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지혜와 은혜와 은사가 넘치도록 (행18:24-19:7 ) 본문
제 18 장 ( Chapter 18, Acts )
비록
풀꽃이나
나팔꽃이
가냘프고 힘없어 보이지만
커다란 하늘이 있어
참으로 아름답고 좋아 보입니다.
주님 성령님이 계시면
난 비록 보잘 것 없지만
큰
하나님의 백성이 됩니다.
24. 알렉산드리아에서 난 아볼로라 하는 유대인이 에베소에 이르니 이 사람은 학문이 많고 성경에
능한 자라
25. 그가 일찍 주의 도를 배워 열심으로 예수에 관한 것을 자세히 말하며 가르치나 요한의 세례만 알
따름이라
아볼로.
그도
예수님 관한 것을 열심히 배워 말하고 가르친다.
열정이 있는 사람이다.
그러나, 요한의 세례만 알고 있다.
요한의 세례란 무엇인가?
아볼로의 열심은 학문적 열정일 수도 있다.
26. 그가 회당에서 담대히 말하기를 시작하거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듣고 데려다가 하나님의 도를
더 자세히 풀어 이르더라
그러나,
그가
브리스길라와 아길라를 만나게 된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도를
더 자세히 풀어 배웠다.
27. 아볼로가 아가야로 건너가고자 하니 형제들이 저를 장려하며 제자들에게 편지하여 영접하라 하였더
니 저가 가매 은혜로 말미암아 믿은 자들에게 많은 유익을 주니
그런 그가
은혜로 믿는 자들에게 유익을 주었다고 나온다.
은혜라는 단어는
브리스길라 등을 만나 배운 후 나온 단어이다.
28. 이는 성경으로써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증거하여 공중 앞에서 유력하게 유대인의 말을 이김일러라
은혜가 있기에
지식에 머물고 있던
그가
공중 앞에
유력하게 - 영어로는 virgorously, 열정적으로 - 증거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성경에 바탕을 두고
은혜 가운데
열정적으로
전도하는 그를 유대인들은 당할 수 없게 된다.
은혜는
예수님을 정확히 앎으로 올수 있다.
제 19 장 ( Chapter 19, Acts )
성령이
날 차고 넘쳐
이렇듯
흘러 나왔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늘요..
주님
1. 아볼로가 고린도에 있을 때에 바울이 윗 지방으로 다녀 에베소에 와서 어떤 제자들을 만나
2. 가로되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가로되 아니라 우리는 성령이 있음도 듣지 못하였노라
3. 바울이 가로되 그러면 너희가 무슨 세례를 받았느냐 대답하되 요한의 세례로라
5. 저희가 듣고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니
6.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니
7. 모두 열 두 사람쯤 되니라
에베소의 제자들은
요한의 세례 밖에 몰랐다.
그들도 제자였다.
그러나, 아직 요한의 세례 밖에 몰랐다.
사도 바울께서 손을 그들에게 얹는
안수를 받고서야
성령이 임하고 예언하게 된다.
이제 그들은 '예수님의 세례'를 받은 것이다.
요한의 세례와
예수님의 세례.
그 차이는 '성령'이 그 안에 거하시게 되느냐 하는 것이다.
성령이 거하게 되시면
은혜가 무엇인지 확연히 알게 된다.
사람에 따라 방언도 나오기도, 예언도 나오기도 한다.
오늘 묵상에서 두 부류의 사람들을 보이시면서
전혀 다른 그들 사이의 유사점을 발견하게 된다.
우선 ,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선택되어 있을 자격이 있는 사람들이란 점이다.
아볼로는 비록 지식적이지만
진리이신 예수님에 대한 올바른 호기심을 가지고
최선을 다해 공부를 - 올바른 체계는 아니지만 - 하던 사람이란 점이다.
너무 신비적이지 않지만
너무 딱딱한 이성적이지도 않은
그러한 넉넉한 믿음.
