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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대접하는 기도의 집[마21:12-22]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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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대접하는 기도의 집[마21:12-22]

주하인 2014. 3. 20. 08:42

 

비교와 걱정

욕심과 불안으로

주님의 거하시는 성전인

제 영혼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어 가고 있는 중이었음을 고백합니다

 

주여

점차 제 안에

여유와 평화

안정과 기쁨

사랑과 은혜는

줄어 들어 가고 있어

주님 대접할 영적 양식이

줄어져가고 있었습니다

 

주여

다시 깨닫사오니

믿고 응답받는 기도의 사람

기도하는 집

바로

제 영혼이 되길 원합니다

 

도우소서

내 주님이시여 

 

 

13 그들에게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드는도다 하시니라
 주님의 집.

나는 주님의 성전.

내 집은 기도하는 집

나는 기도해야 만 한다.

예수께서 내 안에 거하시는 데 그분께 무엇을 바쳐야 하는가?

무엇을 드시도록 하고 무엇으로 대접해야 하는가?

'기도' 가 아닌가?

 

강도의 소굴.

기도 대신 난 무엇으로 나를 채우나?

하나님의 성전이신 나를 난 무엇으로 더럽히는가?

그래서 '강도의 소굴'로 탄식하시는 것은 무엇인가?

 

아침마다 먼저 출근하면 기도하고 말씀을 블로그에 올리고 ... 나서

신문 읽고 환자 보고.....하던 오랜 습관들이

슬슬 무너지며 이제는 출근하자 마자 신문 먼저 읽고

커피 마시고 이리 저리 뒤적거리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어디나 , 심지어는 기독교신문을 표방하는 KM일보까지도

'포토란'이 젊은 여인들의 나신이나 자극적인 것들로 그득~하다.

그것들.

난.. 직업이 직업이다보니 별 것 아닌 것들로 생각되어

이리 저리 부담없이 클릭하다보니

비록 크게 빠지진 않는다 하여도 ^^:

어느새 나도 모르게 시간을 보내고 있으니................................

세상의 젊은이들이 '영성'을 생각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집중하는 것은

그 넘치는 '性 호르몬'과 '세상에 대한 관심'으로 인해 가득한데

얼마나 힘든 세상인가 상상이 간다.

 어쨋든, 이제 세상은 몸이 편한 대신

영을 '강도의 소굴'로 만드는데는

너무나 쉬운 세상이 되었다는 이야기다.

 

나.

어찌 해야하는가?

기도해야 하지 않는가?

말씀이 있으시니 그래야 하고

기도를 해야 예수님을 대접하는 것이 되지 않는가?

하나님을 너무나 귀중한 손님으로

집, 내 안에 모시는 host로서 어찌 이리도 책임을 함부로 방치하던가?

그분이 기뻐하시는 음식, 기도를 해야할 이유다.

 

 
22 너희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하시니라

 

보라.

"너희가 기도할 때"라 신다.

'나 주하인이 기도해야 함이 당연하다'시는 것이시다.

기도하지만, 더 기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더 기도는 어찌 하는 거를 말씀하시는것이던가?

'응답받는 기도'

그 기도가 나에게는 얼마나 경험이 있던가?

많지 않다면 왜 이던가?
'다 받을 수' 있음에도 받지 못함은?

' 믿고 구하지 않음'이라 신다.

믿지 못함은 내 부족한 믿음 탓이기도 하지만

'믿지 못하게 '하는 내 '강도'같은 행동 탓이기도 하다.

 

그렇다.

이제다시 기본을 회복해야한다.

믿음이 있어야 한다.

구해야 한다.

그것이 하나님을 내 안에 모시고 대접해야할 기본이다.

내게 부족한 것은 기본이었다 .

하나님의 내게 원하심은 다시 회복이심이시다.

 

 

 어제는 바로 밑 동서 아버님이 소천 하셔서 오전 근무 만하고

속초에 다녀왔다.

올해 79세.

