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진정한 지혜에 대하여[고전1:18-31] 본문

신약 QT

진정한 지혜에 대하여[고전1:18-31]

주하인 2015. 11. 3. 09:29

 


 
22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지혜.

그것이 어떤 것이든 '앎의 기쁨'은 의외로 크다.

공부 열심히 할 젊은 시절에

여러 이유 (^^;;;) 로 공부를 게을리 하다가

원하는 만큼의 성적을 (실은 원함이 별로 없었다..^^;;;)을 올리지  못하며

빌빌 대고 있다가

나이든 이제..

예수님의 이유로 ,

하나님의 은혜로

성령의 도우심으로

내 인생의 전방향에 변화가 일어나면서 (그 기본은 생명의 흐름 !! )

다양한 시도를 하게 되었다 .

 '지혜'

그것을 지혜라 표현할 수 잇을 듯한

깊은 '진리'의  꿰뚫음인 듯한 어떤 밀림이 내 안에 느껴지며

상당한 부분에서 다양한 일들이 이루어지고 있다 .

 

 논문 ..

새로운 수술 기술..

그것을 학회에서 발표하려는 노력.

교수님들의 발표를 감히 어찌.. 하던 옛날에 비교하여

나도모르게 comment할 자격이 생겼다고 느끼고

발언을 통해 많은 갈채를 받았기도 했다.

솔직히.. 요번 주일에는

'부산 내시경 학회'에 가서 '포스터 발표'를 했다

내심 상을 기대를 했으나 여전히 학회라는 데의 ' 머리 복잡한 학술'적 인 거 이외

나처럼 개원가의 '실용적 기술' 논문이나 제언은 별...호소력이 없던 모양.

그래서 상은 받지 못했지만

이러한 나름의 노력을 스스로 가만히 들여다 보니

'지혜'에 대한 기쁨을 맛본 탓인 듯하고

그 지혜의 근본인 '동기와 에너지'는

다 하나님의 성령이 이유고

그 성령이 내안에서 터치하심은

나에겐 '말씀'이신 로고스 하나님의 건드리심이다.

 

 

 

23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그런데 뜬금없이 하나님께서 '다른 지혜',

똑똑한 유대인이나 합리적 성향의 헬라인들의 지혜에 대하여

죄송하지만 ^^;; 딴지를 거는 듯한 표현을 쓰신다.

 

 그리스도 십자가 이외

다른 '이방인'의 그것은 '미련'한 것이지

결코 '지혜가 아니다.' 라 시는 듯하다.

 

왜 그러실까?

솔직히 이 나이까지 살다보니

다양한 사람들을 경험하고 있다.

 

 K 중 , K고, S 대.. 등 대단한 학벌의 정치가들의 아이보다 못한 행동들...

 '의대' , 그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K, Y. .S의대'를 나온 기독의사 리더들,

그들의 열정적인 선교나 구제나 ..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꺄우둥 할 만한 '현재'나 '예상되는 어이없는 미래' , 논조등...을 보며

정말 '배우는 것',

합리를 향해 세상을 매진하는 것 이

꼭.. 그의 '지혜' ,

진정한 지혜가 어디까지 인지 규정하지 않으면

세상적이고 합리적인 '지혜'란 '지혜'가 아닐 것 만 같은

그런 확신이 드는 것은

나이가 들어갈 수록 점점더 확실해 지는 듯 하다 .

 

 그렇다면 진정한 '지혜'란 무엇인가?

난.. 당연히도 예수 십자가로 인한 구원과

그로 인한 자격을 통해 성령충만함,

흐르게 하시는 영의 자극으로 인한 '뇌'의 일정 부분의 생물학적 자극

그와 반응하는 심리적 안정과 평강에 비례하는 '능력'의 극대화,

영적 세상에 대한 앎과 확신의 폭이 넓어 짐에 따라

시선이 넓어짐...

그게 지혜라고 생각된다.

 

 2000 여년 전 ,

예수께서 '무지랭이 어부들'을 사도로 삼으셔서

결국은 세상의 대부분에 영향을 미치는 '교황' 까지 이어지는

결과를 만드신 것은 (비록 온전하신 뜻대로 이루어진 것은 아닐지라도... ^^;;)

그 지혜의 원뜻에 대한 '모델'이 되지 않을까?

