만일 누가 무슨 말을 하거든 주가 쓰시겠다 하라 그리하면 즉시 보내리라 하시니 
 그 적으신 원하심.

그 소박하고 겸손하심.

그 마져 '즉시' 순종 하지 못함은

우리에게 문제가 있다.

하나님 나라를 너무 우리의 의식으로 왜곡시켜 기대하거나

주님의 말씀을 너무 큰 다른 기대를 가지고 봄은

아무 볼것없는

인간들의 인식의 오류일 뿐이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방식대로 임하시고 원하신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뜻에 따르셔

하나님의 방식대로 임하시는 나라이시며

거기에는 세상의 큰 부요도 상관없고

수도자나 과도한 청빈 주의자의 기대도맞지 않으신다.

 

 

6 제자들이 가서 예수의 명하신대로 하여 
 우리.

특별히 '내'가 해야 할 일은

모든 내 나름의 기대와 예측과

가지고 있는 기대치를 내려 놓고

그리고 또 하나,

자신의 특질, 특성, 성격이라 안된다 포기하지 말고

마음을 깍아 내리는 각고의 노력이 필요하더라도

예수님의 명하신 대로

( 그 명하심은 성경의 말씀 가운데 임하시는 성령의 운행으로 받아 진다.

 레마로..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 )

그냥 흐르듯 받아 들이는 것...

그냥 순종하는 것....

그것이 필요하다.

 

 

7 나귀와 나귀 새끼를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그 위에 얹으매 예수께서 그 위에 타시니
보라 .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나귀 새끼를 타시고 가셨다.

안타셔도 무방하시지만

 

8 무리의 대다수는 그들의 겉옷을 길에 펴고 다른 이들은 나뭇가지를 베어 길에 펴고
세상은 그들이 메시아라 원하시는 분께

최선을 다한 모습을 보이고 싶어한다.

겉옷을 펴고 나뭇가지를 잘라서라도 그들이 가진 방법으로 존경을 표하길 원했다.

그것을 더 멋진 황금마차로 하지는 아니하시더라도

새끼 나귀로 그들의 바램에 맞추어 주셨다는 것이다 .

 

 

9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무리가 소리 높여 이르되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
 보라.

호산나..호산나..

온 예루살렘이 떠나가듯 호들갑을 떠는 것을

그 분은 그냥 받으셨다.

 

그렇다.

예수님은 '소박하고 가장 검소하고 겸손'한 모습을 띄었지만

나귀를 타심으로 그들을 존중하셧고

그들의 '호산나'하고 반기는 메시야 기대하는 축제의 마음에 거부하지도 않으셨다.

 

 또한 세상은 예수님이 비록 이해할 수 없는 낮은 모습이어도

그 분을 '호산나' 호산나 예수로 받아 열광하기에

아무 지장이 없었다.

 

그렇다.

하나님은 내게 '큰 '것을 원하지도 않으시고

점점 더 겸손하고 낮아지기를 원하시지만

세상의 것도

걱정하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방법대로 받을 영광 받을 것임을 보여주신다.

 

그렇다.

하나님은 '자연스러움'이시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닮길 원하신다.

하나님의 특별한 소수들에게는 특히 그러신다.

그래도 그들에게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영광의 날들은 있을 것이다.

 

 

자꾸만 세상의 신문을 들여다보고 주위를 바라보면

노후에대한 걱정들이 산더미처럼 밀려옴을 본다.

준비...

의사지만 해야할 일들이 아직도 산더미처럼 남아

자식들을 여의고

내 지금 , 아주 최소한의 것으로 지금도 살아가지만..(술도 안먹고,차도 없고, 골프도 중단하고...ㅎ..)

준비할 것을 준비하려면

아마도 최소한 10년은 더 지금처럼 열심히 살아야 할 것만 같다.

그럼에도 내 육신은 버걱거리기 시작한다.

나름 그리 생각지도 않았지만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시간 안에서

아주아주 자연스럽게 수영도, 자전거도 타게되어

과식과 일정치 않은 수면을 취함에도 (산부인과 의사의 특질상 굳어버린... 거기에 예술적인 감성이 있어서 밤을 좋아하는..ㅎ ) 나름 잘 갖추어진 체력을 허락받았음에도

이전보다 훨씬 피곤함을 느낀다.

회복도 잘되긴 하지만..

거기에 의업환경 마져 최근의 의사파업을 유발할 정도의

극단 상황까지 이르르며

오래전 부터 힘들어 오던 남자 산부인과 의사들의 입지들을 생각하면

10년의 변화없는 유지.......????........

그리 기대하기 힘들 수도 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지내온 예수님과의 동행기간을 보면

내가 예상하지 못했던 부분들을 이끌어오셔서

때로는 활짝, 때로는 시원하게 때로는 그대로, 때로는 힘들게......도

지금까지 이 자리에서 굳건히 잇게하심을 보면서

앞으로도 그럴 수 있음을 믿게 된다.

 그러면서 오늘 말씀에

예수님이 보이시는 모습은

내가 바라는 '호산나의 탄성과 축제와 멋진........' 의 성대함 속에서도

진실을 보는 자들의 눈에만 보이는

'나귀새끼 타신 예수님의 성결함, 청빈함'이 그것이시다.

