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그들을 위하여 나를 위하여[대하29:20-36] 본문
20.히스기야 왕이 일찍이 일어나 성읍의 귀인들을 모아 여호와의 전에 올라가서
'일찍이' 일어났다.
사람들을 모아
하나님의 전에 올라가기 위하여 말이다.
요새 아침이 게을러 지려 했었다.
겨우 눈뜨고 겨우 몇번 움찔움찔 입술을 움직이고는
겨우 정신차리고는 '아멘'하고는 ... 출근했었다.
따뜻한 겨울 이불 속은 어찌나 그리 달콤한지..^^;
그래도 엊저녁 잠깐 보고 잔 묵상 구절에 '일찍이'일어났다는 게
눈에 들어와 자리를 박차는 데 도움이 되었다 .
아.. 솔직히 더 일찍 일어나 새벽을 깨우는 열정적 기도자는 아니다.
그냥, 더 게을러지는 것을
말씀이 있으니 '순종'하는 시늉만이라도 하는
그런 개념이다.
21.수송아지 일곱 마리와 숫양 일곱 마리와 어린 양 일곱 마리와 숫염소 일곱 마리를 끌어다가 나라와
성소와 유다를 위하여 속죄제물로 삼고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을 명령하여 여호와의 제단에 드리게 하니
그런데
히스기야님의
아침 일찍이 일어나 열심을 보이는
그 이유에 대하여 나온다 .
'나라'와 '성소'와 '유다'를
'위하여' 그랬다한다.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사람들을 몰고
'성전'에 올라가는 그 열심이
자신의 문제에 매달려 '낫게 하거나 더 달라거나 자식 잘되게... '라는
아주 익숙한 열심이 아니고
24.제사장들이 잡아 그 피를 속죄제로 삼아 제단에 드려 온 이스라엘을 위하여 속죄하니 이는 왕이
명령하여 온 이스라엘을 위하여 번제와 속죄제를 드리게 하였음이더라
온 이스라엘을 위하고
성소를 위하여.. 다.
그렇다 .
열심, 목표,...
궁극적 자아의 성취감을 위하여
세상의 사람들도 '열심히 ' 정말 열심히 살 수 도 있다.
그들도 아침을 깨우며 '영어 '배우고 '신문'돌리고.............할 수 있다 .
그러나, 그 모든 것은 '자기'를 위하여다 .
자식과 가족의 가치 (그렇다. . 그들이 알 수 있고 행할 수 있는 궁극은 가족을 넘지 못한다... 자신의 감정이 시키는 대로 모든 악함마져 마구 행하게 해 그마져 못하게 하는게 현대의 가치관이지만.. ㅠ.ㅠ;) 조차도
실은 '자신'을 위함이다.
아닐까?
결국 '자신의 만족'을 위함이다.
'인류애'를 내세워도 그안의 만족은 '자신'이다 .
그러나,
오늘 분명코 말씀하신다.
' 나라와 성소와 유다' .. '온 이스라엘'을 '위하여'........라고..
자신을 넘어서는 가치다.
이타주의와
하나님을 위하여........다.
나.
우리 같은 오직 자신 만을 알고
자신의 부귀와 영화의 사라짐을 괴로워 하고
자신의 아픔 만을 낫게
자신의 또 다른 분신인 '자식'과
자신의 보금자리인 '가족' 만을 가치로 삼고
그것 만을 위하여 사는 , 아니 살아왔던 (지금도 약간은 '사는'..^^;)
우리 '영적 소시민' 들로서
어찌 저러한 가치를 '위하여 '산다는게
그래서
그 가치 때문에
아침 일찍이 일어날 '영적 감동'을 누리며 살아 와보았던가?
그렇다.
오늘 말씀의 주제는
타인과 하나님을 '위하여'
그리도 열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그 어떤 것...
감동에 대하여 말씀하고 계심이 아니던가?
감동 만으로 되던가?