 

31 기록된 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라 

 오직 지혜는 '주님'안에서

십자가 안에서만 의미가 있다.

 

오늘 십자가 앞에서의 '지혜'를

내게 말씀하시는 이유가 있으시다.

 

 엊그제 주일, 부산 학회에서

연제발표를 하시는 S대학 출신의 , D 대학 여교수 님의 발표 내용이

조금 '뒤쳐져 있는 내용'이고 '합리적'이지를 않았다.

 이 분...

지난 주 '서울 폐경 학회'에서도 부실한 내용으로

내가 한번 'comment'를 한 적이 있었고

그로 인하여 나,

교수님들을 포함한 여러 분들의 '악수'를 받은 경험이 있게한 바로 그 분이신 듯했다 .

정확히 이름은 기억이 안나지만..

조금은 어이없는.. .

 

 그런데 '세미나'에 교수로서 발표함은 어떤 의미인가?

많은 배움에 열망이 있는 젊은 의사들이나

새로운 것으로 refreshing 하려는 개원가의 의사들,

교수님들의 새로운 지식을 나눔으로 발전을 도모하는 자리가 아닌가?

거기에 한 걸음 뒤쳐지는 , 정확지 않는 본인의 생각으로

편협한 시술을 하는 것을 보고

나가서 '한마디 '했다 .

돈도 아깝고 시간도 아깝고 무엇보다 당할 ......

' x 교수님께는 질문이 하나 있고

  샘에게는 comment하나 있습니다... '

 

 그 분은 열심히 변명을 해댔다 .

이어지는 몇 분들의 날카로운 지적에 그 샘은 땀을 흘려가면서도

반박을 하기에 여념이 없었고...

다음 sessioin에서도 다른 주제로 나와 또 비슷한 ..

거기에 시간까지 세배나 끌어가며 지연시키는 등...

속상했다 .

 '지혜'에 대하여 생각을 다시한번 하게 하는 부분이 맞았다 .

 

 나.

기대만큼의 성과는 내지 못해서 내심 조금 실망했지만

이 나이에 이렇듯 개원가 의사로서

학술 세미나에 발을 올려놓고 행동을 하는 자신이

뿌듯한 마음이 없지 않았다.

지혜라는 것,

하나님이 허락하셔야 만 될 것임이 맞음을 알았다 .

 

하지만...

어제 월요일.. .

갑자기 한통의 '모 병원 산부인과장' 이라며

수술 마치고 나온 나에게 메모가 건네져 있었다 .

그의 이야기..

' 25년 전 정도에 같이 군의관 훈련 받던 L 인데 기억하느냐' 면서

'뜬금없이 ' 학회에서 봤는데

'공격적'이었다는 둥.. 거침없이 비판한다.^^;;

"아.. 예.. " 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이 그때의 내 생각을 돌아 보았지만

전화를 끊고 나니 속이 상하는 것이다.

그 분의 근무처라는  D병원에 보니

개원가에서 오래 근무하셨던 분으로 복강경에 상관없이

'분만의사'로 있었던..

그래서 학회에 처음 참가했던 분인데

아무 내용도 모르면서 '감히 교수들한테...  충청도 사투리를 진하게 써가며.. . ' 하면서

'공격적'이란 단어를 썼다 .

가만히 돌아보면 내 말투에 그런 부분이 없지 않을 것임은 인정한다.

단언적 표현을 많이 하는 내 언어 습관에도 문제는 문제는 없지 않지만

내용도 모르면서

오랫만에 만난 사람에게 저런 표현을 하는 것은

상례에도 어긋나는 일이다.

더구나.. 난.. .. 많은.. &98%^&* !!

 

그래서 메시지를 보냈다.

점잖이... 지만.. 하나하나 조목조목..

그러면서 '난.. 이랬다.   그래서 자격이 있다.' .. 했다.

 한참이 있다가 전화가 왔다.

사과의 전화.

그렇다

그래야지..

하지만 끊고나니 마음이 찝찝하다.

그 찝찝함의 근저에는

내가 이정도인데 감히...  .라는 기본 의식이 없지 않아 있음이다.

