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교만 , 결국 마주해야 함에 대하여[대하32:24-33] 본문
24.그 때에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되었으므로 여호와께 기도하매 여호와께서 그에게 대답하시고 또
이적을 보이셨으나
25.히스기야가 마음이 교만하여 그 받은 은혜를 보답하지 아니하므로 진노가 그와 유다와 예루살렘에
내리게 되었더니
26.히스기야가 마음의 교만함을 뉘우치고 예루살렘 주민들도 그와 같이 하였으므로 여호와의 진노가
히스기야의 생전에는 그들에게 내리지 아니하니라
성경의 구약 부분을 읽으며
마치 다람쥐 쳇바퀴 도는 듯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 구원 ->기뻐함 ->충성 -> 타락.-> 또.....의 너무도 되풀이 되는 모습과
그로 인하여 기뻐하시고 축복하시고
또 실망하시고
또 기대하시고
또.............를 보면서
솔직히 ㅉㅈ이 올라오려하면서도
하나님 앞에 죄임을 알고 입을 다물기는 하지만
그로 인하여 마치 '코로나'에 대하여
점차로 둔감해지는 우리를 확인하는 것 처럼 (어제 드디어 1,000명 넘었다. . 그래도 사람들은 놀라지 않는다.. )
성경의 말씀, 그 살아계셔서 꿈틀거리는 은혜의 말씀이
이제는 그리 크게 다가오지 않는 듯..
성경 볼 때 마음 속에 부담으로 다가오려 한다. ㅠ.ㅠ;
히스기야
이 대단한 열정의 왕도 그렇다 .
열정적 기도와 대단한 응답을 경험하고서도
또 금새 고난을 받고
또 회개하고 또...그러함이
다른 사람들과 큰 차이가 없다.
그런데 .. 나는 안그런가?
모든 사람은 또..
그러함을
주님은 오늘 말씀에서 보이시며
그 본질적 이유,
놀라운 기적과 이적의 응답을 경험했던 신앙인들조차
결국 실족하는 이유 중
그 마지막 까지 남아 흔드는 게
'교만'임을 보여 주고 계심이다.
(낮은 믿음의 일반 백성들은 또 다른 더 쉬운 이유도 있을게지만... )
교만.
어찌 하나님의 다 하심을 알고 체험하고 경험했음에도
'교만'할 수 있을까?
그것.
오히려 가장 의문중의 의문 아닌가?
어쩌면 교만을 '잘난 체'하는 . ..잘낫다고 착각하는 심리적 거짓 자부심 만을
의미하는 것을 넘어서는 것은 아닐까?
만일 단지 우리가 생각하는 그 교만의 범주에 만 국한된다면
히스기야님을 보아도
수없이 많은 교만에 넘어지는 예를 보아서도
그들의 그 넘어짐이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고 난 후 빨리 그리함을 보아서
그리 공감하기 쉽지 않은 부분 아니던가?
그렇다면
'교만'에 대하여 어디까지로 보면 될까?
교만은 또 왜 나올까?
왜 그리도 진득하고 쉬이 뿌리치지 못하며
성장되고 많은 영적 체험의 시간들을 보낸 분들에게도
걸림돌이 되고 있던가?
그들이 '교만'의 실체라던가 '위험성'을 몰라
그리도 넘어지던가?
믿는 자, 누구도 알지만
이 땅의 삶은 '영적 전쟁'의 과정이다.
영적 전쟁이라 함은
우리 인간들이 단지 육신의 존재 뿐이 아니며
영혼이 있는 존재로
굳이 육신의 장막을 벗어버리고 그리스도 께로 가고 싶다시는
사도 바울의 고백을 들지 않고
하나님은 '영'이시니.. 라는 표현을 들지 않더라도
너무도 당연한 사실이며
그를 위해.. 온전한 영육혼의 구원을 위해
영계에 계신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세상에 '성육신'한게 '예수 그리스도'심은
너무도 잘알고
그리스도교의 기본 중 기본이다.
그러함은
'원죄'를 인한 '자범죄'를 이기지 못한
우리의 이전까지의 죄를 다 떠 안으시기 위한
하나님의 숙고와 숙고를 거치신
온전한 사랑의 배려이심이다.
그리고 나머지..
예수님 영접이후의 과정중 남아 있는 찌기들은
주님 부르실 그날 까지
이땅에서 육신을 입고 사는 동안
성령하나님의 보혜, 도우심을 입어
정결케 된 영혼,
주님 기뻐하시는 온전한 영혼, 온전한 구원을 이루어
주님 나라 , 주님 앞에 가게 허락되어진 과정이
인생이다.
당연히도..
그러기에 '영적 반대세력' ........사단의 세력들이
우리를 그대로 둘까?
주님의 허락하에
그들은 우리의 남은 약한 부분을 틀어잡고
자꾸만 시험을 해댄다.
아...
그것은 때로는 인생의 심한 풍파로 다가오고
때로는 심리적 광풍으로 몰아쳐
인생을 참으로 어렵게 하기도 한다 .
그것을 어떤 이는 '영적 전쟁'으로 표현했으며
(비록 그 표현이 하나님과 사단을 대등하게 표시해 불만족 스럽지만
이해하기는 쉬운 표현이라 받아 들이고는 있다. ^^;)
영적 전쟁의 마지막 근처에
교만이라는 죄의 성향이 남아 있음이다.
그러나...
때로 교만은 너무도 간교하여
가장 선함을 가장하기도
가장 겸손함으로 꾸미기도 하여
자신조차 깨달을 수 없는 부분이 있다 .