30.히스기야 왕이 귀인들과 더불어 레위 사람을 명령하여 다윗과 선견자 아삽의 시로 여호와를 찬송하게 하매
그들이 즐거움으로 찬송하고 몸을 굽혀 예배하니라
보라.
이 피곤할 아침.. 에
그들은 '즐거움'으로 찬송하고 몸을 굽혔다.
예배를 감동으로 올렸다.
성령으로 인한 감동이다.
36.이 일이 갑자기 되었으나 하나님께서 백성을 위하여 예비하셨으므로 히스기야가 백성과 더불어 기뻐하였더라
그런데
이 말씀이 더 진실되이 느껴져 온다 .
감동이란 말이다 .
아무 감동할 논리적 근거가 없음에도
말씀 중
이 일이 '갑자기 되었으나'...........라심을 보며
공감이 되고 그러함을 손뼉 한번 치며 끄덕이고 싶게 한다.
하나님이 인도하심.
뜬금없이 (죄송하다. . 내가 아는 표현이 이것 밖에 없다.^^;;)
그리하고 싶어질 때가 있고
그리할 때 모든게 순순히 풀릴 때가 있다
그리고 그 하고 싶어지는 일이
이전에는 내 오랜 습관이나 성품 상 맞지 않기에
해야될 당위성을 앎에도 뒤로 미루어 놓았던 일들일 때가 있다.
그리고 순종하여 그리하며
그것이
나를 위하고
이웃을 위하고
그리함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심을 깨닳게 됨으로
그 모든 것이
성령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예비하고 인도하신 것이심을
깨달아 알게 되는 경우가 있어
불현듯 정말 기뻐지게 되는
그러한
아주 많은 경험들.. 말이다.
그랬다.
하나님은 내 개인의 하나님이심이 맞으셔서
나와 하나님 만이 알 수 있는
그러한 수도 없는 많은 인도하셨음을 다른 누구도 알 수는 없을 것이라 하였던
그러한 방법들이
비단 나 뿐이 아니라
수도 없이 많은 '개인의 하나님' .. 께서도
그들의 삶에 그렇게 인도하셨음이다.
아.. 그 인도하심의 놀라우심이여...
하지만..
그 모든 것
'하나님을 위함'이시고
'이웃'을 위함이시지만
결국 그 모든 것은
'나를 위함' 이시었음을
그러할 때 깨닫게 하시고
점차로 삶을 기쁨이 주가 되는 기조로 바뀌게 하실 때
깊이 깨달아 짐이다.
감사하다.
주님.
말씀을 묵상하면서
'세밀하신 ' 하나님.
섬세하시고 부드러우신 감사의 하나님을 깨닫습니다.
그러면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다시한번 돌이키게 됩니다.
주여.
그랬습니다.
하나님의 원하심이
때로는 나와는 상관없이
타인을 위하여 나를 희생해야 하고
정말 죄송한 표현이지만
버거운 순종을 요구하시는 것 같지만
'말씀'이 있으셔서
순종하길 기다리시고
그 말씀 따라 작은 의지를 발휘하고
그를 기뻐하시는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맡길 때
그것이 결국
그들을 위하고
하나님을 위하여 하는 '희생'이라 생각하려 했지만
'나'를 위하는
진정한 축복의 과정이었음을 깨닫습니다.
주여.
인도하여 오셨던 주님과의 기억으로
그러하셨음을 앎에도 불구하고
자꾸만 메마르게 하고 힘들게 느끼려하게 하는
영적 흔듦이들의 ^^; 그러함을 넘어서게
또 말씀으로 인도하시니 감사합니다.
그 말씀을 통해 임하시는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이 아침 깨닫고 다시한번 주님 앞으로 옵니다.
주여
힘주시고 인도하소서.
그들을 위하고
하나님을 위한 순종이
결국
저를 위하는
제 가족을 위하는
우리를 위하는 길임을
기뻐 깨닫고 순종하게 하소서
예수 시여.
거룩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들어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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