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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형통함(왕하18:1-16)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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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형통함(왕하18:1-16)

주하인 2011. 8. 3. 10:00

제 18 장 ( Chapter 18, 2 Kings )

  
4.  여러 산당을 제하며 주상을 깨뜨리며 아세라 목상을 찍으며 모세가 만들었던 놋뱀을 이스라엘 자손이

     이때까지 향하여 분향하므로 그것을 부수고 느후스단이라 일컬었더라
  산당에서 예배 드림.

하나님을 경배는 하나 묘한 혼합.

 

 놋뱀.

모세를 통해서 주신 하나님의 기적의 표지이긴 하지만

그것을 숭배함은 우상이다.

 본질과 비본질의 혼합..

 

구분하기 힘든 ...

늘 보이는 것을 원하는 인간의 본성.

그게 우상이다.

 

 하나님은 하나님 자체로 기도 하기를 원하신다.

 히스기야는 그것을 깨닫고 실행한 자다.


 
5.  히스기야가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였는데 그의 전후 유다 여러 왕 중에 그러한 자가

   없었으니
 히스기야는 '그러한 자가 없었다'

즉 '전무후무'하다는 칭찬을 들을 정도로 귀한 일을 했다.

 
 
6.  곧 저가 여호와께 연합하여 떠나지 아니하고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계명을 지켰더라 
 뛰어나던 이전의 모든 왕들이 저처럼

어찌 '산당' 하나 만큼은 제하지 못했을까?

본질과 비본질의 혼합 ... 뒤죽박죽은 사단의 장난이다.

그 어리석음은 진정한 지혜가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

그는 여호와께 연합하였다 한다.

그래서 계명을 준행함이 가능했다.

 

여기에 정답이 있다.

하나님과의 연합.

성령의 충만.

성령의 내주 합일.

마땅히 우리 신앙인이 취해야 할 기본.

그렇게 되어야 갈등이 없다.

그리되어야 화평이 있을 수 있다.

오늘날 사회의 어지러움,

내 내적인 혼란은 아직 부족한 하나님과의 연합 탓이다.

 
 
7.  여호와께서 저와 함께 하시매 저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였더라 저가 앗수르 왕을 배척하고

    섬기지 아니하였고 
 '성령 하나님이 함께 계시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여 진다.'

진정한 형통함은 '하나님과의 연합으로 인한 형통'이다.  
 

 주여..

저도 주님과 연합하여 함께 함을 잃지 않게 하소서.

  
 
14.  유다 왕 히스기야가 라기스로 보내어 앗수르 왕에게 이르되 내가 범죄하였나이다 나를 떠나

     돌아가소서 왕이 내게 지우시는 것을 내가 당하리이다 하였더니 앗수르 왕이 곧 은 삼백 달란트와

     금 삼십 달란트를 정하여 유다 왕 히스기야로 내게 한지라 
 그러나,

그 형통함에 ' 앗수르 왕'의 침공이 끼어든다.

 왜 일까?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형통의 의미가 끝없지는 않은가?

앗수르는 하나님의 영역 밖에 있는 존재인가?

아니다.

아님은 '논리적'으로 보아도 확실하다는 것을 알 수있다.  
전능하고 전지하신 분께서.... !! 

 

그렇다면 다른 이유가 있지 않을까?

히스기야의 태도를 보면 금방 짐작할 수 있다.

그는 앗수르 왕이 공격하자마자

하나님을 먼저 찾기보다는 '앗수르 왕'을 먼저 찾았다.

'왕께 내가 범죄하였나이다.'

이게... '하나님 앞에 드려야 할 고백이 아니던가?

그렇다면 그의 믿음이 문제가 생긴 것은 아니던가?

 

 그렇다.

형통한 세월의 지속은 ' 영적인 나태'를 가져올 위험이 많다.

뉴질랜드의 꽃들이 향기가 적다.

겨울의 한설을 뚫고 피어난 매화가 향이 짙다.

수천키로를 넘어온 '자연산 뱀장어'가 양식 보다 훨씬 맛있다.

 그의 형통함의 지속은 영적인 게으름을 가져온 것이다.

