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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그랬을 것이다[요21:1-14] 본문

신약 QT

아마 그랬을 것이다[요21:1-14]

주하인 2013. 4. 2. 08:58

 

 

아마

그랬을 것이다

 

그때 그들이 물길질 할 때

이처럼 스산했을 것이고

무기력한 그들의 영혼에

소리 질러 외쳐도

파도 소리뚫고

들리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셨다

주님의 말씀은

모든 것을 넘어서

온 우주의 에너지로

그들 심령에

당연히도

뚜렷하게 꽂혔을 것이다

 

그리고

그랬을 것이다

기대 못하고 던진 그물에서

가슴벅찬 놀라움을 건져냈을 것이다

소망의 살아남을

들어올리게 되었을 것이다

 

바다가

주님 뜻대로 움직이듯

주님께

모든 것 맡겨야 한다

우리도

그래야 한다

 

살아 펄펄 움직이는

이 자아가

잠잠해지고

드디어 죽어 십자가에 달려야

우리 인생과 영혼도

그제야

다시 살아나게 될 것이다

 

 

 

3.시몬 베드로가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 하매 그들이 우리도 함께 가겠다 하고 나가서 배에 올랐으나

   그 날 밤에 아무 것도 잡지 못하였더니

 물고기 잡으러 가는 것.

옛 직업이지만 그게 신이 났을까?

할 수없고 할 방법 못찾아서 이지...

이들이, 그 놀라운 기적과 십자가와 그 후의 부활을 경험한 자들이 ...................

맞다........

 

'그들이 그랬다'

 

 

4.날이 새어갈 때에 예수께서 바닷가에 서셨으나 제자들이 예수신 줄 알지 못하는지라

 사람이 잘 구분되어 안보이는 새벽.

물안개가 깔리고

스산할 분위기..

 

 

5.예수께서 이르시되 얘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대답하되 없나이다

 그러나 말씀이 들린다.

아무리 상상해도 예수님이 소리지르고 제자들도 소리질러 대답할 분위기는 아닐 듯.

상상이 된다.

고요한 물안개깔린 분위기 무거운 수면을 타고

중저음의 조용한 말소리가

에너지를 실고 그들의 귓가에 또렷이 들리는....

 

 

 

6.이르시되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잡으리라 하시니 이에 던졌더니 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 없더라

11.시몬 베드로가 올라가서 그물을 육지에 끌어 올리니 가득히 찬 큰 고기가 백쉰세 마리라 이같이

     많으나 그물이 찢어지지 아니하였더라

 그 사람이 우편에 그 물 던지라 한다.

이 어부들... 밤새 우편에는 안던졌겠는가?

좌편 우편 ..수도 없이 던 졌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냥 던졌다.

그 마음이 궁금하다.

설교에는 '순종'해서 담그는 것이라 하였는데

누구인지 모르는 데 무슨 순종인가?

예수님인지 모른다고 분명코 처음 서두에 기록되어 있는데..

 그들은 모두 '무기력' 상태이다.

우울증 빠지기 직전의 사람들 같은 상태다.

인생을 걸고 좇던 예수께서 돌아가시고 부활하셨다 하지만

아직 성령이 충만하지는 못한 상태이기에

그들 마음에는 '혼란'만 그득한 상태다 .

그래서 그들이 다시 옛 직업으로 돌아와 부랑배처럼 걸터 앉아 있다가

대장인 '베드로'가 '고기나 잡으러'.. 하니까.. 그래.. 하면서 그냥 따라 온 상태이다.

그런 그들이 '순종??' ..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 상상이다.

그러나 그들은 했다.

 

무기력한 상태와 기적, 예수님이 살아 움직이는 에너지가

그들 영혼에서 '충돌'하고 있는 상태다.

'갈등'이다.

그런 자들에게는 더 시간이 그대로 지나면 '우울'에 빠지게 된다.

하지만, 아직 그들 내면에 '무언가 일어날 것'이라는

그들조차 깨닫지 못하는

그들 자신의 힘이 남아 있는 것이고

그런 그들에게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 두번이나 모습을 보이신 것이다.