한동안 속초 요지에 건물을 가지시고 자녀들에게 모 유명 구두브렌드 매장을 내 주실 정도로

잘 사셨던 분.

가보니 '절'에서 천도제 지내신다고 중들이 몇분 드나드셨다.

동서는 그 집의 둘째로 다행이도 예수님 영접하였으나

그리 전도나 말씀 묵상이나 기도나... 관심을 두지 않고

위로 큰 형님께서 그 큰 가산을 다 탕진하시고 마셔서

마지막엔 고생하시다 돌아가셨단다.

 

 안타깝다.

누구나 다 가고

역사 속의 그 누구도 회피해 나가지 못할 길을

그분은 떠나면서

그 삶 동안 진리를 채우지 못한채

결국 당신의 영혼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어 놓고 ( 고인께 죄송하지만... 사실..아닌가?)

또 그렇게 '회한'만 가득한

한 사람의 삶이

거기서 딱~하고 종지부가 찍혀버린 것 아니던가?


 

 오랫만에 좋은 날씨 가운데

'상가'를 가지만 속초까지 여행을 가는 기분으로

외곽 순환도로를 타고

2009년 새로 뚫린 '서울 춘천 고속도로'를 타고 가니 3시간 이면 도착했다.

이전의 그 아름답던 미시령 고개 아래로 터널이 수도 없이 뚫려서

갈 때는 그냥 통과했던 길을

돌아올 때는 답답한 마음 풍경으로 나마 풀어볼까 하고 옛길을 찾아

고개 쪽으로 넘어 오려 했으나

옛길은 아직 눈이 녹지 않아 통행 금지란다.

그래서 아쉬운 마음 부여 잡고  돌아오니 저녁 아홉시.

 

난. ..

무엇이 넘치고

무엇이 부족하던가?

내 영혼, 주님의 집에 난 기도하는 집으로 만들어 가고 있던가?

 

"믿고 기도하여 응답받는 , 진정 주님이 기뻐하시는 기도하는 집"

그런 영혼

 

그것이 내 인생 마무리할 때 내게 주어지는 이름이었으면 좋겠다.

그런데 지금 날 돌아본다.

아직 갈 길이 멀다.

그 멂 중의 하나는

거칠게 살아온,

배려 없이 살아온 예수님을 모르던,

예수님 영접후에도 진정한 기도하는 집으로 행동해오지 못하던

내 인생의 흔적으로 인하여

아직도 외적으로 회복이 보이지 않음은 아닐까?

 

비록 그 분 처럼

전혀 불신자의 영으로 세상을 떠나지는 않게 되어서 다행이긴 하지만

기도하는 집,

기도하여 응답받은 집

그래서 예수님의 향기가 솔솔 풍기는 기도하는 집으로서의 나로

세상이 내 소천한 자리에서 날 기억할 건가?

 

어찌 해야하는가?

오늘 내가 이 자리에서 기도하여 응답받을 거리가 분명하지 않은가?
내 되지 못하는 내 될 것을 믿고 기도하여 응답받아

하나님이 기뻐하실 찬거리로 대접하는 것.

그게 내 오늘 할 일이다.

 

 

주님.

귀하신 하나님의 은총으로

오늘 또 한주를 건너 뛰어 당직하는 날이 왔습니다.

주님.

주님의 살려주심과 구원해주심으로 인하여

저는 '기도하는 집'으로서 자격을 얻엇으나

그리 열심있는 삶을 살지 못했음을 고백합니다.

아니..

오히려 불신의 강도의 삶으로 부터 구원하셨으나

내 잘못된 선택으로

주님께 돌 섞이고 기름이 잔뜩 묻는 음식만 대접한

어이없는 주인 역할을 해오고 있습니다.

더 기도해야 겠습니다.

주님.. 내 마지막 날

제 묘비에 적힐 글을 생각하며

바뀔 것을 위하여 기도해야 겠습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회복을 위하여 그리해야 겠습니다.

내 주님.

은혜의 주님.

사랑의 주님.

말씀대로 살게 도우소서.

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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