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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근심과 기쁨[고후1:23 - 2:17]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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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근심과 기쁨[고후1:23 - 2:17]

주하인 2013. 4. 6. 08:23

 

 

 


1. 내가 다시는 너희에게 근심 중에 나아가지 아니하기로 스스로 결심하였노니

 사도 바울님의 근심은 무엇일까?

묵상 중 계속 근심과 기쁨에 대하여 말씀하신다.

그 근심과 기쁨의 발생 origin은 '너희'다.

철저하게 그 분은 이타적 삶을 사셨다.

이타적 삶의 근본 origin은 '하나님의 명령'이시다.

'예수님을 전파하는 일'이다.

그 분의 이타적 본질은 '하나님으로 부터 원천한 예수님의 생명을 타인에게 전하는 것'이란 이야기다.

 

나.

나도 안다.

그러나, 왜 나는 저렇게 열정적으로 살지 못하는가?

 

또 어떤 이들은 내가 보기엔 아닌데

목숨 걸고 '선교' 하고 일을 포기하고

심지어는 가정을 도외시까지 하며 '전도'와 하나님 일에 열심이던가?

그것..

어쩌면 나의 인식의 잘못인지 모르지만

'왜곡된 열심'처럼 보일 때도 있다.

하나님이 예수님으로 인하여 나에게 보여주시던,

오늘 사도 바울님의 이러한 열정적인 기쁨과 근심을 간직한

올바른 열심과 사랑이라기 보다는  

어딘가 부족한 열심..................

 

 우선 '기쁨'에 대하여 집중해보아야 한다.

기쁨은 '자신'으로 부터 기인한 기쁨인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자의 받아야할 기쁨인지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

기쁨이 빠진 모든 일은 '노동'일 뿐이고 '의무' 일 뿐이다.

기쁨도 '자아'의 만족에 의한 기쁨인지 진정한 감사의 기쁨인지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

대부분 기독교인들의 '하나님 이름'을 들어서 보이는 열심 중에

그렇게 나가면 '그럴 듯하고'

인생의 목표 내지 의미를 찾기 힘든 무료한 일상에 힘이 되어 그러는 분도 있고

태생적으로 타인에게 베풀기 좋아하는 자신의 성품으로 기인한 이유도 없지 않다.

잘 구분해보아야 한다.

그러한 기쁨들은 시간이 지나면 지친다.

기쁨은 사라지고 '습관'과 매너리즘 만 남고 타인에 대한 정죄만 남는다.

차거움이 기쁨보다 크면 그것은 '자아 성취'에 의한 거짓 기쁨일 가능성이 많다.

그것.. 두려운 일이다.

그러기에 말씀에 매일 맞추어 보고 하나님의 뜻에 따르는 길을 보정해야 하며

과정을 '성령'께 의지하고 인도 받아야 한다.

 또 , '근심'에 대하여 들여다 보아야 한다.

하나님의 일을 한다면서 '근심'이 자기로 부터 기인한 근심 만 그득하면 안된다.

문제는 이것이다.

 

 

10.너희가 무슨 일에든지 누구를 용서하면 나도 그리하고 내가 만일 용서한 일이 있으면 용서한

   그것은 너희를 위하여 그리스도 앞에서 한 것이니

근심이 원래 많은 나 ..

내 근심을 벗어나기도 힘든데 타인의 근심을 떠맡기에는 너무 힘이 부치는 듯하다.

그래서 내 '신앙생활'에 그리 열정적인

선교, 구제 , 전도에 대한 열심을 보이지는 못하고 있다.

  이 열심을 보이지 못하게 하는 나의 '근심'은 이유가 무엇인가?

'용서' 부족은 아닐까?

과거로 부터 올라오는 '미움'이나 '자책'으로 인하여

의미있는 타인이나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는 ..

그래서 하나님이 진정으로 원하시는

'하나님 안에서 타인을 위하는 삶'을 살지 못하는 것..

 

 

11.이는 우리로 사탄에게 속지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그 계책을 알지 못하는 바가 아니로라

  그래서 기쁨과 근심에 대하여 다시한번 깊이 돌아보아야 한다.

사단은 참으로 쉽게도 인간의 속을 파고든다.

 

 자신을 성찰하지 못하는 자들은

자신의 기쁨과 하나님으로 인한 타인을 기쁘게 하는 '이타적' 기쁨을 구분하지 못한다.

그냥.. 그냥 뛰어들어

그들도 상처 입고 본인도 크게 상처 입어 돌아 앉을 위험도 다분하다.

 

선교를 표방하는 병원의 산부인과 진료실에서 환우를 보다보면

아주 많이 불편한 삶을 영위하시는 선교사님이나 목회자님 부부들을 뵌다.

그 분들.. 자신을 성찰하고

진정한 하나님의 명령에 의한 이타주의와

자아 성취를 '하나님 이름'으로 오인한 결과 사이에 구분하지 못하고

뛰어든 일임을 느끼고 있다.

 

 

오늘 말씀은

온전한 이타주의를 인한

온전한 기쁨과

진정 부러운 타인을 위한 근심에 대하여 보고 있다.

타인을 위한 기쁨, 하나님을 인한 기쁨이 온전한 자신의 기쁨이 되어야 하고

타인의 아픔을 통한 근심, 그들의 하나님 안에서의 고뇌를 보는 것을 근심거리로 가지는 자의

진정한 근심이야 말로

세상에 가장 행복한 근심이고 기쁨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아직도 나는 내 속에 머물러 있으니...