 

그러기에 그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상태다.

그때 , 선한 에너지 , 온 우주를 아우르는 에너지를 가지고

예수께서

그 새벽의 물안개 수면을 타고 넘실 거리는 에너지 파동으로

그들 귀에 또렷이 넣어주시는 소리가 있다.

그것이 .. '우편에' 다.

그제 그들은 '무비판 적'으로 따르게 되는 것이다.

이게 논리적으로 가당키나 한일이던가?

어부인 그들, 밤새 다 헤쳐 보았던 그 물속에 또 한번 집어 넣는 것이다.

 

참으로 재미있고 놀라운 사실은

그 무기력한 어부들이 투망을 하는 것이

주저주저(우울한 자들은 행동이 굼뜨다)하다가 던질지

금방 순종하여 던지게 될 것인지 그 타이밍을 알수도 없었을 텐데

물고기 한마리 다니지 않던 그 물 속에

그물을 내리자 마자 달려든 153마리 물고기 들이다.

ㅎㅎ

 예수님께서 우편에 던지라 하시면서

미리 물고기들에게 명령을 하시지 않았을까?

'너희들.. 이때 그물이 내려지면 그 그물 속으로 달려들어서 잡혀라.

 단.. 154번째 너.. 는 들어가지 마라.

 또 10번째 너.. 너는 아직 너무 어려. .... 조기.. 큰 녀석.. 들어가되

 그물이 내려지는 시기는 10까지 세고 내려질 거야 .. 그러니

 텀벙 소리가 나면 동시에 뛰어 들어야 한다. .. ' 등..

작전 지시가 있지 않았을까? ^^*

그럼에도 그 우울하기 직전의 무기력한 어부들의 투망질이 데데할텐데

정확히 153마리 물고기가 그 속으로 들어간 것이야 말로 기적이다.

ㅎㅎ

정말 하나님의 역사는 오묘하고 놀랍다.

 

 

7.예수의 사랑하시는 그 제자가 베드로에게 이르되 주님이시라 하니 시몬 베드로가 벗고 있다가

  주님이라 하는 말을 듣고 겉옷을 두른 후에 바다로 뛰어 내리더라

 수년 전에 동일한 장면을 묵상할 때

베드로가 물속으로 뛰어 들어간 다음

얕은 곳에서는 ' 목도리 도마뱀' 처럼 달려 갔었을 것 같다는 묵상하며

혼자 웃었던 적이 있다.

 

베드로의 이 뛰어듬..

이것이 암시하는 것이 무엇이던가?

전율이다.

그 영혼을 살릴 어떤 기회를 본능적으로 느꼈기에

그는 그런 것이다.

자신도 모르게 뛰어든 것이다. 

 영혼이 죽을 듯한 무기력에 '희망'이 생긴 것이다.

소망이다.

 스산하고 희망없는 무기력에 '소망'이 생긴 것이다.

 

 

오늘 무엇을 말씀하시는 가?

 

 4월이고 꽃샘추위가 물러간 시간이라 생각되었는데

아침에 일어나 출근하려니 비가 내리는 게 춥다.

스산하다.

예수님 부활하신 뒤 며칠이라고 이리도 마음도 따라서 스산한가?

참으로 오랫만에 익숙한 옛 답답함이 날 사로잡으려 함을 느낀다.

괜한 걱정.

괜한 고민이 밀려오려 한다.

 오늘 묵상의 분위기가 이 스산한 분위기랑 잘 맞는 듯하다.

나름 최선을 다하여 열심히 주님을 쫓아오고

과정에서 다양한 간증거리도 경험하고

예수님의 부활이 진정으로 믿어지고 (베드로들은 두번이나 보았지 않던가? )

하나님이 주신 인생의 다양한 선물들이 전리품처럼

내 앞에 이렇게 있는데...................

그럼에도 내 안의 아직도 굳게 자리 잡고 있는 덜깨진 '죄성'으로 인하여

베드로의 그 자책처럼

날 '안된다'는 좌절로 다가와서 인가?

