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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수리는 절대로 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다[욥38:39-39:30] 본문

구약 QT

독수리는 절대로 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다[욥38:39-39:30]

주하인 2023. 12. 17. 07:46

부제)

진실은 나는 모르지만 주님이 다 아시고 계신다는 거다.

(펌)

이게 

개인가 

여우인가

 

가축인지

야생인지

 

내가 모른다는 사실

몰랐었다는 사실을 

빨리 인정하고 받아 들이고

그 진실 뒤의 진리를 주장하시는 주님을 

어서어서 인정하고 받아 들여

적용하는게 지혜다

옳음이고......

 

(욥39:1-30)

9 들소가 어찌 기꺼이 너를 위하여 일하겠으며 네 외양간에 머물겠느냐
10 네가 능히 줄로 매어 들소가 이랑을 갈게 하겠느냐 그것이 어찌 골짜기에서 너를 따라 써레를 끌겠느냐

 38장 39절 부터 10절까지

'야생'동물에 대한 내용이다. 

그들의 어떠함을 전혀 알 수 없고

우리가 care를 해주지 않아도

우리의 염려와 걱정에도 불구하고 

그들, '포유류'는

이 땅에 생긴 2억5천만년 이후 첫 출현 후

인류의  출현인 100만년  전이후에도 여전히 번성해왔다 .

우리와 상관없이  ㅠ.ㅠ;

 

19 말의 힘을 네가 주었느냐 그 목에 흩날리는 갈기를 네가 입혔느냐
20 네가 그것으로 메뚜기처럼 뛰게 하였느냐 그 위엄스러운 콧소리가 두려우니라

 '가축'에 대한 이야기.

가축은 지구상 45키로 이상의 포유유 148개 종 중 14종도 채 안된다고

성서 유니온에서 말씀 묵상 나눔(->https://sum.su.or.kr:8888/bible/forum)하시는 'LBC님께서(-> 아래에 복사해다 놓았음 )그러셨다. 

 

 가축.

마음대로 할 수 있을 존재 같은 그들 조차

실은 그 흩날리는 갈기를 우리가 준게 아니고 

왜 갈기를 주셨는지 왜 그리 다르고 형형색색인지.. 알지 못한다. 

그리고 그들은 그냥 가축화 되어 이용은 되고 있지만

특수 훈련 받은 소수를 제외하고는 마음대로 뛰게 하고 

마음대로 우리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

 

 무엇을 말씀하시려 뻔하지 않으시는가

내가 인정하고 있지 않고 

그냥... 인간으로 그냥 살다보니 잊어버려서 그렇지

단 하나도 주님의 허락이 없으시고는 

이루어지는 게 없단 사실이다. 

 

100년도 못살면서 천년을 걱정하는 자라는 

인간의 어리석음에 대한 비유가 있다. 

그것을 오늘 말씀하심이 아니던가?

 

 내가 다 해야할 것 같고

모든 것 다 떠 안아 가야할 것 같은

초조함과 안절부절함 .. 

실은 어쩔 수 없음을 인정하지 못하는 

그러면서 모든 것을 다 해야하고 알아야 하는데 

하지 못하는 내 인생을 

버거움으로 받아 들이는 것... 말이다. 

 

 진실은

그렇지 않다고 하신다. 

 

27 독수리가 공중에 떠서 높은 곳에 보금자리를 만드는 것이 어찌 네 명령을 따름이냐

(펌)

 

 '독수리는 절대로 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

 

그게 진실이다. 

 

 

그렇지 않음을 너무 잘 안다하면서도

틈만 나면 또 떠 안아 고민하는 나... 

가축을 대하며 살다보면(인생의 내 수중에 든 내 재산, 가족, 내 분야 일... 그런 것을 가축이라 하는 거 아닐까? )

내 마음대로 다 할 수있을 것 같지만

실은 아~무 것도 모른다는 사실.. .

그것을.. .독수리 비유를 통해서 

다시한번 환기시키심이시다. 

 

 알면서도 또 모른 것........

알면서도 모르는게 어이없어

왜 나는 이렇지.. 라는 어이없는 생각에 사로잡혀

또 다시 또다시 되풀이 되려는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미련함 아니던가?

진정한 어리석음.. 

망상.. .말이다. 

 

 특별히

'하나님의 은총'을 깊이 체험하고 

말씀을 통하여 끝없이 깨우쳐주심에도 불구하고 

또 다시 어리석은 생각에 사로잡혀 

홀로 고민하려는 주하인들에게..........

또 다시.....환기 시키심이시다. 

잊어버릴까봐..^^;

 

독수리로 말이다.

독수리의 그 신비로움 통해서 말이다. 