그리하시기에 주님께서 '앗수르'를 들어 그를 치신 것이시다.

 

 고난이 옴은 '반드시'는 아니지만 내 죄 탓일 가능성이 많다.

 먼저 나의 나태나 회개할 바를 찾아봄이 먼저다.

그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은 영생의 기초를 놓치지 않길 원하시는 것이다.

 그러기에 고난은 ' 주님의 변형된 축복'이란 소리들을 많이 한다.

영생을 위하여 허락된 고난은

하나님의 눈물의 채찍이시다.

고난을 감사하여야 할 바다.

 

 하용조 목사님이 소천 하셨다.

살아계실 때 일곱번의 간암 치료를 견뎌내시고

그외에도 큰 병을 겪어 내면서도

복음으로 돌아가자고 선언하며

문화사역 등을 통해서도 많은 사람들을 주님 앞에  옳게 인도하시려

건강이 그처럼 안 좋은 신데도 불구하고 애쓰시던 큰 분이다.

그 분의 소천은 하나님의 때이시겠지만

많은 분들의 아쉬움 가운데 이루어졌다.

 

 J목사님.

아주 큰 부흥으로 전세계 제일 큰 교회를 일구신

연세 아주 아주 많으신 분.

축복..에 비교적 많이 집중을 하시고

그 축복을 기도로 받으신 분.

그 분께서 최근에 많은 '설화 舌禍' 를 이루신다.

그러더니 드디어는 어제 조선일보에 당신이 시무하시던 S교회를 대하여

위협성 발언까지 서슴치 않는 모습을 보이신다.

보면서.. 축복이 지속되지 못하면서 축복 속에 만 있던 분의

가치관의 혼란... 을 생각하게 된다.

 너무 지속되는 '축복'은 형통함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과 '타인' 뿐 아니라...

자신에게 대하여도 무거운 짐이 될 수 도 있다.

J 목사님..

그 논리의 옳고 그름을 떠나

앗수르왕에게 빌듯, 

자신의 힘과 권위에 의지하여 세상을 시끄럽게 한다.

이 세대는 '교회'만이라도 정숙하고 조용할 필요가 있는데..............

 

 진정 옳은 것이 무엇인가?

두 분 모두 우리나라 1,  2위의 교세를 자랑하는 대형교회의 목사님 들이셨다.

한 분은 비교적 젊은 65세의 나이로 갖은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의 영광을 생각하시려 애쓰신 듯하고

다른 한분은 80넘으신 놀라운 형통함 가운데 지금은 조금............모양이 그러신 분이시다.

 그 내용면, 그 분들의 인격, 영혼의 정결함.....등은 솔직히 모른다.

그러나 외견상 나타난 모습이

이상히도 오늘 보여지는 히스기야의 형통함 가운데서

그의 실수를 - 실수다.. ^^* - 통한 하나님의 교정을 보면서

같은 시기에 신문지상에 드러나신 두 목사님의 외견상의 모습을

생각하게 하시는 것이시다.

 

나.

아직도 고난이 올 때는 버겁다.

나름으로 주님의 축복으로 생각하고 기뻐하고

이제는 되었다 싶은 부분에서 마구 .. 배반당하듯 어려움이 있으니

힘이 들다.

그래도 이전 만큼은 흔들리지는 않는다.

좌절 할 것도 별로 없다.

그냥... 머리가 아프고 몸이 깊이 피곤을 느낄 때가 있다.

그러나, 그것도 말씀으로 깨달을 때는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하루가 힘이 날 때도 역시 있다.

깨달은 게 있다.

 

' 고난 중에도 하나님의 선하심은 변할 수가 없다.' 는 단순한 진리다.

' 내가 어렵다고 하나님이 선하지 않은 것이 절대로 아님'은

내가 고난 당할 때 마다 더 자주 '기도원'을 찾아

조용히 주님을 만나는 빈도가 내 생각보다 더 많아진다는 것이다.

그 때마다 주님은 이전에는 '도저히 이때는... ' 하며 은혜를 기대하지 않았을 때

깊은 은혜로 날 마중 나오심을 느끼는 것이다.

