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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그리 살다 죽게 하소서[고전3:1-15]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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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그리 살다 죽게 하소서[고전3:1-15]

주하인 2015. 11. 5. 12:57

 

 


3 너희는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 
  '육신에 속한자'

어떤 의미인가?

 

 인간은 '물질계'에 산다.

사도 바울이 '이 장막에서 벗어나... ' 하셨듯

사람은 육신 장막 안에 사는 영적인 존재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 하셨다.

즉,우리의 영생은 ' 영적 세계'에서

완전한 육신을 가지고 부활하는 자로서 '영원'을 사는 것이다.

 그때의 육신은 완전한 부활체로서

지금 우리가 이땅, 물질계에서 입고 있는 이 육신,

아담의 원죄적 성질을 가지고 있는 불완전한 성질을 가진

그 육신이 아니다

 

 오늘 말씀하시는 육신,

그 육신의 성질을 그대로 가지고 천국을 사는 것은 가능치 않은 일이다.

 천국에서 '삐지고 성질 부리고 ....' 상상이나 가능한 이야기일까?

 

그렇다면 '육신에 속한 자'라는 표현이 어떤 것인지

가히 짐작이 가능하다 .

이 땅에서 사는 자들,

' 마음이 시키는 대로 하라'라고 주장하는 자들의 속성대로

시기와 분쟁... 등이 맘대로 걸러지지 않고 나오는 자들이다.

 

하나님은 이런 육신의 원죄적 성질을

예수 십자가의 보혈로 씻고

매일 '성령의 도우심'으로 인하여

날로 새롭게 되어

천국에 깨끗한 자 되어 들어오는

그 과정을 보시기 위하여

우리를 만드시고 자유의지를 허락하신 것이시다.

 즉,, 육신에 사는 자이지만

주님 계신 영의 나라를 사모하는 자로 살다가

영적인 사람으로 되어서

주님 부르실 때를 기다리는 자가 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나는 누구인가?

어떠한 상태인가?

 

 영적 사람의 소망을 가지고 있지만

아직 내 안을 들여다 보면

육적인 인자들이 많이 남아 있는 자 맞다.

아직도 , 울~컥을 잘하고 슬~쩍 속도 잘 상하는 나를 보아서

난.. 아직 경계에 있는 자 맞다.

 

 마치 끈적한 trap에 갇혀 있다가

거의 다 빠져 나와 발을 빼려하지만

완전히 빼기에는 아직 붙드는 힘이 강한....

 

 


7 그런즉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니라 
 그렇다면

이런 변화,

이러한 육신에 속한 관심들이 

내 의지로 만 영적인 관심만으로  바뀔 수 있는가?

아직도 이 물질계에서 육신의 양분을 받아서 움직여야만

그 안의 내 영이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자인데..?

 그러기에 날 붙드는 유혹과 환경의 제약과 내 결정적 내면의 약함이

그 얼마나 많은가?

그 안에서 내가 나를 위하여

육신의 관심을 벗어나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일을 이루어낼 수 있던가?

누구들 처럼 '면벽'을 하거나 '목탁'을 치거나

자신의 몸을 철사로 꿰뚫고 한다리를 쳐들고

수시간 수일을 버티는 고행을 해야만 과연 가능한 일이기는 할까?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다.

맞다.

오직 주님, 오직 십자가, 오직 성령님 만이

그러한 나의 바램의 당위성을 이해할 수 있게 하시고

그러한 노력을 할 수 있는 의지를 허락하시고

그러한 결과를 성공으로 이끌게 하실 뿐이시다.   

 

 

8 심는 이와 물 주는 이는 한가지이나 각각 자기가 일한 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  
 우리의 노력은

하나님을 '영계'에서 뵈올 때

영생의 거처에서 뵙게 될 때

우리의 '상'으로 남을 뿐이다.

 

 기도하는 제목이다.

'주여.