 

 

 

 

주님 

놀라우시고 귀하신 내 주님.

알면서도 자꾸만 잊는 것이

나는 '한계의 존재' , 유한하고 무지한 자이며

겨우 이땅에 발 붙히고 사는 자이면서도

모든 것을 다 알아야 할 것 같고

그 모른다는 것을 수치스럽고 두렵게 생각하려는 경향이 있어왔습니다. 

 

그러함.. 정말 어리석음이고 미련함을 

우주로 잠깐만 눈을 돌려 

그 제시되는 엄청나고 광대한 수치에만 해도 기가 질려

이 땅에서 이러함........을 주장하고 산다는 사실이 

정말 티끌보다 못한 것을 깨닫게 됩니다. 

 

하지만.. 그러함도 잠시 

또 잠시의 시간이 지나면

여지없이 세상의 권세잡은 자들의 혼돈에 어지러워져

마치 다 알아야 할 자가 모르는 사실에 대하여

자괴하고 두려워하고 고민하며 

허송세월 하려 하고 있습니다 .

머리속은 복잡하고

마음은 터질 듯하며

바글 바글 하려 합니다. 

주여.

그 사실에 정신을 맡겨버리면 

온통 제 앞길을 어둡게 만들어 버리려 하고 있고요.

 

주님.

주님의 말씀을 통해서

오늘 이땅에만 집중해봐도 

제대로 알만한 게 별로 없으며

심지어 다 잡은 짐승, 가축에게도 

단지 우리가 '빌려 이용할 뿐'

아는 것이 별로 없었음을 깨닫습니다 .

그리고.........그게 진실임을 요.

 

정말 아무것도 모르면서 모든 것을 다 아는 것 처럼 착각하고 

모든 것 주님의 허락하에 빌려쓰는

이 잠시의 시간을 

내가 이 인생의 주인공인양 그리 착각하며 살았습니다. 

 

주여.

그게 진실이었습니다. 

 

제가 할수 있고 알수 있는 것 얼마 안되며

아무 것도 모른 다는 사실요.

그리고 그 마져도 하나님의 허락 가운데 

잠시 빌려 쓰고 있을 뿐임을 요.

 

걱정 내려 놓아야 겠습니다. 

주여.

근심 .. 아무 쓸모없음을 깨닫습니다 .

 

오직 내가 할 일.. 

최선 다해 

허락받아진 인생 중에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며 하루하루 최선 다하여 살아야 겠다는 사실요.

내 모르는 것.........

나 .......그러한 존재로 태어난 것을 

주님께서 귀히 여기셔서 

그냥 잠시 이땅에서 ''인간'으로 태어나고

주님의 끝없으신 사랑의 은혜로 인하여

새로운 세상에서 '부활' 후 

주님의 시간, 영원 내내

주님의 그 오묘함을 알아갈 존재임을 요........

감사합니다. 

주여.

 

거룩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

허락하신 '진실을 깨닫는 지혜'를 허락하심을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 ( 성서 유니온 묵상 나눔 중 이병철님 나눔 )

 

(욥기 38:39-39:30, 들소가 어찌 기꺼이 너를 위하여)

 

하나님께서 천체와 기상현상을 들어 인간의 한계를 말씀하실 때

그것들은 하늘에서 일어나는 일이니 애초에 지상의 인간과 비교할 수 없는 대상이라고 시큰둥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면 지구에 사는 동물들로 축소하면 인간은 과연 뛰어나다고 할 수 있는가?

적어도 지구에서는 인간이 최고의 존재 아닌가?

그래서 식물도 동물도 길들이며 야생동식물을 작물과 가축으로 이용하고 있지 않은가?

지상의 어떤 존재가 다른 생물을 길들이는가?

인간은 그렇게 한다.

그러나 여기서도 역시 인간의 한계는 너무도 크다.

 

오늘 본문에는 두 종류의 동물이 예시된다.

하나는 야생동물이고 다른 하나는 가축이다.

야생동물은 인간이 지난 만 년 동안 길들이는 데 성공하지 못한 동물이다.

가축은 길러서 축력을 이용하고 젖과 고기를 식량으로 쓴다.

가축을 보면 인간의 위대함을 과시할만하다.

 

그리고 그것은 창조 직후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축복과 사명에 의거한 정당한 특권이라 할 것이다.

그러나 오늘 본문은 그러한 이해에 찬물을 끼얹는 듯하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심술이 나신 것인가?

아니다.

진실을 대면하게 하시는 것이다.

인간의 진실, 하나님이 창조하신 피조세계의 진실, 그리고 하나님의 진실을.

 

본문은 앞부분과 끝에서 야생동물들을 언급한다.