하나님의 주시는 기쁨은 놀라웁고 귀하나

그 분이 그토록 바라시는 '세상을 향한 진정한 기뻐함과 근심함'은 아직도

가슴 깊이 오고 있지 못하니.. .

나..

오늘의 '용서'라는 부분에서 그 이유를 발견한다.

예수님 영접하고 참 오랜 시간을

내속의 때를 벗기는 데 사용해온 것이다.

남들처럼 그냥 상관없이 말씀이시니... 하고 나가면 되지만

가슴에서 받아 들여지지 않는다.

나에게는..

사람마다.  . 현장에서 부딪치며 용서를 깨달아가고

자아와 하나님의 진정한 명령을 내가 수용함 차이를 깨달아 가는 사람도 있겠지만

난.. 깨달은 후 서서히 세상을 향하여

하나님의 뜻대로 진행하는 자인 것을

오랜 시간이 지나서 서서히 깨달아 가고 있다.

그래서 요새는 여유롭게 내 인생의 흐름을 지켜보고는 있다.

 

특별히 오늘 말씀 가운데서

기쁨과 근심.. 그 진정한 원류에 대하여 묵상을 시키니

다시한번 정리하고 있다.

올해 초 기도제목으로 '세상을 향한 서서한 발걸음'을 받게 된 것도

같은 맥락인 줄 알고 있다.

 

하나님으로 온전히 사로잡히고

매사에 동행하게 되면

그 삶의 모습이 어떻든 어떤 문제가 될 것인가?

선교사로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순식간에 떠나는 자도 훌륭할 것이고

목회자로  세상에서 믿지 않는 자를 위하여 목자의 역할을 함도 놀라울 것이며

세상에서 구제와 전도를 열심히 함도 옳을 것이다.

나처럼 부족하지만 그냥 내 자리에서 그렇게 그렇게 꼬무락 거리면서도

하나님의 말씀에 뜨금한 부담을 가지고

조금씩 조금씩 바뀌는 것도 그리 나쁜 모습은 아닐 것이긴 하다 .

 

아침에 잠시 ' 깨닫는 것'과 ' 머리속의 생각'의 차이에 대하여 생각되어지는 바가 없지 않았다.

머리가 좋아  아무리 많은 생각으로 선하게 채웠어도

그것이 가슴으로 내려 오는 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가슴으로 내려오지 않은 생각들은 세상을 피곤하게 한다.

가슴으로 내려오기 위하여는 '연단'의 과정이 필요하다.

아픔과 상처, 노력과 좌절, ..

거기에 하나님의 성령으로 절대적 은혜가 없으면

사람, 이 원죄적 존재는 반드시 왜곡되고 넘어짐을 본다.

사람은 그렇다.

 

주위에서 비상한 머리와 대단한 부를 물려 받고

기도와 선교를 그처럼 열심히 하면서도

그의 행하는 결과를 바라보면 '한숨'만 나오는 사람들이 많다.

타인에게 아픔을 주면서도 느끼지 못한다.

어쩌면.. 행동은 못하고 아픔을 주기는 하지만

나서서 많은 자들에게 그렇게 하지는 않으며

조금씩 조금씩 변해가며

그것으로 살아계신 하나님의 증거로 남에게 영향을 미치는 자가 낫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것이야 말로 깨달아 심령에 하나님의 선한 생각이 운행되어가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나...후자 임을 안다.

빨리 더 '용서'를 받아 들여

타인을 무조건 용서하고

그런 나의 잘못을 '자책' 대신 스스로 용서로 받아 들여

하나님의 성령으로 다녹여

이제는 세상에 눈을 힘있게 돌리며

그들의 아픔과 그들의 근심을 같이하고

그들에게 온유와 겸손과 자비와 오래참음으로

 '옷입듯 '대하여( 본성으로는 다 용인되는 것이 아니니.. 옷입어 가장하듯이라도..ㅎ ) 같이 기뻐함이

나의 온전한 기쁨이 되게 되었으면

정말 정말 좋겠다.

 

 

귀하신 내 아버지..

점점 관심이 세상을 향해 펼쳐져 가려합니다.

그들이 기뻐하는 것을 내 기쁨으로 받고

그들이 근심하는 것을 같이 근심해주는 그런 사랑의 마음, 긍휼함이

내 진정한 바램으로 되어가길 바라는 것으로 보아서 입니다.

주님.

주님께서 성경에서 '우는 자로 같이 울고 웃는 자로 같이 웃으라'하신 말씀이

오늘 말씀과 통하는 듯하여 감사합니다.

거기에 사랑을 더하라 하시니..

저 그리되길 원합니다.

아직 안되는 부분은 너무 많습니다.

울컥.. 할때가 있습니다.

주님.

그럴 때도 말씀으로 인하여 인내하게 하소서.

제 본성은 안되지만 주님의 말씀이 있으니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이

내 자아가 아니고

은혜를 체험하고 경험한 자로서 당연히 그리되어서 그리되길 원합니다.

주님.

제 모든 것 다 아시는 하나님.

용서할 자를 용서하게 하시고

저 스스로 저 자신을 용서하하고 기뻐하게 하소서.

주님의 뜻 안에서 빨리 깨달아 영혼에 깊이 심어

하나님의 뜻 대로

바울님처럼까지는 아니어도

열심히 준행하며

인생의 의미로 삼아 사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되길 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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