 

그렇다.

어쩌면 내 삶은 '나귀새끼 ' 타듯 점차로 낮아지고 약해지고 가난해질 수 있다.

하지만 그것과 상관없이 세상은 나를 보면서

대단하다 멋지다.. 할 수 있다.

그러할 때 내가 해야 할 것은

이 이해할 수없는 두 극단의 괴리에 당황해 할 이유도 없고

세상의 호산나에 얼굴 벌겋게 붉히며 가슴 뛰며 같이 흥분할 이유도 없을 것이고

없는 자신의 모습에 그리 당혹해 할 일도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자연스러움이시다.

그러면서도 그 안에서 자유시다.

그분은 소유를 낮추심으로 '청빈함'의 자유를 누리셨고

타인의 자신에 대한 기대에 대하여 자르고 가르치시는 대신

그들의 호산나 외침, 메시야 기대 축제의 감성에 부응하셔서

그들을 잠시나마 이 세상에서 희망을 가지게 하시는

온전한 '배려'의 마음으로 대하셨다.

그것.

어느하나 막힘이 없이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사이에서 자연스레이 흐르심이시다.

그것이 자유다.

비록 '곧 당신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운명'이심을 절대로 '아시는' 분이심에도 그러하셨다.

그것은 인간으로 가능치 않은 심성이시다.

난.. 그분의 이러한 이율배반적, 도저히 양립하실 수 없는 감성이

그 분 안에서 공존하시면서도

그 들이 내 생각, 일반적인 인간의 감성으로 가능치 않은

절대의 흐름, 막히지 않고 물흐르듯 흐르심을 보면서

그것만 가지고도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미루어 짐작하는 계기가 된다 .

 

나.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오늘 모습을 보이시며

당신의 그것을 사모하고 닮으라 하시는 것 같으니 ( 더 바라기는 ' 닮으라시니.. ' 라고 표현하는 내가 되길 원한다 ) 그것을 레마로 받아

오늘 그리 될 수있길 원한다.

 

갈등 ,

세상과 세상

세상과 하나님 나라.

나와 타인.........속에서의 가치의 충돌.

비교적 하나님 나라 쪽으로 더 커진 비중이라 느끼지만 ^^**

아직도 내 안에 상존하고 있는 양 극의 가치들의 충돌 속에서

오늘은 더

하나님의 원리

'예수님의 자연스러운 자유'를 닮길 간절히 기대하고 기도해 본다.

 

 

 하나님.

주님의 십자가를 지고

주님의 모든 겪으신 갈등을 제가 질 십자가로 달게 받기로 결심하면서도

상황에 부딪치면 여지없이 아니라 몸부림치며

십자가를 발로 차서 멀리 떨구는

그런 연약함, 악함이 제 안에 아직도 상존합니다.

주여.

그런 나를 보시며 오늘 아침..

이 양극의 대칭에서

하나님의 뜻에 따라,

하나님이 십자가를 지시라 명령하심으로

예루살렘에 들어가시면서 보이시는

그 모습을 저에게 보이십니다.

아..

감탄입니다.

어찌 예수님은 그 최저로 낮아지시는 나귀새끼 타심과

호산나의 그 열기, 그 땅에 깔아대는 겉옷의 과도한 충성을

아무 얼굴 변화없이 받아내시는 지요..

그들의 심성이 곧 십자가에 예수께서 달리시면

180도 표변해서 '죽이라' 손짓하고 달려들 아귀같은 모습들임을

하나님이신 예수께서 다 아실 것이시면서도

그들의 그 양극의 죄들을 다 아무렇지 않게 받아내실 수 있으셨던지요.

 

전 오직 그것 만 가지고도

하나님의 뜻 때문에 그러실 수 밖에 없는 예수님

하나님이시기에 무조건 사랑이실 수 밖에 없으신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주여.

'제가 그랬습니다.

지난 밤.. 조그만 말 실수에도 자르르 반응을 하며

욱하는 마음이 올라왔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가지고 마음 흔들리고 있습니다.

제 어이없음을 .. 타인의 어이없음을

제 마음은 쥐어 뜯으려하고

저 스스로를 핍박하려 하고 있음을 또잠시 느꼈습니다.

그렇지만, 오늘 하나님은 말씀을 통하여

두 양극에서 자연스럽게 흐르시는 예수님을 대비시키시며

그 자유가

오직 예수님의 철저한 하나님이신 품성과

절대의 하나님을 믿으신 믿음과

그 분의 천국의 품성의 향기 탓임을

가만히 있어도 느끼게 해주시며

그 모든 것이

제게 곧 허락될 감성들,

너무도선한 감성,

이땅에서 예수님의 향기를 대신 뿜어낼 제자신의 운명 ^^* 임을

제가 오늘 레마로 깨닫고 받습니다.

주여.

제게 힘을 주시어서

주신 말씀 붙들고 살게하시고

제 죄 , 주님 닮지 못한 죄

그것을 선택한 죄를 용서하소서.

내 주 예수

모든 가장 본받아야할 것의 가장 근본 적인 것을 가르치시는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