 타인을 향한 긍휼을 먼저 생각게 하시고

그 후 의 내 판단의 옳고 그름을 생각게 하소서'

 

참 안된다

수십년을 그렇듯 '판단'하고 자르고 재는 연습을 하며 살았다 .

그래야만 내 혼란을 조금이라도 적게 하고

버텨나갈 수 있는 힘이 되기에 그랬던 것 같다.

그 안에서 내 판단의 기준에 맞지 않는 분들을

과감히 정제하여 그들이 나보다 못함을

짜릿한 쾌감으로 맛보려 햇던 어리석은 동기였던 것 같다.

때로는 그러함은 '날카로운 판단'을 내리게 해

명석한 ..이란 찬사를 듣기도 했지만

그것,

매사에 그러함은 타인들로, 나 스스로 많은 아픔이 초래되기도 했다 .

 

그래서 , 남들

착한 보통의 사람들이 너무도 당연히 하는

타인을 향한 긍휼함을 먼저 보는 판단 기준이 옳음을

이제야 깨닫게 되고

돌이켜 그리 하려 노력하나

(일정 부분 아주 많은 사랑이 내 안에 커져

 직장이나 날 아는 분들에게 위안을 받는 비율이 과거에 비해 많이 늘었다 ^^*)

내 이익이나 내 자존심에 관여되는 분들에겐

철저한 분석과 판단이 앞서는 게 사실이다 .

 

그래서 난 기도한다.

기도하지만

내 안에서 '억울할 것 같은' 어떤 밀림이 느껴진다.

 

 내 자아가 만족 되지 않는 긍휼 (영적인 사람이 마땅히 해야할... )보다는

내 육신의 성질을 따라 맘대로 하고 픈 것 같다 .

그게 내 스스로는 아무리 합리고 정의라 위안하고파도

시간이 지나 돌아보면

모두 시기와 질투와... 등의 육신적 어리석음 탓인 듯하다.

 

이제 하나님이 다시한번 힘을 주시는 듯하시다.

말씀을 따라 내 맘의 , 내 기도의 흐름의 변화를 가르켜 보여주시는 듯하다는 것이다.

힘이 난다.

 

 

주님.

오늘도 벌써 시간이 퇴근 시간 가까워져 갑니다 .

다행이도 특별히 시기나 판단이나 질투나.. 할 일은 없었지만

주님과 저만 아는

아직 놓기 싫은 육신적 성향,

그로 인한 교묘한 , 독사같은 만족감이 잇습니다.

주여.

'그것.. .

더 긍휼함으로 상대를 바라볼 기회를 주소서.

저 혼자 되지 않사오니

주여.

주님의 성령으로 절 그리하소서.

그래서 한걸음 더 천국의 삶에 합당한 자되게 하시고

주님이 절 부르실 그날,

할렐루야 두손 들고

이 무거운 '육신의 장막'을 벗어놓고

소천할 자 되게 하소서.

 

그때 되기전

모두 긍휼하고 사랑이 넘치는 시선으로 보는

영적인 사람이 되어

성령의 폭포수가 흐르는 제가 되어 있게 하소서.

 

 제가 무엇입니까?

제 자존심은 무엇이며

내 권리는 또 무엇인지요..

 

참으로 영원에 비하면 너무도 짧은 지나온, 그리고 지낼

이 땅의 시간이 무엇이고

그 안에서 내가 잘나면 또 얼마나 잘난 육신의 껍질이기에

전.. 이토록 '나' . .나.. 나. .하는 지요..

회개합니다.

내 주여.

 

주님.

이 육신의 성질을 다 누르소서.

태우소서.

보혈로 씻으소서.

 

오직 주님 , 하나님의 영으로

불붙듯 사로 잡혀

나는 죽고 나를 위해 십자가에 돌아가신

내 주 예수님 만을 닮아 가는 자 되게 하소서.

 

그래서 난.. 나 보다

하나님, 내 주 님의 기쁨이 되는 자 되길 원하나이다.

그리 살다 죽게 하소서.

내 주여.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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