주님의 그 놀라운 살아계심의 증거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살아 펄떡 펄떡 움직이는 '내 자아' 탓인가?

난.. 불안 하려 하고 스산함이 오랫동안 자리 잡으려 한다.

무엇인가 해보아야 할 것 같다.

이대로 굶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주님 예수님 만 좇기에는 베드로처럼 잘못 내지 자책이 있어서

이리도 저러지도 못하지 않는가?

그래도 배운 것이 도둑질이라고 '내 삶'의 행태를 계속하고 있지만

그것.. 그리 재미있지는 않다.

아니.. 오히려 힘이 하나도 없고 흥미도 없다.

남들처럼 노후 대비도 해야 할 것 같고

자식들에게 모범이 되는 아버지로서 최선을 다한 자가 되어야 할 것 같고

치고 올라오는 젊은 의사들의 지력에 경쟁을 해야 할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 없는 힘을 내서 노력을 한다.

나름 하나님의 말씀이라 생각되는 방향으로 열심을 다한다.

그래도.........

이전에 보여주시던 그 놀라운 증거들이 다시 내 삶에 임할 것 같지는 않다.

그때보다는 '늙었다'

그때와 비교하여 동일한 감동, 내 삶의 에너지를 끌어 이끌어올 힘이 없어 진 것 같다.

그러니.. 하루가 고난이기도 하다.

시간이라도 더 투자해야 할 것같고

멍한 마음에 이리저리 '투망'하듯,

이책도 보고 저 사람도 만나고 이 일도 생각하고 저 곳도 여행해 보지만

어디에도 답은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

그래서 , 무거운 마음에 새벽녘이 되어서야

내가 할 수 있는 '그물질' 마져도 포기하고

더 무거운 마음으로 하루를 마감하려 하는데.......

예수님이 나타나셨다.

부활하신 그 분......

비록 그 분인 지 처음에는 잘 몰랐지만...

 

그 분이 말씀하시고 그 말대로 자신도 모르게 (^^*) 순종을 하고 나서야

대~박 터졌다.

상상할 수도 없던 일이 일상에서 '기적'처럼 일어난다.

이것..

부활을 경험한 베드로들이 어찌 저럴 수 있는가 하고 생각을 한다면

그것이야 말로 인생의 쓴맛을 보지 못한

아직은 초등학생이나 중학생같은 어린 영혼이 아닐까?

 하나님은 이렇게도 인생을 잘 아신다.

하나님을 영접하고 모든 것이 다 술술 풀려

뜻하는 대로 다 될 것 같은 그들에게

하나님은 '좌절'을 또 경험하게 하신다.

그 좌절의 아픔은 얼마나 큰지

정신이 반 정도 나간 것 처럼 '무기력'하고 '우울'하게 만든다.

눈으로 보고 직접 체험해도 되지 않을 힘듦이다.

그러면서도 '삶'은 또 그를 그냥 두지 않는다.

그 힘든 영혼에 '육신'의 삶을 살 수 밖에 없는 절박함은

어쩔 수 없이 밤이 맟도록 빈그물을 내려 놓는

끝없는 좌절감까지 맛볼 수 밖에 없도록 하신다.

그래서...

이제....도저히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구나......

자아가 포기 될 때쯤,

예상못한 새벽의 시간,

깨어있지 못하면 '예수님'이신 줄 알지도 못할 그 시간에 오셔서

다시한번 역사하기 시작하신다.

우리의 눈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할 일이 이루어진다.

상상하지도 못한 일이 일어난다.

옛날 이야기의 도깨비 방망이가 아니다.

삶속에서 기적이 아닌 것 처럼 기적이 일어난다.

어부에게 고기가 잡히는 것이 기적인가?

기적이 아니고 당연하지만

밤새 빈그물을 내리던 그들,

오른쪽 아니라 왼쪽 , 앞, 뒤 모두 내려 보았지만 허탕이던 그들에게

오른 쪽에서 153마리의 .. 이처럼 숫자까지 뚜렷하게..........정확히 역사하시는

대박이 터지게 하신다.