그래서... 이제 이 폭죽 튀듯, 콩 볶듯 변덕스러운 영혼의 내가

조용히 , 가만히 '고난을 스쳐보내고 ' 있게 된다.

 

 스쳐 보낸다는 표현.

방금 쓰게 되었지만 정말 정확한 표현이다.

하나님이 이 부족한 표현력의 소유자에게 손가락을 잡으시어

내가 원하지 않던 표현을 만들어내시며

막힌 감성의 흐름을 엮어내시기 '수 년' .

난.. 내 생의 어떤 어려움도 주님이 '가장 유익'을 위해서 허락하심을 깨달아간다.

비단, 그게 내 잘못의 경우로 인하여 만들어진 회개의 장이라도

어쟀든 난 주님과 점점 '연합'해가는 것을 느낀다.

주님은 날 가만히 두시지 않는다.

 고난은 가능하면 없었으면 좋겠고

이제는 그동안 누리지 못한 세상의 축복도 마구마구 누리는

그러한 '축복'을 마구 쏟아 받아 보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실은 그러한 축복을 받으면서도 겁이 나는것은

주님의 지금 주신 이 평강을 놓칠까 함.. 이다.

 

오늘 진정으로 주님께 바라는 것은

'형통함의 진정함'이다.

그 형통한 축복을 받아 누리고

모든 것 , 세상... 정신적.. 영적.. 으로 부터 자유로히 살고 싶다.

그러한 형통함이 주님 성령이 늘 나와 하나로 동행하심으로 이루어내게 되고 싶은 것이다.

 

 

적용

 

1. 형통함의 증거를 오늘 보았다.

. 큰 아들...

 누구의 잘못이든.. 그동안 조금 서먹거리던 녀석이

 갑자기 바쁜 진료 시간에 병원으로 찾아왔다.

 대화를 요청한다.

 김밥, 지가 싼 것이라고 들고와서..

 좋은 아들.

  형통함은 '하나님께 맡기고 내려 놓으니' 저리 해결시키고 귀한 결심을 하는 구나.

 그래서 관계 마져 풀어가시는 형통한 축복을 허락하신다.

 아이도 나도.. 인생의 형통한 축복을 누리길 원한다.

 얼른... 진료를 마치고 수술방으로 올라갔다.

 가져온 김밥의 한개는 먹고 - 맛은 있다.   뻣뻣해서 조금 그랬지만.ㅎㅎ -  두개는 들고 올라가

 수술 방에서 미리 준비하는 SA (수술 도움 전문 간호사 )에게 자랑하며

 저녁 대신 먹으라고 하며 자랑하니 모두 웃는다.

 기쁜일이다.

 이게 형통함 시작이 아닌가?

 

2. 기도한다.

  주여

 나와 내 자식들과 우리 식구들 모두에게 동행하시어

 늘 형통한 축복 누리게 하소서.

 

3. 성경 세장 읽으리라.

 

4. 늘 깨어 있어야 한다.

깨어 있지 않고는 히스기야의 고난을 볼 뿐이다.

 미리 기도하고 늘 깨어 있음 만이 고난이 덜한 형통함이다.

 그게 진정한 형통함이 아니던가?

 하나님이 기뻐하심이 내 기쁨이 되는 것.

  그것이 형통함의 진정함이다.

 

 

기도

 

주님.

귀하신 내 주님.

전.. 형통함의 기초를 탄탄히 닦고 있음을 깨달아 가고 있습니다.

아직은 흔들리고 순간 확 무너지긴 하지만

다시 쌓아 올리는 시간이 짧아지고 있습니다.

주님.

주님 만이 내 온전함을 이루실 수 있습니다.

히스기야님 처럼 전무후무한 신앙인이 되길 원합니다.

그래서 주님 성령님이 제 안에 폭주하시길 바랍니다.

그러나 매일 매일 말슴을 놓치지 않아

저분의 나태함을 답습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리함으로 주님 축복을 형통하게 누리길  원합니다.

주님 .. 절 부르실 때까지 그리하길 원합니다.

주님.

도우소서.

예수님 진정으로 바랍니다.

주님께서 절 도우시고 이끄셔야만 가능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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