또한 순간적으로 표변할 수도 있다.
그 교묘함과 진득함과 신속함.............
그러기에 교만의 죄는
익히 혼자 깨달아 알기 힘들다.
그렇다면 어찌하는가?
분명코 교만함의 그러함을 잘 알고는 있지만
어찌 깨닫고 어찌 풀어내는가?
회개.. 중요하다.
중요하지만 '방향성 없는.. 방향모르는 ' 회개는
자칫 회개 햇으니.. 이정도면 . 하는 또다른 교만의 씨가 되기도 한다
무엇인가?
저 대단하신 히스기야님까지도
순간 넘어지게 만드는 교만을 어찌 이해하여야 하는가?
교만은
'하나님을 전제로 하지 않은 '모든 것......이라 생각하면 맞을 듯 싶다.
어느새.......
하나님의 이름을 들지만 하나님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것.
영적 전쟁.
전쟁의 어려움과 참혹함은 그게 쉬웠으면 그리 표현되었을까?
순간 순간..
매사 하나님의 말씀을 근거로
하나님의 은혜, 성령의 인도하심을 통하여
세상을 바라보지 않고는
순간 넘어질 수 밖에 없는 것이
그 전쟁의 본질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회개할 까?
이 미련하고 배우지 못한 결점 투성이 마음에
회개하는 절절한 슬픔이 들어야 그제서 회개할까?
그게 .. 전쟁에서 옳은 것일까?
어떻게 회개할까?
교만의 대적 방법은 '회개'임은
성경 내내
오늘 말씀에도 누누히 '회개'를 통하여 돌이키게 됨을
누구도 잘아는데
어찌 할까?
한번만 하고 눈물 콧물 다량흘리면 그리고 나서
더 이상 교만해지지 않을까?
아니지 않는가?
말씀을 통해서 잘 알지 않는가?
수없이 많은 부족한, 넘어짐.............
내 삶의 그러함의 증거들.. 통해서 말이다.
그렇다면
회개는 어찌해야하는가?
교만을 회개함의 기도는 어찌해야 하는가 말이다
어디까지 어떻게 해야
정확히 알 수 없을 교만이라는 적과
내 능력으로는 어디까지 회개해야, 어찌 어떤 방법으로 회개해야
진정으로 씻어지고 주님 기뻐하실지 알 수 없으니 말이다.
나..
이 나이에
의도적으로 교만함을 캐치해내고 그 죄스러움을 눈물로써 벗어내기
참 어려운 생물학적 나이다.
점차로 더 그래질게 맞다.
그러나,
다행이도 오랜 말씀 묵상의 시간들을 근거로
내 그러한 부족함과 미련함에도 불구하고
내가 주님의 말씀이 있으시니
교만함과 회개를 더 노력해야 겠다함을 결심하고
자주 시간 날때 마다
주여... 주님께서 원하시니... 하면
그 많은 부분에서 그러함이 이루어질 개연성에 대하여 알고 있다.
또한, 주님이 원하시면
내 내면에 어떤 해결되지 못하던 깊은 부분을 마주하게 하시어
나도 모르는 깊은 눈물로
그 부분을 깨고 해결하게 하시는 경험도
이전에는 ^^;; 자주 있었다 .
그렇다.
교만은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하는 모든 게 '교만'이다.
어떤 일에 하나님을 염두에 두지 않는 죄.
그래서 그 짧은 사이에
내 안의 그토록 오래 자리잡고 있고
마지막까지 또아리를 틀고 있어서
순간 만 되면
하나님 말씀처럼 , 내 자아의 말씀으로
내 뇌리를 사로잡고
심성이 '극악'하게 휘어 버리며
나도 모르는 내 만족의 쾌감을 추구하여 버리게 되어 버린다.
그거.............
돌이키는데 한참 걸린다 .
다행이도 말씀이 있으셔서
예방하시기도
돌이키는 방향을 지시하시기도
예언으로 위로 하시기도 하심을
난.. 매일 체험한다.
그래서.. 감사하다.
오늘은 '교만하지 마라' 하신다.
회개하라 신다.
그것...
이제 마지막 , 얼마 남지 않은 성화의 과정에서
더 깊이 마주 해야할 것임을 깨닫게 하신다.
감사하다.
주님.
교만하지 않기를 원합니다.
내 생애 모든것..
매사 하나하나 하나님이 허락지 않으신 것 하나 없음을
너무도 잘 앎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자로 매시간 살아내기는 커녕..
내 기분 내키는 대로
내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살아내다가
어느새 '하나님'은 멀리 계시고
중심에 내 가 그득한 하루를 물려 버리는 것을
미련하게도
지금껏 해왔습니다.
나이가 이때까지 될 때까지..
주님 부르신 그 수없는 나날들을 그렇게.. 요.
주여.
회개합니다.
용서하소서.
깨닫지 못하는 '교만'을 마주하려 합니다.
주여.
제 안에 너무도 깊숙히 자리잡아
정체를 인식하기도 전에
조금의 죄된 상황에 가까이 하면
여지없이 내 모든 정신을 사로잡아
어느새 하나님 대신
내가 주인이 되어
내 하루를 허비하게 됩니다.
아..
주여.
알며서도 너무도 많은 시간을 또 그리 보내왓습니다.
이 영적전쟁에서
주여..
더 승리하는 시간과 기회가 넘치게 하소서.
도우소서.
홀로 되지 않사오니
성령으로 이끄사 '회개'하는 삶을 살게 하소서.
내 주여.
홀로 하나이신 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들어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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