그것.. 누가 기적이라 하겠는가?

그렇지만 그들 제자들에게는 기적이다.

기적이 그 뿐인가?

죽어가던 영혼에 '희망'과 '소망'이 솟아난다.

다 썩어들어가던 환부에서 '자아'라는 고름이 빠져나가고

몽올마취의 아픔후 긁어내는 자극이 있어

완전히 '자아' .. 죽은 상처가 떨어져 나간 후

새살이 돋아나고

하루가 지나기 무섭게 피부가 언제 그랬냐는듯 달라붙듯이...

그러면서 그것을 기적이라고 인식하지 않지만

의술을 하는 나로서는 '경이'롭게 바라보게 되듯이

하나님과 나와 만 아는 그러한 일들이

오늘 베드로들에게 이루어지신다.

이제.....

그들도 나와 똑같은 일을 겪고 있었다.

내 흔들림.

내 자주 흔들림.

내 자주 흔들리지만 하나님의 뜻이 있어서 흔들려지는

자아 벗기기의 흔들림을 통하여

주님은 내 삶속에

내가 이제는 더 이상 가능치 않을 것이라는 '포기'와 '무기력'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온전히 하나님의 뜻대로' 맡기기만 하면

삶의 문제들까지 온전히 완전히 제대로 회복되어 복받는 일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

베드로들도 그랬다.

나도.. 그들처럼 은 못할지 모르지만

또 다시 찾아오셔서

내 바램이나 기대나 내 상식을 건너 뛰는

나 만이 느낄 수 있는 주님의 역사가 있을 것이다.

참으로 감사하다.

또다시 소망으로 이 스산한 아침을 채우신다.

살아계신 내 하나님.

 

 

 

적용

 

1. 성경 세장 읽겠다.

 

2. 스산하다고 마음까지 그럴 필요 없다.

 필요없음은 막연한 인간끼리의 토닥거림과 소통의 결과가 아니다.

 확실한 하나님의 역사이시다.

 주님은 스산함을 통하여 나의 남아 있는 자아의 찌거기를 내려 놓길 원하신다.

 

3. 괜한 상상은 말자.

 안될 것이다.

 굶을 것이다.

 망할 것이다.

 갈 곳없다.

 이제는 낙이 없다.

 끝이다........................... 드는 생각들..... 모두 베드로들이 경험한 것이다.

 그 사람들의 '고기나 잡으러 가자~$#%%^ ' 라는 말투에 모두 느껴지지 않는가?

 밤새 그물을 던졌지만 그들 뜻대로 하나도 되지 않았음을 보지 않았던가?

 모든 '소망'의 첨단에 있던 그들이 .. . 저렇듯 나락이다.

 그럼에도 '에수님'은 153마리의 축복을 주신다.

 

4. 주님은 언제나 나를 보시고 계시다.

 내 자식들을 보고 계시다

 당신을 사모하는 자들을 언제나 보고 계시다.

 그 분을 빨리 알아보는 게 중요하다.

 

5. 예수님 만이 소망이다.

 인생 .. 오십몇년 살아봐도 의미 찾기 힘들다.

 오직 하나님 만이 의미다.

 

6.  예수님은 누구나 다 열두 사도가 되길 바라실까?

 더 열심히 주님께 가까이 가기를 원하지만

 그 발걸음을 멈칫하게 하는 것이

 제자들 처럼 '순교'하기까지 삶을 포기하길 원하시는 것은 아닐까..다.

 그러나 그들은 전 인구 중 11명이었다.

 나... 그중에 속할 확률이 1/60억 이다.

 그냥 최선을 다해 삶속에서 '연단 후 정결함'을 기대하며 살면 된다.

 그 분이 주시는 153마리의 물고기와

 삶의 풍성한 의미를 누리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누리다가

 주님이 진정 원하시면 순교의 장에도 따라갈 수 잇지 않을까?