그러한 촉촉한 믿음이
오늘
제 속에 성령충만함으로 표시되기를 원합니다.
또한 열두 명의 제자 - 숫자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열두 사도? 온전함? - 로 표현되는 분들은
역시 예수님을 선택하는 올바른 결정을 한 사람들로서
비록 영적인 은사 - 방언, 예언-의 나옴은 없는
무미건조한 상태지만
요한의 세례를 받고서도
지금껏 제자로서 표방하고 있는
역시, 올바른 선택을 하고 있는 자들이란 점이다.
이들에게
주님은 다가 오셨다.
성령의 온전한 세례로...
이것은 시사하는 바가 있다.
주님은 세상에 모든 것을 움직이는 무소부지한 분이시고
모든 것을 다 하실 수있는 권능을 가지신 분이시지만
이 세상에 나타내셔서
운행하실 능력을 보이시기 위해서는
'예수님에 대한 선택'과
'인내'를 가지고 기다리는 자들에게
그들의 간구를 통하여 임하신다는
여지없는 증거시다.
또한
요한의 세례로 표시되는
초보적 신앙,
즉
머리 속에 머무는 신앙,
이치에 눈을 돌릴 수 밖에 없는 신앙
몽학 선생에 이끌려 커오는 신앙에
오늘 묵상 구절에서 볼수 있는 바
영적인 체험,
은혜로 표현되는
성령의 부어주심을 통한
개인적이고 인격적인
예수님과의 만남을 통한
예수님 세례를 통하여서만
온전한 '기독교인 '이 될 수가 있다는 이야기다.
예수님의 세례
그 세례는 첫사랑 때 부어질 수도 있다.
시간이 지나가며 믿음의 연륜이 쌓이면서 이루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의 믿음의 연륜에서 경험하듯,
삶 속에서 자주 넘어짐으로 인하여
주님의 필요하심에 의하여
언제라도
그 뜨거운 성령님의 임재 느낌은
어느샌가 느껴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게 문제다.
오늘 보여지는
그 성령의 부어주심으로 인하여
은혜로 절절히 성경을 바탕으로 유대인들을 물리치고
많은 자들에게 은혜를 끼칠 수 있거나
제자들이
성령 부음 받은 후
영적인 영역이 펼쳐져 은사가 늘
온전하게 -열 두명- 펼쳐 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특별히
오늘 주시는 개인적인 메시지는 이런 듯 싶으시다.
묵상할 바이지만,
' 성령으로 충만하길 소원하자.
그리하여
아볼로 같은 지혜에 더욱 온전하고 은혜로 무장되며
12제자 같이 영적인 영역까지 더욱 충만하여져서
너무 차가운 요한의 세례같은 이성적 믿음을 넘어서고
너무 과도한 방종의 믿음을 넘어서는
그러한 믿음을 사모하라'라는....
주님 앞에 겸허할 일이다.
주님..
오늘도 자꾸만 늦습니다.
주님
도유소서.
늘
주님의 성령으로
세례 받아
영혼 깊숙이
주님께서 자리잡으셔서
이 세상에 고정된 눈을돌려
주님 나라를
늘 염두에 두고
주님이 주시는
능력과 은사가
아볼로의
그 성경적 온전한 지혜를 가지고
은혜를 끼친
그 상태처럼 될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아직 부족한 제 영혼에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셔서
온전한 믿음의 제가 되게 하소서.
지혜가 아볼로 같게 하여 주시고
은혜와 은사가
열두 제자 같게 하여 주소서.
늘
주님 만을 사모합니다.
저의 기도가
과도한 욕심같아 보여도 물리치지 마시고
주여 들어 주소서.
주여
성령으로 임하사
저의 깊은 속의 간구를 들어 주셔서
영육간에
중심 잡힌
건강한 신앙인으로 거듭 거듭 새롭게 하소서.
주여
도우실 줄 믿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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