그것은 교만이다.

물론, 그 사람의 특이함에도 문제가 없지 않다 .

어디 그런 무례를...

(얘기 못할 무례한 질문도 많았다. .. 친근한 척하며 ^^;;)

하지만 내 찝찝함의 근거는

오늘 아침 말씀으로 더 확실해진다.

 

십자가 예수 밖에 자랑할 것이 어디있느냐시는 말씀이다.

모든 지혜로운 자라 자랑하는 세상의 지혜는 다 썩어질 것이다.

어디 배운자가 제대로 역할을 한 근거가 있는가?

성경에...

역사에도 마찬가지다.

 머리좋은 S.. K..Y... 의대.. K고 출신들이

대통령이 되었던 경우보다

고등학교 출신들이 더 많고 군인출신들이 더 많은 게 우리나라 현실이고

나폴레옹이나 대단한 리더들 모두 그리 대단한 배움이 있는 자들이 아니었다.

성경에는 다 못배운 자들로

하나님의 영광에 의하여 역사에 남는

간단한 모습만 보이고 있다 .

 

가장 많이 배운 사도 바울은

예수님의 강제 영접후 3년여의 광야 생활을 마치고 나서

새로운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서야

'오직 내가 전할 것은 십자가 밖에 없다'고 외친 사람이며

이전의 인간관계는 하나도 의지하지 않으면서

전 세계에 복음을 전한 분이시다.

 

나.

어찌해야 이 진득거리게 붙어 있는

내 자랑에 의한 '지혜'에 대한 갈증이 없어지는 가?

솔직히 다시 '십자가'를 짊어지며

고난과 인내를 말씀하실까봐 두렵다 .

청빈을 말씀하시고 절제를 원하시지만

난.. 싫다.

마이크를 붙잡고 사람들의 갈채와 악수를 받고

하나님으로 인하여.... 라지만

이렇게 나이들어 입지전적인 변화를 이루어낸

화려한 나의 인생기를 '간증'이라는 포장으로 우려내서

내가 드러나고 싶은게

내 솔직한 심사다 . 

죄송하게도..ㅜ.ㅜ;;;

 

 다행이도 난.. 아직 말씀을 통해서 가슴을 조리는

영적 양심이 남아 있다.

지혜에 대한 올바른 가능성을 놓치지는 않고 있다.

하나님이 나에게 말씀하시는 이 레마를

다시한번 십자가 앞에 가지고 가

깊은 기도를 해 보아야 할 것이다 .

 

내면의 심적인 defet가 있으면 그 부분을 예수님이 만지실 것이시고

영적 궤계로 인하여 그 진한 자기 사랑을 벗어나지 못하면

성령의 도우심과 예수 십자가 보혈로 이겨내게 될 것이다.

 

그래서 더 자유롭게

더 가벼히

내 자랑을 내려 놓고

오직 십자가 원리만 자랑하는

내가 되길 간절히도바란다.

 

 

주님.

내 속상함의 이유...

압니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다시 더 높아지고 픈

어쩌면 반발성 교만인지 모릅니다.

그것에 의하여 조금은 발전에 대한 동기가 될 지는 몰라도

그게 결국은 내 발목을 잡아

십자가 예수님의 앞으로 온전히 다가가는

진정한 지혜에 도달하지 못하게 할 지 모릅니다.

 

어제..

자극하는 특이한 세상의 사람으로 인하여

벌~컥 하였습니다.

내 지혜가 , 아직은 엉터리 지혜임,

그 안의 직접적인 동기가 아직도 '나'라는 자아의 발로 였음을

다시한번 확인받는 시간이었습니다.

 

주여.

그러나 십자가를 붙들고

말씀을 놓치지 않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저를 바꾸소서.

그렇지 않아도 온전히 하나님 만으로

십자가 만으로 기뻐하고 뿌듯해 할 수 있는

온전한 지혜로 절 채우소서.

내 주여.

간절히 빕니다.

 

모든 것.

가벼히 내려 놓을 수 잇길 원합니다.

은원,

인연,

자랑.

사랑,

...........

모든 것.........

다 하나님 손에 있습니다.

진정한 지혜로

절 이끄소서.

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받들어 기도하였습니다.

아멘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