 

7.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더 이상 없다.

 내가 하려 해보았자 남는 것은 '좌절'과 '회한 '뿐이다.

 주님이 무엇을 하실 수 있을까.. 영적으로만... 이라는 막연한 생각,

 불경할 생각일 듯하여 꽁꽁 묻어 두지만

 그러한 생각은 인생과 '하나님'과 괴리시키는 사단의 장란이다.

 주님은 일상에 임하셔서 모든 것을 다 이끄신다.

 이제 할 일은 내 자아의 움직임을 내려 놓는 것이다.

 안되는 것은 받아 들여야 한다.

 주님이 하실 것만 믿고 기다려야 한다.

 설령 안되어도 주님 보시기에는 그것이 가장 선한 것이기에 그런 것이다.

 용트림은 '죄'다.

 이제 ... 나.. 에게는 ..

 더 이상 이곳 저곳 그물질 하지 말자.

 힘든 것 , 안되는 거... 포기하고 그물을 걷자.

 주님이 '오른 쪽'하면 그때야 내리자.

 

 

 

기도

 주님.

그들도 그랬습니다.

그들도 그들이 하려고 하려고 하다가

도저히 안되니 포기하고 옛 삶터로 내려왔습니다.

그들은 역시 살아가야 하는 '생활인'임을 거부할 수 없었습니다.

살아가는 것의 방편은 '자아'가 움직여 소출을 낼 수 밖에 없기에

온통 예수님의 가치로 , 하늘나라의 가치로 3년, 수년간 훈련을 받고

절절한 예수님의 향기를 맡아오던 그들에게는

세상의 가치, 자아의 움직임과

하늘나라의 가치 , 성령의 움직이심과 충돌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 때 부활을 목도 햇기에 더 이상 그들은 세상에 어울릴 수 없다는 것이

그들의 딜레마였습니다.

그들도 그랬습니다.

그래서 저들은 이리도 저리도 못하고

저렇게 주춤히 엉덩이를 빼고

물길질도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 밤새 의미없는 투망질만 하고 있엇습니다.

그러다... 그 스산함을 누르고

우주의 에너지를 담은 조용한 목소리가

그들의 그 영혼을 흔들며 귓가에 또렷이 들려온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오른편에 그물을 던지라.

그때 그들은 그들 자아의 경험,

도저히 세상의 방법으로는 가능치 않을 것임이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냥 무비판 적으로 순종하게 되고

따라 올라오는 세상의 놀라운 축복이 육적으로도 체험되었습니다.

그제야 그들의 눈에 그 분이 예수님이었음이 뜨이게 되고

마침내 '자아'를 내려놓고

주님께 온통 순종하는 자로서의 태도를 견지하게 됩니다.

그러자 주님은 그들을 불러

당신의 성찬에 초대하십니다.

 

주님.

이 글을 수년전에도 읽었지만

다른 느낌입니다.

나의 상황.

온통 주님의 축복으로 여기까지 온 체험을 통하여

열정적으로 달려왔지만

부활까지 경험한 제가 아직 흔들림을 경험하고

메마름을 보고 불안함을 느끼려 하니 당혹스럽습니다.

그게 비단 세상의 일 뿐이 아닙니다.

주님.

주님을 그렇게 사모하면서도 아직 제 안에 시퍼렇게 살아있는

이 거친 자아의 살아 있음 탓입니다.

마음이 탁해짐을 느낍니다.

그래서 베드로들처럼 마음을 확.. 놔버리고 싶습니다.

무기력에 자신을 던져 나 자신을 연민감에 빠드려 놓고 싶은 마음이

조금 들려 합니다.

그러나 그때 또 주님은 살아계셔서 저로 하여금 이렇게 붙드십니다.

매일 살아계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제 깨달음

제 자식들 알게 하시고

주위 모든 분들이 그러하시게 하시어서

주님 오실 날.. 칠천 선지자 처럼 나타날 수 잇는 자들이 되게 하소서.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살아계심을 기뻐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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