여기서 중요한 단어가 나오는데 “위하여”라는 낱말이다.

“네가 사자를 위하여 먹이를 사냥하겠느냐”, 그리고 “들소가 어찌 기꺼이 너를 위하여 일하겠으며”.

가축은 인간이 먹이와 번식을 통제하는 동물이다.

인간은 먹이를 통제함으로 짐승을 길들여 가축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동물은 결국 인간에게 길들여지지 않았다.

야생동물로 그대로 남은 것이다.

사자는 가축이 아니다.

인간이 “사자를 위하여 먹이를 사냥하겠느냐?”

인간은 사자를 먹이로써 통제하는 데 성공하지 못했다.

반면에 가축은 인간을 “위하여” 살아 있을 때는 축력을, 죽어서는 식량을 제공한다.

가축은 한 마디로 인간을 ‘위한’ 존재로 보인다.

그러나 가축화에 성공하지 못한 들소는 결코 인간을 위한 존재가 아니다.

“들소가 어찌 기꺼이 너를 위하여 일하겠”느냐!

 

사자를 “위하여” 먹이를 제공하는 자가 따로 있다.

들소가 “위하여”서 일할 자가 따로 있다.

그는 누구인가?

사람이 아니다.

사자와 들소를 창조하신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이 그것들을 먹이시고 그것들은 사람을 위하여가 아니라 하나님을 위하여 산다!

창세기 1장 28절에서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고 하신 말씀은

인간이 그것들의 ‘주인’이라고 하시는 뜻이 아니다.

결코 아니다.

땅과 물고기와 새와 뭍짐승의 주인은 창조주 하나님이시다.

인간은 자기를 위하여 그것들을 정복하고 다스리는, 즉 관리하는 자가 아니다.

인간은 주인이신 하나님을 위하여 그것들을 정복하고 다스리는 관리자, 곧 청지기다.

인간은 동물을 위하여 베풀 능력이 없으며, 동물들이 위하는 존재가 아니다.

오직 하나님만 그러하시다.

 

중반부에 언급되는 동물들, 즉 길들이는 데 성공한 가축들은 그야말로 인간의 위대함을 보여주는 증거가 될까?

아니다.

하나님은 가축들을 예로 들면서 ‘과연 네가 그것들을 위하여 먹이를 사냥하는구나’, ‘그것들이 기꺼이 너를 위하여 일하는구나’라고 말씀하지 않으신다.

인간은 소수의 동물들만 ─몸무게 45kg 이상 되는 땅에 사는 포유류 총 148 종 가운데 단 14종만─ 가축화하는 데 성공했다.

1/10도 채 안 되는 이 동물들은 인간을 위한 존재로 보인다.

그러나 하나님은 앞에서와는 약간 다른 질문을 제기하신다.

길들임이란 없었던 성질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이미 가지고 있는 특성을 이용하는 것이다.

성질이 포학한 야수들을 인간이 오래 길들여 성격이 바뀐 것이 아니다.

가축이 된 14종류의 동물들은 애초에 그런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하나님은 가축과 관련하여 그 근본적인 특성을 누가 준 것인지 물으신다.

다리에 힘이 없던 말에게 인간이 힘을 주어 그렇게 잘 달리는 것인가?

아니다.

하나님께서 말의 다리에 힘을 주셔서 그렇게 잘 달리며 사람은 그 힘을 이용하는 법을 터득하였을 뿐이다.

말이 인간의 가축이 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말 자체의 성질이다.

만일 애초에 말의 다리에 힘이 없었다면 기마용이나 수레용으로 말은 쓰이지 못했을 것이다.

그것은 반대의 예에도 적용된다.

어떤 짐승은, 예를 들어 ‘타조는 새끼를 마치 자기 새끼가 아닌 것처럼 거칠게 다루고 그 새끼들이 죽는다 하더라도 신경 쓰지 않는다’.

“이는 하나님이 지혜를 베풀지 아니하셨”기 때문이다.

동물들은 인간에게 의존된 존재가 아니다.

하나님이 부여하신 성질 가운데 인간에게 길들여질 ─이용될 수 있는─ 것이 있고, 그렇지 않은 것이 있다.

지구상의 모든 동식물, 무생물, 모든 현상이 다 하나님께 의존된 존재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인간이 그것들을 만든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타조에게 지혜를 베풀지 않으신 분도 하나님이시요 말의 다리에 힘을 주신 분도 하나님이시다.

 

이 본질과 그 한계를 아는 것이 곧 진실을 아는 것이다.

진실에 대면하는 자만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다.

만물이 누구를 위한 존재인지, 만물을 위하시는 분이 누구인지를 아는 지혜를 얻기 위해

하나님께 나아가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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