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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전한 복의 삶을 위하여[대하31:1-21]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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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전한 복의 삶을 위하여[대하31:1-21]

주하인 2020. 12. 12. 11:42

 

 
5.왕의 명령이 내리자 곧 이스라엘 자손이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과 꿀과 밭의 모든 소산의 첫 열매들을

   풍성히 드렸고 또 모든 것의 십일조를 많이 가져왔으며

 리더 '왕'이 명령을 내렸고

백성들은 

귀찮을 수도 있는 일들 (우상을 깨뜨리고 모였다 돌아가고... )과

어쩌면 아까울 수도 있는 십일조를

'많이' 가져왔다.

 

 힘들고 귀찮음

명령에 대하여 거북스럽게 생각할수 있음은

어쩌면 '내' 생각이기도 하고

이전, 마음대로 살 때의 개념이겠지만

지금은 아닐 듯하다.

그 느낌은 전체적으로 흐르는 내용의 흐름을 보아서도 알 수 있고

'많이 '가졌왔다는 단어 하나를 보아도 알수 있지않은가?

 

8.히스기야와 방백들이 와서 쌓인 더미들을 보고 여호와를 송축하고 그의 백성 이스라엘을 위하여 축복하니라
 그리고는 '송축'과 '축복'하였다함에서도

익히

모든 것이 자발적이고 감동에서 나왔음을 알 수 있다.

 

 

10.사독의 족속 대제사장 아사랴가 그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백성이 예물을 여호와의 전에 드리기

   시작함으로부터 우리가 만족하게 먹었으나 남은 것이 많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에게

   주셨음이라 그 남은 것이 이렇게 많이 쌓였나이다

그것을

'복'이라 정의한다.

 

보라.

예수께서

그의 백성에게 '복'을 주셨기에

이렇게 많이, 넘치도록 쌓였다 나오지 않는가?

 

21.그가 행하는 모든 일 곧 하나님의 전에 수종드는 일에나 율법에나 계명에나 그의 하나님을 찾고 한 마음으로

   행하여 형통하였더라
 그것.

한마음으로 행하여

형통 하였다라 한마디로 '복' 의 어떠함을 짐작하게 한다.

 

 진정한 복은 형통이다.

흐름.

막힘이 없이

하나님으로 부터

리더와

백성들에게 까지

한마음으로

이전의 모든 막힘이 사라지고

기쁨으로 행하게 되는 현상,

그 형통을 근거로

이땅의 것들 조차 그 현상으로 막히지 않고 잘 풀리게 되는 것.

그것이야 말로 '복'이 아니던가?

 진정한 복이란

하나님의 말씀이 있으시니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고

그로 인하여 나머지까지 채워지고

그 과정이 마음 깊숙이, 영혼이 느끼게 되는 현상.

그게 '진정한 복'이다 .

 

 

그런데.......

난.......지금 어떤가?

형통한가?

복된자 인가?

 

조건들이 복에 맞을 이유가 있음에도

아니..

어제까지 ,바로 그 전까지

어떠한 흐름과 현상의 어떠함에도 불구하고

잘 흐르고 있었는데

갑자기 오늘 막힌 것 같은게..........

형통하지 않은 것은 아니며

그것.. 그러기에 오늘 말씀과 괴리가 있는 현상은 아니던가?
그것은 달리 말하면

난 하나님의 말씀을 달리 받고 있고

어쩌면 난 주님이 원하시는 레마가 아니고 내 마음대로 말씀을 보려함은 아니던가?
 또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근거로 하루를 살아야 한다는

내 매일의 방향을 잘못 설정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것이다.

 

 다시 돌아가보자.

 

 마음이 불안하다.

어제 몇가지 이벤트가 있었다.

개중의 하나는 내 전혀 상관없는 이유로 인하여 환우 분의 VOC가 있었다고

일찍 퇴근한 낮에 리더로 부터 '메시지'가 왔다 .

많이 놀랬다 .

담당 직원에게 연락을 하여 어떠한 상황임을 듣고 나서

역시.. 하긴 했지만

마음의 무거움이 또 가중되었다.

 하나님 앞에서의 전혀 그렇지 않음을 (그 분의 불만에 대하여.. ) 난 스스로 알고 있기에

당당할 수는 있지만

마음의 무거움은 금요 예배를 마치고 나서야 겨우 가라앉았지만

다 낫지 않은 상처의 무거움처럼 은근히 부담이 있다.

 

이것...

형통이라는 표현에 들어갈 수 있을까?
복이란 개념에 포함되는 개념은

그러한 무거움에 대하여 '괜찮아. . 별일아냐.. '.. 등 인간적 논리의 과정을 거쳐서

해결되는 것과는 또 다를 것을 말씀하시는 것 아니던가?

그래서

내 문제를 먼저 들여다 보았다.

아직 부족한 내 안의 거침..

아니면 어제 설교 말씀 중에 나온 계시록의 구절 ' 멸망의 가증한 ' 것들

오래된 내 안의 그러한 내적 걸림(상처,사단의 발톱) 탓일까?

무엇이든 '형통'함은 사실임에도

그 형통함을 흐르지 못하게 하는 장해물이면

그를 들여다 보고

진정한 복을 누릴 바탕을 조금 더 다지고

진정한 복이 어떠한 것인지 누려보라시는 

하나님의 뜻은 아니시지 않을까?
 결국 

부르실 그날이후 

아니라면, 이땅에서라도 심령천국의 삶에서 누려야할 

온전한  영혼,

형통한 복을 누려도 될 만한 자격을 가지게 하시기 위한 

그러한 말씀 말이다. 

 

하루종일 붙들고 살아내야할 명제다. 

주님은 내게 

진정한 복을 허락하셨다. 

그러함은 형통함을 통하여 느낄 수 있으리라. 

그 형통함은 외적인 어떠함과 상관없는

내 안의 흐름을 통해서 알게 하시는

하나님의 도장 찍으심일게고

그러기 위하여 

이제 얼마 남지 않은 과정 중,

내안의 오래된 저항과

그로 인하여 실제 형통함보다 훨씬 더 크게 흔들리는 습관이었음을 

깨달아 아는 것 .. 말이다. 

감사하다. 

 

 

주님.

놀라우신 주님의 뜻 가운데 

형통하여 받을 복에 대하여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기 위하여

올바른 리더로서 매일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결단의 기쁨을 깨달케 해주셨던 수없이 많은 제 그동안의 간증 기억들과 

그로 인하여 말씀대로 조금이라도 행할 결단을 통해 

자주 허락하시는 형통의 흐름으로 

매일을 살다가 

막히면 더 들여다보고 말씀에 맞추어 

사모하는 성령의 은혜를 의거하여

또 이겨내고 이겨내어

이제 ............물흐르듯 막힘없이 성령의 내주 합일을 통하여

영적 성화를 이루어

주님 부르실 그날에 

온전한 영혼되어 소천하길 기대합니다. 

주여.

깨닫게 해주신 말씀.. 

매사에 살면서 

삶에 옳게 적용하게 하시어

피하지 않고 마주하여 

매일을 더 진중하고 열심히 살아내고 

그안의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준행하여

쓰다듬으시고 위로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매일매일 더 크게 느끼는 제가 되게 하소서.

우리 자녀들, 가족 되게 하시고

믿는, 좁은 길 가는 성도들 되게 하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들어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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